비교적 짧은 항해가 있고나서, 우리는 은갈치 항구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지난 번 입항했던 청새치 항구선에 비하면 조금 작은 규모에 속했으나, 그래도 배로 변한 메피스토펠레스의 몇 백 배는 커보였다.



 "오오오…! 드디어. 드디어어어어―――!! 기나긴 항해가 끝났구려―――!!!"



 "파우스트는 돈키호테의 말에 어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이곳은 어디까지나 경유지로써 들리는 것 뿐, 일주일 뒤에 다시 항해를―"



 "시끄럽소! 이 기분 좋은 날에 그런 소리 듣고 싶진 않소!"



 "그것보다 나하고 싱클레어 군과 같이 맛집 탐험 가볼 사람 있는가? 방금 입항하면서 퐘플뤠엣~을 구했는데, 이곳에서는 장어 푸딩이라는 게 명물이라더군!"



 "장어… 푸딩이요? 그런 걸 대체 무슨 맛으로… 아니 그 전에 저도 같이 가는거에요?"



 "당연히 같이 가야하지 않겠나! 내 저번에 자네에게 결례를 끼친게 마음에 걸리니, 이번에 내가 큰 보답을 해주겠네!"



 "저, 저는 그거보다 그냥 숙소에서 쉬고 싶은, 으아, 억지로 끌고 가지 마세요!!"



 "아 저런, 꼬꼬마들끼리 돌아다니다간 나쁜 어른이 물고가겠네. 혹시 모르니 나도 같이 갈게. 마침 맛집 탐방이라는 거도 재밌어보이고~"



 "………."



 "히스클리프 씨, 무슨 걱정거리 있으시나요?"



 "어, 무, 뭐?! 아이씨 왜 갑자기 말을 걸고 난리야?"



 "…그냥 그… 뭐냐, 좀 구할 게 있어서…."



 "아 그래, 야 샌님. 너 고급스러운 옷 많이 입어봤지? 이번에 나 옷 고르는 거 좀 도와줘라."



 "음~ 글쎄요. 제가 고급스러운 옷을 입어봤던가요? 그저 500 년 전통의 공방 어르신께서 한땀한땀 금실로 만드신 옷 정도 밖에 안되는데…."



 "읍 드믈그 그능 듭그느 흐르…!"



 "아하하, 알겠어요. 서민들 취향은 잘 모르지만 잘 해볼게요."



 "어… 야아, 쟤네둘 끼리만 보내면 한 명 시체되서 돌아오겠는데? 누구 또 옷 고르는 거 잘 하는 사람 있어?"



 "경험은 있다."



 "…진짜로?"



 "네일아트 전문점에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여성복 의상 코디를 맡았던 적이 있다."



 "아니 왜 또 여성복… 하아, 뭐 괜찮겠지. 어이 형씨들, 이 아저씨도 데려가."



 "흥, 졸개 녀석들 이때다 싶어 뿔뿔히 흩어지는군. 아무래도 다시 출항할 때가 되면 정신교육을 다시 시키는 게 좋겠어."



 "아! 관리자님께선 차후 일정이 어떻게 되십니까? 혹시 노고를 풀기 위한 장소를 찾으신다면 이 오티스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응? 아 괜찮아, 오늘은 이스마엘이랑 같이 돌아다니기로 했거든.>



 "…이스마엘, 말입니까."


 밝은 분위기 속에서 각자 모이며 떠나는 수감자들 사이로 오티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져갔다. 거기에 기분 탓일까, 내 옆에 서있는 이스마엘의 숨소리가 잠시 멈춘듯 했다.



 "관리자님, 어쩌면 귀에 담기 쓴 소리일지도 모르나 한 말씀을 감히 올리자면, 지난 번 이스마엘이 관리자님께 직접적인 상해를 입힌 전적이 있습니다."



 "………."



 "물론 그 때 이스마엘이 고의적으로 관리자님을 공격한 건 아닙니다만, 이곳 U사에 오고서 이스마엘의 정신이 불안정했던 적이 많았던 걸 생각하면 둘이서만 동행하시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음… 오티스가 염려하는 점도 알겠어. 다만 이스마엘도 저번 황금가지 탈환 이후로 많이 나아졌으니 한 번만 다시 믿어줄 순 없을까?>


 사람의 정신이란 게 그저 많이 나아졌다는 말 한 마디로 대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만, 황금가지라는 특수성이 내 말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심리, 기억들을 날 것 그대로 내보여주는 그곳에서 이스마엘이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던 모습은 이전과 달랐으며, 그 날 이후로 전보다 더 좋아진 그녀의 모습들을 보아왔던 오티스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듯 했다.



 "…알겠습니다. 관리자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명심해주시길 바랍니다. 관리자님께선 저희 수감자들 전원보다 더 귀중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관리자님을 귀이 여기는 것은 관리자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관리자님께서 더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지 마셔야 합니다."



 <…알았어. 주의하고 조심하고 돌아다닐게.>


 문득 오티스가 지금 지어보이는 표정에서, 지난 번 내가 히스클리프와 돈키호테하고 외곽 너머로 갔을 때의 모습이 엿보이는듯 했다.


 늘상 내게 대놓고 아부를 떨어오던 오티스가 처음으로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 순간이기도 했기에, 수감자 하나하나가 나를 생각하는 게 그저 친분 때문만은 아니라 생각됐다.


 내가 죽으면 그들의 이야기도 더 이어질 수 없을테니까.



 "음…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주제넘은듯 했군요. 아무튼 저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수리할 부품을 구하러 가보겠습니다. 관리자님께선 편안한 휴가 보내시길 바랍니다."



 "거기에 대해선 저도 동행하도록 하죠."



 "그래, 마침 정비공인 니녀석을 부를 참이었다. 헌데 이상 그 자는 어디에 있지?"



 "그이는 땅멀미가 도져서 메피스토펠레스 내부에서 쉬고 있어요. 방금 막 아달린을 먹이고 오던 참이었습니다."



 "흥, 고작 그정도의 항해로 기진맥진해 하다니. 병사의 기본도 안되어 있군. 다시 출항을 하게되면 남는 시간동안 체력단련을 해두는 게 좋겠어."


 그렇게 오티스와 파우스트도 발걸음을 옮겼다. 남아있는 수감자는 그레고르와 료슈 밖에 없었는데, 그 둘도 구석에 있는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각자의 방식으로 휴가를 보내려는듯 했다.



 <베르길리우스와 카론은 입항 하자마자 멋대로 떠나갔고… 그러면 우리도 슬슬 출발해보도록 할까?>



 "………."



 <이스마엘?>



 "아, 아 네? 부르셨나요?"



 <응, 같이 가려는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려는데.>



 "아아… 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그게 그러니까… 제가 피쿼드호에 지냈을 때 종종 들렸던 병원이거든요."



 "그 때에 퀴케그가 자해를 하다가 상처가 덧난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곳 항구선에 입항 할 때마다 치료를 받곤 했는데… 단테 씨 상처도 봐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하하…."



 <그런거였구나. 근데… 그 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네.>



 "그, 그건 또 생각 안해봤네요… 만약 그러면… 그게… 어디로 가야하지…."



 "다른 병원에 알아봐? 아냐, 연줄도 없는데 아무 병동에나 들어갔다간 해적 놈들 인질이 될 지 몰라. 그렇다고 안전한 곳으로 잡기에는 진료비가… 저축해놓은 게 얼마나 되지?"



 <…저기, 이스마엘.>



 "생각해보니 큰소라 고래의 인어 진액이 상처에 좋다는 민간요법이… 아니야, 그런 걸로 해결하려 했다가 되려 상태가 더 나빠지시면 어떻게 해. 이럴 줄 알았으면 급여 가불이라도…"



 <이스마엘!>



 "아, 네?!"



 <일단 진정해. 아까 내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정말 문 닫았는지 안 닫았는지는 모르잖아. 이스마엘이 믿을 정도로 실력 좋은 의사라면 지금도 잘 운영하고 있겠지.>



 "그건… 네, 확실히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리고 내 상처는 괜찮으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오티스가 아까 전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평소에도 말을 날카롭게 하는 경향이 있으니 그런거 뿐이야.>



 "…그거는……"



 <솔직히 말해 이 정도 아픈건 평소에 너희들 데리고 거울 던전 돌 때 수두룩 하게 느끼는 고통이랑 비교하면 새발의 피도 아니야. 고작 어깨 시큰거리는 정도인데 뭘.>


 방금 전 오티스에게 말했던 바가 무색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보이는 이스마엘의 기운을 독려할 겸, 웃으며 그리 말했다.


 사실 객관적이나 주관적이나 사실이긴 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복도에 나있는 온갖 문 속을 들어갈 때마다 다양한 죽음들을 경험하게 된다. 환상체란 이지에서 벗어난 존재이니 그만큼 기상천외한 죽음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하루에도 못해도 수 번, 많으면 수십 번 그리 경험을 하는 것과 비교해보자면 이스마엘이 찔렀던 작살은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하아… 진짜…."


 그런데 이스마엘은 왜 저렇게 불만스럽다는듯 한숨을 내쉬는 걸까.



 "아픈 게 아픈 거지 덜 아프고 더 아프고 그런 게 어딨어요?"



 <어… 그, 그런가?>



 "뭘 그런가 에요? 당연한거죠! 하여튼간에 왜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태연하게―"



 "…아니에요. 제가 또 말이 험하게 나왔네요. 아무튼, 슬슬 출발하도록 해요. 단테 씨 어깨에 난 상처 치료하려면 하루 이틀만으로는 안될테니까."



 <음… 그래, 알았어.>


 썩 불편한 기색을 다 감추지 못한 이스마엘은 앞장 서 걸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뱃사람들의 목청 큰 고함소리와 갈고리에 걸린 고래들의 비릿한 피비린내가 만연한 부둣가에서 벗어나 거주지역에 들어서자 빽빽하다는 표현 외엔 달리 걸맞을 게 없어보이는 컨테이너 박스들의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의 일부가 가려질 만큼 높다랗게 쌓인 컨테이너들은 저마다 거기서 거기인 모습을 띄어 이 거리가 저 거리 같고 저 거리가 이 거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다할 안내 표지판도 없어 자칫 잘못하다간 길을 잃기 쉽상일텐데, 이곳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은 익숙하다는듯 저마다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스마엘도 익숙한 길이라는듯 성큼성큼 걸으며 컨테이너 박스 사이사이를 누볐다.


가는 길은 이스마엘이 말했듯 그리 멀지 않았다. 또한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골목길을 넘어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그녀가 지어보이는 안도에 찬 미소는 그 병원이 잘 남아있었다는 걸 말해주는듯 했다.



 "어찌… 상처는 곪은 구석은 없어뵈는디, 뼈가 쪼개졌구먼."



 "뼈가… 네? 뼈가 쪼개졌다고요?"



 "여기 엑스레이 사진 찍은거, 이짝에 보믄 뚝 끊어졌잖어? 응급처치 하면서 얼추 붙은거 같긴 헌디… 이리두믄 엇나갈 수 있겄어."


 그리고 진료를 보는 동안 예상 외의 결과에 이스마엘은 놀란 눈치를 감추지 못했다.



 <어쩐지 팔 움직일 때마다 쿡쿡 쑤신다했더니 그래서였네?>



 "그걸 왜 신기하다는듯 말하는건데요!"



 "아니, 아니… 아니죠. 그래서 치료 할 수 있는거죠?"



 "고칠 수는 있제. 근디 수술을 해야쓰갔구먼. 날짜는 언제로 잡는 게 좋갔어?"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던 거에 일주일 동안 정박 하기로 했던 게 그나마 다행이였다.



 "일주일 뒤에 출항이니 그 사이에 잡아주세요."



 "그라믄 나흘 뒤에 오슈. 근디 그쪽 의체 양반은 신경계 쪽은 의체가 아닌거 같은디, 안 아픈겨? 팔 움직일 때마다 뼈가 삐그닥 거릴낀데."



 <아프긴 해도 익숙하니 그런대로 괜찮은데.>



 "…아프다고 그러니까 진통제 하나 좀 처방해 주세요."


 그리고서 병원을 나왔다. 일부러 찾아온 거 치고는 금방 끝난 감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기는 해도, 진통 주사를 맞자마자 쿡쿡 쑤시던 어깨가 개운해지듯 편안해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올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날씨 좋네. 놀러다니기 괜찮은 날씨라서 다들 좋아하겠다.>


 아무튼, 해는 중천이었다.


 올려다본 하늘은 맑아 이대로 돌아가기엔 아까웠다. 기나긴 항해 이후로 맞이한 첫 휴일인 만큼 메피스토펠레스에 시간을 보내기에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게요. 항구선이 꽤 잔잔한 호수를 지나가고 있나봐요. 달리 더 하실 거 없으시면 조금 더 돌아다녀볼까요?"



 <그래, 돌아가봤자 할 거도 없는데 여기에 뭐가 있는지 보러 다니자.>


 때마침 이스마엘도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그녀의 제의에 흔쾌히 수락하고서 우리들의 발걸음은 천천히 대로변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걸어보며 돌아보는 항구선은 새로웠다. 지난 번 청새치 항구선에서는 비포 팀과 접선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보니 정신 없었는데, 때문에 육지에서 흙을 가져와 화단을 가꿔놓은 공원이 있다거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노점상이나 기념품점 등이 있다는 걸 이제서야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다 나는 거기에 대한 연장선으로 한 가지 사실 하나를 더 알아챘다.



 <생각해보면 이번이 처음으로 도시를 여유롭게 돌아다녀 보네.>



 "확실히 그렇네요. 매번 황금가지 찾으러 도시 이곳저곳 바쁘게 돌아다녔고…"



 "황금가지를 찾는데에도 다른 경쟁자들과 싸워야하니 쉴 틈이 없었죠. 황금가지 구했다하면 바로 버스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고요."



 <그러게나 말야. 난 기억이 없으니까 회사가 원래 이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쉬엄쉬엄 갔으면 해.>


 어쩌면 수감자들이 최근들어서 정신적 피로에 시달리는 건 그리 이상한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황금가지라는, 회사의 숙원 사업인 이것을 몇 번이나 성사시켰음에도 뒷풀이 회식 한 두 번으로 퉁친다는 건 기억을 잃어버린 나에게도 미묘하게 다가왔다.


 그냥 자고 일어나면 기운을 차리고 업무에 임할 수 있는 건 뫼르소 외엔 힘들테니까.



 "아니, 하다못해 버스 안에서라도 좀 편하게 지내면 좋으련만 뭐만 하려고 들면 길잡이 양반이 눈에 불을 키고서 난리를 치잖아요."



 <내 말이 그말이야. 맨 처음에 우리가 N사에 황금가지 빼앗겼을 때도 그거가지고 얼마나 꼽을 줬는지 몰라. 정작 자기는 버스에서 쉬고나 있었으면서.>


 해결사라는 직책이 있고 그중 특색이라는 이명을 부여받은 해결사는 도시 만민들에게 경외와 두려움을 사는 존재라는 건 익히 들어왔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돈키호테를 통해 좋든 싫든 알게 되었고.


 하지만 베르길리우스를 볼 때마다 그 특색이 얼마나 대단한지 감이 안 잡힌다. 분명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베르길리우스를 볼 때마다 진중하게 대하는 듯 한데, 그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도통 본 적이 있어야지.


 최근들어서 베르길리우스를 바라보는 돈키호테의 시선도 영 미심쩍어진 걸 보면, 비단 내 생각만은 아닐테다.



 "그래도 저번에 그건 웃겼어요. 기억 나세요? 메피스토펠레스가 중간에 펑크가 나서 도로에 정차했을 때요."



 <아아, 그때 그거?>


 조소어린 웃음을 짓는 이스마엘의 말에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도시의 뒷골목 사이를 전전하던 때였다.





 "카론 더 못 가. 메피 왼쪽 앞발이 뭐 밟고 아프대."



 "뭐야, 아까 뭐 밟고 덜컹거리나 싶더니 펑 하고 터졌던 게 그거야?"



 "소리 들어보니 펑크 난 거 같은데? 뒷골목 쥐새끼들이 못 같은 거 뿌려놨나보지, 그거 밟고 펑크 난 차량 털어먹게."



 "아뇨. 잠시동안 기다려보아도 접근하는 대상이 없는 걸로 보아, 그저 운이 나빴다 라고 할 수 밖에 없군요. 우선 차량 정비를 위해 잠시 정차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아… 별 수 없군. 혹시 모르니 수감자들 전원 하차하도록."



 "아냐, 베르도 내려야 해."



"카론? 무슨 말을 하는거냐."



 "저번에 테레비에서 봤어. 차가 멈춰있으면 멈춰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뒤쪽에 경고판이나 비상불을 켜놔야한다고."



 "그러니까 대체 왜 내가―"



 "메피에겐 경고판이 없으니 베르가 뒤에 가서 비상불이 되어줘."



 "………."



 "푸핫!"



 "…………."


 베르길리우스와 카론의 대화를 엿듣던 수감자들 중 몇몇이 웃음을 터트렸고, 베르길리우스는 그들을 평상시 처럼 노려보았다. 하지만 평소 수감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그 안광은 그저 카론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줄 뿐이었다.



 "…바꾸도록 하지. 수감자들은 전원 이곳에 대기하고 있도록."



 "그리고 만에 하나 창 밖을 내다보는 인원이 있을 시… 메피스토펠레스의 비상등이 되고 싶어 한다고 간주하고 남은 여정길 동안 후미에 매달고 가겠다."






 <나 그 때 보고서 깜짝 놀랐다니까. 베르길리우스 그 사람 눈 번쩍거리는 걸 그렇게 쓰는 사람이 어딨겠어?>



 "그러니까요. 날개의 간부들도 함부로 못 대하는게 특색인데. 카론 그 아이 말이면 아주 껌뻑 죽는다니까요?"



 "음… 어쩌면 딸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두 사람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보이고, 친구나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가 너무 심해서…."



 <생각해보면 파우스트에게 예전에 거기에 대해 물어보니 기밀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는데… 에이 설마?>


 자기 기분 나쁘다 싶으면 눈에 불을 번쩍거리는 그 양반이 결혼을 하고 애를 만들었다고? 차라리 고아였던 카론을 양녀로 들였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아무튼 그리 이야기를 나누며 항구선을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날이 져물어가기 시작했다.


 노을로 물들여지는 하늘 사이에 갈매기들이 우짖는 소리가 잦아들어가고, 길거리를 바삐 오가던 이들도 하나둘씩 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올랐다.


 나와 이스마엘도 그들 중 사이에 끼어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꽤 재밌었네. 즐길거리도 많고 돌아다닐 곳도 많아서 하루 이틀만으로는 다 못 둘러볼거 같은데?>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사실 여기 항구선도 꽤 작은 규모라서 다른 곳이었다면 좀 더 즐길 거리도 있었을거에요."



 "가령 저번 청새치 항구선은… 아……."



 <지난 번 일이 아직도 마음에 걸려?>



 "아무래도… 그렇죠. 물론 그때 제가 했던 짓들을 외면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조금… 아니 꽤 많이 미안해지네요."



 "비포 팀을 구하려 했던 거도 있긴 했지만, 다른 분들께 무례한 소리를 많이 했죠. 특히… 단테 씨께요."



 <뭘, 나는 그 때 있었던 일들 다 잊어버렸는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마.>


 나는 가볍게 웃으며 위로해주었다.


<정 뭣하면 다음에 수감자들이랑 여기 놀러오면 관광 잘 시켜줘. 방금 보니 이스마엘 관광 안내원 해도 되겠더라.>



 "후훗… 고마워요. 언제 기회가 되면 정말 그래야겠네요. 청새치 항구선에 청새참치 요리로 유명한 곳이 있는데―"




 <응? 왜그래?>


 


 "………."



 "단테 씨, 그러고보니 뭐 드시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드실 수 있나요?"



 <응? 딱히 안 먹어도 이상 없어서 안 먹긴 했는데….>



 "아무튼 단테 씨도 같이 드셔봐요."



 <에이, 입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먹어. 난 괜찮아>



 "아 먹으라면 같이 좀 먹어요!!"




 그렇게 은갈치 항구선에서의 하루가 끝났다.


 꽤 즐거웠던 하루였다. 마지막에 이스마엘이 소리친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만, 이곳 버스팀에서 고함소리 정도는 서로에 대한 친근감 표시 정도의 나긋나긋한 대화법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저마다의 휴가를 즐기고 돌아온 수감자들의 표정도 밝아보이고, 이번에 베르길리우스에게 휴가를 내어달라고 부탁한 건 좋은 생각이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다음 날 밤까지는 그리 생각했다.





 <…싱클레어, 방금 뭐라고?>



 "그, 그, 그러니까… 그게…."


 수감자들이 저마다 휴식을 취하러 들어간 늦은 밤에 홀로 찾아온 싱클레어는 나에게 말했다.



 "로쟈 씨하고 돈키호테가…! 해적들에게 납치됐어요…!"




 <………….>



 망했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