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검은 언제 휘두르게 해주시는 거예요?”

 “지금은 때가 아니야.”

 

 보라색 머리를 올리고 비녀를 꽂은 여성이 벼루에 먹을 따르며 말했다창 사이로 바람이 새어나와 앞머리가 찰랑거리고 있었지만 상관없다는 듯이 벼루에 먹을 따르고 있었다.

 

 “그보다 말은 편하게 하라니까나랑 별로 나이차이도 안 나면서 스승님스승님하니까 너무 부담스러운데.”

 “제자는 스승님께 최대의 예를 표해야한다고…….”

 “그런거 필요 없다니까.”

 

 스승님은 먹을 마저 갈기 시작했다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갈아낸 먹을 붓에 적셔 한 송이의 모란을 그려냈다스승님의 그림에는 무언가 마음을 울리는 것이 서려있는 것처럼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역시스승님은 대단하시네요.”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어너의 가능성은 네가 찾아야 하는 거지 다른 사람이 정하거나 찾아줄 수 없는 거야.”

 “가문명으로 부르지 말아주세요.”

 

 검술에 재능이 없다고 이름조차 주지 않은 가문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다 자살한 어머니그리고 그걸 방관한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가문명이 정말 싫었다.

 

 “진정해내가 네 수련을 방해했네.”

 

 스승님이 내려준 솔잎향이 나는 차를 한 모금 홀짝이고 서툴게 갈아낸 먹으로 난초와 나비를 그려냈다꽤나 볼만한 난과 나비가 그려진 것 같았다하지만 스승님은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마음이 정돈되지 못했어.”

 

 스승님은 창문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제 겨울이 오는거 같네날이 쌀쌀해.” 

 

 스승님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밖에서는 이름 모를 새가 울고 있었고 창으로는 달빛이 흘러나와 스승님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잠깐 이리 와봐오늘은 달이 참 밝아.” 

 

 창문밖에는 낙엽이 반쯤 떨어져간 나무들 사이로 쏟아질 듯 박혀있는 별들과 밝게 떠오른 푸른 보름달이 보였다.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아름답네요.”

 “나랑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해?”

 “이름도 없는 술집에서 싸우려던 저를 말려주셨죠.”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

 “제가 약해서인가요?”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가문에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다약자가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오직 강자만이 모든 것을 가진다.

 

 “무능한 것.”

 “그런 검술이 운 가문의 검술이냐반푼이 놈.”

 “유 부인도 불쌍하시지하필이면.”

 

 약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고지키지 못했다어느날 어머니가 가져온 음식을 먹자 온몸이 비틀리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고 어머니는 쓰러졌다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깨어나지 못했고 비루한 몸뚱이를 일으켰을 때는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였다.

 

 “넌 내 아들이 아니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자 검 한 자루와 걸레짝 같은 옷을 입은 채로 쫓겨나며 마지막으로 들었던 말이었다어머니에게 일말의 애정은 있었는지 어머니의 죽음을 내 탓으로 돌리며 내 쫓았고 그 뒤로는 기억이 희미하다.

 

 “저놈이 운 가문의 머저리라고?”

 

 이름도 없는 술집에서 술에 거하게 취해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에 불쾌한 이름이 들려왔다허름한 차림에 장식만 화려하게 달린 검을 차고 있는 불량배가 낄낄대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좀 닥쳐너 그러다.”

 

 마시고 있던 술병을 불량배에 던지고 쫓겨날 때 받은 칼을 뽑아들려는 찰나에 누군가 막아섰다.

 

 “검은 그렇게 다루는 게 아니야.”

 

 허름한 술집에 어울리지 않는 정갈한 옷차림에 장식이 달리지 않은 도검을 든 여성이 내 앞을 막아섰다.

 

 “비켜.”

 

 피를 먹어 빛이 바랜 칼날을 겨누며 말했다.

 

 “검은 검사의 마음을 보여주는 창이라고 하지그런 검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어느새 뽑아든 검에 푸른빛이 맴돌고 있었다선택받은 천재들만이 자신의 신체 혹은 무기에 실체를 담은 무언가를 깃들게 할 수 있다.

 

 ‘그것을 오러라 부르고오러를 쓸 수 있다는 건 최소 익스퍼트급의 검사라는 뜻이겠지.’

 “심검류몽유도원.”

 

 푸른빛의 꽃잎들이 술집을 가득 매웠다쏟아지는 듯이 흩날리는 꽃잎들은 바닥에 닿자마자 바스라 지듯이 사라졌다.

 

 “막지말고 피하는 게 좋을 거야.”

 

 3합인가 4합에서 검이 부셔지고 그대로 달려들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부터는 기억이 희미하다정신을 차렸을 땐 부러진 검을 쥔 채 주저앉아 멍하게 푸른 꽃잎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술은 훌륭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벨 수 없어.”

 “어떻게 하면 마음을 정돈 할 수 있죠?”

 

 충격이 가시지는 않았는지 몸을 일으키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저렇게 강할 수 있는 이유가 뭔지나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무엇을 위해 검을 잡았는지그 답을 찾아야해.”

 

 칼을 집어넣은 여성은 나를 일으키며 말했다그녀의 손은 수많은 상처와 굳은살이 박혀있는 검사의 손이였다.

 

 ‘내가 검을 잡은 이유는…….’

 

 그저 아버지한테 인정받고 어머니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운 가문의 이름 없는 머저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이자 운 가문의 검사로 살고 싶어 검을 잡았고 휘둘렀다.

 

 “답을 찾지 못했다면내가 도와줄 수 있어.”

 

그것이 스승님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그날의 날씨가 어땠는지 그날의 달이 어땠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도오늘도 달이 푸르니 청월어때?”

 “?”

 “가문명으로 부르기에는 뭐하고그렇다고 안부를 수 도 없잖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사랑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그저 검을 휘두르다 보면 누군가가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래너무 대충 지은 거 같아?”

 “아뇨그냥누군가에게 뭘 받는 게 처음이라…….”

 

 어째서인지 눈물이 흘러나왔다달빛이 눈부셔서 그런 걸까아니면 내 이름을 지으면서 웃는 스승님의 얼굴을 봐서일까.

 

 “이제부터 더 많은걸 줄 거니까, 다음부터는 울지 말고.”


 스승님이 손수건으로 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스승님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드디어, 내가 검을 잡을 이유가 보인 것 같았다.

 

 별로인거 같으면 지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