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송하늘

간만에 하은 사장님의 집에 왔습니다. 
화이트데이를 맞아서 과자를 만들고 있는데 좀 일이 생겼네요.

"엄마! 이거 이상해에!"

오븐에서 꺼낸 빵을 칼빵으로 자르려고 했는데...

[쨍강]

칼이 부러졌어요.

"난 엄마가 아닌... 어머나 저게 뭐야."

사장님도 이상하게 보네요. 
비스킷에는 흠집도 안 났는데, 역시 이건 이상한 거겠죠?

"장비품을 만들지 말고 먹을 걸 만들렴... 
아니면 고전적으로 쉽 비스킷을 만들려고 한 거니?"

"이러려던 게 아닌데..."

제빵 어려워요. 
요리는 대충 맛을 아니까 머릿속에서 추측해 적당히 넣으면 될 텐데, 요리는 그게 안 먹히네요. 
우유 넣는 거랑 물 넣는 거랑 뭐 얼마나 차이 난다고 이렇게 딱딱해진 거죠? 
처음 쓰는 오븐이라 레버가 안 익숙해서, 15분 구워야 할 걸 5분과 10분으로 나눠서 구운 것 뿐인데.

"너는 요리는 잘 하면서 왜... 계량컵이랑 저울이랑 스포이트만 잘 쓰면 된다니까?"

"으앙... 학교 다닐때도 화학은 못했다고요."

요리 할 때도 계량은 잘 안 하고 간은 자주 보는 편이에요. 
근데 제빵은 간을 보는 게 어렵잖아요. 
반죽을 뜯어내서 먹어봐야 이 맛이 그대로 나오지도 않을 거고...

"에휴. 이래서 오늘 안에 만들 수 있겠니?"

그나마 카페가 쉬는 날이라 다행이죠. 
아침부터 점심까지 계속 만들었는데 성공이라고 할만한 것이 안 나왔어요.

"만들어야죠!"

어렵고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해봐야죠.

"그리고 비스킷이면 따로 담아서 오븐에 넣어야지, 다 굽고 자른다는 건 무슨 생각이니?"

"...? 오븐에서 꺼낸 걸 자르나 잘라진 걸 오븐에 넣으나... 그렇게 중요해요?"

요리에서는 오븐에 넣는다는 것이 곧 완성이라는 뜻이니 꺼내서 자르나 잘라서 넣으나 큰 차이가 없는데.

"제빵에서는 중요해!"

음... 그렇군요. 
제빵에서는 절차가 상당히 중요한가 봐요. 어렵네요.

"하늘아. 지금 물 얼마나 넣었니?"

"한 컵이요."

"그게 몇 ml인데..."

"응? 비율만 맞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일단 레시피북에 적힌 대로 먼저 따라 해보렴..."

사장님이 한숨을 푹 쉬었어요. 
제가 제빵이 처음이라 많이 어렵네요.







1.







// 남우진

"홍아름 씨. 이거."

그래서 오늘은 사장실에서 홍아름 씨와 틀어박혀 서류를 뒤져보고 있었다. 

"네. 증명서 여기 있습니다."

사실 사장으로서 비서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건 반대였는데, 한국에 와서 홍아름 씨와 일하니 '어딨다가 이제 나타났어!'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회계를 전공해서 자격증도 갖고 있고, 처음에는 물론 절차를 제대로 몰라 헤맸지만 한번 제대로 알려주면 헷갈리는 법이 없었다. 

저번 주에 '1주 안에 1/4분기 회계 검토와 2/4분기 계획을 모두 끝내려 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낸 뒤 이번 주에 출근하자, 
이미 홍아름 씨는 관련된 모든 서류를 사장실에 가져다 두었다. 
작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마워요."

사실 12월에 있던 4/4분기 결산도 나 없이 잘 돌아갔을 테니까, 그냥 둬도 별문제가 없을지도 모르지. 
이런 일 하라고 경영지원 부서가 있는 거니까.

하지만 회사라는 건 돈을 피 삼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 
회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이것보다 중요한 지표가 없지. 
사장으로서 알고 있어야 하고, 계획을 내가 세워서 전달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아버지와 싸워서라도 나온 것이다.

근데 날짜를 보니... 오늘이 3월 13일이네. 
공교롭게 날짜가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3월 14일이 화이트데이니까 하늘 씨에게 뭐라도 선물을 해야 할 것 같다.

"홍아름 씨는 남자 친구 있습니까?"

나보다는 홍아름 씨가 잘 알 것 같아서 한번 물어보았다. 
사장실에 책상을 두고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홍아름 씨는, 나에게 많이 놀랐는지 순간 행동이 딱 멈췄다. 
하긴, 개인적인 질문을 한 적이 거의 처음이니 놀랄 수도 있겠지.

"아, 아뇨. 없습니다."

너무 뜬금없이 물어보았나? 굉장히 당황하는데.

"그럼 이번 일 끝나면 또 장기 휴가일 텐데. 무슨 일정 있으신가요?"

진정해요. 난 뭐 다른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냥 일정이 있는지 궁금할 뿐이에요. 
물거나 해치지 않습니다.

"사, 사장님. 저는 부, 불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

갑자기 이 인간이 뭐라 지껄이는 거야.

"물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고, 공공연하게 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머리가 아파져서 관자놀이를 잡았다. 
고장난 것처럼 버벅거리며 말하는 홍아름 씨를 일단 진정시켜야지...

"뭘 어디서부터 오해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진정하세요. 
근데 왜 그런 제의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자 친구가 없으면 휴가 중에 같이 있자... 고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면 그런 이야기가 되는 건데. 
중간에 이야기가 너무 뛰지 않나?

"... 죄송합니다. 요즘 드라마에 빠져서."

한숨을 푹 쉬었더니 홍아름 씨가 난처해하는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음. 그럴 수... 있기는 개뿔. 
사적인 대화로 넘어가면 이 사람은 어딘가가 망가지는 것 같은데.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앞으로 더 조심해야지.

"일단 그런 생각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시죠. 
제 여자 친구에게 선물을 사주려고 하는데 뭐가 적당할지 물어보려고 했던 겁니다."

내 주변에 있는 여자라고 해봐야 홍아름 씨나 하은 씨 정도이니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한번 물어보았다.

"아.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좋은 생각?"

[타다다닥...]

"사내 공지로 투표를 한번 받아 보겠습니다. 
항목은.."

"홍아름 씨, 잠깐만! 그거 아냐! 
키보드에서 손 떼!"

"이미 올렸..."

"항목 뭘로 채운 겁니까?!"

"설문하는 사람이 자유 양식으로 채울 수 있게 했습니다..."

"아..."

빨라! 그리고 그런 걸 회사 공지로 올리면 어떡해. 
내가 막 사적인 걸로 직원들에게 물어보냐고. 
이걸 전 사원이 다 보는 게시판에 공지하냐...

... 반성하자. 
홍아름 씨에게 뭔가 사적인 걸 질문하면 폭탄이 떨어지는구나. 

'너 이리 와봐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회장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이따가 부르려나. 부르겠지. 
그리고 나를 매우 치실 거야. 
이건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 뭐라 변명하지도 못하겠고...

"글 내려요!"

잠깐의 현실도피를 지나 정신을 차렸다. 
1분도 안 되었으니까 30명도 안 봤을 거야. 
지금이라도 삭제하면...

"공지는 제가 권한이 없어서 내릴 수가 없습니다. 
관리팀에게 물어보시는게..."

"시설관리팀이요?"

"사내 게시판 관리는... 보안실과 시설관리팀이 관리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일단 그럼 보안실. 
여기에서 바로 연결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으니까...

[네, 사장님. 올라가겠습니다.]

그리고 뚝 끊어져 버렸다. 
아니 올라오지 마. 거기서 처리해 줘... 
더 일이 커지고 싶지 않아.
직원들이 보면 '와 사장님 연애한다고 염장 지르네' 그럴 거 아냐. 
이거 직장 내 부조리나 갑질로 언급되는 거 아냐?
다시 거니까 왜 전화 안 받아? 
이것들 근무 태만이야!

'시설관리과가... 여기 있네.'

중간에 있는 내선 번호를 찾아서 간신히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시설관리팀의...]

"안녕하세요. 지금 게시판의 공지글 삭제가 가능합니까?"

지금 인사 주고받을 시간 없어! 
홍아름 씨는... 뭘 저렇게 키보드로 치고 있는 걸까.

[네? 게시판이요?]

"사내 게시판 말하는 겁니다. 
지금 공지글로 하나 등록이 되어 있을 텐데, 그거 삭제가 될까요?"

[게시판... 잠시만요.]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로 '게시판 담당이 누구였지?'하며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긴, 대외적으로 보이지도 않는 게시판이니 저걸 누가 전담해서 관리할리는 없겠지. 
심지어 실명으로 올라가니 누가 상주하고 앉아서 관리해야 할 이유도 없을 거다.

전화기 너머에 대답이 없는 동안 마우스를 움직여 홍아름 씨가 뭐라고 올렸는지 살펴보았다.

[제목 : 사장님이 사장님 여자 친구에게 줄 선물 골라달래서 추천받는다]

[작성자 : 홍아름]

[내용 : 제목이 곧 내용.]

그리고 자유 양식 투표 걸어 놨어...

핸드폰에서 진동이 와서 확인했더니... 
'회사에 공지 사항이 올라왔습니다' 라고 회사 어플이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아, 젠장. 회사 어플도 연동되게 되어있지, 저거...

[네, 확인했습니다. 
사내 자유게시판 관리는 저희가 아니라 보안실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회사 보안과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담당자가 그쪽에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고마워요. 끊겠습니다."

[좋은 선물 고르시기 바랍니다.]

끄아아앙.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 없는 거 같냐...

"그... 죄송합니다."

"홍아름 씨..."

아... 뭐 이렇게 꼬였지. 
회사 생활 최대 위기가 이런 데에서 올 줄은 몰랐는데.

"아니에요. 앞으로는 게시글을 올릴 때는 제 허락을 먼저 받고 올리죠..."

"네..."

지금 투표수가 100을 넘어간다. 
하하. 미치겠네.

[시설관리팀에서 왔습니다.]

사장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홍아름 씨가 문을 열기 전에 내가 얼른 달려 나가 사람들을 안으로 들였다.

"지금 공지 사항 하나를 잘 못 작성해 올렸습니다.
삭제할 수 있을까요?"



총 4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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