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흐으으윽..끄윽..윽.."


오늘도 왕후가 거주하는 침실에서는 누군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대관절 무엇이 그리도 한이 깊은지, 그녀는 궁녀들이 가져다놓은 식사는 한 술도 뜨지 않고 그저 울어대기만 했다.


"중궁 폐하께서도 참 안 되셨어.."


"성상 폐하께서도 탐탁찮아 하신 걸 조정 대신분들이 밀어붙이셨다며?"


"에휴..말해 뭐해, 아무리 중궁께서 먼저 성상께 청하신 거라지만.."


그렇다. 지금 울고 있는 그녀는 바로 이 나라의 왕후였다.


두 달 전 대소신료들이 중궁이 원자를 탄생케 하지 못한 것과 임금의 나이가 서른이 넘은 것을 이유로 임금에게 왕후를 더 들이는 것을 청한 적이 있었다.


왕후를 매우 끔찍히도 사랑했던 임금은 역정을 내면서 신료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문제를 논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허나 이번만큼은 신료들도 물러나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에 갑자기 신하 한 명이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칼을 놓고는, '성상께서 후사를 잇지 못하는 방도를 택하신다면 신의 목을 베고 사지를 찢어 저잣거리의 푸줏간에 내거시고, 그러하지 아니하시다면 왕후를 더 들이심이 옳다' 하였다.


그 신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위의 신하들이 합창하며 왕후를 더 들이지 아니하실 것이라면 차라리 신들의 목을 베라고 하였다.


왕은 더욱 노하여 옥좌에서 일어나 신하가 놓은 검을 칼집에서 빼들고, 그대로 그 신하를 내려치고자 했다.


허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던지, 왕은 이내 분노에 찬 얼굴로 신료들에게 다시는 이러한 말을 결코 꺼내지 말라고 강도 높은 경고를 하였다.


허나 신하들 다음에는 이번엔 왕의 모후였다. 모후는 왕의 나이가 서른 살이 넘은 것을 이유로 들어, 동궁의 위호를 정할 원자를 낳게 할 왕후를 더 들이라고 간청했다. 왕은 모후에게는 약한 구석이 있어, 차마 모후의 말을 거역하지는 못하리라 여겨졌다.


왕은 그러하지 않었다. 결단코 그리할 수 없다며 모후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자 모후의 언성은 더욱더 높아졌고, 이에 따라 한 번도 모후에게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던 왕의 언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날 이후 두 모자의 사이는 급속도로 냉각되었고, 왕은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랑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본 왕후는, 큰 결심을 했다. 


그녀는 왕에게 나아가서, 중신의 말대로 왕후를 더 들이시라고 했다.


왕은 매우 놀라며, 나에게 왕후는 하나뿐이라 말했다. 


그러고는 왕후의 손을 잡으며,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 태기가 있을 것이니 부디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자신을 다정히 대해주는 남편의 모습에, 왕후는 눈물을 흘렸고, 왕은 또 당황하며 급히 손수건을 왕후의 눈가로 가져다대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왕후는 왕의 손을 꽉 잡으며, 부디 저를 위해서라도 왕비를 들이시라고, 한숨을 쉬며 괴로워하는 왕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런 왕의 모습을 볼때마다 자신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왕이 그래도 여전히 머뭇거리자, 왕후는 왕과 눈을 맞추며,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침내, 왕이 굴복하며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그리하겠다고 하였다.


그제야, 왕후는 미소를 지으며 왕을 끌어안았다.


***


"흐윽..으으..으흐흑.."


분명 그랬을 텐데, 정작 그의 사랑하는 남편이 제2왕후와 동침하였다는 것을 들은 순간, 마음 속에 무언가 크고 무거운 덩어리가 갑자기 내려앉은 듯 했다.


사실 그 모든 것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녀가, 바로 그녀가 왕의 자식을 낳고 싶었다.


왕이 그 미소를, 그 다정한 행동을 자신과 왕의 아이에게 해주는 것을 보고 싶었다.


오로지 그녀만이 그와 동침하고 싶었다.


그녀만이 그와 입술을 맞추고, 각자의 은밀한 부분을 맞추며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여전히 왕의 그 미소와 다정한 행동을 그녀만이 독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함께 사랑을 나누던 동침을 독점하지는 못했다.


자신들만의 그 즐거운 행위를, 오직 내게만 해 줄 것이라 믿었던 그 신성한 의식을, 다른 여자에게도 행해주었다.


거기에 만약 두 번째로 들어온 왕후가 아이를 얻는다면, 필시 왕은 아이에게 정신이 팔려 자신에게 관심을 점점 줄여갈 것이다.


그런 생각이 계속 들자, 왕후는 더더욱 절망과 비탄의 늪에 빠져갔다.


"훌쩍..흐어엉..흐윽으.."


이제는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하도 펑펑 운 탓인지 왕후의 배게는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왕후의 뺨은 축축히 젖어 있었다.


그녀는 이럴 때 왕이 나타나 주었으면, 자신에게 따뜻함을 주며, 그 미소를 보여주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으리라. 공사가 다망한 왕이 아니던가. 


설령 오고 싶다 해도 산도미같이 쌓인 국정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왕후는 무심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비벼도 보고, 눈을 여러 번 깜빡거렸다.


틀림없이 눈앞의 그 사내가 자신이 사랑하던 그 사람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왕후는 다시 서글퍼지는 것을 느끼며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으나, 그 비통함은 더없이 절절하였다.


"흑..으흑...폐하..."


장난기 많았던 왕은 이번에는 그 미소를 짓지 않았다. 더없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그녀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젖은 뺨과 눈가를 닦아주었다.


"....미안하오."


왕이 내뱉은 그 한마디에, 마침내 왕후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왕후는 왕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왕의 옷깃을 잡으며 더욱더 서럽게 울었다.


왕은 그런 왕후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머리를 포근하게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또르륵.


울고 있던 왕후의 머리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며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