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이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3편은 말 그대로 농담 같은 이야기라... 채널 성격에 안 맞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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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https://arca.live/b/lovelove/102715695




1.




"그만 기분 풀어요. 우진씨는 잘생겼어요."

결국 일을 비서에게 시키고 하늘씨와 회사 근처의 공원으로 왔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잠깐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잘 되진 않았지만.

"한숨 그만 쉬고요. 기분 많이 안 좋은가 보다."

"아뇨. 그냥... 성형외과를 알아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안티에이징 잘 하는 곳으로. 
특히 이 분야는 한국이 세계에서 알아주니까.

"??? 성형외과는 왜요?"

"아빠랑 딸로 보이는 건 문제죠..."

아빠와 딸이라니. 
내가 좀 노안이긴 하지만 아빠와 딸이라니! 

홍아름 비서는 대인 관계에서 선이나 경계를 잘 파악하지 못하지만, 그것보다 일단 솔직한 사람이다. 
직설적이고 군더더기 없으며, 사과를 하는데에도 담백하고 잘못을 잘 인정한다. 
그래서 내가 비서로 계속 두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나한테 '아빠처럼 보인다' 한 건 누가 뭐래도 100% 진심인 거다.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덜 솔직해도 되는데 말이지.

"우진씨는 이렇게 멋진데? 연예인이나 모델 하려고요?"

"오해를 받지 않는 수준까지는 젊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하늘씨는 어떻게 피부 관리를 한 거지? 
자기 방도 없이, 옷은 캐비넷에 다 넣고 살아서 녹 냄새가 진동했었는데. 
그 상황에서 화장품이나 피부관리를 받은 것은 아닐 거고...

"하늘씨는 외모 관리를 어떻게 해요?"

"응? 그게 뭐예요?"

아. 안 하는구나. 
하긴. 고모네에서 항상 맞고 지냈고, 집안일을 전부 다 떠넘겨지고, 자기 방도 없고 물건을 둘 공간도 없어서 여기저기 물건을 흩뿌려 놓은 상태로 생활했다. 
짐을 챙길 때도 2층 구석진 방 침대 밑, 계단 층계참 밑 창고,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 옆의 전기단자함에서 하늘씨 물건을 챙겼었지. 
그런데 화장품 같은 걸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유전..."

"네?"

"아니에요..."

유전이면 답이 없긴 하다. 
아버지의 외모는... 꾸준히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긴 했지만 세월을 충분히 비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정정해 보이고, 충분히 힘이 있어 보이니 회사 생활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동안이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아니라고 할 거다. 
차라리 한정희 아주머니가 훨씬 더 동안이지.

생각해 보면 나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고 써본 기억이 잘 없네? 
술 마실 때 한 번도 미성년자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군대에서 민증검사하자는 또라이는 당연히 없었고, 미국에서도 여권 확인하자는 인간은 없었지.

그러니까 난 태어나기를 노안으로 태어난 거다. 
하늘씨는 유전자의 힘으로 아무런 관리도 안 했지만 동안인 거고.

"근데 사장실은 어떻게 들어왔어요? 
보통 출입구에서 막힐 텐데."

"아. 회장님께 연락드렸어요. 
어제 정중하게 우진씨 보러 가도 되는지 여쭤봤는데, 점심시간까지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올 시간에 맞춰 비서분을 보내주셔서, 방문자 출입증을 받았어요."

이상한 소문이 도는 건 아니겠지? 
이미 회사에 귀신이 있다는 소문도 있는 걸로 아는데. 
야근하던 직원들이 조금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래. 방문자 출입증을 받았다면 좋은 거지. 
오히려 몰래 들어왔다면 이건 보안팀 징계 사항이다. 
신원도 확인 안 된 사람을, 연락도 없이 사장실로 갈 수 있도록 안내까지 해줬다는 거니까.

근데 아버지가 허락했다는 것이 의외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고 혼내실 줄 알았는데. 
물론 어렸을 때 나도 회사에 몇 번 들어오긴 했지만, 아버지에게 어리광을 부리거나 일하는 걸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구분은 할 줄 아니까 회사에 데려온 것이겠지만.

"그래요... 그럼 홍아름 비서가 모를 수 있겠지. 
아빠와 딸로 오해할 수도 있... 겠네요."

차라리 나한테 연락을 해주지 그랬어. 
홍아름씨가 알면 그런 소리는 안 했을 텐데.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계속 머릿속에 아빠와 딸로 오해하는 홍아름씨의 표정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 경악스러운 표정이란 참... 결혼도 안 한 인간을 뭘로 보는 거야. 
이전에 '휴가 때 뭐 하냐'고 물어봤더니 몇 단계를 건너뛰고 '불륜은 거절한다'고 말하지를 않나... 
내가 그렇게 인성이 별로 인가?

"흠. 이걸 언제 써야 하나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지금인 것 같네요."

"뭘요?"

뭘 써요? 하늘씨가 회사에서 쓸 수 있는 건 방문자용 출입증이 전부 아닐까?

"남자 친구가 기운 없을 때 여자 친구가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대요. 
아픈 것만 아니라면 효과를 보장한다는 데요?"

뭐지. 마X인가? 하얀 가루나 천사의 가루가 나오는 건가. 
요즘 한국에도 풀리고 있어서 문제던데...

"? 근데 왜 무릎 위에 올라와요, 하늘씨?"

생각보다 여기 공원에 우리 회사 사람들 많은데. 
직원들이 보기에는 좀 이상한 광경 아닌가?

"이 코트 있잖아요... 우진씨 코트에요."

"아. 왠지 눈에 익었다 했죠. 미국에서 샀던건가 보네요."

길 가는데 적당히 얇고 길어서, 이렇게 봄에 집 근처 돌아다니기 괜찮을 것 같아서 샀다. 
진짜 내복만 입고 돌아다닐 때도 괜찮아서 잘 썼었지. 
근데 지금은 하늘씨가 입고 있네. 
조금 더울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리 얇은 코트라지만.

"음... 좀 끌어안을게요?"

잠깐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공원 구석이니까 많이 보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좀 보면 어떠냐. 연애한다고 뭐라고 하면... 
난 연애하면 안 되니까, 니들도 연애 못 하게 야근시킬 테다.

옷이 좀 두꺼워서 하늘씨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밖에서 이러는 것도 좋네... 염장 지른다고 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알 게 뭐냐. 
니들도 연애해라. 애인이 회사 와서 안아준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거야. 
무릎 위에 나를 마주 보고 앉은 하늘씨는 가볍고, 사랑스럽고, 귀엽고... 이거면 됐지.

"근데 우진씨."

"네?"

근데 하늘씨는 갑자기 왜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걸까. 
깜짝 놀라게. 심장에 안 좋다.

"나 이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는데."

"?!?!?!?!"

뭐? 아니 그럼, 그대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여기까지 온 거야? 
누구랑 안 부딪쳤어? 계단은? 누가 안 봤겠지? 불편했을 텐데? 

그럼 이 얇은 자켓 안에 알몸이라고? 
그걸 왜 입고 오세요? 입고 온 의도가 뭐지? 
오늘 괜찮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는...

"어, 우진씨. 아래서 뭐가 찔러요."

너무 도발적인 거 아닌가? 
나는 이 상태로 들어가서 다시 일해야 하는 거지? 

"좀 진정해요. 아래도 안 입었단 말이에요."

지금? 여기서? 해? 
공연음란죄... 경범죄... 빨간줄...

'안... 되나?'

근데 이렇게 되면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잖어. 
이쯤 되면 하늘씨가 다 준비되었으니까 하자고 하는 거 아닌가? 
스킨십에는 후퇴가 없으니 조심해야 하는 건 맞는데, 이렇게까지 하자고 하는데 하늘씨가 아무 준비도 없이 하자고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거 됐으니까 좀 하자고 보채는 거지. 
내가 눈치 없이 밀어낸 게 되는 거고.

괜찮은 건가? 오늘 마지막 선을 넘어도 되는 건가? 
이쯤 되면 하늘씨도 괜찮다고 하는 거잖아. 
참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하고 싶다는 걸 못 하게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이건 누가 뭐래도 문제잖아.

"우진씨 힘내라는 뜻으로... 잠깐만 지퍼 내릴게요?"

"여, 여기서요?!"

"네. 우진씨가 힘냈으면 해서. 
그리고 누가 뭐래도 저한테는 우진씨가 제일 멋져요."

어, 좋긴 한데 여기서는 안 되지 않을까? 
잘못하면 경범죄... 빨간줄...

[지이익...]

하지만 언제나 생각하는 사람보다 행동하는 사람이 빠른 법. 
하늘씨는 나를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지퍼를 천천히 내렸다.

"아, 아니. 하늘씨. 잠깐만. 
여기서는 안 돼!"

"우진씨만 봐야 해요?"

긴장한 듯한 하늘씨의 목소리. 
그리고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지퍼를 푸는 손. 
의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하늘씨의 손이 내 하반신에 닿았다.

"보고 힘내고요."

"하늘씨. 왜 여기서..."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뒤쪽은 낮은 풀로 된 담장이고, 뒤쪽에 사람이 있지도 않으니까 하늘씨 알몸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근데 여기에서 이러는 건... 
바로 뒤쪽에 점심시간이라고 사람들이 밥 먹으러 걸어가고 있다고. 
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이렇게 첫 경험을 해도 되는 거야?

"깜짝선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우진씨도 힘이 날 거고요."

"하, 하늘씨는 괜찮아요?"

잡지 같은 곳에서 듣기는 했다. 
이럴 때 오히려 여자들이 훨씬 더 단호하고 과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는데. 
근데 너무 과감한 거 아냐? 
여기 밖이라고. 햇살 내리쬐는. 
저쪽에 CCTV도 있고, 바로 내 회사 앞이고....

"네. 우진씨니까요. 저는 언제든 괜찮아요."

언제든? 정말? 
그럼 지금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당장 집부터 가야 할 것 같은데? 
집 가면서 과속 안 하게 주의해서 안전운전... 될까? 정말 가능할까? 
이전에 하늘씨가 다쳤다는 소리 들었을 때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120까지 밟았는데. 
그냥 택시 타는 게 맞을 것 같다.

"자. 여기요."

하늘씨는 허리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내 머리를 코트 안에 넣었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안 보이겠지.

그런데...


"아하하. 실망했어요?"

하늘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옷이 있네요. 
제대로 블라우스랑 치마까지 다 있네요. 
안 입었다고 했으면서.

"어... 음..."

여기서 실망했다고 하면 변태가 될 것 같고, 실망 안 했다고 하기에는 하반신의 반응이 너무 확실했지. 

그래. 실망한 거 맞다.
여자 친구가 아무것도 안 입었다고 하는데 기대 안 하는 인간이 어딨겠어.

"만우절이잖아요."

음. 그치. 만우절이지.
 하지만 사람이란 결국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는 만큼 실망하기 마련인지라... 
뭐, 그래도 하늘씨가 귀여우니 됐어.

"그리고 이건 진짜 선물."

"웁?!"

하늘씨는 이번에 내 머리 뒤에 손을 감싸고 키스를 했다. 
이 사이로 하늘씨의 혀가 들어와서, 내 혀와 잇몸, 이를 하나하나 꼼꼼히 핥더니, 격하게 빨아드리면서 내 정신을 빼앗아 갔다.

"힘내라고요. 누가 뭐래도 우진씨는 세상에서 제일 멋지니까. 
비서분이 좀 눈이 안 좋을 수 있죠!"

살며시 웃는 하늘씨의 얼굴을 새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때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안이면 어떠냐. 못 생겼으면 어때. 
내 옆에 있는 하늘씨가 내가 멋지다고 하면서 격하게 스킨십해주는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 친구가 내가 잘생겼다고 하면 됐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생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하늘씨는 다시 내 귓가에 속삭였다. 
코트 안이 조금 더웠는지, 달큰한 바디워시의 향과 하늘씨의 살냄새가 났다. 
처음에 났던 녹슨 쇠 냄새는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네. 
그거면 됐지.

"이거, 제가 입던 교복이에요."

교복... 아, 그래서 왼쪽 가슴에 이름표가 있는 거구나.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찍힌 송하늘, 이라는 글씨가 사랑스러웠다.

"좀 힘이 나나요?"

"네. 교복에 끌리는 건 아니지만요."

"응? 그럼 뭐에 끌리는데요?"

"하늘씨요."

만우절이라고 여기까지 와서 힘내라고 하는 여자 친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코트 안으로 손을 넣고 하늘씨의 등을 잡았다. 그리고 꼭 끌어안았다. 
왠지 하늘씨의 뺨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데... 
좀 부끄러워하는 걸까?

"어, 음. 근데 우진씨. 잠깐만."

"아, 조금만요. 방금 끌어안았는데."

"아래에서 뭐가 찌르는데요."

"원래 좀 진정되는 데에 시간이 걸려요."

그리고 끌어안고 있잖아. 
좀 시간이 오래 걸릴 거다.

"곤란한데. 치마 아래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건 진짜란 말이에요."

"??????"

이것도 만우절 농담이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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