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오후.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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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 버린 기억을 다시 붙잡아 그러모으는 동안, 나는 꽤 오래 멍을 때려야 했다.


기억력이 이렇게 좋지 않았던가.


“······.”


의사는 그걸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안타깝다는 듯이.


생각을 마친 나는 물었다.


“어디까지, 아니. 어디부터 해야 할까요.”


“기억나는 대로 전부 이야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기억이 나는 대로 전부라.


그렇다면 말보다 글이 편할 것 같다.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글로 쓰는 게 더 좋은 선택 같네요.”


내 말을 들은 의사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아무래도 치매 걸린 엘프와 실랑이를 벌이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겠지. 이해한다.


“···그러면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그를 내보냈다.


서둘러야 한다.


아마 기억할 수 있는 게 많은 건 지금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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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건 5달 전 겨울이었다. 


바닷바람이 유난히 차던 날, 그는 난처한 듯 턱을 매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알츠하이머 초기입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살면서 받은 충격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원래 젊은 엘프가 걸리기는 쉽지 않은데, 마력 고갈 때문인지. 하여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당분간 상황을 좀 지켜볼 겁니다. 엘프는 자가치유될 확률이 꽤 높기도 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거든요.”


“자가치유가 된다면 딱히 병원에 갈 필요는 없겠네요?”


“아뇨. 병원에는 오셔야 할 겁니다.”


“왜죠?”


내 물음에 의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망설이는 것 같았다.


- 쿠구궁...


바깥 풍경이 갑작스레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들려오던 바다의 파도 소리도 멎었다.


해는 진 지 오래였고, 달조차 보이지 않는 밤. 


우리는 불길할 정도로 완전한 어둠 속에 있었다.


이윽고 의사가 입을 열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엘프는요. 일단 자가치유에 실패하게 되면...”


“······.”


말을 꺼내려는 의사의 표정이 다시금 심각해졌다. 


그리고 이내 몇 마디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꽃혔다.


“빠른 속도로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다른 종족보다 훨씬 빠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본능일까. 


다른 종족보다 훨씬 빠르게라.


그의 말을 들은 후부터, 나는 왜인지 내가 곧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안 좋은 예감은 항상 들어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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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전. 내가 처음 잊은 것은 가족이었다.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제법 본격적으로 머리가 나빠지는 느낌이 든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가까운 사람과의 기억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든 처음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충격적인 기억부터 쉽게 사라진다고 했던가.


50년쯤 전에 반역자로 내몰려 처형당한 아버지, 인간과 정을 통했다는 이유로 맞아죽은 어머니. 


그 둘의 얼굴이 이젠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제 부모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식이라니, 우습기 짝이 없지.


옆에서 피칠갑을 한 채 웃고 있던 광인의 얼굴은 오히려 선명한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언젠가 옆에 있던 그 사람을 아버지로 착각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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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정리하다 보니 밤이 되었다. 늦기 전에 두서 없이 적는다.

잊기 전에 기록해 두어야 할 게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살아온 세월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으니까.


특히나 사랑은 더더욱.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옛날.


사귀었던 사람이 있다.


피는 못 속인다고, 그 또한 나의 아버지와 같은 인간이었다.


다만 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어머니처럼 타인의 멸시를 받으며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이었다.


부모가 그렇게 된 탓에 이미 숲에서 쫓겨난 몸이었으니까. 고고한 그들에게 더러운 핏줄은 추방이 곧 섭리였다.


그렇게 쫓겨나고 나서 인간과 사귀게 된 이유는 별 것 없었다. 단순한 변심이지.


솔직히 말해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남자는 아니었다.


어릴 적엔, 강하고 자상한 엘프와 결혼하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는 강하지도 않고, 나보다 약골인 데다, 엘프도 아니고, 툭하면 마력이 딸려 비실거리는 마도학자였으니까.


그러나.


처음, 폐쇄적인 엘프 사회로부터 쫓겨나다시피 한 나를 거두고,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고······.


그러다 보니 정이 붙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순식간이었다.


수줍게 손을 잡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포옹하고,


매일 한 번은 서로 혀를 섞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내게 구원이나 다름없었다. 


장생종의 허울 좋은 명예보다 한낱 작은 인간의 선의가 나는 더 마음에 들었다.


고향에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온기를 나는 그의 곁에서 함께할 때 느꼈다. 


인간과 있는 것이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었던지를 나는 여태까지 몰랐다. 인생 절반은 손해를 본 셈이다.


몇 년째 계속되는 일상의 반복조차 그 때의 내겐 행복한 일이었다.


연구를 하느라 날밤을 샌 그를 토닥이며 침대로 끌어당길 때는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결혼하자.”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첫날밤을 보낸 이후, 그 즈음이다. 


젊음의 향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우린 불같은 사랑을 했다. 


그는 꺼지지 않는 불덩이와 같았고, 나는 사랑을 갈구하며 달려드는 불나방이었다.


내 생에 이런 일은 절대로 없을 줄 알았는데.


추방자의 딸, 세계수의 수치라 불리던 내가, 번듯한 가정을 이루고 살다니.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뿐이다.


아니, 어쩌면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새에 뭔가를 잊어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남은 기억을 지켜나가면 될 뿐이지. 적어도 그 사람은 잊지 않을 것이다. 영원토록, 반드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기억 속에서 건져낼 게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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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회차를 1회차로 수정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