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거 처음 올렸던거


올려봐도 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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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더운 날. 


지루한 수업을 참으며 하품을 했다. 
눈물에 흐려진 시야를 정돈하며 심심한 이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턱을 괴고 주변의 사물을 찾다가 발견했다. 


앞자리에 앉은 아이의 
아까 덥다고 머리카락을 올려 묶었기에 
얇은 교복으로 가감 없이 비춰졌던 등에 
'그게' 없었다. 


내가 하품을 해서 그런가. 
다시 눈을 비벼서 확인 해봤지만 역시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려는 순간 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까지 숙제 꼭 기억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시야에 한 가득 이 녀석의 얼굴이 들어왔다. 


"야야, 응? 이보세요?" 


이 녀석이 내 책상에 오른팔을 걸쳐놓고 있었다. 
순간 내가 멍해졌었나보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보냐?" 


아, 안되겠다. 눈을 마주치질 못하겠어서 눈을 창밖으로 옮겼다. 
"그냥, 오늘 뭐할까 생각하다 그랬다. 돌대가리야." 


이 몸에 반하셨구나 라는 소리와 함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너 그럼 끝나고 뭐할 건데?" 
"뭐, 딱히 할 건 없는데." 
"그럼 나랑 잠깐 뭐 사러가자." 


고민할 일이 없었다. 
숙제야 이미 수업시간에 끝내놨고 할 일이 없어서 
할 일에 대해 고민을 했으면 했지 거절 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러나 고민하는 척 했다. 


"짜식, 바쁜척하긴. 학원도 안 가는 녀석이 뭐가 바쁘다고 그래." 
"너의 멍청함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느라 바쁠 것 같은데." 
"아, 그러셔?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순간 문득 든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설마 짐꾼으로 쓰는 건 아니겠지?" 
"안 쓸 테니까 가는 거다?" 
"싫은데?" 
"죽을래?" 






"그래서 뭘 사러 가는 거야?"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 신나있는 녀석의 손에 끌려갔다. 


머리 위에 음표가 하나 떠 있는 듯이 들 떠 있는 모습이 싫지 않았기에 잠자코 따라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상점가가 잔뜩 있는 거리에 들어갔다. 


원래의 목적을 잊었을까 
이야기 하다 보니 어느새 거리의 끝에 와있었다. 
그래도 이 녀석은 마냥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역시 멍청하게 헤실헤실 웃고 있는 모습이 
마냥 싫진 않았다. 


저녁이 되어 식사시간이 되었다. 
서로 누가 먼저 말할 사이도 없이 발걸음을 옮겨서 
'어머니 국밥집' 간판을 서로 보고 
눈이 마주쳤을 땐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서로 '자고로 한국인은 국밥이지!'를 연발하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얼마나 애늙은이 같았을까 하는 부끄러움도 잊은 채  우리는 한 그릇을 뚝딱 하고 나왔다. 


"그래서 뭘 사러 온 거야?" 


아차. 너무 이 상황을 즐겨버리고 말았다. 
때는 이미 늦어 밤하늘이 새까맣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여전히 팔을 붙잡힌 채 끌려 다니다 한 큰 선물가게에 들어갔다. 


그러다 장신구를 판매하는 곳에서 발을 멈췄다. 
밥도 먹었겠다, 잔뜩 들떠 귀걸이를 대보고는 나한테 예쁘냐고 묻는다. 


뭘 껴도 멍청해 보인다는 말에 나는 정강이를 차였다. 
곧 그래, 그래 예쁘다! 로 정정 당해버렸다. 


그 와중에 나도 나름 눈요기를 하기 위해 장신구들을 봤다. 
둘러보던 중에 눈에 콕 집히던 녀석이 있었다. 
핑크빛 보석이 아주 작게 하트모양으로 박혀있는 
저 녀석한테 걸쳐주면 꽤 어울릴 듯 한 모습의 목걸이였다. 


머리가 꽤 긴 편이지만 사실 올려보면 
귀에서 뒷목으로 떨어지는 선과 
쇄골에서 떨어지는 목걸이의 목줄과 
그 밑에 핑크빛 보석들이 나름 어울리지 않겠는가 싶어 살짝 고민하게 되었다. 


저 여자 친구 분께 드리려고 하는 거냐는 직원분이 오셔서 
잠시 정색을 했으나 그래도 내 뇌 속에선 끊임없는 찬반토론이 펼쳐지게 되었다. 


잠시 후 내가 뭐, 이런 거 하나쯤 사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라는 생각이 든 건  딱히 열심히 판매를 위해 노력하신 직원분과 가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선물은 줄 때도 기쁜 법이라는 녀석의 말이 떠오름과 동시에 
직원 분께 저 아이에게 들키지 않게 포장해달라는 말을 조용히 전달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무심코 예쁘다 예쁘다로 일관하던 중에 
정말 새빨갛고 작은 귀걸이를 대보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이 
언제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빨간 입술과 무척이나 어울려 순간 멈칫 했나보다. 


"그으래?" 


'으'를 장음으로 발음한 것을 보니 
지금껏 해왔던 그래, 그래 예쁘다!와 
살짝 뒤늦은 그래, 그래 예쁘다!를 구분한 눈치였다. 


그래도 이런 내 기분이 들킨 것이 
마냥 나쁘진 않았다. 


녀석은 뭔가 해냈다는 얼굴로 계산을 하고 내 손을 잡고 또 어디론가 끌고 갔다. 
가게 입구에 서자 나는 헛기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흠. 음. 여성용 흠. 속옷 음. 흠. 


왜 나랑 오자 한 것인 진 잘 모르겠으나 별로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이것도 대 보면서 어울리냐고 물어보는 멍청이 일 것 같았다. 
깔깔 웃으며 부끄러워하는 나를 놀릴 것이 뻔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손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마치 여기에 있으라는 듯 한 동작을 취했다. 


"여, 여기에 있어! 사 올 거니까. 들어오지 마!"


들어간다고 하지도 않았는데요 라는 태클을 걸기 전에 
어쩐 일인지 얼굴이 벌게진 채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녀석을 보니  갑자기 나도 떠오르는 것이, 
우연치 않게 본 것이 있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생각한 것 보다 무척 빨리 나왔는데 
아까 장신구를 고를 때와는 달리 쇼핑백을 들고 금방 나왔다. 
뭔가 미리 정해 놓고 사왔거나 예약을 했거나 일 것이다. 
뭐, 나랑은 크게 상관없겠지만. 


뭔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밤도 늦었다. 
이 녀석의 집은 이 근처니 데려다 주고 집에 가면 부모님께 한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저, 저기." 
"?" 
"저, 저쪽으로 가자!" 

웬일인지 소심해진 녀석이 자기 집과는 반대가 되는 방향으로 나를 몰고 갔다. 
하지만 아까의 그런 우악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은, 뭔가를 감추고 싶은 마음. 


딱히 태클을 걸진 않았다. 
이 방향의 의미를 알아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으니까." 


뜬금없이 장난기가 들었다. 
"그래, 그래, 여기가 네 친구의 집이구나. 아이고, 내가 몰랐네. 부모님이 이런 고급 호텔을 운영하고 계시나 보구나." 
이죽거리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 같이 가보지 않을래?" 
그럼에도 여간 소극적인 게 아까와 모습이 달라 웃음이 나왔다. 


"뭘 하려고?" 
"너랑 같이 테,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뚱하게 소심해져있는 모습이 재밌다. 


"아, 그러셔, 그럼 여기서 잘 자고 다음 주에 봅시다." 
속으론 재미있지만 정색하며 손을 들고 인사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정강이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이 속도 모르는 멍청한 놈아!" 
이 녀석은 씨익 씨익 거친 숨소리를 내며 화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재밌는 꾀를 내었다. 


차인 부분을 끌어안고 앉아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그러자 당황하면서 괜찮냐는 말과 함께 쭈그려 앉은 녀석의 
부드러운 이마에 입을 살며시 맞췄다. 


“나도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난 역시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리고는 한 대 더 맞아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나, 나 먼저 씻고 나올게." 
"어, 응." 


정신이 어수선해서 침대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화장실 안이 흐리지만 보인다는 것이 보였다. 
정말 '테스트'를 하게 된다는 실감이 나기에 긴장하게 되었다. 


나름 긴장을 풀려고 이것저것 손 대 봤다. 
베게는 푹신했고 이불은 촉감이 좋았다. 
아까 샀던 쇼핑백이 열려있는 것을 보아하니 
산 것을 테스트 하려는 모양이다. 
그만 픽 하고 웃어버렸다. 


전등을 리모컨으로도 끄고 킬 수 있게 하는 혁명적인 생각에 감탄할 때 쯤 
가운을 입고 머리를 수건으로 말아 올린 채 나왔다. 


“다, 다 썼어.” 
“어, 응.” 
뻘쭘한 채로 씻고 있으니 헤어 드라이기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괜스레 더 긴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운을 걸치고 나가자 녀석이 침대 위에 공손히 무릎 꿇고 앉아 리모컨을 들고 있었다. 
뭔가 집중하고 있어 내가 나온 것을 몰랐나보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tv 볼륨소리가 내 귀엔 익숙했다. 


“우, 우아아아아아아~” 
배우 분들의 연기 목소리를 나름 묻으려고 한 것 같다. 
종료 버튼을 다급하게 누르다가 볼륨 올리는 버튼을 눌렀나보다. 


얼굴이 정말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도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검열-



“우음.”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깼다. 


눈을 뜨자마자 빨간 입술과 긴 속눈썹이 날 반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미소를 지었다. 


자고 있는 멍한 모습을 뇌리에 각인시키는 중에 
녀석이 어영부영하며 일어났다. 


게슴츠레 한 눈과 마주쳤다.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 음. 좋은 아침.” 
“으우웅.” 


고개를 다시금 베개에 파뭍으며 괴상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비음 섞인 대답이 나는 
마냥 좋았다. 


바보가 된 느낌이 들었지만 
벙실벙실하며 얼마를 보고 있었던가.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녀석은 눈을 번뜩 뜨고는 나를 왜 안깨웠냐며 나무란다. 
난 좋은 것을 얻었기에 베실베실 웃고만 있었다. 


요란하게 나갈 채비를 끝마치자 
난 녀석의 교복의 등 뒤를 만져봤다. 


“으음, 지금은 있네.” 
“응?” 


잠시 정적 후에 깨달은 녀석이 얼굴이 또 붉어진다. 


“어, 어떻게 알았어?” 
“나도 우연치 않게 본 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