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때 난 대학생이었어.
군대 제대하고 복학하는 그 사이의 애매한 시간에 본가에 있기 싫어서 자취하는 중이었지.

다음날 알바도 없겠다 새벽에 치킨 먹으면서 유튜브나 보고 점심때까지 늘어지게 자고 있었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꿀잠 자는 중에 사다리차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깼지

물건 올라가는 걸 보아하니 바로 윗집이야
누가 이사 오나 뭐 그런 생각들 하다가 사다리차 갈 때까지만 기다리고 다시 자려고 했어.

당연히 금방 하고 갈 줄 알았어.
자취방이 1.5룸에다 풀 옵션이여서 가구도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거든.
기껏해야 침대랑 옷장 정도인데 그 정도 옮기는데는 얼마 안 걸리잖아.

사다리차 때문에 시끄럽고 할 것도 없고, 그렇게 비몽사몽인 상태로 롤 한판 시작했지
그때 경기 시간이 손에 꼽을 만큼 길었던 걸로 기억해
50분~1시간 정도 걸렸었던 거 같아

게임이 끝나고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었어.
분명히 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밖이 시끄러운거야
이번에는 사다리차가 아니라 윗집에서 쿵쾅거려

뭔 일 있나 싶어서 윗집으로 찾아갔더니 인테리어 공사 중이더라고
내가 기웃거리니까 아재 한 명이 와서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금방 끝난다고 말해주더라.
그렇게 내려온 후 10분 정도 지나니까 진짜 조용해졌어

잠도 제대로 못 잤겠다, 롤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겠다 진짜 눕자마자 기절했어
그러면 안됐는데 말이지

진짜는 저녁부터였어
윗집에서 드르륵거리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해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드르륵 뭘 끄는 소리 덜컹거리는 소리 끼익 거리는 소리 잡다한 소리가 다 들려

특히 조용한 새벽엔 작은 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거 알지?
낮에도 시끄러웠는데 밤엔 얼마나 더 심하겠어

안 그래도 생활패턴 박살나있는 상태였는데 낮에 이미 자버려서 잠도 안 와
그때 스트레스가 어마어마 했을거야
이때 진짜로 층간소음으로 인한 살인심리와 건축 시공사의 비리라는 두 가지 사회문제의 심각성을 뼛속 깊이 체감했어

그날 저녁부터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아침부터 밤까지 일주일 내내 들리는 거야.
일주일동안 참고 참다가 드디어 올라가서 따지기로 결심했지
그냥 올라가긴 뭐해서 와인 달달한 거 아무거나 사들고 윗집 문을 두드렸어.


2.
일주일 간 층간소음 견디다 근처 마트에서 와인 사 들고 윗집으로 쳐들어갔어.

천생 쫄보라 윗집 문 앞에 서서 온갖 생각을 다 했었던 걸로 기억해
문신한 아재가 튀어나오면 어쩌지, 말 잘못하면 보복성 층간소음에 노출되는 거 아닌가,
그냥 바로 경찰을 불러야 하나
층간소음때문에 윗집 직접 찾아가는 건 처음이었거든

그렇게 끙끙 앓다가 어찌저찌 초인종을 눌렀어

안에서 어떤 여자가 누구시냐고 물었고
난 아래층에서 소음때문에 왔다고 답했지

잠시 뒤에 현관문이 열리는데 휠체어 탄 여자가 나오는거야

무슨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일이 일어난거지

그 여자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실내화 가져왔으면 x될 뻔했다.'
이거였음

애매한 돌려 말하기로 교과서 내용처럼 실내화 들고 왔으면
다음 교육 과정부터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올라갔겠지

그 다음으로 든 생각이 
존x 예쁘다.
이거였고

카페 알바하면서 여자 많이 봤어도 이 정도 존예녀는 진짜 가~끔 볼 수 있을 정도로 예뻤음

뭐 그렇게 와인 주면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더니
기름칠 깜빡하고 못했다고 시끄러운 줄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게 그녀랑 첫 번째 만남이었어

불행하게도 내가 드라마 주인공은 아니였는지 극적인 두 번째 만남은 없었어

가끔씩 밤에 쓰레기 버리러 나오면 먼 발치에서 뒷모습을 본다던가 그게 다였지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친구들이랑 저녁 먹으면서 한잔 하는데 그날 따라 애들이 평소답지 않게 조금만 마시자는 거야 
그렇게 쫑내고 집으로 오니까 너무 아쉬워서 좀 더 마시고 싶더라고

시간을 보니까 집 근처에 대형마트가 아직 영업 중이어서 치킨 시켜서 같이 마시려고 맥주 사러 갔지


내용이 너무 길어지니 다음 편에 이어서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