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묘사는 없는데 글머리 넣어야 할 거 같아서 넣음



7.
그날 이후로 많이 바뀌었어

연이한테 정식으로 고백하고
다리 다치게 된 이야기를 들었어.

간단히 요약하자면
18살 때 교통사고 당해서 하지가 마비됨
치료 후 학교로 복귀했지만 휠체어의 기동성 문제 때문에 학교 외 지역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함
인간관계 문제와 걷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우울증과 대인기피 발생 및 재활 거부

그때부터 집안에 틀어박혀서 주식공부만 했다고 해
사람하고 만나기는 싫고 돈은 벌어야겠고 하니 주식밖에 안 남았대


그리고 처음으로 연이 다리를 만져봤어
새하얗고 말랑말랑했었어
지금은 말랑하기보다는 단단? 딴딴? 그쪽임

그때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는 거 꽉 껴안아줬더니 눈물 흘리던 게 기억나네


그때부터 서로 자기 이야기 해줬어
궁금한 거 서로 대답하면서 이때까지 오해한 것들 풀어나갔지

제일 압권은 그날 술 왜 마셨나고 물어봤을 때였어
일주일 동안 대놓고 들이댔는데 
자기한테 손도 안대고 학교에서 전화도 잘 안 받아서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대

그게 다리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고 혼자 술 마시다가 취해서 울면서 내 방까지 온 거였어


내가 언제 들이댔냐고 물어보니까 
여자가 남자 방에 무방비하게 들어오는 건 호감 있는 거라고 하더라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눈치 없다고 욕먹음 ㅋㅋ



하여튼 그때부터 학점 포기했어
우울증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애인데 나까지 신경 안 써주면 진짜 고독사 할 거 같더라

그깟 숫자보다 내 옆에 있는 이 여자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래의 내가 그때를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었어

그렇게 매일매일 수업 끝나자마자 집에 달려가서 껴안은 상태로 이야기하고
밥도 휠체어 대신 의자에 앉아서 먹고

심지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내 무릎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어


8.
이런 밀착 연애의 제일 단점은 성욕을 주체하기가 힘들다는 거야

연인 두 명이 아무런 제지나 감시 없이 붙어있다?
둘 다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겨우 막을 수 있는데
내가 봤을 땐 적어도 한 명은 그럴 생각이 없었어

연이는 처음엔 무릎 위에  다소곳하게 앉아있었어
그냥 껴안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대담해지더라고

옷도 티셔츠에 돌핀팬츠같은 거 입고 오고
행동도 꽉 껴안은 상태에서 비비고
어쩔 땐 옷 안으로 슬쩍 손까지 넣더라고

'미래의 나' 원칙에 따르면 이건 분명히 후회할 거 같았어

그런데 세상 사는게 원칙대로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또 나는 세상의 혹독함을 깨달았지


우린 보통 저녁 먹고 치킨을 먹었어

저녁 먹는 것 까진 좋았어 
반 그릇씩만 적당히 먹고 치킨 먹는 거
그게 우리가 치킨 먹으면서 살찌는 걸 최소화 하던 방법이었거든

그런데 문제는 치킨이었어
갑자기 연이가 치맥이 먹고 싶다고 하는 거야
난 그때 이후론 알콜에 약간 트라우마 생겨서 술 입에도 안 댔거든

여기서 너가 자제했어야지 하는 사람들
연하의 애교공격에 매몰차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만 내게 돌을 던져


결국 맥주를 시키고야 말았어

뭐 시켰으니 어쩌겠어
맛있게 먹을 수 밖에

맛있게 먹고 있던 중에 또 한 가지 제안을 해
영화 한편 보면서 먹자고

너무 오랜만에 맥주라 속도 조절이 안돼서 난 살짝 취해있는 상태였어
사리 분별 못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딱 기분 좋을 정도만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는데
바로 방 불을 끄고 침대 앞으로 의자를 옮겨서 거기에 식탁을 차리더라고
가져온 Usb를 꽂아서 미리 다운받은 영화 세팅까지 정말 30초도 안 걸렸음

걔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거 진짜 처음 봤음

내가 어버버하고 있었는데 연이가 자기가 앉아있던 침대 옆을 팡팡 치면서 오라는거야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할 틈도 없이 침대에 꼭 붙어 앉아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어 

영화 시작할 때 청불 마크 나왔을 때부터 눈치 채야 했는데 아무생각 없이 맥주나 마시고 있었지
영화 제목도 몰랐고 황해나 범죄와의 전쟁 이런 건 줄 알았어

무슨 수작인지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분위기가 잡혀버려서 도망갈 수도 없었어

키스하면서 내 옷 슬쩍 벗기는데 티셔츠가 이렇게 쉽게 벗겨지는 줄 처음 알았다

내가 마지막 보루로 콘돔 없으면 못하겠다고 하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지으면서 주머니에서 슥 꺼내는 모습이 
어느 흑형이 함정카드 발동하는 짤하고 오버랩되더라

포장을 뜯고 나한테 끼워주는데 당연히 크기가 안 맞았어
웃픈 얼굴로 이건 안된다고 말하고
속으로 '본 적도 없는데 역시 제대로 가져올 리가 없지' 라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주머니에서 콘돔이 크기별로 우수수 떨어지더라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이 정도까지 준비해서 왔을까 마음이 착찹해졌어
진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고

뭐 하여튼 거사는 잘 끝났고 연이도 대만족한거 같았어

그리고 둘 다 동의했던 건 다음부터는 영화 끄고 하자고...
신음소리가 워낙 달라서 집중도 계속 깨지고 귀만 아팠어


같이 침대에 누워서 껴안고 있었는데 
연이는 끝나고 기분 좋았는지 내 귀에 대고 콧노래 부르는데
귀여움과 짜증이 동시에 느껴져서 이마에 딱밤 한대 때려줬던 걸로 기억함


그렇게 둘이 붙어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던 알바를 그만두게 됐어 
돈 나올 구멍은 없는데 씀씀이만 커지니 이제 돈 걱정이 생기더라고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연이가 와서 이야기를 하더라



다음화엔 인생 첫 투자썰 풀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