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날은 오랜만에 밖에서 데이트 한 날이었어
여름도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라 저녁에 나가면 날씨가 좋았었던 거 같아

선선한 바람 맞으면서 노을을 보고
저녁 대신 근처 단골 김밥집에서 김밥 싸와서 먹고 있었던 걸로 기억해   
그 김밥집이 가성비도 좋고 맛있어서 자주 갔거든

참치 김밥이랑 돈까스 김밥 두 개 사서 서로 먹여주고 있었는데 핸드폰에 메세지가 온 거야
내용이 뭐였는진 기억은 안 나지만 그냥 스팸이었던 거 같아

확인 하고 메뉴 화면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연이가 화면에 있던 알바 앱을 본 거야
나한테 돈 필요하냐고 알바 할 거냐고 묻더라고

부모님이 대기업 다니셔서 학자금 대출은 안 받았는데
생활비는 내가 벌어서 쓰는 상황이었어

알바 그만둔 지도 꽤 됐었고, 저축해둔 돈만 까먹고 있었지
그래서 그냥 사실대로 돈 벌어야 할 거 같다고 말했어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나한테 주식 해보지 않겠냐는 거야

연이가 주식하고 있는 건 이미 에어컨 사건 때부터 알고 있었고
그동안 나한테 봉이나 per같은 기본적인 건 가르쳐줬거든

그때는 지금이랑 다르게 사람들이 주식에 관심도 없었어
그리고 주식하면 망한다는 생각이 기본으로 장착돼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로 알려고도 안 했고
연이랑 같이 있으면서 겨우 편견만 없는 그런 상태였어 

내가 고민하고 있으니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기한테 10만원 투자하면 1주일 안에 12만원으로 돌려 주겠다는 거야

그런데 날 설득할 때의 눈빛이 약간 이상했어
확신과 불신이 섞여있는 광기에 찬 느낌?
진짜 도박하는 사람들 눈이 딱 이렇겠구나 싶더라고 

집에 돌아와서 그냥 돈 기부한다는 마인드로 10만원 송금했어
돈 벌면 좋고 돈 못 벌면 그걸 빌미로 주식 못하게 하려고 했지

그날 저녁은 어떻게 해야 상처 안주고 주식 그만두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잠들었어

수익률 20% 이야기는 진짜 하나도 안 믿고 있었어
그래서 다음날부터 머리속에서 싹 지우고 살고 있었는데
그날부터 이틀 만에 다시 주식 이야기를 하더라고
퀭한 표정에 피곤에 쩔어있는 얼굴로 말이야

난 당연히 다 잃은 줄 알고 고민하던 말을 할 타이밍을 잡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핸드폰을 들이밀면서 수익률을 보여주는 거야

20%대였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해냈다고 웃었고
난 얼떨떨하게 축하한다고 부둥부둥 해줬지
주식에 관심 없는 그때의 내 상식으로는 그냥 막연하게 잘하는구나 싶었어

그날 기념으로 보쌈 족발 두 개 다 대짜로 시켜서 마음껏 먹었어
영수증 보니까 원금+이익보다 더 많이 나왔더라 ㅋㅋ

알고 보니까 주식에 투자한게 아니라 비트코인이었어
20%라고 일단 지르긴 했는데 일주일 만에 올릴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더라
원래 자기는 해외주식쪽에 장기투자 하는데 나 때문에 단타 치느라 엄청 스트레스 받았대 

비트코인 특유의 변동성 때문에 맘고생 심하게 했는지
내가 나중에 비트코인 가격 뉴스에 나왔을 때 아쉽다 했더니 저기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함

그렇게 첫 투자는 잘 마무리 됐어
앞으로 알바 가는 대신 100만원 투자하는 조건으로계속 같이 있어 달래서
학교가는 시간 + 자는 시간 빼고는 쭉 같이 있었어

나중에 점점 신용도 늘려 가면서 큰돈 투자하게 만드는 거 전형적인 사기꾼 수법이라고
사기꾼이라고 놀려먹은 것도 재미있었어
자기는 몰랐다고 하는데
그럼 본능적으로 나한테 사기치려고 한 거네 그랬다가 허리 꼬집혔다.


원하는 대로 같이 있긴 했는데
저축도 얼마 없는 사람이 알바도 없이 어떻게 버티겠어

알바해야 하는 사람 vs 같이 있겠다 하는 사람
그 두 사람이 머리 맞대고 고민하다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게 돼



10.
누구나 하루에 가질 수 있는 시간의 양은 24시간으로 똑같아
난 그 정해진 시간을 나눠서 학교도 가고 연애도 하고 알바도 하고 잠도 자야 했어

잠은 최소 6시간을 자야 하고
학교는 시간표가 폭망해서 9시부터 3~4시까지는 있어야 했고
그렇게 연이랑 같이 있는 시간은 학교 마친 후~11시 정도가 돼

왜 11시 까지냐면 우리는 실질적으로 동거가 아니기 때문이었어
같이 지내기엔 침대도 좁고 상황도 여의치 않았거든
그래서 항상 11시쯤 되면 연이네 자취방까지 직접 데려다 줬어


기억하기로는 월세35 + 식비40 + 공과금5 
한달 생활비만 대충 80씩 나갔어

그 당시 최저시급이 7530원이었는데 다행히 좋은 사장님 만나서 시급 만원 받긴 했지만
하루 4시간씩 20일을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연인이랑 하루에 6시간 같이 있는데 그 시간에 알바 못 가게 하는 건 당연하지
하루에 6시간 정도만 만날 수 있는 연인이 갑자기 2시간만 만날 수 있다고 하면
당연히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겠지

그래서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어


내가 돈 다 대주겠다  -  너 돈 많냐  -  남자 한 명 책임질 정도는 된다
귀가시간 12시로 늦추는 대신 알바 하겠다  -  싫다
그럼 평일엔 6시간 보자 대신 주말에 알바 가겠다  -  진짜 내가 싫어진 거 아니냐
만나줄 시간 없으면 학교를 자퇴하는 게 어떻냐  -  헤어지고 싶냐  -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한 일주일은 싸웠던 거 같아


결국 두 사람이 내놓은 최적의 방안은

바로 동거였어

투룸으로 가서 같이 살면 귀가시간도 없을 뿐더러 아침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게 주요했지
그렇게 주 중 4시간 + 토요일 8시간 알바하는 대신 같이 살기로 결정하고 방을 알아보기 시작했어

결정하고 나서는 집을 알아보느라 엄청 바빠졌어

주변에 투룸은 많았는데 연이가 통행하기 힘든 건물이 너무 많았어

입구부터 계단만 있는 건물
언덕에 있어서 휠체어 타고 올라가기 힘든 건물
또 다 괜찮은데 안에 들어가 보니 방문턱이 있기도 하고
나한텐 사소한 것들이 연이한텐 엄청난 장애물이더라고

연이한테 물어보니까 지금 사는 건물도 진짜 어렵게 찾았다고 하더라

그렇게 한참을 찾아서 결국엔 우리한텐 거의 완벽한 건물을 찾아냈어
원래 살던 곳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어

다 괜찮은데 안 좋은 점이 딱 두 가지 있었어
첫번째는 학교 정문까지 15분 정도 걸린다는 거
두번째는 근처에 대형마트가 없다는 거

건물 위치가 학교랑 많이 먼 걸 알아채고 우울해 해서 난 괜찮다고 했더니
10분 더 같이 있을 수 있었는데 손해 봤다고 본인이 안 괜찮아 하더라
괘씸해서 딱밤 한 대 때렸음


그렇게 어찌저찌 계약해서 이사하게 됐어


이사 과정도 참 다사다난 했었어.

난 침대랑 책상 의자 간이 옷장 뭐 이 정도면 됐는데
연이 물건은 진짜 한 가득이었어

화장대부터 시작해서 서랍까지 내 물건보다 최소 세배는 더 많았어
거기다가 휠체어용 가구들 설치도 해야 했고
연이가 내 윗방으로 처음 이사왔을 때 했던 걸 여기서 다시 하게 됐지

이번엔 가구들 설치는 내가 직접 하기로 했어
그냥 실리콘 건만 있으면 다 되는 거였거든

경사로 발판을 실리콘 건으로 주방에 고정시키고
세면대랑 화장실 손잡이 설치하는 게 다였으니까


그렇게 이사가 끝나고 알바를 다시 시작했어
전에 알바하던 카페 사장님께 연락하니까 당연히 다시 받아주겠다고 하시더라고
감사하게도 시급도 만원으로 유지해준다고 하셨고

연이랑은 학교가는 시간 알바하는 시간 빼고 항상 붙어있게 됐지



글머리 (야하다)로 올리니까 반응이 훨씬 좋네...;;  
다다음편은 각잡고 야한 썰 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