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때부터 연이가 나한테 집착하기 시작했어

연예인 이야기 하면 그날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부터 시작해서
조별과제하러 나가면 여자는 없는지 언제 끝나는지
알바할 때 번호 알려 달라는 사람은 없냐는지 

과도하게 예민하고 불안해 하는 거야
심할 때는 손톱도 물어뜯고 다리도 떨어 

내가 괜찮냐고,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래

처음엔 그냥 여자들 특유의 집착증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인터넷상으로도 검색을 해봐도 경험상으로 회고를 해봐도 평범한 일이었거든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고 밤에 화장실을 갔는데 막 날 부르는 거야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서 급하게 가보니까 펑펑 울고 있어
내가 자기를 버리고 간줄 알았대

너 놔두고 어디 안 간다고 한참을 위로해주다가 겨우 재웠는데 내 손을 꽉 쥐고 잠들더라고

그제서야 뭔가 문제가 있다고 인지했어

아침에 일어나서 약국 가서 청심환이랑 피로회복제 사러 가려는데
그것도 못 보내 주겠다고 해서 겨우 손잡고 같이 가서 가왔어

집에 돌아와서 약 먹이고 진정시켰어
약 먹으니까 얼굴이 편하게 풀리면서 안정을 찾더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내가 다른 사람이랑 바람날까 봐 불안해 했다더라고
전 남친이 환승이별한 거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았어

자기는 집에 있는데 내가 계속 나가니까 단절감을 느꼈대
내가 봤을 땐 연이한테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증표가 필요한 거 같았어

뭘 선물해야 안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반지가 생각났어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지 딱 일 년 정도 됐으니 구실도 적절했고

연이한테 커플링 하러 가자고 하니까 일주일 간 본 것 중에 제일 환하게 웃더라



종로까지 가기엔 우리가 너무 피곤해서 근처에 있는 금은방에 갔어

사장님이 이것저것 보여주시는데
연이는 최대한 눈에 띄는 걸 원하더라고
화려한 것만 찾다가 결국엔 다이아 반지 사려는 걸 겨우 말렸어

나한테 최대한 눈에 띄는 반지를 껴줘야 다른 여자들이 안 채간다고 하는데
사장님이 그걸 들으셨는지 귀엽다는 표정으로 웃고 계시더라

난 일상생활 할 때도 낄 수 있는 무난한 스타일을 원했고
연이는 눈에 확 띄는 화려한 스타일을 원했어
어떻게 겨우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 내서 화려하면서도 무난한 걸 골랐어

사장님이 반지 안쪽을 메울 거냐고 물으시는데
하루종일 끼고 있을 거면 메우는 게 낫다고 하시더라고 대신 돈이랑 시간이 좀 더 든대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니까 연이가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눈치를 보니 한참 걸릴 거 같아서 바로 하겠다고 했지

그렇게 필요한 거 다 한 다음 결제 하려니까
사장님이 오랜만에 풋풋한 커플 본다고 할인 해주셨어



계산하고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는데
배송까지 10일 걸린다는 거야
당황했지 난 적어도 그날 저녁에 받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
당황하는 걸 보니 연이도 몰랐던 거 같아

오래 걸린다는데 어쩌겠어
둘이서 터덜터덜 나왔지

이대로 놔두면 다시 그 우울증 모드로 돌아갈 거 같아서 도저히 집에 못 가겠는 거야
그렇게 다운된 연이 데리고 동네를 한참 돌면서 어쩌지 고민하다가
겨우 백화점을 생각해내서 목걸이를 사러 출발했어

집안에 갇혀 살면 우울해진다고
오랜만에 데이트 하러 나오니까 훨씬 나아지더라고

옷도 사고 구경도 좀 하다가 슬쩍 목걸이 사러 들어갔어
연이가 여긴 왜 왔냐는 표정으로 날 보는데 점원한테 커플 목걸이 보러 왔다고 하니까 환하게 웃더라고

그렇게 당장 가져갈 수 있는 걸로 사서 나왔어

저녁 먹고 집에 와서 재활치료 하는데
내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를 보느라고 영 집중을 못하는 거야

그렇게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니까 딱 1% 맘에 든대
어디가 그 1%나고 하니까 목걸이가 걸려있는 장소라면서 반지 올 때까지 절대 목걸이 빼지 말래

한순간이라도 몸에서 떨어트려 놓으면 혼낼 거라는데
샤워할 때 끼고 있으면 곰팡이 생길 수도 있다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기 허락 맡고 벗으래

목걸이 허락 없이 벗지 않는 거랑 옷 속에 숨기지 않기로
손가락 약속하고 도장도 찍고 복사하고 서명하고 난리 친 끝에야 겨우 안심하더라고

그 다음부턴 예민하던 거 완전히 까진 아니어도 거의 사라졌어 



그렇게 열흘이 지나고 반지가 도착했어

연이는 우리 이니셜이 음각된 부분을 한참을 응시하더라고
그러더니 금반지 나한테 끼워주면서
금은 변치 않는 사랑을 의미한다고
나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오빠도 절대 포기하지 마 라는데 가슴이 좀 찡하더라고

답례로 무릎 꿇고 반지 끼워주면서 사랑한다고 하니까 좋아 죽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