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어떻게 프로포즈를 할지 고민한 적이 있다.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했지만, 제대로 된 프로포즈는 하지 않았다. 무난하게 프랑스 식당에서 기념일에 반지를 주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반지 사이즈나 취향도 자신이 없어서 망설여졌다.

그럴 때 함께 간 도쿄 디즈니씨.



터틀 토크라는 어트랙션에 들어가기로 했다.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바다거북 크래쉬가 손님들의 질문에 답해주는 어트랙션인 듯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두근거렸다.

극장 같은 곳에 사람들 수십 명과 함께 들어가, 둘이서 앞자리에 앉았다.


여자친구는 옆에서 "지목당하면 뭐라고 물어볼 거야?"라고 물었다.

"음~" 하고 생각하는 척하나, 실은 [가능하면 프로포즈 방법부터 묻고 싶다고] 라며 자조했다.

어트랙션이 시작된다. 크래쉬가 관객에게 장난을 쳤고, 다들 웃었다. 재밌었다. 이어서 질문 코너가 시작된다.


손을 들어봤지만 지목은 못 받았고, 어린 소녀와 대학생 여성이 차례차례 지목받아 크래쉬와 흥미롭게 대화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자를 크래쉬가 모집한다. 손을 든다. 혹시, 혹시 여기서 날 고른다면…. 그때 난 내가 프로포즈에 대해 묻기 위해 손을 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리 의식한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든다. 지목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도 혹시 날 뽑아준다면? 크래쉬에게 프로포즈 방법을 물어볼까? 옆에 있는 여친에게 할 건데?? 지금? 이런데서??


"그럼~ 거기 앞에서 둘째 줄에… 남자!"


스태프 누님이 내쪽으로 온다. 마이크를 건네받는다. 머리는 새하얘지고 심장은 빠르게 쿵쾅댄다.

여자친구는 들떠서 꺅꺅댄다. 내가 뭘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마이크를 받는다. 다른 걸 질문할까???

이름을 묻길래 대답한다. 머리가 새하얘져 다른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다.뭐???


"그래서, 질문은 뭐야??"

크래쉬가 지독하게도 좋은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심장이 요동친다.


"실은… 지금, 같이 와서 옆에 앉은 여자친구한테 프로포즈를 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한순간 실내가 정적에 빠진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직후 주위의 관객들이 숨을 죽이며 "와!"라고 지르는 환성 같은 것이 들렸다.

곁에 있는 그녀는 완전히 뻗었다. 멈췄다. 얼어붙었다는 말이 딱 그런 것 같다.

크래쉬는 잠시 틈을 두고 천천히 말을 꺼낸다.


"그렇군… 그렇구나… 직접 전해버리는 게 제일 좋다구"


그렇게 말한 크래쉬는 이쪽을 보며 방긋 윙크를 보낸다.


"뭣하면 지금 여기서 말해버릴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힐쭉대는 거북이. 돌발상황에도 마이크를 그녀에게 건네주러 오는 눈치 빠른 스태프. 무슨 일인지 감이 안 잡힌 그녀. 휘말려버린 다른 관객분들. 미안합니다


서로를 바라본다. 이제 긴장감따위 없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크래쉬가 "축하해! 축하해!"라며 영상 속에서 몇 번이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박수소리가 솟았다. 이땐 참 더럽게 부끄러웠다.


그 뒤로는 평범한 진행으로 돌아왔다.


어트랙션이 끝날 때, "OO(내 이름)! 축하해! 오래오래 행복하라구~!"라고 하며 크래쉬가 바다로 돌아갔다. 행사장이 밝아졌고, 관객들이 차례차례 나간다. 몇 명이 내 뒤에서 "축하해요!"라며 말을 걸어줬다.


밖에 나와서 "반지, 다음에 맞추러 가자"고 했다.


"진짜? 진짜 괜찮아? 내가 아내여도 괜찮아? 진짜 결혼해도 괜찮겠어?"


그녀가 말한다. 어지간히도 큰일이어서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고 그녀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


그로부터 6년 반.

여자친구는 아내가 되었고, 소중한 두 딸을 맞이했다.

매일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의 대책 없고 폐스러운 생각을 멋지게 전할 수 있게 해준 크래쉬에게 감사를 전하러 가고 싶다.

크래쉬가 내 등을 떠밀어줘서, 그 기세 그대로 지금도 아내와 딸들과 행복하게 산다고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긴데다가 결말도 애매한 이야기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https://twitter.com/Translate_Ghost/status/15764967832573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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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애매하다니 이렇게 쥬씨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