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파악-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호흡이 빨라진 호흡이 눈 앞을 백색으로 만든다. 괴성과 둔탁한 파열음만이 귀에서 울린다.

 

"괘, 괜찮으세요?"

 

덜덜 떠는 손으로 숨을 몰아쉬는 검은 머리의 소년을 건드려본다. 배의 중앙을 얻어맞은 소년은 맨 바닥이라도 쥐어가며 고통을 뱉고 있었다.

 

"야! 채현지!"

 

이미 닫힌 학교 울타리를 넘는 남학생이 맨 바닥에 나뒹구는 현지를 보며 내려온다.

 

"얘 왜 이래?"

"3학년 선배들한테 맞아서...."

"야! 보여?"

 

남학생 한 명과 채리, 그리고 그제서야 호흡이 돌아온 현지가 배를 감싸쥔다. 이 사람은 왜 맞은걸까. 왜 맞아야했던 걸까. 채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떨쳐내지 못한 공포심은 눈물을 키웠다. 현지도, 채리도 모두.

 

전화를 받고 찾아 온 중지가 두 사람을 집으로 데려온다. 잘못한 건 없는데, 죄인처럼 둘 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너는, 이름이 뭐니?"

 

날카로운 눈매로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중지에게 채리가 우물거리며 말한다.

 

"방채리입니다."

"그러니까, 3학년이 네 지갑을 뺏으려고 했는데 내 동생이 지갑을 주면서 그만 하라고 했고, 그러다가 그 애들이 때렸다. 맞니?"

"네."

 

손을 덜덜 떠는 채리의 눈에 방울진 눈물이 흐른다.

 

"막, 말하면 부모님도 죽인다고 막...죄송해요. 흑...."

 

행동도, 발언도 모두 기억하기 싫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현지 대신, 채리가 웅얼대며 뭐라도 이야기한다.

 

"부모님은? 연락 해봐도 될까?"

"네."

 

채리의 핸드폰을 건네받은 중지가 채리의 모친에게 전화를 건다.

 

저녁, 사색이 되어 달려온 채리의 엄마가 중지와 한참 이야기하고는 채리를 데려갔다. 중지는 무어라 말을 하진 않았다.

 

"형."

"응."

"잘 한걸까?"

"뭐가."

"지갑이랑 카드, 다 뺏겼잖아."

 

불 꺼진 거실에 앉아있는 현지는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왜 그 여자애를 도와줬을까. 아니 왜 맞았을까. 왜 그런걸까. 왜? 왜? 왜가 꼬리를 물고 거미줄처럼 퍼져나간다. 잘못한 건 없는데. 이 꼴이다.

 

"잘 했어."

"카드는?"

"그런 건, 어른이 할 일이지."

 

현지와 굳이 눈을 맞추진 않는다. 중지는 방에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맥주캔을 딴다.

 

"아프냐?"

"응."

"알았다."

 

폭풍이 몰아친 건 월요일이었다. 채리도, 현지도 모두 평소처럼 학교에 등교했다. 겉돌던 채리에 대한 시선은 한층 싸늘해졌고, 현지에 대한 시선은 동정에 가까웠다. 그 차이마저 우연이었다.

얼핏봐도 중학생은 아니지만, 교사도 아닌 것 같은 남성이 4층까지 걸어 올라간다. 3학년 2반. 아직 수업 시작 전이었던 교실은 폭죽을 담아두고 터뜨린 상자마냥 시끄러웠다. 이상한 사람 한 명이 들어와도 시선의 집중 같은 것은 없었다.

 

"너가 이남형이냐?"

 

교실 맨 뒷자리에 삐딱하게 엎드려있는 남학생의 책상에 적힌 이름표를 확인하곤 묻는다. 단잠을 방해받은 남학생은 자기 앞에 선 남성의 물음에 표정이 썩는다.

 

"그런데요."

"그래?"

 

무표정한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자리에 놓인 필통을 쥔다. 지퍼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 쯤에서야 떠들어대던 애들도 이상을 감지하고 숨을 죽인다. 월요일 아침부터 불쾌한 경험이 남학생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남학생의 얼굴 앞에 필통이 던져진다.

 

"죽여봐. 5초 줄게."

"뭐요?"

"5."

 

대뜸 자신을 죽이라는 헛소리에 남형이란 남학생이 무시하려하지만, 남성의 표정이 장난이 아니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초침 움직이는 소리와 똑같이 숫자를 센다. 5초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난다.

 

"야. 죽인다며."

"아저씨 뭔데요?"

"네가 가져간 지갑 주인이다. 야. 뭐? 엄마한테 말하면 부모를 찢어죽여? "

 

반의 모든 학생들이 둘의 대화에 주목한다. 삥을 뜯었네 마네하는 소리가 새어나오지만, 중지의 서슬퍼런 압박감이 모두의 입술을 눌러붙인다.

 

"근데 씨발 이 아저씨가...."

 

자신의 치부를 불어대자 남학생이 필통에 집히는 물건을 들고 개기려 든다. 커터칼이 드드득 올라가는 소리가 그대로 멎는다.

일어나려던 남학생의 의자를 그대로 밀어버리자, 중심을 잃고 바닥에 자빠진다.

 

"야. 내가 죽여보랬지. 맞아준댔냐?"

 

중지가 머리를 위로 넘긴다.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진 않았다. 하지만 손끝으로라도 건드렸다간 그대로 손가락을 물어 뜯을 것 같은 살벌함을 풍기고 있었다.

 

"한 시간 준다. 한 시간 안에 너랑 같이 삥 뜯은 놈들 보호자 교무실로 불러. 그러면 내가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줄게. 그런데 한 시간 지나도 안오면...지난 주 금요일을 니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후회될 날로 만들어줄게."

"아니 씨발 10분뒤면 수업인데...."

"내 알바냐? 너는 사정봐서 돈 뺏고 애 팼어?"

 

알아서 하라는 듯, 나자빠진 남학생을 두고 중지가 교실 밖으로 나간다.

그러고는 곧장 교무실로 내려간다 수업 시작 직전이어서 그런걸까.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복도가 조용하다. 교무실 안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또렷이 전해진다.

 

"지금 진정하라는 소리가 나와요? 우리 애는 맞고 들어오고 다른 애는 지갑에 카드까지 뺏겼다는데?"

 

처음 봤을 때는 울먹거리는 것이 딸과 꼭 닮을 정도로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채리의 모친인 전혜와 교사가 언성을 높여 싸우는 모습을 본다. 사람은 겉만 보면서는 모르는걸까. 알 수 없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님."

"중지 씨. 카드랑 지갑이랑 뺏기고 배에 멍까지 든 거 맞죠?"

"네."

"어머님. 학교폭력위원회니 뭐니 이전에 저희도 상황을 알아야...."

"뭔 소리에요?"

 

대뜸 교무실에 난입한 채리의 엄마를 중재하려던 교사의 옆에 중지가 앉는다. 태연한 목소리로 교사를 올려다보는 중지의 모습에 다른 교사들도 말을 잃는다.

 

"학교 안에서 돈을 뺏은 것도 아니야. 아는 애를 때린 것도 아니야. 근데 왜 학교폭력입니까? 우린 걔네들 학부모 만나서 내 돈 내놓으라고 얘기하러 온거지 학교폭력이니 뭐니 따질 생각 없어요."

"일단은...누구십니까?"

"2학년 5반 채현지 보호자입니다. 불편하시면 저희는 카페나 경찰서가서 이야기할까요? 알아는 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학교로 왔는데."

"일단 누군지 알아야. 그 쪽 보호자도 연락하고."

"불렀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한 시간이면 오겠지."

 

경찰이란 말이 나오자 교사들의 분위기가 변한다. 대화가 진정되자 전혜도 중지도 책상에 앉는다.

 

말 그대로 1시간, 아슬아슬한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모인다. 당황한 학부모도, 되려 흥분한 듯한 학부모도. 그리고 채리와 현지도. 모두 내려와 앉는다. 학교폭력위원회니 뭐니 하는 걸 기다리기엔 중지의 성격이 급했고, 교사 입장에서는 여기에서 나갔다간 경찰서에 신고를 하네마네 하는 순간 학교가 뒤집어 질 것이 분명했기에 약식으로라도 자리를 마련해야했다.

 

"당신이 우리 애한테 안오면 죽는다 그랬어?"

"뭐요?"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 중 기가 죽어 숙인 현지의 옆에 앉은 험상궂은 남자에게 소리친다. 드라마에서만 있는 줄 알았더니 저런 사람이 실제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을 스친다.

 

"당신이 우리 애가 돈 뺏었다고 죽이네 마네 했다며! 맞아?"

"뭐래는거야."

 

얼핏 자신보다 열 몇 살은 많아보이는 여성에게 중지는 그대로 말을 돌려준다.

 

"돈 뺏었다면서 애 엄마도 아니고 무슨 양아치 같은게 나와가지고. 집구석이 그 모양이니 되도 않는 거짓말이나...."

"야."

 

중지가 말을 끊는다. 교사들도, 다른 학부모들도, 학생들도 얼어붙어 깔린 목소리에 숨을 죽인다.

 

"상황파악이 안되냐? 지금 네가 여기서 우리애는 무죄에요 하면 내가 아유 잘못했습니다. 이럴 거 같아? 상황파악이 안되냐? 아니면 할 생각이 없는 거냐?"

 

못해도 자신보다 열 몇살은 많을 중년에게 되려 목소리를 높인다. 거의 하대와 협박에 가까운 분노에 학부모가 그제서야 화를 삭이며 자리에 앉는다.

 

"여기 어머님이 경찰서에 가네 마네 하다가 내가 얘기 한 번은 듣자고 해서 여기 왔어. 니네 아들내미들이 두 살 어린 여자애 삥뜯으려다가 내 동생이 지갑주니까 입을 막네 마네, 나대네 마네 하면서 얘를 팼어요. 채리라고 했나? 얘라고 안 맞은 것도 아니고. 그러고는 3일동안 120만원을 썼더라?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부모한테 말하면 찢어죽인대요. 내가 시발 어이가 없어서."

 

요약 내지 면박, 중지는 그 말을 끝내고 자신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밀어 옮긴다. 카드 내역서. 신발가게며 pc방이며 120만원이 조금 안되는 금액이 주말 내내 찍혀있었다.

 

"원하면 cctv 영상도 받아왔는데 그거도 보내주고."

"그래서 뭘 원하는 거에요?"

"뭘 원해. 내가 무슨 깡패냐?"

 

내밀었던 핸드폰을 중지가 다시 수거한다.

 

"일단, 이 친구 카드로 쓴 돈이랑 현지 학생 병원비. 그리고 합의금은 주셔야겠어요. 무리한 액수 요구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사실 그런 것보단...."

"너네들 앞으로 얘네 앞에 나타나면 죽어. 장난 어쩌고 이딴거 없어."

 

요점과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눈 앞에 띄지마라.

 

"아 씨발 좆밥년때문에 진짜...."

"너 조용히 안 해?"

 

자존심이 아직 덜 구겨진걸까. 고개를 숙인 채 잘못은 없다고 되뇌이는 학생을 그의 학부모가 제지한다.

 

"아. 이 좆만한 새끼가...."

 

그의 말은 그대로 소음에 묻힌다. 의자가 뒤집히며 뒹구는 소리에 이어 중지가 큰 책상위로 뛰어 올라간다. 빠드득 유리가 짓눌리는 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학생의 앞에서 쪼그려 앉는다.

 

"저기요!"

 

남교사가 제지해보려하지만, 들은 척도 않고 책상 위에 올라간 중지는 당황한 남학생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쥔다.

 

"다시 말해 봐."

"읍...."

"야. 왜 다 부모님이 왔는데. 우리만 내가 온 거 같냐? 나도 성질 더러운데 우리 아빠도 성질 더럽거든? 아빠가 내 동생 배에 멍든거 보고 너네 발목 잘라버리겠대. 내가 진짜 사단날 거 같아서 눌러앉히고 온 거야. 왜 니들은 다른 애 패고 돈 뺏으면서, 너네들이 뒤지게 맞을 수 있단 생각은 못 하냐? 내가 지금 너네를 패죽이고 싶은데 이러고 마는 건, 내가 좆밥이고 너네들이 잘나가서가 아니고 그게 상식이라는거야. 한 번만 더 그 따위로 씨부리면 그 때부턴 네 인생 네가 책임지게 될 거야. 지금 부모님한테 잘못했다고 대가리박고 조용히 살아."

 

그 말을 끝으로 중지는 책상에서 뛰어내려온다. 언성을 높이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단지, 그의 분노가 어떤지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꾹 눌러가며 봉합했다.

보기엔, 좋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를 들은 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뒤로도 저랑 현지 선배는 간간히 연락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뜸해졌지만...."

"그런데, 그렇게 끝난거면 잘 된 거 아니야? 아니, 잘 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은 현지를 이해하지 못한 걸까? 담서는 채리의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을, 서로 꺼려야하는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죠."

 

하지만 채리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마치 너는 그 쪽 세계에 살아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 그녀의 말에서 끝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무력했던 거에요.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도 얻어맞고, 도와준 건 엄마랑 아저씨였고, 본인은 아무것도못했다고 생각하니까요. 괴로울거에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건. 선배도 작고 여리잖아요. 초등학생때도, 중학생때도 그랬겠죠."

 

채리의 말도 결국은 추측이었다. 하지만 담서는 현지의 모습이 투영되어보이는 채리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어릴적의 현지가 자신에게 직접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 이야기가 퍼지면서 전 오히려 이상한 취급 받았어요. 선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비슷했겠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채리가 핸드폰을 켠다. 그의 엄마가 집에 있지는 않지만, 그걸 감안해도 늦은 시간이었다.

 

"현지 선배가 담서 선배를 좋아하는 건, 동경일지도 몰라요."

"동경?"

 

채리는 자신이 품는 마음을 현지도 품고 있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떨떠름해하는 담서의 얼굴을 바로 쳐다본다.

 

"어른스러움에 대한 동경인거죠. 그리고 어른스러운 선배를 감싸고 품고 지키고 싶은 거에요. 물론, 담서 선배를 지킨다기 보단 담서 선배가 현지 선배를 챙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들어가 볼게요. 선배."

"어."

 

채리는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떠난다. 간간히 가로등이 그녀를 비추지만,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분명 현지는 자신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유나 마음의 근원 같은 건 상관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지금 한 생각을 현지에게 말하는 것이 맞는 걸까? 고민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대답을 재촉하는 전화 벨소리가 들린다.

 

"담서야. 어디야? 산책 간다면서."

"아. 단지 안이야."

"그래?"

 

밤이 지나면 지금 한 생각을 잊어버리게 될까? 아직도 자신의 옆에 채리가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채리가 자신의 선택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잠깐, 나와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