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의 시간도-

 

한 번 신경쓰기 시작한 일은 쓸데없는 곳에서도 머리를 헤집어놓는다. 현지와 담서, 두 사람이 언제 저렇게 가까워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1학년땐 오히려 한 마디도 않던 두 사람이 2학년이 되자마자 붙어다니고 있었다. 같은 반이었던 애들이 적으니 붙어다니는 건 그렇다쳐도 심리적인 거리감이 가까워 진 것이 눈에 띄었다. 어쩌면 자신의 신경과민일수도 있지만, 신경이 쓰이는 걸 어떡한단 말인가.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미쳤나보다."

 

한 번 쯤은 현지가 혼자 있을 시간도 있겠거니 했다. 물론 반이 다른 만큼 기회를 포착하긴 어려워도, 학교에 올 때부터 갈 때까지 담서와 붙어다닐 줄은 몰랐다. 정말로 동아리 활동시간 빼고는 담서를 빼고 둘이 이야기 할 기회도 없는 걸까? 같은 반이라면 기회라도 포착해볼텐데 그마저도 어려웠다.

하루, 이틀 의미없이 날려버리는 날들이 늘어날때마다 머릿속에 둘의 모습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 끼어들 틈이 좁혀져 닫히기 전에 손이라도 비집어 넣을 수 있는 시간, 그 시간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이틀, 토요일까지를 선으로 두었다. 그리고 선에 가까워질수록 본인의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과감해지고 있었다. 아마 저기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현지와 담서도, 자신들이 미행당하고 있단 생각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도곡역 플랫폼은 사람이 적다. 내려가면 눈에 띌 것이 뻔했으니 두 사람이 내려가는 것만 멀리서 확인하고는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간다.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게라도 현지가 혼자 남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갖고 싶었다. 10초라도 담서가 없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지하철에 올라탄 두 사람을 따라 같이 지하철에 탄다. 몇 칸 옆인 탓에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다. 역마다 내리면서 확인을 해봐야하나? 같은 지역구일테니 해봐야 몇 정거장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 이미 바보짓 하고 있는데."

 

바보짓 하나 하고 있는데 둘이라고 못할까. 도곡역을 지나 초람역에서 한 번, 문화센터역에서 한 번, 슬쩍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그나마 타는 사람만 있고 내리는 사람은 없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번 역은 민하구청, 민하구청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두 번쯤 하다보니 안내음성이 나올 때부터 몸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요모를 포함한 몇 사람들이 내리기 위해 문 앞으로 모인다. 지하철이 멈추고 몸이 기우뚱,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올라탄다. 다른 사람들에 밀려 내렸다가 현지와 담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다시 올라탄다.

올라타려했다.

한참 뒤에서야 보이는 분홍머리와 장신의 여학생의 모습에 요모는 문이 닫히기 직전 급하게 다시 내린다.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기보단 이상한 녀석이라는 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겨우 세 정거장 이동했을 뿐인데 진이 다 빠진다. 잠깐이라도 한 눈 팔면 바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간격에, 들키지 않으려고 내내 두 사람의 행동과 시선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다리끝이 저려오는것 같다. 게다가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지는 자괴감은 덤이다.

그나마 구청방향으로는 안가는 것이 다행이었다. 상가까지 가는 길에 사람이 적어 눈에 튀는 두 사람을 보는 것이 수월했다.

 

"집에 안가냐."

 

카페, 그래 카페 들어갈 수 있지. 하지만 꼭 오늘이어야하나? 카페까지 따라 들어가면 바로 들킬 것이 뻔했고 그렇다고 밖에서 기다리자니 그것도 정신나간 짓처럼 느껴진다.

지금이라도 그만 둘까? 사실 더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진옥동까지 같이 다닌다면 두 사람 다 이 근처에서 산다는 것이고, 가까운 곳에서 살다보면 자신이 모르던 사이에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내성적이었던 담서와 현지가 등교부터 하교까지 항상 붙어다니고, 집가는 길에 카페까지 들어가서는 벌써 1시간째 나올 생각도 않는다.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맞은 편 카페에 들어가 유리문에서 누가 나오나를 지켜보고 있는 자신이 바보처럼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차피 이틀안에는 매듭지을 생각이었으니까.

나온다. 그래도 최소한 카페에서 한참 떠들어댔으니, 커플이어도 이제는 각자의 집에 갈 때가 되었다. 각자의 집에 갈 거니까 카페에서 오랫동안 얘기한 것 아니겠는가. 이미 가능성은 가루가 되어 먼지처럼 날아가지만, 오기로라도 현지에게 얘기를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상가에서 나와서 아파트 단지쪽으로 걷는다. 요모가 사는 원룸, 투룸이 즐비한 주택단지와는 다른 화사한 공간이었다.

 

"한 단지 안에 사는건가?"

 

이젠 서로가 갈라져도 말 붙이기조차 어려워졌다. 그나마 담서가 먼저 들어가고 현지가 조금 더 걷는다면 눈곱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있었겠지만, 사실 희망은 없어보였다. 그래도 걷는다. 끝을 보자는 일념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걸어봐야 5분일텐데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마저 깨지는 것 조차 어렵지 않았다.

 

"뭐야. 도대체."

 

같은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 저 안까지 쫓아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쫓아들어가면 기분 나쁜 년 취급 당할것이 분명했고, 애초에 아파트 안으로 들어 갈 수도 없었다. 끝난 것이다.

사실 3월초부터 승산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왔는데 1초의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을 줄은 몰랐다. 한 마디 할 1초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남은 건 피곤함, 허탈함, 편도로만 40분에서 1시간은 걸릴 민하구의 끝에서 끝까지 가야한다는 짜증 뿐이었다.

 

"차라리 이럴거면 1학년때부터 붙어다니던가."

 

같은 아파트 단지, 그것도 같은 건물에 살거면 처음부터 붙어다녔으면 좋았잖는가. 이런 헛고생 할 필요도 없고.

시간도 늦었고, 그냥 들어갈까 고민하던 요모가 핸드폰을 들어올린다.

 

"담지야. 오늘 저녁 나와서 먹을래?"

 

이 근처는 너무 멀고, 민하역까지 담지를 부른다. 귀찮아 귀찮아 투덜대면서도 나온다고 얘기한다. 이모와 엄마가 잔소리를 좀 하겠지만, 가끔씩은 나와서 외식하는 것도 좋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스스로 먹고 싶은 이유에 굳이 담지를 끼워가며 민하역으로 발을 옮긴다.

 

"오늘은 뭐 했길래 늦었어?"

 

보통 담지는 늦어도 3시면 집에 도착하고 요모는 수업 끝나고 넉넉잡아 한 시간, 5시면 집에 들어오곤 했다. 그런데 6시 다 되어가서 전화를 하고는 민하역에서 밥을 먹자고하고 도착하니 7시,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었다.

 

"누나는 고등학생이잖아. 너는 초등학생이고."

"뭔 상관이야."

 

배달도 안하는 돈까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평소와는 다른 길로 조금 걷는다. 역 근처는 그나마 밝지만, 주택단지로 들어오면 가로등 불빛과 오토바이 불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동네였다. 밤과 어둠, 찬바람은 자신의 감각을 한 점에 집중하게 만든다. 담지를 잡고 있는 요모 손의 온기처럼.

 

"담지야."

"왜."

"너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또 그 얘기야?"

 

요 며칠 들어 저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남 속도 모르고 자꾸 떠보는 말은 왜 하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 있어?"

 

빽 하고 짜증을 냈는데, 요모의 분위기가 평소랑은 다르단 것이 느껴진다. 사과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누나한테 매몰차게 굴 생각도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사귀는 것 같으면 어떻게 할래?"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싶으면서도, 담지 말고는 자기 말을 속 터놓고 얘기 할 사람이 없었다. 학교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얘기를 했다가 담서와 현지 귀에 들어가면 그 때는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사귀는 거야. 사귀는 것 같으면 이야?"

"사귀는...아니 사귀는 것 같아."

 

지금 이 상황에서마저 아직 확인은 못했다고 합리화하는 자신이 비참할 지경이었다.

 

"그러면 의미 없는 거 아니야?"

"뭐가?"

"사귀는 사이면 몰라도 사귀는 것 같은 건, 확실한 게 아니잖아."

"그러면?"

 

그러면? 자신보다 한 뼘 작은 담지가 자신을 올려다본다.

 

"난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내가 남한테 밀린다는 생각 안 해."

 

담지의 차가운 눈빛 너머로 확신이라는 자신감이 보인다. 고등학생인 요모가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시크한 우월감을 내뿜는 이 소년이 초등학생이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누나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

"응?"

"상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밀릴거 같진 않은데."

 

담지의 집은 3층, 요모의 집은 4층 꼭대기. 그렇지만, 두 사람의 집 모두 비어있는 걸 알기에 담지도 요모의 집까지 따라 올라간다. 오늘은 내버려두기에 껄끄러운 날이었다. 항상 챙겨줘야하는 누나니까, 자기라도 챙겨줘야했다.

 

"차이면 그 땐 어쩔 수 없는거지."

"그렇겠지?"

"아마."

 

아직 끝난 건 아닌걸까? 한 번의 기회가 자신에게 남아있는걸까? 토요일까지는 끝내고 싶다. 그렇다면 내일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차이면 내가 누나랑 놀아줄게. 됐지?"

"내가 놀아주는거지. 무슨."

 

귀염성 없는 이 꼬맹이는 꼭 한 마디가 많다. 하지만, 그 한 마디 이전의 말들이 요모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뒤 내용부터는

그냥 만화로 그릴지 어쩔지 고민좀 해야할듯.

글은

쓸게 못됨.

개인적으로 그림 배우고 나서부터 글을 쓸 만한 의욕이 좀 깎인게 확 느껴짐.

이걸 그림으로 그리면 좀 더 나을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그림이나 만화로 그리던 어쩌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