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잠시 옆에 앉아도 되겠소?"

"...그러시지요."


딱 봐도 무거워 보이는 판금갑옷을 입은 남자가 내 옆에 앉았다. 또 작업걸러 온 남자인가. 지긋지긋하다. 나는 혹시모를 상황을 대비해 주머니에 있는 단검을 쥐었다. 사람은 믿으면 안된다.


"난 버림받았소."

"예?"


남자가 뜬금없이 자신의 과거를 말하기 시작했다. 버림받았다는 공통점에 경계를 조금 풀렸지만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난 원래 귀족 가문의 막내로 태어났다오. 내 위로는 형이 하나 있었지."

"...계속 해보세요."


이상하다. 처음 만난 상대이지만 마음이 통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가 직계가 아닌 귀족 어머니와 하인의 아들이라는게 밝혀지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소. 무시와 핍박은 기본이오, 나중엔 날 죽이려 했지. 가문의 수치가 될까봐."

"그래서 도망쳐 나왔나요?"

"아니. 다시 말하지만 난 버림받았소. 내 발로 나온것이 아니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됬나요?"


나도 모르게 그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머니 속 단검은 잊은지 오래였다.


"내가 괴롭힘을 받을 때 오직 형님만이 내 편이 되주었다오. 난 형님만을 믿으며 삶을 살아갈 수 있었지. 하지만 아니었어. 그자식은 날 이용해 자신의 세력을 늘렸지. '난 가문의 수치도 평등히 대해준다'면서. 그리고 내가 쓸모가 없어지더니 날 절벽에서 밀어버리더군. 살아남았지만 말이오."

"...힘든 삶을 사셨군요."

"별거 아닐세. 이젠 가문도 멸문해버리고 없으니."


그의 이야기는 나만큼이나 절망적이었다. 배신당한 사람의 마음은 배신당한 사람만 이해할 수 있기에, 그 이야기는 더욱 더 현실감이 들었다.


"난 이제 삶을 끝낼 생각이오. 복수라는 목표도 이루었으니. 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웠소."

"잠깐만요."

"무슨일이오?"

"나도 당신의 과거를 들어줬으니 제 얘기도 들어주시죠."

"...알겠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에게 내 과거를 말한다. 그래도, 나와 같은 아픔을 앓은 그는 내 아픔을 알아주지 않을까?


"나는...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외동이었죠. 제 가족은 사이가 아주 좋았어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죠."

"그렇구려. 나도 어렸을적엔 모두와 사이가 좋았었지."

"하지만 광산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일자리가 광선이 무너져 사라지자 돈이 없어졌죠. 우리 가족은 점점 이기적이게 됬어요.

하지만 어느날 부모님이 돈을 벌 수단을 찾았다며 저를 부르셨어요. 그리고 저를 이쁘게 꾸미시더니 어느 가게로 절 데리고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과거를 되짚어보니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딴걸 가족이라 믿은 내가 등신이었다. 어떻게 자기 딸을 시창가에 보낼 생각을 했을까. 그때 그가 내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그 가게가 시창가였군."

"네."


그는 자신이 그 일이라도 당한 것 처럼 주먹을 꽉 쥐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으면 가죽 장갑에 자국이 날 정도였다.


"당신도 버림받았구려. 그래서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진 거였어. 마치 오랜 친구같은."

"그러네요. 저희 공통점이 많군요."


내가 느낀 감정을 그도 느낀 것 같았다. 버림받았다는 동질감. 그것이 내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그럼 당신은 이제 뭘 할거요?"

"글쎄요. 저도 이제 목표같은건 없어서."


부모의 탈을 쓴 악마새끼들은 이미 죽인지 오래다.


"그럼...나랑 모험을 떠나는게 어떻소?"

"모험이요?"

"그렇소."

"삶을 끝낸다면서."

"마음이 바뀌었소.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는데 아쉽게 떠나보낼 순 없지."


모험. 모험이라. 뭐, 죽기전 친구와 마지막 여행이라 생각하고

떠나볼까?


"그래요."

"고맙소. 그럼 우리 파티 이름은 어떻게 할것이오?"

"파티 이름? 그런것도 정해야하나요?"

"하하...싫으면 안해도 되오. 내가 작명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그럼..저희 파티의 이름은...'헬레보러스'. 이걸로 하죠."

"음...이름의 뜻이 있소?"

"그건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


판타지 써보고싶었음.

'헬레보러스'는 꽃 이름인데 꽃말은 '존재 이유'임.

해석해주면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이유이다.'임

꽃말도 써보고싶었음ㅎ

2화?


'난 2화를 포기하겠다! 순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