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에게 바치는 사모곡」중 일부 발췌

 누가 내 이름을 묻거든 매천 사람 한경태라 불러 주시오.
 내 나이는 스물 한 해를 살았노라 하면 될 것이오.
 스물 한 해를 사는 동안 가장 한스러운 일을 말하라면 3월 만세 운동에 나간 일이오.
 혹여나 오독을 할까 써두자면 나는 3월 만세 운동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오. 다만 내가 3월 만세 운동에 참여하면서 일생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오.
 송암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나는 고등교육까지 마쳤으나 내가 가진 기술이라곤 고작 글이나 몇 자 적는 것이었소.
 밥벌이를 할 수 없으니 누이가 장에 나가 산나물을 팔며 겨우 연명했고, 나는 그것에 대해 누이에게 퍽 미안해했소.
 그러나 누이는 "괜찮아, 너는 글을 잘 쓰니깐 나중에 훌륭한 작품을 쓰는 작가선생이 되겠지.. 그러니깐 염려하지 말고 기회를 기다려봐."
 그럼에도 나는 누이가 나이가 찼음에도 혼인을 하지 못한 것이 부모도 없어 밥벌이를 해야할 내가 놀고 있는 탓이라 여겨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겼소.
 그런데 3월이 되자, 경성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매천에 퍼졌소. 그리고 우리도 만세 운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순사들 몰래 퍼져나가기 시작했소.
 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당시 사귀었던 친구에게 만세 운동에 참여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적에, 나는 누이에게 가 만세 운동에 참여하자고 졸랐소.
 누이는 그러다 순사에게 잡혀 흠씬 두들겨 맞으면 어쩌느냐고 나를 말렸으나, 나는 듣지 않았소. 아마 그때는 내가 고작 만세 운동으로 일본 순사들이 순순히 물러나리라 기대한 모양이오.
 내가 혼자라도 가겠다며 집을 박차고 나가자 누이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뒤따라왔소.
 장전시장서 만세 운동이 열렸는데, 참 사람들이 많이 모였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일장기 위에 그린 태극기를 나누어주자 나도 하나를 받아 흥에 취해 흔들었소.
 앞서 말했듯 내가 순진한 상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였소.
 근데 시장 입구서 타다당,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애 하나가 엄마, 엄마하고 우는 것이 아니겠소.
 자세히 보니 검은 제복을 입은 순사들이 총을 겨누기에 그제서야 아이구 큰일이 났다 싶어 누이 손을 부여잡고 불이 나게 달렸소.
 그런데 달리던 도중 갑자기 다리가 따뜻해지더니 힘이 들어가질 않아 그대로 넘어져버렸소.
 난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내가 다리에 총을 맞은 것이였소.
 누이가 내 손을 잡아끌며 다급히 외쳤소.
 "일어서..! 일어서란말야.. 여기서 넘어지면.."
 그 와중에 나는 살고 싶어 누이의 손을 꼭 잡았소. 지금 생각해보건데, 만일 누이가 내 손을 놓고 달음박질을 쳤다면 누이는 죽지 않았을 것이였소.
 순사들이 달려와 발길질을 하고 몽둥이로 머리를 쳤소. 누이가 왜들 그러느냐며 나를 막아섰지만, 누이도 순사들에게 두들겨맞고는 축 늘어져버렸소.
 누이의 흰 저고리가 붉게 물들자 피가 끓어올라 순사들에게 덤벼들었으나 매만 더 맞고 경찰서로 끌려갔소.
 누이와 함께 한 방에 가둬졌는데, 일본인 형사 한 명과 조선인 형사 한 명이 들어왔소.
 나와 누이를 의자에 묶고는 일본인 형사가 뭐라 말했소.
 그러자 조선인 형사가 이를 옮겨서 내게 말했소.
 "이번 만세 운동을 주도한 강상구와 같은 학교 동창인 것으로 안다. 지금 강상구가 어디 있으며, 만세 운동을 어떻게 작당했는지 사실대로 고하라!"
 내게 만세 운동에 참여하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그 친구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모른다고 잡아떼었소.
 그러자 일본인 형사가 무어라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내 손톱을 대나무 막대기를 이용해 뽑아버렸소.
 내가 비명을 지르면서도 입을 열지 않자 이번에는 누이의 손톱을 뽑기 시작했소.
 누이가 엉엉 울며 살려달라고 빌기에 마음이 약해져 내가 말했소.
 "강상구가 만세 운동에 참여하라고 내게 제안을 하였으나 그게 전부요. 만세 운동을 작당하지도 않았고, 또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오."
 그러나 믿지를 않아 내 얼굴에 천을 덮고는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부었소.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이러다 죽겠다 싶었는데, 사실대로 고하여도 이렇게 고문을 당하니 어찌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소.
 그러다 조선인 형사가 일본인 형사에게 말하길
 "이 놈은 뼈도 굵고 나이에 비해 체격도 커 끄덕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같이 잡혀온 누이가 고문을 받자 입을 열었으니, 누이를 고문하고 그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그러자 일본인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누이를 의자에서 일으켜세우곤 팔을 천장에 달린 쇠사슬에 묶어버렸소.

 (중략)

 그런데 저들이 누이의 찢긴 저고리를 들추며 살갗을 보이게 하여 희롱하자 나는 분기탱천하여 밧줄을 끊어버리곤 일본인 형사 놈에게 달려들었소.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조선인 형사가 나를 떼어놓곤 두들겨팼고, 일본인 형사 놈은 입에서 피를 뱉더니 다시 그 망할 놈의 전기충격기를 가져다대려 하였소.
 누이가 흐느끼며 빌었소. 뭐든지 할 터이니 목숨만 살려달라 빌었소.
 그러나 저들은 누이에게 전기충격기를 가져다대었소.
 누이가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야 말았소.
 형사들이 다시 물을 뿌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이가 깨어나질 않았소.
 그렇소, 누이는 그렇게 숨이 끊어졌소.
 누이는 눈도 감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소.
 누이가 항상 입고 다닌 흰 저고리가 찢기고, 붉은 피가 잔뜩 묻어 섬뜩한 모습이였소.
 누이의 흰 피부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었고, 몽둥이에 맞아 시퍼런 멍이 온 몸에 들었소.
 나만 보았을련지도 모르겠으나, 누이의 감지 못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소.
 나도 누이를 바라보며 오열하였소. 내가 누이를 조르지만 않았어도, 적어도 누이가 나를 버리고 가도록만 하였어도 누이가, 아름답고 착하던 누이가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을 것이였소.
 그 날은 더군다나 누이의 생일이였소. 누이는 제 생일날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숨이 끊어져버렸소.
 나를 더 노하게 만든 것은 저들이 죽은 누이의 시신을 빨리 수습하지 않고 살갗을 만지고 속옷을 들춰 낄낄대는 모습이였소.
 이런 모습들이 아직도 나의 뇌리에 깊게 남아있소. 그리고 아마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오.
 이후 그들은 내게 전기충격기를 가져다대며 고문했으나, 나는 입을 열지 않았소.
 혀라도 깨물어 누이의 뒤를 따르고 싶었으나, 하늘서 슬퍼할 누이의 얼굴을 떠올리자 차마 그러하지 못했소.
 이것이 내가 일본인들과 경찰들을 증오하는 이유요. 그 일이 벌어진지 네 해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두 형사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소.
 언젠가 이 조선팔도에서 만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들을 죽일 것이오.
 두서 없이 이야기를 꺼내 미안하오. 그러나 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면 나도 모르게 분노에 사로잡혀 이를 침착하게 전하질 못하오.
 내가 겪은 이 끔찍한 내용을 그대로 생생히 옮겨 비위가 상했을 사람들을 위해 뒤늦게나마 짤막한 사과를 전하오.
 어찌 되었던 옥에서 풀려난 후 누이의 뼛가루를 매천의 이름 없는 작은 강에 뿌렸소. 뼛가루를 다 뿌리고 남은 빈 나무통을 보자 참으로 허망한 기분이 들어 차마 버리질 못하고 집에다 두었소. 아직도 그것은 집에 있소.
 누이는 참으로 심성이 고왔소. 그 고된 일을 불평도 없이 묵묵히 하였고, 혼기가 다 찼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처럼 빈둥거리는 동생을 먹여살리기 위해 산나물을 캐 시장에 내다 팔았소.
 누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은 만세 운동이 벌어지기 바로 전 해의 겨울, 내가 글을 쓰겠다며 공책과 만년필을 사달라고 졸랐소.
 누이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며칠이 지나자 내게 공책과 만년필을 사 주었소.
 그 큰 돈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는 것은 나중에 알게되었는데, 누이는 읍내의 동사무소 건설 현장에서 일했소.
 처녀의 몸이라 일이 고될 것이라는 인부의 말에도 손발이 닳도록 부탁해 여자의 몸으로 그 무거운 것들을 옮기고 지고 했던 것이였소.
 지금 그 만년필과 공책으로 이 글을 쓰고 있소. 누이가 숨을 거둔 후 지은 「매화꽃」도 누이가 사준 만년필로 쓴 것이오.
 비록 누이는 숨이 끊어졌으나, 이 만년필과 공책은 아직도 나의 책상 위에서 살아 숨쉬고 있소.
 끝으로, 「누이에게 바치는 사모곡」을 쓰던 도중 공책 끄트머리에 누이가 쓴 시를 우연찮게 발견하게 되었소.
 두 세편 가량 되는 시인데,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내가 본 시들 중에 가장 아름다웠으며, 내 마음을 흔든 작품이오.
 그 두 세편의 시를 이 책 끄트머리에 적어두었으니 나의 누이, 한경옥을 기억해주시오.
 세번째 시는 누이가 다 쓰지 못한채 세상을 떠나 미완성이오. 내가 완성할까 생각했으나 내 부족한 필력으로 작품을 망칠까 두려웠을뿐더러, 누이가 이 작품을 미완성작으로 남겨둔 이유가 우리 시대의 준엄한 명령이 아니였을지 하는 생각에 완성되지 않은 것 그대로 적어두었소.
 끝으로 내 누이, 한경옥. 내 누이라 부를 수 있어 영광이였던 한 여성에게 그녀가 내게 준 사랑을 보답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이 책 한 권을 바치겠소.

 ㅍㅇ)

 1. 다음은 윗글에 대한 설명이다. 이 중 옳지 않은 것은? [2.1점]

 1. 윗글의 제목으로 보아 글쓴이의 누이가 숨을 거두었다.
 2. 일제강점기때 쓰여진 것으로, 일제의 악행을 고발하고 있다.
 3. 글쓴이의 누이는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 순사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4. 글쓴이는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5. 글쓴이의 누이는 두 편의 시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