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mahoshojo/100869462


10/23 월요일

날씨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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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아침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곁에 서서,

성현은 세오의 옆에서

세오는 성현의 옆에서 함께 걸었다.


늘 보는 거리의 모습이 어디가 좋다는 건지

세오는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띄운체 거리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미 반복적인 회색빛 일상에 찌들어버린 성현이 보여주는 무심한 표정과 대비되는

섬세하고 따뜻한 눈길이었다.


만들어진지 2년이 체 지나지 않아 세상 구경의 경험이 없다시피한 세오의 눈에는,

이 고요한 아침 거리조차도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한 소중한 장소였다.


학교는 그리 먼 곳에 위치하지 않아, 도보만으로도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사거리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건너는 신호등을 지나면, 세오가 다니는 중학교가 있었다.


혹시나 꽁꽁 싸맨 세오의 옷 하나라도 흘러내려 세오의 정체가 들통나는 최악을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성현은 세오의 옷차림을 다시한번 점검했다.


세오의 장갑을 손목까지 당겨 단단히 씌운 뒤에야 안심할수 있었다.

이제 성현은 세오를 교문 앞에 두고, 서로가 잠시 떨어져 지내야될 시간이 찾아왔다.


“오후에 봐요”


“응, 조심해서 다녀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조금 굽힌 성현에게,

세오는 생긋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인사했다.


이를 받아주듯 성현도 옅은 미소와 함께, 세오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냈다.


그리고 성현은 자기 할 일을 하러 떠나려 했다.


하지만 성현이 발걸음을 때기 직전, 누군가 다가와 그를 부둥켜안았다.


성현이 뒤를 돌아보자, 성현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세오가 있었다.


세오는 그를 끌어안은체, 나직히 입을 열었다.


“늘 고마워요, 다녀올게요”


그리고 성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먼저 그를 놓아주고서 학교로 들어가는 그녀였다.


성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서, 세오의 잰걸음으로 뛰어가는 뒷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봤다.


세오의 이런 행동들을 볼때마다, 성현은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틀림없이, 성현이 인공지능의 신경망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거다.


인공지능이란, 수많은 노드에 의해 좌우되는 복잡한 고급 소프트웨어의 총집합

하지만 세오의 저런 행동들, 특히 애정을 표현하는듯한 저런 행동은 알고리즘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은인인 서 교수의 딸인 만큼, 세오는 성현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세오가 과연 마음을 가지고 있는것인지는 그녀가 성현에게 소중한 것과는 별개로 작용하는 어려움이었다.


성현은 소프트웨어 공학과에 진학한 것에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물론 이 학과만 아니었다면 성현은 인공지능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을테고 그렇다면 세오를 좀 더 허물없이 바라볼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가질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저 하나의 인격체로서 세오를 바라보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마음의 모습과 마음가짐의 태도는 별개의 문제였으니 말이다.


세오는 그의 가족이었지만 과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는 더 복잡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자조하며, 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생각을 지니고 있는 한, 자신의 태도는 위선이나 다름없는 짓들이었다.

위선도 선일까, 하지만 저 순수한 아이에게 위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성현이었다.


뭐가 되었든, 세오는 성현에게 있어 소중한 여동생이었다.


………

삑삑삑-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방에 울려퍼졌고, 뒤이어 열린 철문의 앞 현관에는 성현이 서 있었다.


대학 근처에 위치해 있는 서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세오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만 했던 성현에게,

아침은 빈 시간들이 많이 남는 부분이었다.


이 잉여 시간들을 이용해, 성현은 항상 서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와,

더이상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빈 랩실을 정리하고 청소한다.


서 교수는 혼자서 연구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황성현이 보는 서 교수의 모습은 그러했다.


어린이같이 천진난만한 상상력을 가진 서 교수는,

심지어 그것을 세상에 투영해낼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 상상을 타인에게 들려주는 순간,

그것은 망상이 되어버린다.


서 교수가 혼자서 연구하는 이유도 사실은 같은 이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연구 대부분은 보잘것없는 상상에서 시작된 것들이었다.


그런 상상들이 위대한 연구가 된 것들이었고.


하지만 아무도 그 연구의 기원이 보잘것없는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 한명, 황성현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서 교수의 조교였다,

다시 말해서, 대학원생이었다.


아직 졸업도 안한 그가 대학원생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서 교수님…”


젖은 수건으로 테이블을 닦던 성현은, 그 위에 올려진 서 교수의 사진을 무심코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집에 있는것과 똑같은, 세오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성현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사진속에 담긴 서 교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떠올렸다.


2년 전 있었던,

당시 대학 1학년이었던 자신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


약 2년 전 있었던 일이다.


대학 1학년을 끝마치고 군에 입대했던 황성현은 최근 전역하여 다시 대학생활에 복귀한 참이었다.


그는 본가와 멀리 떨어진 대학을 편하게 다니기 위해 자취방을 알아보고 있었다.


운 좋게 아주 싸게 내놓은 원룸을 구하는데 성공했건만,

그게 불행히도 전세사기로 내놓은 매물이었다.


소위 깡통이라 불리는, 전세 보증금이 주택의 실제 가치를 뛰어넘는 사기 건물,

그런 집을 아무런 의심없이 구매한 성현은, 결국 3달 뒤 그의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최후를 맞게 되었다.


졸지에 집은 잃어버리고, 남은건 1억짜리 빛 밖에 남지 않은 성현.


군대에서 악착같이 아껴쓰고, 거기에다 군인적금까지 들어가며 치열하게 모았던 그의 2500만원이,

그의 전역 후 생활비이자 등록금이었던 모든 돈이,

그대로 공중분해당하고 말았다.


그런 성현이 일상생활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당장 다음 학기에 듣지 못할수도 있는 대학 교수의 수업이, 성현의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미 돈을 냈으니 들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어려운 전문지식들을 억지로 밀어넣는 성현이었다.


그런 성현이 하루는 수업이 끝난 뒤,

빈 강의실에 남아, 그날의 수업 내용을 복습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의실의 문틈 사이로 보이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전공서를 읽고있는 대학생의 모습이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첫번째로 본 사람이 바로 서 교수였다.


성현은 이해가지도 않는 내용들을 억지로 이해해보려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고, 전공서에 정신이 팔린 탓에 그에게 다가오는 서 교수의 인기척 조차 느끼지 못했다.


공부하는 와중에도, 돈과 집 문제 걱정으로 인해 성현의 입에서는 한숨이 쉬지 않고 푹푹 세어나왔다.


서 교수는 가만히 서서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내 방관하길 그만두고 성현에게 직접 다가가 질문했다.


도대체 무슨 걱정이 있어 그렇게 한숨을 푹푹 쉬는 거냐고.


그제서야 서 교수의 존재를 인지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성현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 아주 초췌한 상태였던 성현은 푸념이라도 들어주겠다는 서 교수의 말에,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 전부 털어놓게 되었다.


가만히 서서 그의 말을 듣고있던 서 교수는,

성현의 푸념이 끝날 때쯤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건 어떤가?

성현 군이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지낼 곳도 새로 마련해주고, 빛도 내가 갚아주도록 하지

성현 군은 딱 하나, 내 연구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서 교수의 말을 들은 성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어어어… 정말 이렇게 하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는 서 교수가 진심으로 그 말을 한 것인지,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해줄 능력이 있는 것인지,

어째서 그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돌아오는 서 교수의 말은 그의 의문을 아무것도 해소해줄수 없었다.


“성현 군의 눈이… 아주 선해 보이거든.

약간 고집있고, 책임감에 떠밀려다니는 성격처럼 보이지만… 그건 그리 문제될게 아니지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할테니까…”


도대체 서 교수는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것일까.

성현은 교수의 수수께끼 같은 말을 전부 이해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빛을 갚아준다는 서 교수의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장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성현의 입장에서는, 어쩔수 없이 골라야만 하는 선택지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빈말하는게 아니네, 성현 군“


재차 이어지는 성현의 질문에도 서 교수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혹시나 성현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을때,

황성현은 교수가 거짓말을 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만약 서 교수가 정말로 그를 도와줄 작정이라면,

아마도 그것이 가져올 금전적인 부담이 얼마나 클지를 알고도 그런 선택을 내린 것일거다.


“그렇다면… 어쩌면 제가 정말 큰 실례를 범하고 있을수도 있고… 정말 염치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아주 염치없는 일인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 교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건내는 성현의 모습은 아주 위축되어 있었다.


부채를 값아주는 대신, 자신의 아래에서 일을 해달라는 서 교수의 파격적인 제안에 대해,

성현은 아주 조심스럽게 긍정하는 대답을 건냈다.


하지만 그런 성현의 모습을 보고도, 서 교수는 자신이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성현의 말에 답하는 서 교수의 목소리는,

마치 자신의 일이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쓸것 없다는 듯한 털털한 어투의 목소리였다.


“따지고 보면, 나도 성현 군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니 별로 신경쓸 필요 없네

앞으로는 집 걱정도 돈 문제도 걱정할 필요 없을걸세,

성현 군은 앞으로 내 예비 조교로 일하게 될 거니, 그 일에만 집중할수있게 해 주겠네“


그의 말을 듣고,

성현은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서 억눌려있던 아주 무거운 무언가가 한번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마음고생을 했었던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걱정에 의해 살아가며,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체 고독히 끙끙 앓아왔다.


그런데 바로 오늘, 그 짧지만 그토록 길게 느껴졌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눈앞에 있는 저 교수의 커다란 호의 덕분에 모두 쏟아내리듯 사라졌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크나큰 분기점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던 이 비극이, 이토록 쉬이 끝나버리라곤 성현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으리.


성현은 책상에 고개를 쳐박고 눈물을 쏟아내면서,

연신 서 교수를 향해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끄흡…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순간의 충동적인 감정의 물결에, 성현은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서 교수에게 큰 실례를 범한 상태에서,

또 그를 번거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 큰 대학생이 응석까지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이런 행동이 그저 질나쁜 때쓰기에 가깝다는 사실은 성현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다.


성현은 곧 억지로 감정을 추스르고선, 애써 눈물을 닦아내는 그였다.


…………..


삐익- 삐익- 삐익-


한참을 추억에 잠겨 랩실의 테이블을 닦고있던 성현의 휴대폰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린다.


소음같은 알람소리를 싫어하는 그였기에, 이것이 자신의 전화벨 소리가 아니라는것은 즉각적으로 파악할수 있었다.


이렇게 시끄러운 알람 소리를 내는것은 전화가 아니였다.


“재난 문자인가…”


또 실종 문자인가보다, 성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경찰청) 명도중학교 괴인 범죄 발생

시민들은 접근을 자제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명도중학교’ 라는 단어를 읽는 순간, 성현은 자신이 잘못 읽었기를 바라면서 다시한번 문자를 들여다보았다.


애석하게도 문자의 전문은 그가 이해한 내용과 한 글자도 달라지지 않아 있었다.

그가 잘못 읽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황성현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러할것이, 명도중학교는 바로 세오가 다니는 학교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 괴인 범죄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여동생이 위험에 처했다, 어쩌면 괴인에게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들키게 될지도 모른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들을 애써 무시하며, 성현은 그것들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성현이 해야 하는 일은 그녀를 걱정하는것이 아니라 그녀를 지키는 일이었다.


“제발… 아무런 일도 없어야 할텐데…!”


성현은 곧 시작하는 강의도 재쳐두고 랩실의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서 정신없이 세오의 학교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