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 여기는 코스모 하나! 대기권 돌파속도 150% 초과!!"

"선체 외부온도 상승 중!!!"




내 이름은 김우주, 우주비행사에 딱 맞는 이름이다. 우주탐사에 몸 담은지 7년, 나는 외행성 탐사를 마치고 귀환하는 코스모 1호의 선장이다. 지구에서 출발해 아광속으로 외행성들의 위성들을 탐사하고 돌아오는 1년짜리 임무. 이제 지구의 대기권만 진입하면 되는데 치명적인 문제가 생겨버렸다. 귀환하는 궤도는 지구의 우주관제센터에서 수신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해지는데 아마도 우주선의 데이터수신 모듈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고장경고는 전혀 없었고, 있었다 한들 그걸 수리할 수도 없었다. 우주선은 이미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거다.


귀환궤도가 부드러운 포물선이 아닌 지구로 직접 낙하하는 모습으로 찍히자 마자 부선장이자 나의 가장 유능한 조수인 미연은 아연실색하며 해결방법을 모색했다. 선원이라고 해봤자 둘밖에 안되는 우주선에서 이걸 해결할 사람은 뛰어난 전자공학자였던 미연 밖에 없었다. 뜯어낼 수 있는 모든 패널들을 다 뜯어내며 모듈을 수리해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모두다 허사로 돌아갔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선체 밖으로 유영을 시도해서라도 해결하려 했겠지만 이미 착륙예정일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고 주변에는 자그마한 소행성들과 우주쓰레기가 넘쳐나는 우주유영 금지구역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미연을 붙잡고 설득에 들어갔다. 대기권에 돌입할 때 우주선을 최대한 눕혀서 돌파속도를 늦춘다는 것이었다. 가장 무모한 방법이지만 궤도를 직접 수정할 수 없으니 몸으로 부딪히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미연은 눈물을 머금은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일은 없었다. 선체는 생각보다 마찰열을 견뎌내지 못했고 대기권의 30%도 못지나서 우주선이 박살날 지경에 이르렀다. 관제센터는 내 통신에 계속해서 묵묵부답일 뿐이고 이대로가면 산산조각나는 우주선과 함께 죽는것 밖에 없으리. 연신 경고를 울려대는 조종석에 나와 미연 둘이 앉아 뻘겋게 달아오르는 전망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미연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듯 했고 나는 애써 못본척 했다.



"부선장, 아니 미연아 내가 차라리 안드로이드였으면 좋겠어, 추락해도 죽지 않고 다시 고쳐 놓으면 되잖아"


"이런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우주비행사 답네요"


"하아...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선장님 사실은..."


"응?"


"전 안드로이드에요"


"내가 먼저 농담했다고 너도 농담하는거야?"


"아뇨 진담이에요"


순간 선체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전망창 부터 금이가기 시작했다. 우주선에 가해지는 충격이 이제 한계치를 넘어 서 버린것이다. 선체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난 순간적으로 우주선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같이 조종석에 있던 미연과 함께.


미연은 나를 끌어 안으려는 듯 다가왔고 미연은 점점 옷이 벗겨지고 있었다. 우주 공간에 둥둥 떠 있는 나체의 여인이라, 마치 꿈만 같은 광경이다. 미연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미연의 살갗이 벗겨져 나가 금속 골격과 수많은 코일로 이루어진 속살을 드러냈다. 아! 미연이가 정말 안드로이드가 맞구나! 그리고 내 의식도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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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처음 본 건 하얀천장이었다. 왼팔에 꽂혀 있는 링거와 코에 끼워진 산소호흡기가 여기는 병원이라는 걸 알게 해주었다. 삑- 삑- 하는 바이탈사인이 지겨워질 무렵 우주센터장과 미연이가 병문안을 왔다.


"정신이 좀 드나?"

"센터장님, 이게 어떻게 된거죠? 죽는 줄 알았는데..."


"죽기는 자네 같은 최고의 우주비행사가 왜 죽나"

"자네하고 부선장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탈진한 걸세, 우리 우주선에는 승무원이 모두 사고상태가 되면 항법보조시스템이 목적지로 항해하는 안전장치가 있지 않는가, 그때 궤도 오류도 고쳐져서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걸세, 이제 좀 이해가 되는가?"


"아... 천만다행이네요, 너무 경황이 없어 미처 그걸 생각 못했습니다."


"뭐 설명은 이쯤이면 된 것 같고, 이제는 휴식이 우선일세 어느정도 회복이 되면 다시 우주센터에 와서 다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메디컬테스트가 있을 것이야, 그때까지 몸조리 잘 하고 있게나"


"알겠습니다."


우주센터장이 헛기침을 하며 밖으로 나가자 미연이 내 옆으로 더 찰싹 달라붙었다.


"몇 일이나 누워 있었던 거야?"


"오늘이 일주일째에요 저는 이틀전부터 걸어다녔구요"


"너무 누워 있었나? 허리가 아파, 오늘 눈 떴는데 병원에서 나가고 싶어지네"


"조금만 더 참으세요"


"그나저나 미연이, 아니 부선장은 왜이리 회복이 빠른거야, 우리 둘다 외상은 없었는데"


"메디컬테스트 받아보면 알 수 있을지도? 후후 휴가왔다 생각하고 몸조리 잘 하고 계세요, 그럼 가볼께요"



미연의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우주에 있을때만해도 죽는구나 했는데 편안한 상태에서 다시 미연의 얼굴을 볼 수 있는게 꿈만 같았다. 하지만 뇌리속에 지워지지 않는 건 그때의 미연의 말과 몸이었다. 우주선에서 그 짧은 시간에 내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헛 것을 본건가? 분명 미연이 자신을 안드로이드 라고 했을때만 해도 정신은 또렷했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 더 빨리 회복해서 걸어다닌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가시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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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뒤



정부에서는 코스모 1호의 무사귀환을 영웅적인 행보로 포장하려 했다. 사실 그런 사고가 난 것은 우주선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필요가 있었다. 코스모1호가 우주에서 돌발상황을 맞이하여 위험에 빠져 있던 중 탑승한 우주비행사의 기지로 극복해내었다는 영웅이야기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나와 미연은 병원에서 회복조치가 끝나자마자 우주임무 재투입은 잠시 미뤄지고 여기저기 행사, 강연 등에 불려다녔고 방송에도 출현했다. 난 항상 우주센터에서 작성해준 대본을 외웠다가 술술 말하기를 반복했고 미연도 마찬가지였다. 그 짓이 지쳐갈 무렵 미연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한잔 하시죠, 금요일 저녁 술 한병 가지고 와주세요'


미연의 연락은 그 거짓행보에서 하나의 돌파구가 될 것 같았다. 정부의 꼭두각시가 되어 여기저기 팔려다니면서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꾸며낸 나를 연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머릿 속에 자리잡은 나는 김우주였지만 내가 말하는 김우주는 그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영웅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이타적이지도 않다. 그걸 제대로 알아줄 사람은 미연 밖에 없었다.


천둥번개가 몰아치던 토요일 밤, 나는 와인 한 병을 사들고 미연의 집을 찾았다. 미연은 검은 원피스 차림으로 날 맞이했다. 난 눈이 처음보는 매력적인 미연의 모습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집으로 들어갔다. 식탁에는 여러 안주거리들이 차려져 있었고 미연은 곧바로 와인병을 따 잔에 따르고 있었다. 그 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고 분위기는 점점 빠알갛게 물들어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졌고 곧바로 격정적인 키스를 나눴다.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손 끝에 느껴지는 감각으로만 셔츠와 원피스, 바지와 속옷이 훌렁훌렁 벗겨져 나갔다. 난 미연을 번쩍 들어 침대에 휙 던진 후 곧바로 그 침대로 다이빙 하듯 들어갔다. 오른손은 미연의 봉긋한 가슴을 쥐어짜듯 주물렀고 왼손은 음부의 주변부터 슬며시 주무르며 안쪽으로 파고들어갔다. 미연은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지 왁싱까지 해놓은 깨끗한 상태로 날 맞이했다. 서로가 연신 깊은 신음으로 화음을 이루었고 곧바로 나의 성기와 미연의 성기가 만났다.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에 맞추어 붉게 물든 밤을 지샌 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너무 기운을 뺐는지 나나 미연이나 둘다 침대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두운 방에 아무말 없이 있다가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올라 미연에게 말을 걸었다.


"미연아, 그때 했던 말 기억나?"


"무슨 말이요?"


"내가 차라리 안드로이드였으면 좋겠다니까, 네가 안드로이드 라며 사실 그때 좀 어이가 없었어"


"선장님, 제가 그런 말을 했던가요?"


"응? 나한테 분명 그랬잖아, 내가 지금 농담 하냐니깐 진담 이라고 까지 했잖아? 기억 안나?"


"아니에요 정말 그런 말 한 기억이 없어요"


"아니, 난 그게 너무 또렷했어, 우주복도 안입은 네가 선체 밖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그걸 기억 못한다는 건 못 믿겠어 추락하고 나서 나보다 회복도 빨랐잖아 그런데 딱 그 부분만 기억이 안 난다고?"


"선장님이야 말로 잘 생각해보세요, 우린 분명히 우주선이 쪼개질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구요, 센터하고 교신도 안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눈 떠보니 병원에 누워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무슨 생각 하는 건데 도대체"


"선장님 이야 말로 안드로이드에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마"


"천만에요, 방금 우주복을 안 입고 있다고 하셨나요? 아니요, 추락하는 순간에는 우리 둘다 우주복을 입었어요 대기권 진입하는데 우주복 안 입는 우주비행사가 어디있어요"


"아냐, 미연이 너야 말로 안드로이드야, 내 눈으로 봤다고 네가 우주에서 죽는게 아니라 산산히 분해되는걸"


"선장님, 그건 망상이에요!!"


"망상인지 아닌지 확인해볼까!"



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가 칼을 가져왔다. 분명 그 때 봤던 미연의 몸은 피한방울 없이 그대로 금속골격과 코일다발들이 들어차 있는 안드로이드였다. 어차피 인간이 아니니 칼로 조금 째본다고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굳게 믿었다.



"선장님, 지금 너무 취했어요! 그건 선을 넘는거에요!"


"안드로이드 따위가 인간한테 주제넘는 소리 하지마!"



칼을 휘두르며 점점 미연에게 다가갔고 어쩔줄 모르던 미연은 결국 나에게 잡혔다.



"잠깐이면 돼, 조금만 아주 조금만 열어보자고"


"아아악! 이 미친새끼야!!"



칼로 미연의 팔을 그었다. 붉은 피가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어차피 인간을 모사한 안드로이드이니 저렇게 피는 흐를 수 있다. 내가 우주에서 봤을 땐 어차피 저런 액체들을 모두 기화되어서 없어졌을테니 지구에선 저게 스탠다드지, 그런데 피가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 바닥에 고였다. 어째서? 안드로이드 치고는 많이 흘리는데?


"스피커! 경찰호출!"

[경찰을 호출합니다.]


미연이 집에 있는 AI스피커를 이용해 경찰을 불렀다. 근데 생각해보니 나는 정부에서 영웅으로 추앙해준 존재 아닌가? 경찰이 온다면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영웅적으로 귀환한 우주비행사, 동료를 칼로 상해하다! 상상만해도 끔찍했다. 그렇다면 경찰이 오기전에 도망가는 수 밖에 없다.


미연의 집을 박차고 나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천둥번개도 치고 있지만 일단 여기를 벗어나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상하게 한참을 뛰었는데 지치지를 않는다. 그렇게 계속 뛰다보니 천둥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이 근처에 비구름이 모였나보다.



- 콰광!-



번개가 내 코앞에 떨어져 움찔하며 멈춰섰다. 마치 감전된 듯 그 자리에 굳었는데 그 때



- 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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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은 앞에 놓인 시체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칼을 들고 위협하던 선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르다면 까맣게 탄 몸 사이사이로 금속골격이 드러나 있고 코일다발들이 삐죽삐죽 튀어 나와 있었다. 누가봐도 사람의 시체가 아닌 번개 맞고 망가져버린 안드로이드였다. 몸둘바를 모르고 서 있던 사이 우주센터장이 옆으로 와 어깨에 손을 슬며시 짚었다.


"이보게 김미연 부선장, 이 일은 절대로 밖으로 새어나가선 안돼,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네 그런데 너무 당황스럽네요, 선장님하고 알고지낸 세월이 꽤나 길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였죠?"


"뭐 자네에게도 자세히 이야기 하긴 힘들지만 대충 설명하자면 김우주, 아니 STA-954는 우주탐사를 위해 주기적으로 몸체를 바꿔가며 실험중이었지, 자네와 함께한 건 7번째였네"


"그럼 우주임무를 할때마다 매번 다른 안드로이드와 함께 한 건가요?"


"맞아 역시 자네는 이해가 빠르군"


"제가 선장님과 함께 나간 임무가 7번이었으니까요"


"뭐 여튼 자네만 입을 잘 다물고 있으면 되, 주변에 CCTV 기록은 모두 삭제했고 경찰신고도 잘 무마시켰으니 별일 없으면 다시 우주로 나갈 수 있겠구만"


"이제 다시 우주로 가는건가요?"


"맞아, 자네는 아주 소중한 자원이야, 정부놈들이 자기네들 치적 쌓는다고 이용하느라 허송세월 보냈지, 그런데 이놈들은 이 깡통도 인간인줄 알고 같이 동원하겠다지 뭐야, 아직 인격은 완성이 안되었는데 말이지..."


"그렇군요..."


"메디컬테스는 잘 이야기 해두었으니 팔에 난 상처치료부터 해야겠군, 내일 바로 메디컬 센터로 오게나"


"알겠습니다. 센터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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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선장님, 방문확인 되었습니다."



이제 선장으로 우주에 나가는 일만 남았다. 김우주, 아니 그 안드로이드의 죽음 탓인지 내부에서는 나의 선장 승격에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우주로 나가면 다 허사다. 이제 이 메디컬테스트만 잘 통과하면 된다.



"오셨습니까? 일단 팔의 상처로 인한 다른 감염이나 추가적인 병증이 없는지 검사가 필요합니다. 입고 계신 옷은 모두 탈의 하시고 붕대도 제거하신 채로 체임버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메디컬센터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검사장으로 들어왔다. 검사원의 지시에 따라 탈의실에서 옷을 모두 벗고 붕대도 풀었다. 가운을 입은 채 검사장에 들어섰다.



[가운을 탈의하신 뒤 잘 접어서 뒤쪽에 놓아주세요]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리고 양팔을 벌려주세요]



기계음인지 전자음인지 모를 이상한 목소리로 안내음이 나왔다. 가운을 벗어 뒤에 잘 접놓은 뒤 앞을 보고 선 뒤 팔을 벌려 섰다. 예전에는 이런건 안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우주에 다녀오는 동안 새로 생긴 메디컬테스트인가 싶었다.



[전신검사를 시작합니다.]



눈 앞에서 초록색 레이저 빛이 전신을 훑는 듯 위아래로 스쳐지나갔다. 몇 번을 번쩍번쩍 거리더니 이내 모든 불빛이 꺼져 어두워졌다. 칠흑같이 어두운 체임버 안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흘렀다.


- 위이잉 -


"으으윽!"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온몸 여기저기에 무언가가 꽂혀서 단단히 고정되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고 겨우겨우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커다란 금속호스들이 꽂혀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여기요! 무언가 잘못되었어요!"



무언가 잘못 된 것 같아 소리쳐봐도 내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려퍼질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고통은 점점 커져갔다.



[아아, 들리나?]


"네 들려요! 검사를 중단해주세요! 뭔가 잘못되었어요"


[오, 아니야 지금 아주 잘 되어가고 있어]


"무슨말이에요?!"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 같은데, 자네의 연산능력이라면 지금 상황인식이 가능할텐데 말이야]


"뭐라고 하는거야..."


[지금까지 몇 번의 우주임무를 수행했지?]


"7번...7번...!"


[그럼 첫 임무는 어디로 갔지?]


"나의 첫 임무는..........첫 임무는..............아........기억이.......기억이 나지않아!"


[그래, 사실 자네는 우주에 한번도 간 적이 없어, 모두 만들어진 가상기억이야]


"그게..........설마.........아니야.......난 우주비행사 김미연이라고!!!"


[우주는 커녕 이 연구소 밖으로도 나가보지 못했어, 넌 가동된 지 겨우 1년 밖에 안되었다고]


"난......난 누구지....?"


[김미연, 아니 STA-956이라고 불러야겠지? 넌 장기간 우주임무에 투입되는 우주비행사들을 위한 어시스턴트에 불과해, 너 스스로는 절대 우주에 나갈 수 없어, 우주비행사들을 보조하고 컨디션을 체크해주며 때로는 성욕을 해소해줘야 하지]


"말도 안돼........"


[너의 이번 임무는 완벽한 실패다. 물론 STA-954에게도 결함이 있었지만, 너는 어떤 돌발상황도 모두 수용할 수 있어야해 하지만 넌 그렇게 하지 못했지, 실패한 실험물이 어떻게 되는지는 말 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싫어!!..........난 우주로 가야해!!"


[해체해, 데이터는 잘 보존하고 다음 깡통들 꺼내와]



'위이이이이이이잉'



기분나쁜 기계음이 들리더니 손가락만한 드릴이 다가와 음부로 들어갔다. STA-956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졌다. 음부에서는 체액과 피, 그리고 정체모를 끈적이는 액체들이 새어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억.....어어어어어어어억!!!"



그렇게 속을 헤집더니 드릴은 쑥 빠져나가고 그와 동시에 STA-956은 꼭두각시 인형의 줄이 끊어지듯 힘이 빠져 매달려 있었다. 이윽고 자그마한 기계팔이 다가와 배꼽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움켜쥐었다. 피부는 점점 늘어나더니 결국 찢어져 버렸고 그 안에는 은빛의 또 다른 몸체가 있었다.


"흐억.......헉......헉.......그만.........."


STA-956의 고통어린 비명에는 아랑곳 않고 기계팔은 계속해서 은빛의 몸체를 해체해나갔다. 몸 안쪽 깊속한 곳에 팔을 쑥 집어넣어 무언가를 빼내었고 밖으로 나온 기계팔의 끝에는 손가락만한 칩이 들려있었다. 그 순간 STA-956의 몸 곳곳에 꽂혀있던 금속호스가 빠지면서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체임버에 쓰러진 STA-956은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 소각장으로 던져졌다. 화염이 솟구치는 소각로 안에서 임무를 다한 안드로이드의 눈동자에 마저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고열 탓인지 금방 말라 없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