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가던 김리아 박사를 따라 두 개의 보안 문을 지난 후에야, 김 리아 박사 연구실이라고 적힌 방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구실의 보안을 해제하고 문을 1cm 정도 열었을 때 김리아 박사는 갑작스레 문을 닫았다.


“생각해보니 내 랩실은 여러 중요한 연구 자료가 많아서…”


“생각해보니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 내부를 보여드리기 부끄럽다는 말입니다”


“아니야 조용히 해”

“얼마 전에도 어질러 놓아서 EFA-01에게 혼나셨잖…읍”


김리아 박사는 어느새 03의 입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김리아 박사와 EFA-03이나 다른 안드로이드들의 대화 행동 같은걸 보고 있으면, 이들은 주인과 안드로이드, 창조자와 창조물 라기보단 가족 같아 부럽다는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리아 박사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회의실로 가게 되었다.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고 있는 김리아 박사와 달리 난 EFA-03이 타 주는 커피를 마시면서도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커피 맛있죠?”


“네 맛있습니다”


“에스프레소라 설탕 안 넣어서 꽤 쓸 텐데 괜찮아요?”


“네 조금 쓰네요”


“시현씨가 EFA-07을 지켜준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하지만 허가되지 않은 공간에 멋대로 침입하고 엿 본건 그리고 당장 오늘만 해도 제 아이에게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죄송합니다 모든게 제 잘못입니다”


내 앞에서 김리아 박사가 고개를 몇차례 흔들더니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이번 일들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을게요 당신이 제게 그러했듯이요”


“네? 정말입니까?”


“하아…네 그래요. 사실 엄청 화내고 쫒아낼까 했는데…그쪽은 용서해줬잖아요? 그리고 제 아이를 걱정해서 그랬던 거고 저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짓을 했다는 특수성을 감안한 거에요”


“그렇지만 두 번의 용서는 없어요”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좋아요 그럼 이걸로 모든 이야기는 끝난 거로 하죠. 대신 몇 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개인적인 질문들인데…”


“죄송하지만 리아 박사님은 제 취향이 아닙니다”


“…”


“뭐든지 물어보시면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시현이 연구소에서 김리아 박사와 커피를 마시는 동안 한 조립 공장에서는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자세임에도 그들은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제 거래하기로 한 제조업자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그걸 왜 이제 말해?”


“…이번 은행 건 때문에 잠수 타는건가 했습니다. 연락 끊긴 것도 고작 하루…”


“내가 모든 걸 다 보고 하라고 했잖아”


“하지만 두식이 형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보통 크게 터진 게 아니잖슴까?”


“덕구 넌 입 다물어, 경찰한테 잡혀갔다거나 그런 건?”


“경찰 쪽 끄나풀들은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고 합니다. 은행 털던 놈들은 죄다 죽었고 사용된 해킹툴도 못 찾았답니다”


“연락 닿는지 계속 연락해보고 골목마다 찾아, 만나면 모시고 와 끌고 오지 말고”


“예 보스”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어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나간 후 공장 안은 기계들이 삐걱대며 돌아가는 소리와 그 가운데엔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하얀 피부와 검은 장발을 가진 고양이상의 미인이 서 있었다.


평범한 중소기업의 사장인 줄 알았던 아버지가 범죄조직의 보스였고, 그 뒤를 이어야 했던 강채윤은 손톱을 자근자근 씹고 있었다.


“이시현 너 어딨는 거야…”


이시현과 같은 고교 출신이며 본래라면 이시현과 같은 학교에 진학했을 그녀 하지만 아버지가 갑작스레 쓰러지고 그녀가 보스가 된 것도 벌써 수년째였다.


“어떻게 널 다시 만났는데…이번엔 안 놓칠 거야 절대로”


바깥으로 나와 없어진 이시현을 찾아야 하는 남자들은 그녀 앞에서 표현할 수 없던 분노를 이시현에게 쏟아내는 중이었다.


“찾으면 일단 조금만 손봐주고 데려가도 되는 거 아님까? 안 보이는 쪽으로?”


“아서라 그러다가 공구리쳐져서 물고기랑 이웃한다”


“누님은 그런 비실이가 뭐가 마음에 든다고…남자란 울끈불끈 우리처럼 근육이 빵빵해야지 안슴까?”


“덕구야 고놈의 입 좀 입 조심하라 그 업자가 보스 애인 뭐 그런 거 같지비? 입 단도리 잘해야 오래 사는 법이라 니 그러다 진짜 묻히는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들쑤시며 시현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남자들에게 남자애 둘이 떠드는 소리가 들어왔다.


“하 시발 그때 그 로봇 년 따먹기 직전이었는데”


“그 리모컨 진짜 잃어버린 거냐? 너 어디에 숨긴 거 아님?”


“아니야 시발 그때 도망치면서 떨어트린 것 같은데 그때 다른 애들 잡히고 튀느라 정신없었잖아”


교복을 입은 채 껄렁하게 서서 대화를 나누는 둘은 아직 본인들에게 닥쳐온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떠들고 있었다.


“거 보라 이 아조씨들 듣게 그 이야기 좀 계속해보라”


“뭐야 시발 깜작이야 누군데 이 아저씨 빨갱이야?”


“이 아새끼래 똥오줌을 구분 못하지비? 통일이 이뤄진지가 언젠데 빨갱이는”


“기분 더러우니까 꺼져요. 깜장 양복 쳐입으면 쫄을 줄 아나?”


“너희 같은 새끼들 패면서 자란 게 나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들아”


참다못한 덕구가 달려들어 뺨을 후려치자 짝 소리가 아닌 팡하는 소리가 나며 욕을 하던 양아치가 공중을 날기 시작했다. 곧 땅과 다시 만났지만 스스로 일어나긴 틀려 보였다.


“덕구야 걔 숨 붙었니? 죽은 거 아이지비?”


“넷슴다 숨은 아직 붙었슴다 이 정도로 죽으면 자지를 떼야 함다”


덕구는 그렇게 말하면서 불안했는지 연신 쌍코피가 터진 코에 손을 대보고 있었다.


“야 너 쟤 날아가는 거 봤지? 그냥 이야기할래? 맞고 끌려가서 이야기할래?”


이미 한명이 어떻게 됐는지를 뻔히 본 후여서인지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은행 강도가 있던 날, 리모컨처럼 생긴 해킹툴을 주워 재미로 누르고 다니다 경찰 안드로이드를 멈추게 했던 것, 그녀를 벗기던 중 웬 남자가 끼어들어 방해했다는 것, 남자를 폭행하다 경찰 안드로이드에게 쫒기다 친구들이 잡힌 이야기까지 손과 발을 다 써가며 설명했다.


남자의 생김새와 옷차림까지 들은 두식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어이쿠 그렇구나…너그들이 원인이었네, 덕구야 거기 기절한 놈 들어라 가자”


“아저씨 풀어주신다면서요 말하면 풀어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냐? 그냥 이야기할 건지 맞고 가서 이야기할 건지를 물었지, 풀어준다곤 안 했는데?”


그들은 보고할 성과가 생긴 것에 만족하며 그들의 아지트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