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소년 채널

Demolition boy #1


"하아~, 늦네~~"

 놀이시설의 수영장 앞에서 야마모토 켄타는 벌써 5분 이상 서 있었다. 엄마와 누나의 옷 갈아입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상반신은 흰색 반팔 티셔츠, 하반신은 허벅지가 반쯤 드러나는 베이지색 반바지 래쉬가드를 입었고, 대중적인 브랜드의 검은색 샌들을 신어 준비 완료. 여자가 옷을 갈아입는 데 남자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10살짜리 아이에게 기다림은 고통스러웠다. 함께 있던 아빠는 "화장실 갈 테니 잠시만 기다려"며 아까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 혼자 남겨둔 걸 들키면 엄마한테 혼날 텐데,,"

 덩치 크고 위풍당당한 엄마에게 겁 많은 아빠가 화를 내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이제 그만 갈까?"

 어린아이답지 않게 영리한 켄타는 예약한 휴게소 부스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도를 읽는 것도 능숙하게 읽었으니,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켄타는 가방을 들고 휴게 부스가 있는 2층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광장에 설치된 장식용 연못을 발견하고 그 가장자리에 올라탔다. 평균대를 걷는 것처럼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앗!"

 발을 헛디뎌 연못에 빠지고 말았다.

(떨어졌네. 하지만 물이 얕아서 괜찮아!)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온몸이 물에 잠기면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말도 안 돼! 익사하는 건가 ......?)

 허둥지둥 발을 동동 구르며 떠오르려고 애를 쓴다.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에 빛이 보였고, 켄타는 물 밖으로 힘껏 뛰쳐나왔다.



 어느 해안 도시 몇 백 미터 앞바다에서 굉음과 함께 물보라가 일어났다. 물보라라기보다는 거대한 물기둥이었다. 무려 100미터에 가까운 높이의 물기둥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비행기라도 추락한 건가?"

 해안가 도로는 휴일이라 교통량이 많았고, 도로가 거의 정체 상태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고 있었다. 분명히 비정상적인 크기의 물보라다. 물보라가 수면 위로 솟구치다가 점차 가라앉자 검은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푸아!"

 숨을 몰아쉬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그것은 모습을 드러냈다. 소년이다. 초등학생 정도의, 아직은 어린 얼굴의 미소년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금세 이상 상황임을 알아차린다. 그가 있는 곳은 수심이 50미터 가까이 되는 지점인데, 베이지색 반바지의 허벅지까지만 물에 잠겨 있는 것이다.


"휴, 빠져죽는 줄 알았어!"

 켄타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미디엄 헤어의 머리카락은 흠뻑 젖어 있었고, 상하의 래쉬가드에도 물이 흠뻑 젖어 있었다.

"역시 깊지 않았구나. 아, 여기가 어디지? 아까랑 풍경이 다른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본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실내 광장에 있었을 텐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수평선이 보이는 광경에 당황스러워했다.

"어, 바다?"

 확실히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을 핥으면 짠맛이 난다. 앞쪽으로 육지가 보이고 해안을 따라 도로와 주택이 보인다. 하지만 허벅지가 잠길 정도의 수심인데도 그것들이 이상하게 멀고 작아 보인다. 뭔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어린아이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물 밖으로 나가자"

 켄타는 육지를 찾아 물살을 가르며 물살을 가르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대참사의 시작이었다.


"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온다."

 키가 100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거대한 소년이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바람에 소란이 일어났다. 바다를 가르는 그의 허벅지는 몸 전체와 균형을 이루기에는 어린아이처럼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날씬한 다리였지만, 작은 인간들에게는 고층 빌딩만한 크기였다. 그 다리가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수천 톤의 바닷물이 밀려나와 순식간에 큰 파도가 발생한다.


(뭐지, 저건?)

 켄타는 자신이 일으킨 파도에 흔들리는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해면에 떠 있는 작은 배가 있었다. 아무래도 고기잡이를 하는 것 같았다.

 어선이 차례로 전복되고, 승무원들은 "우왓! 하고 내동댕이쳐진다. 갑작스러운 일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는 어부들. 바다 위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소년이 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들 앞을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인의 다리가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익사하고 만다.

 전복을 면한 어부들도 있었지만,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휩쓸려가는 동료들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문득 옆을 보니 거대한 피부색 벽면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동시에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였고, 그것이 거대한 소년의 허벅지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배가 통째로 튕겨져 나가 해조류가 되어버렸다.

 켄타가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수심이 얕아지고 무릎, 종아리가 드러난다. 그 나이 또래의 소녀라고 생각될 정도로 털 한 올 없이 매끈한 피부로 감싸인 아름다운 다리다. 그런 다리로 헤집어낸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쓰나미가 되어 해안가를 덮치기 시작한다.


'콰직! 바스락바스락!

 밀려오는 쓰나미에 의해 전복된 배들이 서로 충돌하며 연안에 부딪혀 처참한 잔해로 변해간다. 넘쳐흐르는 바닷물이 항구와 해안도로, 주변 주택가를 삼켜버린다.

"우와아아아아! 도망쳐라아아아아!

 너무 놀란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하지만 거대한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만다.


쿵,....콰광!!!!

 "하아~ 드디어 도착했어~"

 출현한 지 불과 2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대지진과 같은 땅의 울림과 함께 드디어 켄타가 상륙했다. 체감상 50미터의 거리를 물을 차며 걸었기에 조금 숨이 가빴다.

 상하의 래쉬가드에서 바닷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해안가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켄타. 도대체 몇 미터나 되는 것일까? 쓰나미에 파괴되지 않은 목조 가옥은 발목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는다. 남자아이답지 않게 잘 다듬어진 맨발은 발등까지 물에 잠겨 있었다. 그 큰 발은 발등과 손가락이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굵은 끈으로 발목까지 단단히 고정되는 스포츠 샌들을 신고 있었다. 발밑에는 방금 전 파도에 파괴된 배의 잔해가 발밑에 깔려 있었다.

"뭔가 이상하네 ...... 다들 너무 작아."

 상륙은 했지만, 낯선 풍경에 위화감을 느끼는 켄타. 멀리 산이 보이고, 주택가로 보이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모두 작기만 하다.

 문득 발밑을 보니, 두 발을 나란히 세워야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의 도로가 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 있다. 그곳에는 내 다리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마치 미니어처 모형 같았다. 그 주변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켄타에게는 희미하게만 보였다.

"영화 촬영 세트장? 이런 수영장이 있었나 ......"

 10살짜리 초등학생이 갑자기 낯선 곳에 서게 되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에 서게 되니 혼란스러우면서도 불안감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이 곳에 머물러도 어쩔 수 없다는 일종의 이성적인 생각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망가뜨릴지도 모르지만, 미안해요"

 10살이 된 켄타는 평균적인 체격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키 135미터, 몸무게 3만 톤의 거인이 되었다. 그런 거구의 그가 발밑을 신경 쓰지 않고 걸어가자 지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즈가아아아앙!

 물보라를 일으키며 발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밟고 있던 배의 잔해가 튕겨져 나가고, 파편이 공중을 날아다니며 뒤늦게 도망치던 사람들이 휘말린다.


'꺄아아아아아! 살려줘요!!!!

"우와!"

쿠우우웅 ......!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발밑에 뒤늦게 도망친 작은 인간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켄타는 무자비하게 피를 튀기며 그들을 짓밟아 버렸다. 운동화를 신은 발이 아스팔트 위를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엄청난 무게로 아스팔트를 움푹 파고들어 작은 육체를 압축한다.

"응? 뭔가 밟았나?"

 켄타는 잠시 신경을 썼지만, 작은 인간이 너무 무참히 짓눌려서 모형 자동차를 밟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곧장 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그의 발자국은 2미터 깊이의 분화구가 되어 짓밟힌 희생자들이 새빨간 살점이 되어 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거인이야!"

"이쪽으로 온다!"

"도망쳐!"

 공포에 질린 군중들은 비명을 지르며 앞다퉈 도망친다. 해안도로를 두 발로 완전히 점령한 채 걸어오는 거대한 소년 앞에 주저앉는 사람,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켄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어가면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짓밟아 버린다.


즈시잉......!

부츄리! 베차!


 작은 인간들이 보기에 켄타의 동작은 여유롭게 보이지만, 보폭은 수십 미터에 달한다. 걷는 속도는 사람으로 환산하면 시속 40km에 달했다. 자동차라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는 속도지만, 대혼란에 빠진 해안도로는 순식간에 정체와 사고가 발생해 도저히 그런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자동차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겨우 깨달은 운전자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서진 도로 표지판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고, 서 있을 수 없을 만큼의 굉음과 함께 주위가 어두워졌다. 허둥지둥 뒤를 돌아보니 반바지와 샌들을 신은 거인 소년이 발을 휘두르고 있었다. 고음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진 차도 사람들을 짓밟고 지나간다. 그대로 엄청난 무게로 순식간에 짓밟아 버린다.


구우우우웅!


 켄타는 아랑곳하지 않고, 길에 있는 모든 것을 걷어차면서 유유히 걸어간다. 몇 대의 자동차를 무의식적으로 발끝으로 걷어차고 지나간다. 수만 톤의 충격으로 고철이 된 잔해가 공중을 날아다니며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쏟아져 내리며 짓밟힌다. 그 위로 샌들을 신은 맨발이 쫓아오는 듯이 그 위를 휘감아 내려온다. 가로수를 부러뜨리면서 뒤늦게 도망치는 사람들을 쿵쾅거리며 짓밟아 버린다.

"이상하네. 왠지 땅이 부드러운 것 같아. 그리고 아래에서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데........"

 역시나 밟는 느낌이 이상했고, 걸을 때마다 땅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계속되어 위화감을 느꼈다. 켄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았다.

"어! 이게 뭐야 ......"

 켄타가 절규했다. 발바닥의 절반도 안 되는 작지만 정교한 미니 자동차들이 불을 뿜으며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발톱만 한 작은 생명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징그러워...... 무슨 벌레인가?)

 천천히 발을 들어  뒤로 물러나 깊게 움푹 패인 발자국을 관찰한다. 땅소리를 내며 후퇴하는 거대한 발자국.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지만,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짓밟아 버렸다.

 그대로 허리를 굽혀 대기를 밀어내면서 켄타는 무릎을 꿇는 자세를 취한다. 집채만 한 무릎이 마치 종이로 만든 것처럼 차를 가볍게 짓밟고 '쿵'하고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도로표지판을 부수면서 양손을 짚고 네 발로 기어가는 자세를 취한다. 발은 발끝으로 서서 지금까지 밟고 지나간 피해자나 자동차 잔해가 붙어 있는 샌들 밑창을 뒤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자세를 취했다.

 천천히 얼굴을 땅에 바짝 붙인다.

"우엣 ......"

 발자국에는 끈적끈적하고 끈적끈적한 바이니쿠(역: 우메보시의 과육을 잘게 다져 약한 불에서 끓인 퓨레) 같은 물체가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이상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은 방금 전 켄타가 짓밟고 지나간 인간과 자동차, 아스팔트가 합쳐진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작은 생물을 바라본다. 작은 빌딩만한 크기의 소년의 얼굴이 다가오자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켄타는 그들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고음의 비명소리도 이상한 울음소리로만 들렸다.

"음, 잘 안 보여. 역시 이상한 벌레인가?"

 겁에 질린 작은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탕,탕!'하는 마른 소리가 나면서 얼굴에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출동한 경찰관의 발포였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런 거대한 생명체에게 권총 총알이 통할 리가 없는데, 두려움에 반사적으로 총을 쏜 것이다. 물론 켄타는 그런 줄도 모르고 벌레가 찔렀다고 착각했다.

"우왓!"

 놀라서 손으로 벌레를 잡아버렸다.

'뿌직!'

 그 충격으로 경찰관도 주변 사람들도 날려버리고, 도로변의 건물을 부수면서 쿵쾅쿵쾅거리며 부숴버렸다. 게다가 놀라서 뛰어내리면서 켄타의 뒤쪽 방향으로 도망치려던 사람들을 샌들 밑창으로 짓밟아 버린다.

"뭐하는 짓이야!"

 손에는 부서진 고기 조각과 체액이 묻어 있었지만, 화가 난 켄타에게는 상관없었다.

"이봐!"

 지금까지와는 달리 분명한 살의가 담긴 발을 크게 휘둘렀다. 사람들의 비명이 더욱 높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발을 내딛었다.

'쾅'!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큰 폭발이 일어나 주변 일대를 날려버렸다. 거대한 샌들은 바로 아래에 있던 작은 사람과 자동차를 순식간에 짓밟고 4미터나 파고들었다. 직접 밟히지 않은 사람들도 부서진 아스팔트와 함께 수십 미터를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분노에 찬 거대한 소년은 무릎을 굽혀 발에 체중을 실은 채로 낑낑거리며 문질러댄다. 


'쭈가가갸갸갸갸갸갸! 

부추부추!

메릭! 메키! 


 켄타가 발을 들어 올리자 그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검붉은 액체만 흘러내려 샌들 밑창에 묻어 있었다.

 하하하,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켄타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어, 아프지 않네..."

 예전에 벌에 쏘인 경험이 떠올라 비슷한 통증이 올까봐 몸을 움츠렸지만, 얼굴은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았다. 켄타 자신은 몰랐지만, 피부는 부어오르지도 않고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다시 한 번 발밑을 내려다본다. 밟는 충격으로 주변 수십 미터가 날아가고, 미니카, 쓰러진 간판, 이상한 벌레, 아니 작은 인간들이 말 못하는 살덩어리가 되어 흩어져 있었다. 조금 세게 밟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땅이 갈라진 모습에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방금 전에 치워버린 손을 바라본다. 간신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던 피해자가 붙어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켄타의 눈에는 희미하게 비춰져 역시나 이상한 벌레로 보였다. 얼굴을 찡그리고 손목을 툭툭 치며 유해를 털어낸다.

"꿈인가 ......"

 나는 역시 연못에서 익사한 것일까?  요즘 친구가 빠져있는 이세계 환생물인가?

 불안감과 비현실적인 현상이 겹치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떨쳐버리려는 듯, 켄타의 내면에서 이상한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걸어온 방향을 향했다. 해안도로에는 길이 20미터가 넘는 큰 구멍들이 규칙적으로 좌우로 번갈아 가며 여러 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발자국이었다. 구멍의 바닥에는 붉은 반점이 여러 개 박혀 있었고, 미니카가 돌돌 말아 뭉개진 알루미늄 호일처럼 납작하게 굳어 있었다. 전복된 미니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역시나 벌레 같은 생물이 삐걱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켄타는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며칠 전 우연히 TV에서 방영된 오래된 괴수 영화를 우연히 보고, 호쾌하게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에 이유 없이 흥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비슷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혼란과 초조함을 상쇄하듯 그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켄타는 교차로 한가운데에 서 있다가 잠시 후 해안에서 내륙으로 향하는 도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곳도 그를 피해 도망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작은 인간들은 마치 거대한 괴수에게 기습적으로 노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들 모형 같아. 분명 내가 모르는 어트랙션에 들어갔을 거야 ......"

 길게 이어진 길의 끝에는 주택가, 그 안쪽에는 빌딩 숲이 보였다.

"저쪽이 더 많은 건물이 있네."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켄타는 땅이 울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즈신! 주신! 


 발밑을 한 번도 살피지 않고 걷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땅이 흔들리고 몇 초 후 거대한 발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당황하여 앞 다투어 도망친다. 자동차를 차례로 걷어차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린다. 작은 육체가 피를 튀기며 운동화 밑으로 사라지고, 공황 상태에 박차를 가한다.

 켄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걸으면 충격으로 인해 착지 지점 주변이 날아갈 것 같다는 것을 깨닫고, 시험 삼아 천천히 오른발을 내딛는다. 세단형 자동차가 거인의 발뒤꿈치에서 순식간에 고철덩어리로 변한다. 그대로 발바닥과 발끝으로 버스를 지그시 짓밟아 버린다. 유리창이 터지면서 섬뜩한 소리를 내며 차체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뒤늦게 도망친 승객의 절규하는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으아악! 하고 다리 절반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버스를 완전히 짓밟아 버린다.  그 광경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발톱이 가지런히 잘 다듬어져 있어 여성 모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예쁜 발가락이다. 하지만 그 손가락만 해도 소형 승용차만한 크기였고, 손가락 자체가 꿈틀거리는 거대한 생명체 같았다.

 도망치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이 흉악한 발가락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는데, 140미터 상공에 있는 거인 소년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 재미있을 것 같아.)


 온몸이 오싹하게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다. 예전에 장난으로 벌레를 밟아 죽인 적이 있었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도 들었다.

 균형을 잡으며 한 발로 서서 오른쪽 무릎을 구부려 신발 밑창을 확인했다. 샌들 밑창의 홈에는 그동안 짓밟았던 인간들의 시체, 자동차와 아스팔트 잔해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승객들과 함께 짓밟힌 버스는 평평한 판자 모양이 되어 미끄럼 방지를 위해 설계된 블록의 요철에 파묻혀 있었다.

 손가락으로 잔해를 집어넣고 천천히 떼어낸 뒤 '쿵'하고 오른발을 내려놓고 관찰한다. 이 세상의 스케일로 몇 센티미터 두께로 압축된 버스에는 희생자의 혈흔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미세한 틈새에서 살점 같은 것까지 튀어나와 있다. 보통의 감성이라면 너무 그로테스크해서 기분이 나빠질 법도 한데, 특촬물 세트라고 생각하고 잔인한 장난기가 발동한 켄타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또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더러워~"


 콧방귀를 뀌며 잔해물을 툭툭 던져 버린다. 얇게 압축되어도 몇 톤의 무게를 가진 잔해가 피난민들 위로 떨어져 또 다른 희생자를 낳는다.


"나를 찌른 나쁜 벌레들은 응징해야지 ......"


 지면을 지긋이 내려다보던 순간, 그는 오른발을 옆으로 돌려 도망치려는 군중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굉음과 함께 아스팔트와 흙이 뒤집어지고 흙먼지가 거세게 피어올랐다. 자동차가 자갈처럼 튕겨져 올라가고, 수십 명의 작은 인간들이 운동화를 신은 거대한 발 아래 차례로 삼켜져 버렸다. 큰 허벅지를 벌리고 무수한 붉은 줄무늬를 그리며 멈춰 선 켄타의 오른발. 흙먼지가 가라앉자 그곳에 생존자는 없었다.


"자, 이렇게 되는 거야!"


 싱글벙글하며 , 켄타는 말 못하는 다진 고기가 된 그들을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열린 오른쪽 다리를 천천히 끌면서 닫고, 다시 흙먼지를 내뿜으며 다시 한 번 갈아버린다. 작은 인간들을 의도적인 파괴 대상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했다.

"모처럼이니까 좀 더 괴수 같은 짓을 해보고 싶어,,"

 켄타는 몇 킬로미터 앞의 빌딩 숲을 바라보며 가슴을 두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물론, 길 위의 자동차들, 그리고 작은 인간들을 망설임 없이 짓밟으면서 .......








Demolition boy #2


해안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편도 3차선 도로. 평소에는 자동차와 트럭이 바쁘게 오가고 보행자도 많이 다니는 큰 도로지만 이날은 달랐다.

 많은 차들이 무분별하게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은 필사적인 모습으로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차로는 거의 진행이 불가능했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일부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 원인을 알게 된다.

 쿵! 하고 땅이 흔들리면서 타고 있는 차가 튕겨져 올랐다.

"뭐야! 지진인가?"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흔들림은 규칙적인 리듬으로 점차 커져만 간다. 곧이어 주위가 어두워지고 눈앞에 구겨진 물체가 떨어졌다. 그것이 있을 수 없는 모양으로 뒤틀린 신호등이라는 것을 파악한 직후, 수십 미터 전방에서 엄청나게 거대한 물체가 떨어졌다.

"우왓!"

 폭발음과 함께 땅바닥에 박히면서 뛰어다니던 사람들이 종이 조각처럼 날아가 버리는 것이 보였다. 내 차도 전복될 것 같은 흔들림이 느껴졌다. 겁에 질려 앞을 보니 떨어지는 물체에 깜짝 놀랐다.


 거대한 사람의 발이었다. 검은색 운동화를 신은 발이 도로를 크게 움푹 파고들고 있다. 발목은 2층짜리 집만큼 높았고, 발목을 감싸고 있는 끈의 폭은 어른의 키보다 더 커 보였다. 발뒤꿈치엔 반쯤 짓밟힌 자동차가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뒤집혀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다리를 올려다보니 종아리, 무릎, 허벅지 뒤쪽이 고층 빌딩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에 아직 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어린아이 같은 다리다. 더 올려다보니 거대한 다리의 주인은 베이지색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머리가 너무 높아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디엄 헤어스타일로 남자 아이 같았다.

"거짓말이지 ......"

 떨면서 거인을 올려다보던 순간, 뒤에서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고 운전자는 차와 함께 몇 백 미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거인 소년 켄타의 반대편 다리에 발로 걷어차인 것이다. 정확하게는 걷다가 무의식적으로 발가락이 살짝 걸렸을 뿐인데, 충격이 너무 커서 차는 부서지고 운전자는 육체가 산산조각이 나며 즉사했다.

"역시 재미있네~♪"

 켄타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쿵,쿵 발소리를 내며 걷고 있었다. 발밑의 참사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작은 차들이 연이어 날아가고, 벌레 같은 생물을 밟으면 원형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뭉툭해진다.

 켄타에게는 정말 우스꽝스러워 보였고, 어떤 면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잔인한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건달로 인식되어 죽여도 상관없는 벌레로 인식된 작은 인간들, 모형으로 착각하는 자동차나 표지판을 의식하게 되면서부터 샌들 사이로 짓밟는 감촉이 재미있었다.


 한편 피난민들은 다가오는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땅바닥을 울리며 활보하는 소년은 한 발로 도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몸집이다. 달리다 뒤를 돌아보니 천천히 땅에서 떨어져 나가는 거인의 오른발이 보였다. 발등과 손가락이 노출된 채 굵은 밴드로 고정하는 샌들을 신은 맨발은 길이가 20m에 달해 마치 빌딩이 떠 있는 듯한 위용을 자랑한다.

 아이처럼 동글동글한 발가락 사이로 부러진 간판 기둥을 끼고 걷는 거대한 오른발이 수십 미터 뒤로 휘청거리더니, 4대의 버려진 자동차가 한꺼번에 뭉텅이로 짓눌린다. 보푼! 하고 유리창과 바퀴가 튕겨져 나가고, 종이 장난감처럼 꾹꾹 눌러져 납작한 판자로 변해간다. 착륙 지점 주변의 땅이 충격으로 뒤집어지고, 주변에서 도망치던 사람들이 피어오르는 흙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 다음 한 발이 반대편 차선으로 내려앉고, 도망치던 사람들이 비명과 함께 피를 튀기며 짓밟히는 장면이 펼쳐진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도 긴 보폭으로 걸어오는 거인을 피할 수 없어 몇 초 후 같은 최후를 맞았다.


"하하하! 더 빨리 도망치지 않으면 내가 따라잡을 거야~"


 켄타는 즐거운 듯이 웃으며 거대한 다리를 좌우로 번갈아 움직여 인간과 자동차를 차례로 짓밟아 버렸다. 피해는 차도에만 그치지 않고, 소년이 너무 커서 보도까지 튀어나온 샌들 테두리에 깔려 압사하는 피해자도 다수 발생했다. 마치 유원지나 동물원에서 쫓고 쫓기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문득 방금 전까지 인도에 있던 군중을 밟고 지나간 발밑을 내려다보니 생존자들이 도로 좌우로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너머는 집과 아파트가 즐비한 주택가였다. 거대한 소년의 걷는 속도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길을 벗어나 피신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대 소년이 자신들을 명백한 파괴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작은 사람들의 모습이 켄타에게는 마치 개미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벌레가 벌집으로 들어가는 것 같네."


 킥킥 웃고 나서 길을 바꿨다. "쭈욱 하고 허리를 크게 벌리고 오른발을 휘두른다. 도로변의 대형 드럭스토어를, 주차장에 있는 차들을 모두 짓밟고 주택가 지역으로 침공한다.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라며 켄타는 주택가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8미터나 되는 켄타의 다리가 주택가 골목에 들어갈 리가 없었고, 도망치려던 사람들마저도 집 몇 채를 한꺼번에 짓밟아 버린다. 발등에 전선이 걸리자 벌벌 떨며 불꽃이 튀었다. 고압전선의 전류에 닿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봇대를 끌어당겨 쓰러뜨린다. 그대로 집 두 채를 짓밟고, 주차되어 있던 자가용도 짓밟아 버린다. 집의 파편이 튀어나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샌들을 신은 맨발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건태에게 2층짜리 집도 발목 높이밖에 되지 않는다. 마치 잔디밭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발밑에서는 집들이 차례로 짓밟히고 발로 차서 날아간다. 


거대한 발가락에 부딪힌 목조 가옥은 나무토막으로 날아가고, 파편이 멀쩡한 건물에 떨어져 더 큰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분화구 같은 발자국에는 파편과 뒤늦게 도망친 사람들의 살덩어리가 흩어져 있었고, 3층짜리 주택은 걸을 때 발가락에 걸려 위층이 파헤쳐지듯 사라져 버렸다.

 켄타는 주택가 안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보며 즐거워한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그들을 쫓아다니며 짓밟는 행위가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혐오감을 자극하고 있었다.


"재미있지만, 밟기만 하면 아까워 ......"


 켄타는 주택가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자신의 발밑과 아직 멀쩡한 지역을 번갈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날씬한 여성처럼 날씬한 다리에 신은 약간 투박한 디자인의 스포츠 샌들. 올 여름 전에 엄마가 사준 것이다. 발에 딱 맞고 걷기 편해 켄타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이었다.


"그래!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켄타는 발밑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더니 왼발로만 한 발로 일어섰다. 그리고는 무심코 오른쪽 샌들을 벗기 시작했다. 잘록한 발에 감겨있는 긴 끈의 벨크로를 벨리벨리 벗겨냈다. 거대한 사이즈의 그것은 천둥소리처럼 우렁찬 소리로 울려 퍼졌다. 해방된 오른쪽 맨발이 주택가에 '쿵! 하고 꽂힌다. 아직 더러워지지 않은 발바닥이 밟고 지나간 잔해에 닿아 간지럽다.


"후후, 기분 좋아.."


 오른손에 벗은 샌들을 들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천천히 쪼그리고 앉았다. 산처럼 큰 소년의 거구가 대기를 밀어내는 중저음과 함께 다가와 지상 사람들의 공포를 배가시킨다.


"에잇!"


 그러자 켄타는 손에 들고 있던 스포츠 샌들을 망치처럼 땅에 내리찍기 시작했다. 샌들 밑창이 주택을 무참히 부수는 폭발음과 함께 켄타의 손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뒤늦게 도망친 작은 인간들은 무자비하게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계속 간다!"


 켄타가 순진하게 외치자, 네 발로 기어가면서 온전한 주택가를 향해 거구를 밀고 나갔다. 3만 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샌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강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도 수백 톤의 무게를 자랑한다. 거대한 파리채가 된 샌들을 마치 벌레를 퇴치하듯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이다. 켄타가 땅에 부딪힐 때마다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집들은 무자비하게 박살난다. 아스팔트와 집의 파편이 하늘 높이 튀어 오르고, 뒤늦게 도망친 사람들은 끔찍하게 딱딱한 신발 밑창에 깔려 피가 튀는 연기에 눌려 죽어간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기어가는 왼손에 짓눌려 죽어갔다. 작은 인간이 6미터나 되는 큰 나무 같은 손가락에 깔려 손가락 사이로 선혈이 흘러나온다. 쫓아오는 듯 거대한 무릎, 30미터가 넘는 경골이 그들을 짓밟고 지나갔다.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켄타는 주택가를 공터로 바꾸어 나간다. 마치 그 자신이 초거대 불도저인 것 같았다.

 작은 집들을 하나둘씩 파괴해 나가자 눈앞에 가로로 긴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10층짜리 건물이지만, 지금의 켄타라면 네 발로 기어 올라가도 옥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크기다. 내부에는 역시나 도망치다 뒤늦게 도착한 주민이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소년이 무시무시한 파괴극을 펼치며 다가오는 것을 목격하고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래 아파트를 한 손으로 쉽게 짓밟으면서 거인 소년은 아파트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먹잇감을 사냥한 짐승처럼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샌들을 손에 든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아아아,,,!"


 무슨 짓을 당할지 짐작한 주민들이 울부짖었지만, 켄타는 이를 무시하듯 무자비하게 샌들을 내리쳤다.

'도가아앙! 큰 소리와 함께 급수탑 탱크, 옥상 층을 지탱하는 기둥과 그 아래층에 있는 유리창이 한꺼번에 박살났다.

샌들이 철근콘크리트를 쉽게 관통해 벽과 천장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엘리베이터 홀도 예외가 아니어서 도망치려던 주민들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아하하하, 모래성 같네!"


 켄타가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그 말대로 가로로 긴 아파트가 가운데만 쿡쿡 찌그러진 채로 무너져 내렸다. 내부가 벗겨져 나와 가지런히 늘어선 격자 모양의 단면을 드러낸다. 가구와 부서진 구조물들이 흩어져 있고, 부서진 사람들의 잔해가 콘크리트에 붉은 줄무늬를 그려놓고 있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네 발로 기어가면서도 저 멀리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괴수 앞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벌집에 남겨진 애벌레와 같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켄타는 남은 양 옆 동에도 샌들 두들겨 맞았다.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대형 아파트는 잔해 더미로 변해버렸다.


"얘들아, 재미있었어!"


 주택가의 절반 이상을 파괴한 켄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네 발로 기어가던 자세에서, 쿵! 하고 엉덩이를 들고 천천히 앉았다.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땅을 긁는 종아리에 잔해와 자동차가 쑤욱쑤욱 긁힌다. 문득 자신의 정강이를 보니 파괴된 집 등의 파편, 사람이 짓밟힌 것으로 보이는 붉은 반점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우와, 좀 지저분하네"


 켄타는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경골과 종아리, 발바닥에 묻은 먼지를 톡톡 털어내고 오른발에 샌들을 다시 신었다. 밴드를 단단히 조이고 일어서서 발가락과 발바닥으로 땅을 두드린다. 신발이 안정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무심한 몸짓이지만, 100배나 커진 지금은 거대한 중장비처럼 굉음을 내며 잔해들을 밟고 일어선다.


"이제 됐어!"


 지축을 울리며 운동화를 신은 발로 잔해물을 밟으며 주택가 터에 우뚝 솟아 있다.


"아직 더 하고싶은데, 다음엔 저쪽을 부술까?"


켄타는 일어서서 건물이 즐비한 도심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샌들을 신은 발걸음을 내딛는다. 표적을 바꾼다고 하면서도 일부러 아직 피해가 없는 곳을 골라 걷다 보니, 다시 주택가가 파괴되어 간다. 작은 비명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과 아파트, 작은 사람들을 일직선으로 짓밟으며 진격하는 켄타. 인간들의 건물을 쉽게 부술 수 있지만, 조금 걷기가 힘들다는 것을 느낀 켄타는 다시 간선도로로 진로를 되돌린다.


 십여 분 전 켄타가 침범했던 3차선 간선도로, 그곳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좌우로 오가고 있었다. 그가 주택가로 목표를 바꾼 덕분에 도망칠 수 없는 추격전에서 벗어났지만, 모두들 불안한 표정이다. 어쨌든 고층 빌딩보다 더 큰 체격의 초등학생 남자아이에게 쫓기다가 밟혀 죽는 전대미문의 비상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저것'은 무언가 말 같은 목소리를 냈지만, 이 세계의 주민들에게는 거친 포효로만 들렸고,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그 사악한 괴수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사이렌을 울리고 드디어 도착한 경찰의 안내와 구조대의 구조가 막 시작될 때였다.


 '구웅, 이라는 중저음이 규칙적인 리듬으로 점차 커져가는 것을 사람들은 알아차린다.


"괴물이 또 온다!"

"아, 안 돼!"

 그 정체를 금방 알아차리고 다시 한 번 패닉이 일어난다.

'구웅', 이라는 폭발음과 함께 수십 미터 상공에서 자동차 몇 대, 목조 주택의 부서진 파편이 쏟아져 내린다. 쏟아지는 잔해물 비에 대피 중인 사람들이 깔려 비명을 지른다. 조금 뒤늦게 방금 전까지 이 길을 활보하던 거대한 소년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대공황이 되어 피난할 곳이 없어진다.

 도로변에 늘어선 저층 건물 위에 거대한 샌들 밑창이 올려져 있다. 그대로 건물 근처에 있던 구조대원과 구조대원들이 건물과 함께 짓밟히고 만다. 불쌍한 피해자를 땅바닥에 내리꽂자 반대편 발가락으로 자동차 쇼룸 매장을 산산조각 내고, 안에 있던 자동차를 흩뿌리면서 켄타는 온몸을 드러냈다

.

"후후,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없어~"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켄타는 작은 인간들의 공포를 부추겼다.


"아직 많이 남았구나."


 발밑에 버려진 자동차, 뒤늦게 도망치는 사람들을 눈치채지 못한 듯 짓밟고 몸의 방향을 바꾼다. 주택가에서 노는 동안 작은 인간들은 다 도망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륙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빌딩이 즐비한 중심가가 보인다. 의외로 거리가 멀고, 거인이 된 켄타의 체격으로 보아도 100미터는 족히 될 것 같다. 이대로 걸어도 되지만, 빨리 새로운 곳에서 놀고 싶은 켄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야~슛!"


 무언가 기운을 북돋우는 듯한 외침과 함께 작은 차를 튕겨내고, 아스팔트 포장을 웨이퍼처럼 부수며 운동화를 신은 발을 질질 끌며 걷는다. 앞을 향해 무게 중심을 잡고 허리와 무릎을 떨어뜨린다. 주먹을 쥐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대시 자세다.


"간다!"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자마자 신발 밑창의 미끄럼 방지 블록이 아스팔트를 파고들어 엄청난 다리 힘으로 땅을 밟으며 켄타는 100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거구를 달렸다. 물론, 길 위에 대피하지 못한 군중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한 행동이다.

 큰 허벅지를 벌리고 3만 톤에 달하는 체중을 거침없이 내리꽂는다. 샌들을 신은 맨발이 5미터나 박히는 동시에 주변 땅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파편이 그의 키 높이만큼 치솟았다. 지상의 자동차나 작은 사람들도 예외 없이 뒤집혀 수십 미터 공중으로 튕겨져 올라간다. 인간은 충격파만으로 죽고, 자동차는 포물선을 그리다가 지면에 충돌해 불을 뿜어낸다. 거대한 몸무게에 속도를 더한 거대한 다리가 미처 피하지 못한 군중을 향해 거침없이 휘두른다. 비명소리가 땅의 울림에 묻혀버리고, 피를 흘리며 샌들을 신은 소년의 발에 무자비하게 짓밟힌다.

 신발 밑창의 홈에 살점이 찍히며 같은 참극이 연이어 벌어진다. 발에 딱 맞는 스포츠 샌들을 신은 덕분에 켄타는 운동화 못지않은 속도로 달린다. 그 속도는 인간으로 환산하면 시속 160km에 육박한다. 걷는 속도를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움직이는 발에 표지판과 자동차가 발로 차서 쇠조각이 되어 음속으로 날아갔다. 강렬한 압력으로 짓밟힌 인간들의 발자국과 밟힐 때의 폭발로 간선도로에 치명적인 피해를 퍼뜨리는 거대한 소년. 자동차나 전철을 능가하는 속도로 달리다 보니 3분 만에 도심에 도착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시내 중심가. 평상시에는 관광과 비즈니스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화한 거리다. 하지만 이 날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해안에서 남자아이의 모습을 한 거대한 생물이 출현했다는 소식은 이미 도시 전역에 퍼져 있었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것을 짓밟으며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도 알려지면서 대혼란에 빠졌다.

 거대 생물이 출현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탓에 대피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아 사람들은 건물 틈새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리듬으로 점차 커지는 진동. 불길한 예감이 드는 순간, 10층짜리 건물이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났다. 격렬한 먼지가 치솟고, 딸랑이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 파편이 떨어진다. 그 사이로 거대한 인간의 발이 튀어나온다. 30m가 넘을 것 같은 날렵한 경골과 종아리, 20m가 넘는 운동화를 신은 발이 생매장된 사람들과 함께 잔해를 짓밟고 있다. 그 위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미소년의 거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건물을 한 방에 걷어차고, 비명을 지르는 작은 인간들을 내려다보았다.


"좋아, 도착했다!"


 거인 소년은 허리에 손을 얹고 지면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운다. 많은 건물이 가랑이에도 닿지 않는 거대한 몸을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작은 인간들의 비명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켄타는 다음 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











Demolition boy #3


빌딩 숲이 우거진 도심은 대공황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서 뛰어다니고, 도로 위에서는 자동차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겁에 질린 그들의 시선 끝에 그 원인, 거인 소년 야마모토 켄타가 우뚝 솟아 있었다.

 건물 몇 채를 순식간에 무너뜨린 이 거대한 소년은 한쪽 무릎을 꿇고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길이 20미터, 폭 8미터가 넘는 검은색 스포츠 샌들로 방금 전 파괴한 건물의 잔해를 밟고 벨크로로 된 끈을 다시 조이고 있었다. 사람보다 더 커 보이는 밴드가 잘 다듬어진 맨발에 감겨 있고, 거기서 젊은 여성처럼 날씬한 다리가 뻗어나간다. 반바지 스타일이라 허벅지까지 드러낸 이 거대 소년은 무릎까지만 해도 30미터가 넘었고, 쪼그리고 앉아 있어도 주변 빌딩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이었다.


"이제 됐어!"


 달려와서 약간 헐거워진 샌들 끈을 다시 조인 켄타는 씩씩한 목소리로 일어섰다. 가뜩이나 거대한 몸집이 일어서자 더욱 커져 지상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뭐야~, 전혀 도망치지 않았네."


 이곳에 도착한 후 샌들을 갈아 신으며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작은 인간들의 피난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켄타가 너무 빨리 도착한 데다 그를 보고 당황한 사람들이 군중사고를 일으켜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대혼란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물이 많이 ....... 정말 괴물이 된 것 같아.')


 겁에 질린 작은 인간들을 뒤로 하고 빌딩 숲에 우뚝 선 켄타는 신이 나서 천천히 걸어갔다. 8미터나 되는 그의 다리 폭이 적당히 가랑이를 벌리고 걷는 데는 최소 한 쪽 세 차선 이상의 도로 폭이 필요했다. 물론 도심 속에서 그런 곳은 한정되어 있다. 켄타는 이미 도로 위를 걷는 것을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커다란 샌들을 신은 맨발이 길 밖으로 튀어나와 발가락이 길가의 쇼윈도 매장 건물에 찔렸다. 유리가 화려하게 부서지며 발 바깥쪽 절반만 박히고, 안쪽의 전시물과 위층을 부숴버린다. 스펀지 케이크처럼 건물이 쉽게 반쪽만 파헤쳐진다. '구우우웅! '하고 포장을 짓밟으며 발을 딛는 순간, 진동으로 건물은 먼지를 일으키며 무너졌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반대편 발도 도로변에 문지르며 걷는다. 이번에는 발가락 전체를 6층짜리 잡상인 건물에 박아 발가락 전체를 꽂아 아래층을 부수면서 굴삭기처럼 뒤집어 발로 차서 부숴버렸다.

 작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도 닿지 않는 건물을 걸어가면서 순식간에 파괴한 거인 소년에게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방금 전 무너진 건물의 파편이 켄타의 걷는 발에 흩뿌려지고, 달리는 그들의 뒤로 쏟아져 내렸다. 파편이 급소에 맞아 치명상을 입는 사람, 그대로 깔리는 사람, 또다시 희생자가 발생한다. 중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뒤돌아보니 거대한 소년의 발이 자동차를 연이어 짓밟으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무력화된 그들 위로 거대한 스포츠 샌들이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아스팔트를 짓밟는 땅의 울림과 함께 10여 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짓밟힌다. 거인 소년의 몸무게로 땅이 꺼짐과 동시에 충격으로 도로변의 건물이 기초까지 뒤집히며 무너져 내렸다.


"하하, 엉망진창이네."


 켄타는 발밑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사람들의 일상을 순식간에 파괴한 거인 소년은 더 이상 도로를 무시하고 계속 걸어가면서 도시를 짓밟아 버렸다.

 지상의 사람들은 켄타가 도로를 무시하고 걸어가자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거대 소년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도심에 도착했고, 대피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혼란을 가중시켰다. 건물이 즐비한 곳에서는 아직 멀리 있는 거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다가오는 지반의 흔들림에 의지해 허둥지둥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지진과 같은 흔들림에 발을 헛디뎌 넘어진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미디엄 헤어의 거대한 미소년의 상반신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 크기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놀라고 있을 때, 바로 옆의 건물이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한다. 곧이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스포츠 샌들을 신은 발가락이 외벽을 뚫고 나타났다. 끈으로 감싼 발목이 저층부를 찢어내고, 길쭉한 정강이가 건물 전체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듯이 부서진다. 거인 소년은 무릎 높이밖에 되지 않는 건물을 쉽게 발로 차서 부수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비명을 지르는 잔해와 함께 짓밟아 버렸다.

 마치 풀숲을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건물을 차례로 걷어차며 걷는 켄타는 지상의 대재앙을 보며 즐거워했다. 짧은 래쉬가드 바지에서 초등학생 남자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피부의 다리가 뻗어 나오는데, 50미터가 넘는 그 다리는 딱딱한 콘크리트와 부딪혔을 텐데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 오히려 다량의 파편이 경골과 종아리 위를 거칠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이 묘하게 기분 좋다.


(왠지 간지럽고 기분 좋은 느낌이야!)


 수백 톤의 건물 잔해에 발이 묻히지만, 강력한 다리 힘으로 어렵지 않게 끌어낼 수 있다. 거대한 굴삭기가 된 발등으로 걷는 힘으로 콘크리트 조각을 걷어차고, 경로상의 건물에 충돌시켜 더 많은 파괴를 퍼뜨린다.

 발밑을 신경 쓰지 않고 걷는 이 거대한 소년의 속도는 시속 40km에 육박한다. 그 거대한 몸체 앞에서는 사람의 건물 따위는 장애물이 되지 않으며, 충돌해도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거대한 발걸음에 작은 사람들은 도망칠 틈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샌들을 신은 맨발에 건물이 통째로 짓밟히고 만다. 재미와 쾌감을 맛본 켄타는 앞장서서 건물들을 쓰러뜨리며 걷고 또 걸으며 잔해더미를 쌓아 올렸다.


 켄타가 시가지에 도착한 지 2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교외 부근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안쪽에 있던 사람들은 완전히 도망치지 못했다. 거대 소년에게 휘둘리는 도시 사람들은 중심부에서 바깥으로 도망치려 한다. 도로라는 도로에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만들어지고, 차도 정체되고, 철도도 멈춰선다.

 운 좋게 거인을 만나지 않고 간신히 도시 외곽에 도착한 사람들은 어느 지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이게 뭐야!"


 그곳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잔해와 거인의 발자국이 그들의 진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폭격을 당한 것처럼 길이 20미터, 깊이 2미터가 넘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가스관과 상하수도관이 잘려 원형 단면을 드러냈고, 전기를 공급하는 지하 케이블도 뜯겨나가 불꽃을 튀기며 날아가고 있었다. 정류장마다 짓밟힌 버스는 구멍 가장자리에서 차체 일부가 하늘을 향하도록 휘어져 있다. 움푹 패인 바닥에는 으깨진 알루미늄 캔처럼 부서진 자동차 고철 몇 대가 붙어 있다. 그 옆에는 붉은 피로 물든, 방금 전까지 사람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여러 개 박혀 있었다. 거대한 소년의 엄청난 무게에 짓밟힌 살덩어리는 누수된 수돗물 웅덩이에 담궈도 떠오르지 않고 연못 바닥에 붙어 있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인간의 압사체 따위는 처음 보는 것이다. 일부 피난민들은 잔해와 발자국에 달라붙은 처참한 모습의 유해를 보고는 토할 지경이다. 게다가 엄청난 무게에 짓밟힌 땅은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수백 톤에 달하는 잔해는 높은 바위산처럼 쌓여 있어 체력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기어오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광경이 좌우로 펼쳐져 있었고, 작은 그들에게 쉽게 넘을 수 없는 장애물로 다가왔다.

 그 거인 소년은 무궤도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묘하게 그들을 가두기 위해 중심가를 동심원으로 걸어 다니며 건물을 부수고 있었던 것이다.


(성공했어!)


 135미터 높이에서 자신의 감각으로 지름 50미터 전후의 놀이터를 내려다보는 켄타는 예상보다 조준이 잘 맞아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좋아, 그럼 저걸로 마무리하는 거네!"

 거대하고 무자비한 사냥꾼이 된 켄타는 옆 도시로 이어지는 큰 다리를 발견하고, 다시 한 번 발밑의 건물을 걷어차며 걷기 시작했다.


 시내를 흐르는 큰 강을 가로지르는 트러스 구조의 다리, 인접한 도시로 연결되는 몇 안 되는 루트가 된 그곳은 소년의 모습을 한 거대 괴수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괴가 돌아다니면서 다른 주요 탈출로가 끊겼다는 정보가 긴급 뉴스와 SNS를 통해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도망가라", "살려줘"라고 외치며 차를 버리고 사람들이 달려간다. 이 다리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몇 백 미터 앞에 고층 빌딩처럼 우뚝 솟아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인 소년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며 달린다. 하지만 그런 도망도 잠시, 켄타가 천천히 방향을 바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위험해!"

"괴물이 온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공포에 휩싸여 다시 한 번 군중 사고가 발생한다. 도로를 따라 걷던 거대한 소년이 발밑에 있는 저층 건물을 발로 차서 부수면서 쿵쿵거리며 다가온다.

 켄타는 불과 2분도 채 되지 않아 다리 바로 앞에 도착했다. 작은 피난민들은 자신들이 있는 다리가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지는 굉음을 들으며 몸을 움츠린다. 이대로 짓밟힐 줄 알았는데, 거인 남자아이가 불현듯 멈춰 서서 턱에 손가락을 대고 생각에 잠긴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이대로 도망치려 했지만, 이내 소년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번 해볼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켄타는 쿵! 하고 가랑이를 벌리고 왼발로 땅을 힘차게 밟았다. 샌들 바닥에 달라붙은 잔해물을 툭툭 떨어뜨리며 고층 빌딩처럼 오른쪽 다리를 크게 뒤로 휘두른다. 마치 축구 슛을 하는 듯한 자세였다.


"얍!"


 힘찬 외침과 함께 50미터나 되는 켄타의 긴 다리가 진동을 내며 제방을 겸한 몇 미터 높이의 둑을 걷어찼다. 스포츠 샌들을 신은 발가락이 땅을 뚫고 엄청난 양의 토사를 걷어찼다. 그 흙과 자갈이 굉음을 내며 날아와 건너편에 있는 교각에 부딪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새까만 토사의 파도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휩쓸려 들어갔고, 주변의 교각은 큰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야~! 맞췃다!"


 켄타는 발가락이 흙으로 더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3만 톤이나 되는 거대한 몸체를 흔들며 기뻐했다. 길을 막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그 진동에 연이어 쓰러져 나간다. 방금 전의 발차기로 무너진 제방을 뛰어넘어 강바닥을 밟고 지나가던 거대 소년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물에 발을 담근다. 더러워진 발가락을 휙휙거리며 씻고 다리 앞에서 인왕대 앞에 섰다.

 135미터나 되는 거구가 만들어내는 커다란 그림자가 다리를 가리고 있다. 교각은 수면에서 2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거인의 무릎 소년은 그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다. 너무도 거대한 소년의 체격을 올려다본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켄타는 길을 막힌 그들이 돌아서려는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다른 쪽 교각 부근에서 로우킥을 날려보냈다. 방금 전 강물에 젖은 샌들을 신은 거대한 발이 큰 소리와 함께 충돌하면서 작은 인간들도 모두 다리 대들보를 찢어 버린다. 수만 톤의 발길질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육체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커다란 콘크리트 조각과 철골 아치재와 함께 강물에 떨어지며 엄청난 흙먼지와 물보라가 피어오른다.


"이제 통과할 수 있겠군!"


 켄타는 순진하지만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다리의 양쪽 끝이 잘려나가고, 남겨진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작은 희망을 걸고 6층짜리 빌딩만한 다리 대들보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는 사람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켄타는 수면에 발을 담그고 천천히 무릎을 굽혀 몸을 숙인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것인지, 앞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무릎이 트러스 구조의 아치에 부딪힌다. 보킨! 하고 철골을 고정하고 있던 볼트가 튕겨져 나가고, 엿가락처럼 비틀어진다. 쪼그리고 앉은 덕분에 거인이 더 가까이 다가와 사람들의 공포를 증폭시켰다.

반쯤 넋이 나간 그들을 뒤로 하고 거대 소년은 양 무릎 위에 양 팔꿈치를 올려놓고 양손으로 턱을 괸다. 원래는 어린아이 같은 애교 섞인 몸짓이지만, 작은 인간들 눈에는 거수가 먹잇감을 선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떡하지, 이거"


 켄타는 쪼그리고 앉아 여유 있는 높이에서 다리를 내려다보며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아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거인을 욕하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상한 소리로 울부짖는 괴상한 벌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비심 따위는 필요 없는, 그저 놀이의 대상일 뿐이었다.

 잠시 후, 켄타가 껄껄 웃으며 턱을 괸 양손을 풀고, 천천히 대들보 밑으로 손을 넣었다. 더 이상 이상한 벌레, 아니 작은 인간을 짓밟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된 거대 소년은 교량 방호벽 근처에 있던 몇 명을 거목 같은 엄지손가락으로 집어삼켜 버렸다. 눈앞에서 사람이 짓눌려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가까이 있던 일부 사람들은 실금 상태에 빠졌다. 미친 청년이 부러진 철조망을 붙잡고 거대한 손가락을 두들겨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켄타는 손가락이 그들의 체액으로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각을 단단히 잡고 조금씩 힘을 주었다.

"으음! 으응!"

 힘을 주려는 듯 목소리를 높이자, 다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교각과의 연결부가 튕겨져 나가면서 교각과 교각이 분리되어 버렸다. 그 충격으로 다리 상판 위에 있던 작은 인간들이 하늘 높이 튕겨져 나갔다. "우와!" "꺄아아아아!" 절규를 지르며 수십 미터 상공까지 튀겨진 볶음밥처럼 튕겨 올라간 후, 강으로 떨어졌다. 몇몇은 반바지에서 드러난 거대한 허벅지에 부딪혀 켄타의 맨살을 얼룩덜룩하게 만들었다.

"아, ......, 많이 떨어졌네."

 바닥판 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녀석들을 모두 잡으려던 켄타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잡은 교각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는다. 다리 대들보의 길이도 꽤 길었지만, 양다리를 나란히 하고 폭이 20미터가 넘는 허벅지 위에 어렵지 않게 올려놓을 수 있었다. 남은 사람은 보호책과 철골에 붙잡혀 운 좋게 떨어지지 않은 10명 남짓한 사람들뿐이었다. 거인의 다리 위에 올라타면서 높이가 더 높아져 도저히 뛰어내려 탈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게 되었다.

"조금 적지만, 이 정도면 괜찮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웃는 얼굴은 귀여운 소년 그 자체였다. 하지만 거대한 몸집과 잔인한 행동으로 인해 어린아이들에게는 흉악한 괴수로만 보였다.

 켄타는 뒤틀린 트러스 아치의 철골을 손잡이처럼 잡고 천천히 일어선다. 살아남은 자들은 한 번에 수십 미터씩 올라가는 중력에 숨을 헐떡였다.

 다리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마치 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는 것처럼 다리 대들보를 들고 있는 이 거대한 소년을 공포와 절망에 찬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괴수 같은 소년이 섬뜩하게 내려다보았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과 함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꽤 커서 더 이상 들기는 어려우니, 나머지는 정리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켄타는 땅이 울리는 소리를 내며 남은 다리에 다가갔다. 강물에 잠긴 발목 주변에는 다리가 끊어지기 전에 뛰어내렸다가 익사한 사람, 방금 전의 충격으로 던져져 수면에 부딪힌 사람들의 시체가 떠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찰싹! 하고 굉음을 내며 다가온다.

 다시 절규가 격렬해지는 가운데 켄타는 오른발을 크게 내밀었다. 발목까지 흠뻑 젖어 강물이 뚝뚝 떨어지는 운동화 밑창을 작은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올려다본다. 밑창에 붙어 있던 시체의 일부가 수면에 축축하게 젖어 떨어지며 '퍽'하는 소리를 냈다.

"에잇!"

 켄타의 외침과 함께 수만 톤의 무게로 짓밟히는 거대한 샌들이 교량 상판을 폭파한다. 엄청난 진동과 함께 교각이 두 동강이 난다. 작은 사람들은 충격으로 종이조각처럼 날아가 버렸고, 가운데 있던 사람은 강바닥 깊숙이 짓밟혀버렸다. 남은 부분도 수면으로 기울어지면서 무너져 내리고, 멀쩡한 다리는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도망치려고 이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켄타가 손에 쥔 수십 미터 상공의 교각에 갇힌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은 이 잔혹한 광경을 떨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쿵 하고 다시 중력을 느끼자 거인의 얼굴 앞까지 들어올려졌다. 패션모델을 해도 될 만큼 잘생긴 얼굴, 그러나 빌딩만큼이나 큰 소년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름이 사람만큼이나 커 보이는 눈동자에 작은 생존자들은 맹수의 눈빛을 받은 듯 움츠러들었다.


"너희들을 저쪽으로 데려다 줄게!"


 켄타는 담담한 표정과 목소리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걸었다. 앞으로 벌어질 파괴 행위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장난을 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진의는 알 수 없었지만, 거대한 소년은 다리의 일부를 바구니나 가방처럼 매달아 놓은 채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을 빠져나와 시내 중심부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이제 안 돼 ......"

"도와줘!"


 절망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 하지만 켄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샌들을 신은 소년의 발에 짓밟히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발로 차서 부숴지는 건물의 굉음이 아래에서 들려왔다. 정신이 아찔한 상황에서, 작은 그들은 즐거운 표정의 거대한 소년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