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262 슈발베(Schwalbe, 제비)는 다들 알다시피 세계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제트 전투기다.

2차 대전 막바지에 개발되어 실전을 치른 기간은 매우 짧으나 기존의 프로펠러 추진 항공기의 시대를 제트기의 시대로 바꾼 항공기로 평가받는다.


2차 대전 막바지에 개발된 독일군 장비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은 "스펙은 ㅈㄴ 좋긴 한데 스펙에는 표시 안되는 부분이 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은 전차에 이런 인식이 강하지만 슈발베에도 이런 인식이 적용된다.

그런 인식 또한 충분히 근거가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2차대전 말기에 차라리 슈발베보다 Fw190 생산에 집중하는 것이 나았으리란 의견도 있다.

그런데 소프트스펙에 있어 쉴드를 칠수가 없던 전차와는 달리, 슈발베는 충분히 대량생산하고 주력기로 사용될 가치가 있다.


Me262를 운용하는 병사들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말이 있다.

"뒤에서 누가 밀어주는 느낌이었다."

독일 공군 전투기총감인 아돌프 갈란트가 직접 슈발베를 몰아본 후 한 말이다.

갈란트는 자서전에 슈발베는 토크(프로펠러가 돌아가는 회전력에 의해 항공기의 동체가 프로펠러와 반대 방향으로 미약하게 돌아가는 현상)가 없어 조종하기 편하고 가속력과 속도 모두 아주 우월하다고 적었다. 프로펠러 엔진이 아니다 보니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장점이었다.


기수에 프로펠러 엔진이 없다보니 기수 공간이 비었고, 이 부분에 30mm 기관포 4문을 집중배치함에 따라 거리에 상관없이 동일한 화력을 투사할 수 있었다. 30mm 기관포만으로도 상당히 강력한 화력이지만 독일은 여기에 미넨게쇼스(Minengeschoß)라는 일종의 화력 강화 고폭탄을 사용해서 화력을 극대화했다. 중장갑을 두른 B-17이라 할지라도 어렵지 않게 격추할만한 화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슈발베의 가장 큰 강점은 속도였다. 제트엔진이 제공하는 압도적인 추력은 슈발베에게 레시프로 전투기에 비해 압도적인 속력을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레시프로 전투기 중 최강자인 P-51이 최대 705km/h(7620m 기준), MiG-15도 격추한 기록이 있는 F4U 콜세어가 746km/h(F4U-4 기준)인데 슈발베는 무려 고도 10000m에서도 815km/h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당연히 고도가 낮아지면 최고속도도 빨라진다. 

또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상승력이다. 뵐케의 금언에도 나와있듯 전투기에게 고도 우위란 곧 선공권이자 에너지 우위이다. 특히나 독일군 파일럿들의 주 전술이 붐앤줌이었기 때문에 고고도를 선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 그러나 계속 말해왔듯 제트엔진의 추력은 역시나 압도적인 성능 격차를 가져오는데 P-51이 16m/s의 상승률을 보일 동안 슈발베는 20m/s라는, 무려 25%나 우월한 상승력을 가졌다. 여기에 앞서 말한 고공 고속성능을 감안하면 슈발베는 붐앤줌 전술과 폭격기 요격에 더할 나위 없이 최적화된 전투기였다.


여기까진 성능 이야기고, 이제 그 뒷이야기를 해봐야 한다.


우선 가장먼저 걸리는 것이 엔진의 신뢰성이다. 레시프로 엔진은 (물론 세부적인 차이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주 강력한 자동차 엔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비사들도 구조가 익숙하고 그 구조도 검증되었다. 그러나 제트엔진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에 공학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건 당연히 연합군도 겪는 문제긴 하지만, 연합군과 독일군에게 전투기 1대, 항공기 엔진 1대의 가치는 다를수밖에 없다.

게다가 독일군은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며 숙련공도 전부 군대로 끌고갔고 그 빈자리는 전쟁포로나 강제노역자, 그리고 어리고 미숙한 신참들이 차지하게 된다. 잘 만들어도 신뢰성이 제대로 못받쳐줄텐데 이런 사람들이 엔진을 만들다 보니 그 문제점이 더더욱 심화되었다.

거기에 가면 갈수록 희귀금속(이를테면 텅스텐)의 수급이 어려워져서 내구도를 위해 희귀금속을 써야 하는 곳을 그냥 강철로 땜빵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절대적인 생산비용과 시간은 레시프로 엔진에 비해 1/3수준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또다른 문제는 바로 사람이었다. 파일럿은 군 내 인적자원 중에서도 가장 고급인력이고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자해 육성되는 보직이다. 이를 알던 연합군은 일정 전과를 세우면 후방교관으로 차출해서 노하우를 후임들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독일이라고 이를 몰랐겠냐마는, 전선에서 에리히 하르트만,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귄터 랄, 발터 노보트니, 이런 사람들이 대거 빠져서 후방으로 간다고 치면 그 순간 제공권을 상실, 아니 그냥 전선의 독일 공군이 붕괴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독일은 에이스들을 계속 전투에 투입했고(에이스들은 덕분에 슈퍼 에이스가 됬지만) 파일럿의 교육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막판에는 파일럿들을 비행시키고 기체에 익숙해지게 할 시간조차 없어서 조종법만 알려주고 바로 전투에 투입시키기도 했다. 비유하자면 미대 준비생한테 그림도 안그려보게 하고 인상파니 입체파니 그런거만 알려준 뒤 시험보게 하는 꼴.....근데 한가지 더 중요한 건 이게 제트엔진이라 프로펠러 엔진보다 익숙해지는데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존에 존재하던 파일럿들도 이 프로펠러도 없는 괴상한 전투기를 타길 거부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나마 갈란트가 자기 이름을 내걸고 JV-44를 창설하고서야 수많은 파일럿들이 갈란트 하나만 보고 모였다.


어쩃든 전투기는 잘 나오긴 했냐 하면 그것도 아닌것이 공장 자체가 폭격맞아서 ㅄ이 되가고 있는데 잘 나올리가......인적자원도 없고, 원료도 없고, 생산시설은 반쯤 박살났고......잘 나오면 그게 이상하다. 크롬웰 프로덕션은 이렇게 말한다.

공학자도 숙련공도 모자랐던 데다가 중요한 광물자원마저 부족해 개발 마지막 단계에서 난항을 겪었다. 또한, 시험비행에 쓸 연료마저 모자랐고, 폭격으로 공장까지 파손되었다. 결국 Me 262는 초라한 공장에서 조잡한 재료에 미숙한 직공의 손을 거쳐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울퉁불퉁한 겉면을 매끈하게 만드느라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사용했다.

당연히 테이프와 접착제는 무게와 강도, 항력 모든 면에서 악효과를 낸다.


이렇게 보면 슈발베는 날아다니는 티거2에 비유할 수 있어 보인다. 그러나 슈발베는 소프트스펙에 있어 그 어떤 프로펠러 전투기도 따라올 수 없는 한가지 강력한 이점이 있다.

바로 기름이다.

독일은 연료 수급의 상당량을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 유전과 석탄액화기술에 의존했다. 근데 플로이에슈티에 미군 폭격기가 들이닥쳐 유전이 폭격을 받고 파괴되어 버린다. 가뜩이나 석탄액화기술은 수지타산이 안맞는데(석유시추와 비용이 대충 7:30정도의 비율을 보였다 한다) 44년부터는 그 공장들도 하나씩 파괴되어갔다. 

"제트엔진은 프로펠러 엔진보다 연료를 훨씬 많이 먹는데 기름 없는 게 뭔 장점이냐"라고 할 수 있지만 비행기에는 아무 기름이나 넣을 수가 없다. 여기서 잠깐 공학적인 설명을 하고 넘어가겠다.

이것이 4행정 레시프로 엔진의 단면도이자 작동 방식이다. 가솔린 자동차 엔진도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가솔린 엔진의 피스톤이 내려가면 연소실에 기화된 가솔린과 혼합된 공기가 들어간다. 이후 피스톤이 올라가며 공기를 압축한다. 이 과정에서 공기에 섞인 가솔린도 압축되는데, 충분히 압축되면 스파크를 튀겨 가솔린에 불을 붙인다. 이 힘으로 피스톤은 다시 내려가고 피스톤이 움직이며 동력을 발생시킨다.

문제는 압축인데, 가솔린이 압축되며 압력을 받기 때문에 충분히 압축되기 전에 스스로 터져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노킹(Knocking) 또는 사전점화(Pre-ignition)이라고 하는데 엔진 퍼포먼스에 악영향을 주며 노킹이 심해지면 엔진 자체가 파손될 수 있다. 이 노킹을 막으려면 특수한 화합물을 첨가해서 정확한 시점에 스파크를 튀겨 주지 않는 이상 연료가 발화하지 않도록 막아줘야 한다. 이 화합물을 옥테인(Octane,   C8H18 )이라고 하며 옥테인이 첨가된 비율을 옥탄가라고 부른다. 옥탄가가 높을수록 노킹현상이 줄어들며 엔진의 성능이 올라간다.(참고로 주유소에 가면 있는 고급휘발유가 바로 고옥탄가 연료인데 고급 스포츠카들은 엔진도 고급이라 연료를 훨씬 강하게 압축하기 때문에 고급휘발유를 넣어줘야 한다. 하지만 일반 연료 먹어도 아무 문제 없는 일반 승용차는 고옥탄가 넣어 봐야 일반 연료랑 차이가 없다)

Bf109는 최소 87옥탄가, 권장 95옥탄가 혹은 그 이상의 연료를 사용해야 운용이 가능했다. 이런 고옥탄가 연료는 정제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연료가 모자란 독일에겐 상당히 부담이 된다. 문제는 열심히 없는 연료를 정제해서 95옥탄가를 만들어 Bf109에 넣고 날리면 150옥탄가 연료를 먹은 머스탱과 싸워야 한다.......노킹 현상이 고고도로 갈수록 심해지는 걸 생각하면 이는 폭격기 요격 임무에 큰 지장을 줄 수 있다.

근데 슈발베의 유모 004 엔진은 무려 65옥탄가의 연료를 넣어줘도 아무 문제없이 작동한다. 즉 복잡한 연료 정제과정을 통해 연료를 버릴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게 65옥탄가를 넣고도 우월한 고공 고속성능을 보일뿐 아니라 Bf109 엔진 하나 만들때 유모004는 3개를 만들 수 있다. 연료 수급이 어려운 독일에게 저옥탄가 연료 사용의 가능은 아주 큰 메리트였을 것이다. 


그리고 운용인력의 미숙함과 기술적 결함들도 변호가 가능한 것이 제트기라는 게 나온지 겨우 5년밖에 안된 완전히 새로운 기계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그 이전에는 제트기를 만들어 본적이 없으니 독일의 제트기 개발은 100% 모험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 만든 엔진이 말끔하게 작동한다면 그건 지구의 기술이 아닐것이다. 그리고 전쟁중에 전투기 정비사는 당연히 전문 기계공이나 항공공학 전공자뿐 아니라 시골 트랙터 수리기사나 자전거 공장 직원 같은 사람들도 징집되어 구성된다. 대학교 기공과 교수도 잘 모를 제트엔진의 구조와 수리법을 그런 사람들이 몇주~몇달 배운다고 숙달될 리가 없다.


본인은 만약 히틀러의 방해로 Me262가 1~2년 늦게 생산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파일럿들과 정비사들이 기체에 충분히 익숙해질 수 있었다면 Me262는 훨씬 성공적인 전투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Bf109/Fw190 체제를 Me262/Fw190 체제로 바꾸는 데 2년이면 아무리 전례없던 항공기라 할지라도 IOC 달성에는 충분할 것이며 43년의 전략폭격을 슈발베가 어느정도 막아줬다면 44년부터 슈페어가 군수산업체계를 좀 더 수월하게 바꿀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독일은 연합군의 전략폭격을 훨씬 잘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Fw190을 이착륙 엄호용으로만 남겨두고 전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를 슈발베로 교체한다는 발상도 잠시 해보긴 했는데 동부전선에서의 저공 난투극에 슈발베는 적합하지 않기에 이는 힘드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서부전선에 슈발베, 동부전선에 Fw190(기왕이면 D형, 나중엔 Ta152)을 배치한다면 독일 공군은 1년 정도는 더 우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미티어나 뱀파이어, P-80 등이 투입되면 그런 우위도 결국에는 뒤집히겠지만, 본인은 독일의 패망을 늦출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했던 병기였다고 확신한다.


결국 슈발베는 단 1년의 시간이 없었기에 수많은 한계에 봉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히틀러의 개입으로 인한 생산 지연이었다. 만약 히틀러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1943년 즈음부터 순조롭게 슈발베가 양산되었다면, 미군은 슈바인푸르트를 훨씬 더 많이 겪었을 것이고, 제3제국은 더 오랜 시간 존속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