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알다시피 며칠 전 화성에 F-5 1기가 추락해 파일럿 심 모 대위(소령으로 추서)께서 순직하시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해당 KF-5E 전투기의 기령은 36년으로 상당한 노후기체였다.


이번 사건을 포함하면 2000년 이후 추락한 공군의 F-5 계열기는 12기에 달한다. 슬프게도 여러 공군 파일럿들께서 F-5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셨다. 


공군은 2030년 즈음까지는 F-5를 계속 운용할 계획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파일럿들이 계속 이 위험한기체를 몰아야 한다.


우리나라 공군은 전술기 숫자로는 세계 6위 정도의 규모이며 그 전투력도 세계적으로 꿀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공군은 F-5라는 현대전에서는 폭탄 배달 외에는 사실상 아무 가치도 없는 기체를 109기가 넘게 운용하고 있다.


공군의 위상과 주변국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퇴역해야 하는 전투기를 공군은 왜 유지하고 있을까.


당연하지만 예산 때문이다. 지금도 공군에게 주어지는 예산은 충분하지 않다. 당장 얼마전 예산심사에서도 항공통제기나 대형수송기 등의 사업예산이 대폭 삭감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투기 수십여기를 신규 도입하는 사업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란 어렵다. 


또 한가지 문제는 KF-21이다. 전투기를 도입해 F-5를 대체하면 어쨌든 공군은 전력을 보강하게 된다. 그러면 육군과 해군이 '어쨌든 너네 전투기 보강했으니 우리도 좀 하자' 는 논리로 예산심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돈과 시간을 들여 만든 KF-21을 얼마 뽑지도 못하는건 공군도 항공업계도 실리적으로나 홍보적으로나 좋지 못하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예산싸움을 욕할수도 없다.


또한가지 이유로 공군은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일정수량 이상의 전술기를 보유해야 하며 이를 위해 F-5를 운용하고 있다. 이마저도 앞서말했듯 2010년대까지는 퇴역했어야 했으나 IMF 이후 공군은 F-15K 60기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신형 전투기를 도입하고 있다.


F-5 도입은 공군의 전력증강에 크게 기여했으며 제공호 조립은 부활호 이후 국내 첫 항공기 생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1986년까지 도입된걸 감안하더라도 2000년대쯤부터는 서서히 퇴역하기 시작해 2010년대 중반쯤에는 공군에서 자취를 감추었어야 했다. 차라리 팬텀기는 스탠드오프 타격능력(AGM-142)과 넉넉한 무장탑재력으로 국산 항공무장의 테스트베드 기체로 남아 운용할 가치라도 있으나 F-5는 이제 냉정히 말해 KGGB를 이용한 정밀타격능력을 제외하면 현대전에서 가치가 없다. 물론 공군도 나름의 사정이 있고 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비단 공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육군과 해병대는 얼마 전에서야 M48A3K 전차를 교체했다. 해군은 사정이 조금 낫지만 알루엣3 대잠헬기를 2019년까지 운용했다. 물론 앞서 말한 예산싸움 때문에 모든 구형장비가 제때 교체되는 것을 바랄수는 없다. 그러나 국군은 가끔 선을 넘어서까지 구형장비를 운용하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거창한 전차나 전투기까지 가지 않아도, 아직까지 일부 부대는 6.25때 쓰던 수통을 쓰고 있으며 아직도 낡고 곰팡이 핀 구막사를 쓰는 부대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전투력에 직접적으로 큰 악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전차 사는 돈, 군함 건조하는 돈에 비하면 얼마 하지 않는 충분히 부담할만한 예산으로도 어렵지 않게 바꿔줄 수 있다.


군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군 수통 교체" 보다는 "흑표 전차 200대 추가배치", "F-35 40기 실전배치" 같은 게 홍보효과가 더 좋고 예산도 더 잘 타올 수 있다. 그리고 저런 것들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잠시 멈춰서 신발끈 한번 조이고 밑창 한번 보는 것도 중요하다. 신발끈을 매지 않고 뛰다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넘어진다. 


최근 군과 방산업계에 좋은 소식들이 여럿 전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군과 방산업계의 길은 육상 경주보다는 국토 대장정에 가깝다. 단기간 내에 목표를 달성하고 이를 홍보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조금 느려도 기본기를 잘 다지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 가는 것이 낫다. 지금까지 군과 방산업계 모두 단기간에 엄청난 레이스를 빠르게 달려 왔다. 이제는 신발끈 한번 조여 줘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