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대전술단(BTG)의 구조적 문제

 이번 러시아 침공군의 기본 편제인 대대전술단은 말 그대로 대대급 신속대응군임. 소규모, 저강도 분쟁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극단적으로 몸집을 줄여서 전투편제에만 몰빵함.

이러다 보니 미국의 여단전투단(BCT)과 달리 보급, 의무 등 지원분야가 매우 부실하여 전투 지속능력이 떨어짐.

시리아나 돈바스 등지의 국지전에서 실제로 효과를 쏠쏠히 봤다지만 지금 같은 대규모 전면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편제임.


2. 통합된 지휘체계 부재

 오로지 단기결전을 위해 제대로 된 지휘체계 구축 없이 수 많은 대대전술단을 전면전에 그대로 들이밀음.

그 많은 부대가 유기적으로 협조하지 못하고 각자 따로 놀면서 목표물로 달려가는데 과연 효율적으로 작전 수행이 가능할까?


3. 전면전 경험 부재

 러시아군이 실전 경험이 많다지만 그래봐야 체첸반군, 조지아군, 시리아 반군 같은 조무래기들 상대하는 저강도 분쟁이 전부임. 우크라전 같은 대규모 전면전은 도무지 경험해 본 일이 없으니 지휘체계 구축이나 보급 등에서 노하우가 없어 난항을 겪음.

이건 비단 러시아군 뿐 아니라 미군을 제외한 모든 군대에 공통되는 사항임. 애초에 냉전 종식 후 미군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전면전을 치뤄본 국가가 사실상 없음.


여담으로, 이번 러시아군 삽질을 계기로 군사력 2, 3위가 뒤집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본인은 조금 다르게 봄.

2위가 저 지경이라는 건 3위 밑으로는 더 막장이라는 소리임

러시아는 대규모 전면전 경험이 없지만 중공은 아예 실전 경험 자체가 전무함.

중공이 대만을 쳐들어간다? 러시아군 삽질은 애교로 보일 정도의 코미디가 펼쳐질지도 모름.


4. 병력 부족

 러시아군은 통념과 달리 생각보다 규모가 작음. 2022년 현재 기준으로 준군사조직인 국가근위대를 포함해서 총 병력이 약 101만. 그 중 육군 병력이 28만명 정도임.

러시아군이 우크라 침공시 동원한 병력이 대략 15만인데, 우크라이나군이 약 20만 정도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총 전력 면에서 열세임.

2003년 미국 랜드(RAND) 연구소는 특정국을 점령하려면 인구 1000명당 약 20명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봤음.

이 경우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면 약 40~50만의 병력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현재 러시아의 역량으로는 턱도 없음. 물론 있는거 없는거 박박 긁어서 꼻아박으면 가능은 하겠지. 하지만 그럼 쿠릴 열도는? 블라디보스토크는 누가 지키고?


5. 낮은 사기

 러시아군은 징/모병 혼합제를 채택하고 있음. 대대전술단 병력 1000명 중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한 직업군인은 300명 정도고 나머지는 징집된 복무기간 1년짜리 총알받이들임.

게다가 러시아는 침공 전 몇 개월에 걸친 야외훈련 끝에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훈련이라는 등으로 속여서 지친 병력을 전선에 밀어넣음.

직업군인 숙련병들이 갈려나가면 그 자리를 징집병들이 채울텐데, 군대 끌려온 것도 서러운 마당에 몇 개월씩 훈련으로 구르다가 갑자기 침략전쟁을 벌이라고 하면 제대로 싸울까? 그러니까 모랄빵 나서 장비 버리고 도망가고, 항복하지.


6. 침공군의 불리함

 이건 러시아군의 문제라기 보다는 공격하는 쪽 자체가 갖는 근본적 약점임.

클라우제비츠의 저서 전쟁론에서 공격은 <적극적 목적을 갖는 약한 전쟁형태> 방어는 <소극적 목적을 갖는 강한 전쟁형태> 로 정의한 바 있음.

동등한 조건일 경우 대개는 방어군이 공격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함. 보급의 원할함, 지리정보, 손실 보충, 하다못해 심리적 안정감 측면에서라도 우위에 있으니깐. 공격측은 방어측의 3배 이상의 전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등의 소리가 괜히 있는게 아님.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소련식 편제하에서 소련식으로 훈련받고 소련식 장비로 무장한 군대임. 사실상 규모만 작은 러시아군이라고 봐도 무방함.

이렇게 대등한 군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데 몇 배의 전력을 쏟아부어 순식간에 제압해도 모자랄 판에 고작 15만의 병력으로 뭘 하겠다는 것인지?


7. 적에 대한 오판

 사실상 이번 러시아군 졸전 원인의 핵심임. 단기전에 대한 집착, 형편없는 군수 보급, 비효율적인 지휘체계....등등 삽질을 벌이는게, 사실은 러시아군이 들이닥치면 친러세력이 봉기해서 정권을 혼란시키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갈 것이라고 오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상당수가 들이맞음.

 이렇게 되면 대대전술단을 전면전에 무의미하게 소모한 것도 납득이 됨. 대대전술단은 현지 민병대나 반군의 협조를 통해 병력을 보충하고 지역 점령을 유지하는 것을 정식 교리로 채택하고 있음. 그렇게 되면 굳이 많은 병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고 당초 러시아의 계획대로 신속대응군을 통한 전격전에만 집중하면 되지.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음. 젤렌스키는 도망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군은 결사항전함.


- 결론

 군사력 순위, GFP 같은 건 그저 대략적인 참고를 위한 객관지표일 뿐임. 맹신하면 안 됨.

누가 공격/방어를 하는지, 명분은 있는지, 병력의 사기는 어떠한지, 전장의 지리적 여건은 어떠한지, 점령지의 민심은 어떠한지, 외부의 지원이 있는지 등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