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유럽 대륙에 상륙한 16대의 항공기 중 8대가 격추당했다. 격추당한 항공기들 중에는 편대장기도 2대 포함되어 있었다. 이 항공기들의 승무원들 중 비상 탈출해 전쟁 포로가 된 인원은 2명 뿐이다. 56명 중에 단 2명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하긴 고도 50피트에서는 비상 탈출하기도 힘들다.


나머지 54명은 다 죽었다. 이번 임무는 그들의 생명을 희생할 가치가 있었는가? 아니면 헛된 생명의 낭비일 뿐이었나? 군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이정도 인명 손실이면 싼 편이었다. 우리가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에 준 타격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다른 부분도 생각해 봐야 했다. 얼마 안 있으면 이 전쟁이 시작된 지 4주년이 된다. 물론 아직까지 이번 세계대전에서는 지난 세계대전에 비해 영국인의 인명 손실이 적었다. 그러나 공군 폭격기 사령부에 한해서는 엄청난 인명 손실을 당했다. 그 인명 손실에는 이번 작전에서 전사한 54명도 포함된다. 매우 탐욕스런 전쟁의 신은 폭격기 사령부 대원들의 생명을 개걸스럽게 탐식했다. 네덜란드의 저지대 상공을 날며 수로와 도랑들을 지나쳐 가던 우리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왜 우리는 25년마다 한 번씩 전쟁을 해야 하는 걸까? 인간은 전쟁을 해야 할까? 전쟁을 멈출 방법은 없을까? 모든 나라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러나 그 누구도 그 해답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 답은 강력한 힘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강력한 전략 폭격기 부대가 전 세계의 주요 수로를 통제할 수 있다면, 아무리 호전적인 국가라도 전쟁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 답은 인간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또 전쟁의 교훈을 잊고, 감세와 생활 수준 향상을 위해 무장 해제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또 다음번 전쟁을 일으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건 인간 스스로의 잘못이다. 다른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래서 세계의 선한 사람들은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와 라디오, 레코드를 통해 1936년부터 1942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현대인들과 다음 세대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전쟁의 위험을 모두의 마음속에 각인시킴으로서 다시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 태어났지, 죽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 자신부터 배워야 한다. 승리의 기회를 열어 준 우리의 동맹국들을 배우고, 그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으로서 그 나라 사람들은 물론 그들의 방식과 관습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영국인들은 스스로를 세계의 표준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 


정치를 배워야 하고 올바른 쪽에 투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전통에 쓸데없이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히 영국이 오늘날과 같은 강대국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우리의 상식과 기억에 달려 있다.


우리는 그런 소망을 품어도 될까?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까? 미래 세대에게 평화로운 세계를 물려줄 방법을 확실히 찾을 수 있을까? 그 모든 답은 이 임무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계가 어찌되든 신경쓰지 않는다."


-영국 공군 617비행대대 초대 대대장이자 채스타이즈 작전(댐 파괴 작전) 지휘관 가이 깁슨 중령

회고록 <댐버스터(원제:Enemy Coast Ahead)>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