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수도경비사령부 창설. 이 부대가 1950년 7월에 수도사단으로 개편하였음. 하지만 휴전 이후에도 서울 지역 위수부대로 되돌아가지 못했음. 이게 지금의 맹호부대 수도기계화보병사단.


7여단이 1949년에 용산에서 수도사단으로 개편. 이게 지금의 칠성부대 7사단.


한편 1955년 전후로 수도권 관할 위수부대로 제6군관구사령부를 두었고, 예하에 2개의 향토사단인 30사단(현 30기보사)과 33사단(현 17사단)을 두었음. 당시 6관구사는 2군(현 2작사) 예하. 6관구사는 1974년에 경인지구위수사령부로 개편되면서 3야전군으로 예속 변경. 이게 지금의 수도군단.


또 한편,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성공하고 1961년에 수도방위사령부라는 친위대를 창설. 이후에 수도경비사령부로 개칭. 청와대와 강북 도심은 수경사가, 서울 변두리를 비롯한 수도권은 30사단, 33사단이 관할.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재와 같은 체계가 잡히기 시작.


1970년대 중반에 훈련단이 창설되어 수도권 지역 향토예비군훈련을 전담하였고, 향토사단이던 33사단의 상비 야전사단으로의 점진적 전환이 시작됨. 30사단도 마찬가지.


1982년 33사단이 17사단으로 이름을 고치고, 예하의 99여단이 51사단으로 승격하면서 경기 서남부권 위수임무를 인수하였음.


1984년은 수방사가 서울지역 위수부대로 본격 변모한 시기인데, 군단급으로 증설되면서 수도경비사령부가 수도방위사령부로 개편.


3군 예하 100훈련단이 52사단으로 승격되면서 서울 남부지역 위수임무를 17사단으로부터 인수받았고, 수경사 예하 60, 71훈련단이 56, 57사단으로 승격되면서 서울 북부지역 위수임무를 30사단으로부터 인수받았음. 그래서 30사단은 이제 완벽히 FEBA 상비사단으로 변모.


1990년대 초중반에 103여단이 17사단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인천권 향토방위 위수임무 및 향토예비군훈련을 떠안으면서 17사단의 상비사단 전환이 완료되어 파라다이스의 전설은 종료.


1987년 3군 예하 63훈련단이 55사단으로 승격하면서 경기 동남부 위수임무를 맡게 됨.



1991년 30사단이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전환되면서 과거 향토사단 시절의 흔적에서 완전 바이바이.


2007년에 103여단이 507여단이라는 형태로 17사단이라는 친정에 재복귀.


2011년에 57사단이 56사단에 흡수 통폐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