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위의 위엄은 진짜 엄청나다.

정비부대에서 장비보급이나 수리부속 만진 애들은 알 거다.

우리 군에서 일부 부사관들과 준위가 없으면 진짜 큰일난다.


델리스

장비정비정보체계(ㅈㅂx3체계)


나 입대하기 1년 전인가?

그때 한창 국방부에서 델리스를 상용화시키는 중이었고

내가 입대하고 나서 상용화가 끝났지.

이후엔 사단 정보처에서 주는 모듈로 업데이트만 하는 중이었고

그 델리스 프로그램이 굉장히 쓰기 불편하고 어렵고 번거롭고 한데,

그 프로그램의 핵심 개발을 우리 부대 전 보급관님이 맡았다.

나이가 많아서 나 일병 때 전역했는데, 육십대가 꺾여가는 양반이 그걸 맡았다.


준위들 특유의 여유로움 있잖냐.

우리 부대 전 보급관님은

늘 강아지풀을 입에 물고 다니셨다.

머리도 길어서 앞 머리가 빰까지 내려왔다.

그걸 가르마로 넘겼는데, 스타일은 당연히 귀두컷.

그리고 아침 점호 때 하는 조국기도문 암송

그런 거 안 하고 시조를 외웠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직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 언제 갈려 하느뇨.


이거 완창하는 걸 군대에서 처음 들었다.


짬이 참모장님이랑 동기라서

사단장님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못 건드렸다.

게다가 일까지 잘하니까 진짜 파워가 존나 쎘다.

연대장님보다 선임이라

연대장 1호차 레토나가 지나가는데 굳이 멈춰서

전 보급관님한테 먼저 목례하고(경례는 안 하지) 안부를 물었다.

그 쌍놈의 주임원사보다도 짬이 훨씬 높았다.

그래서 막사 지통실에서 줄담배 피우면

ATCIS 앞에 재떨이 놓고 줄담배 ㄷㄷ

행보관님이 어쩌다 뒤처리 하고

처부 사무실에서도 당연 줄담배

생활관에서도 가끔 담배 피우고


또 동네 준위들까지 한 7~8명까지 다 불러다가

경로당이 된 처부 사무실에서 가끔 티타임을 하는데

오전 내내 그러다가 밥 먹는 시간에 겨우 해산했다.

딸내미가 손주를 가졌다느니, 아들 놈이 임관 했다느니 등

이 양반들 다 참모장님이랑 동기였고

전역을 거의 앞두고 있었다.


근데 이 양반이 일을 너무 잘해서

이웃 부대들에서 카운티 타고 우르르 와서는

일 배워갔다. 그 정비병 집체 교육하는 거 있잖냐.

강의하는데도 담배는 입에서 떼질 않았지.

결국 전역 날이 되었고

전 보급관님 전역식까지 열렸는데

예포까지 쐈다.


이후 그 다음 보급관님은 이 양반 밑에서 군생활하던 분인데

이 보급관님이 하사였다. 그때 나이가 26인가 그랬음.

근데 이 보급관님도 일을 너무 잘해서

옆 부대에서 상사, 심지어 원사들이 일 배우러 왔었고

행보관이 가혹행위로 불명예 전역 당해서 공석난 적이 있는데,

하사인 상태로 한 3개월 동안 행보관을 맡았다.

몇 개월 후에 중사를 다셨는데 준위 시험 준비하셨다.

그때 이후로 한 8~9년 지났으니 지금쯤 뭐라도 되셨겠지.


이후 전 보급관이 전역하고 새로운 준위께서 부임하셨다.

우리 대대는 편제 상, 준사관이 반드시 한 명 있었야 했거든.

이 양반은 주특기가 총포라서 총포반장님으로 오셨지.

아니나다를까.

이 양반도 범상치 않았다.

다 죽어가던 총포소대를 살렸고,

훈련 때 부대이동하는데 일을 너무나도 잘했다.

심지어 이동한 주둔지에서 부대개편까지 했는데

총포소대 얘들 훈련 진짜 잘 뛰는 거였다.

한 번은 이 양반이 당직사관으로 들어왔는데

저녁 점호 때 "우리 딸이 벌창이라~ 우리 딸이 남자들한테 잘 벌려~"

이런 말을 하는 거다.. 그것도 딸이 아빠한테 그런 말을 했다면서 시발


하루는 내가 병장 때 이등병 부사수랑 불침번 근무를 서는데

대대장실에 있는 쌀과자가 너무 먹고 싶은 거다.

그래서 부사수를 대대장실 앞에 세워놓고

나 혼자 들어가서 LED로 대대장실 다과함을 뒤져다가

쌀과자를 갖고 나오는데 문 앞에서 당직서던 그 양반한테 걸렀다.

나는 그냥 씨발 개좆됐다 하고 모든 걸 포기했지.

이 양반이 그때 좀 화가 나긴 했었나봐.


나는 당연히 근무 서다가 개털렸고,

부사수였던 이등병은 아무 잘못없고, 내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니

얘는 그냥 보고에서 아예 빼달라고 사정했지.

그 양반도 그럴 거라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아침에 대대장 회의 때 보고할 거라 그러대

그래서 처벌을 달게 받겠노라고 하면서 기다렸지.

근데 아무일도 없는 거야.

나중에 나를 조용히 불러서는

원래 병장 때는 가끔 그렇게 미친 짓하는 거라고

그래서 이번엔 그냥 넘어가는데 다음에 그러면 얄짤없다 그러대.


준위의 위엄은 나뿐 아니라 많은 애들이 느낄 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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