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니 왠 비행 접시 하나가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미군 라운델과 프로펠러를 단 엄연한 항공기다. 아무리 봐도 합성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만큼 주익이라 할 만한 부분도 없이 좌우로 매우 짜리 몽땅해 보이는 이 비행기. 더 놀라운 건, 이건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엄연히 현실속, 그것도 1930년대 부터 존재했던 비행기다. 우스꽝스런 외모에 그렇지 못한 사연, 외모 만큼이나 이름도 특이한 오늘의 주인공, XF5U 플라잉 팬케잌이다.

모든 비행기는 양력을 받아서 떠오른다. 이 양력을 받기 위해 항공기의 동체와 주익은 윗면이 불룩 튀어나와 있고 아랫면은 비교적 납작하다. 항공기의 덩치가 커지고 무거워지면서 그 만큼 받아야 하는 양력도 커지고 큰 양력을 위해 이륙 속도도 빨라야 하니 가속에 걸리는 시간 만큼 이륙 거리도 증가하는 탓에 B-747/777 같은 대형 광동체 여객기의 경우 이착륙이 가능한 공항이 제한되기도 할 정도다.

이로 인해 이전 부터 항공기의 이착륙 거리를 줄이려는 여러가지 발상은 존재해왔는데 일단은 강력한 엔진이나 길고 넓은 주익을 장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익의 경우 앞서 말한 활주로의 너비나 기골의 강도, 항력 탓에 늘릴 수 있는데 한계가 있었고, 주익을 포함한 기골의 강도를 늘리자니, 무게도 더 무거워지며 더 강한 엔진이 필요하고 더 크기가 커져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단거리 이착륙 (STOL) 항공기 개발을 진행하던 미 항공 사문 위원회 NACA (NASA의 전신)와 보우트사도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보우트사는 NACA가 진행하던 STOL기 계획을 1939년 부터 이어받아 주익과 동체를 구분할 수 없는 독특한 팬케잌 형상의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었고, 3년이 지난 1942년에 개념 실증기로 사용할 V-173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V-173의 테스트 결과는 글자 그대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특유의 형상 덕택에 주익 뿐만 아니라 동체 전체로 양력을 받을 수 있어서 저속에서도 쉽게 이륙할 수 있는 건 물론, 맞바람만 있으면 활주 거리 자체가 거의 필요하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동체에서 상당한 수준의 양력을 얻는 만큼 날개도 짧아 항력도 적고 구조적으로도 튼튼하고 조종성도 훌륭했다. 찰스 린드버그에 따르면 저속 비행 성능도 뛰어났고 시험 비행 당시 비상 착륙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항공기가 뒤집혔음에도 테스트 파일럿과 기체에 별 다른 문제도 없었을 정도로 우수한 항공기 였다고 한다.

그렇게 뛰어난 성능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미 해군이 이 혁신적인 항공기를 차세대 함재기로 눈 여겨 보며 이 항공기는 XF5U라는 시험명 까지 붙어가며 본격적으로 개발에 돌입하기에 이른다. 고속 비행 성능을 위해 강력한 엔진과 대직경 프로펠러를 장착한 이 항공기는 최고 속력이 700~800km/h에 이를 것으로 내다 보기도 했는데, 그 좋다는 P-51 머스탱, F4U 콜세어, Ta152, 호커 템페스트와 비슷하거나 훨씬 빠른 수준이었고 프롭기 주제에 제트기인 Me262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프롭 함재 전투기 중에선 두려울 게 없는 최강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제트기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성능으로 태평양에서 최강자가 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세상은 수퍼 루키를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만은 않았다. 분명히 뛰어난 성능을 가진 항공기 였지만, 이미 해군엔 태평양의 해적왕 F4U 콜세어가 있었다. 허접스러운 마리아나의 칠면조 A6M 제로센 따위를 몰고 다니던 일본 해군을 상대로 일방적인 학살극을 찍는 콜세어라는 최강의 프롭기가 이미 있고 만족스러움에도 또 항공기 라인업을 추가하는 것은 여러 모로 어려운 선택지였다. 실제로 기존의 항공기를 제작하고 개량할 엔지니어와 생산 설비 및 숙련공들이 죄다 콜세어를 생산하는데 투입 되어 버린 바람에 신형 플라잉 팬케잌을 생산할 여력은 없었다.

그렇게 2차 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 되었다. 이제 세상은 독일의 Me262가 보여 준 제트기 라는 신세계로 넘어가게 되었고, 프롭기는 아무리 잘나도 현실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미 해군도 예외는 아니라 괴상하게 생긴 신형 프롭기 보다는 더 앞날이 창창해 보이는 F9F 팬서 같은 제트 전투기에 온 관심을 쏟으며 1947년에 계획 자체가 폐기되며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그저 시대를 잘못 만나 사라져 버린 명품 무기로만 보이겠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이 항공기는 조종간을 아무리 세게 당겨도 실속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고 조종이 쉬웠지만, 정작 기수를 높히 들어올린 고받음각 기동시엔 쉽게 실속에 빠지는 취약점이 존재했다. 게다가 뛰어난 단거리 이착륙 성능과는 별개로 그 이착륙이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수준이었다. 안그래도 이미 콜세어도 높은 엔진 출력 때문에 착함/착륙 난이도가 극악이라고 악명이 높은데, 고받음각 기동에서 까지 취약점을 보이는 플라잉 팬케잌이라면 이미 예선 탈락 수준이었다.

거기에 비행 성능을 높히기 위해 채용한 대형 프로펠러도 문제였다. 제작과 가공이 어려워 생산성이 떨어졌고, 지나치게 큰 크기가 안 그래도 무장을 달 공간이 없는 짜리몽땅한 날개와 매우 나쁜 시너지를 일으켜서 장착할 무장과 간섭이 일어나는 탓에 고출력 엔진의 장점을 살려서 무장을 대량으로 달고 출격할 수가 없었다. 기존의 콜세어와 F6F 헬캣등 고출력 프롭기의 장점중 하나가 고출력 엔진 덕에 대량의 무장을 장착하고 출격할 수 있는 공격기로도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건 그런 장점도 없었다.

그렇게, 승전의 기쁨과 시대의 변혁으로 인해 한대 제작된 XF5U 테스트기는 활주 시험 1번을 끝으로 영원히 떠보지도 못하고 고철로 스크랩 되어 버리고, 저고도 저속 테스트기 V-173 만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기대와 달리 매우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지녀도 그 전에 좋은 시대와 물주를 만나지 못한다면, 무기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보여 준 사례는 많고 많지만, XF5U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묻히는 바람에 그 비극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