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냉전 종식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무기들 중 부동의 1위로 입방아에 곧잘 오르내리는 무기는 단연 G11이다. 세상 그 어느 총기에서도 볼 수 없는 각이 진 독특한 외형에, 무탄피탄 같은 혁신적인 첨단 기술, 분당 2000발 속도로 초고속 점사를 때리기 위한 외계인이 설계한 듯한 뻐꾸기 시계 같은 복잡한 구조 등 "그들"이 매력을 느낄 만한 요소들이 넘친다는 점이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비운의 총"이라는 인식을 만든 1등 공신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G11 보다 더욱 이런 별칭이 잘 어울리는 총이 하나 있다. 총기계의 메르세데스 벤츠라 불리는 명품 총기 제작 업체 H&K에서 태어나 시대 흐름을 나름대로 잘 따랐지만, 끝내 냉전 종식과 함께 자취를 감춰 버린 진짜 비운의 명총. 바로 오늘의 주인공, G41 이다.

이 총의 원류를 알기 위해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50년대 서독은 벨기에의 면허 생산 거절로 인해 추가 조달이 불가능해진 FN사의 FAL 대신 신형 전투 소총으로 SIG의 SG510, 아말라이트의 AR-10과의 경합 끝에 CETME의 모델 B를 G3라는 이름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G3를 좋게 평가했던 서독 정부는 스페인 CETME에서 이 신형 화기에 대한 권리를 모조리 사들여 H&K와 라인메탈 모두에게 이를 생산할 것을 지시했을 정도(H&K는 신생 업체라 역량이 부족했다.) 였는데, 이 CETME 모델 B의 원본이 나치 독일이 패망하기 직전 프로토타입만 제작한 롤러 지연식 블로우 백 방식의 StG45였고 실제로 주요 개발진으로 참가한 인원들 중 StG45를 개발한 이들도 있는 걸 생각하면 비무장화로 인해 잠시 스페인에 맡겨 놓았던 기술을 되찾아온 셈이었다.

그렇게 G3가 높은 신뢰성과 명중율, 적은 반동으로 경쟁작 FAL과 함께 세계 전투 소총 시장을 양분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선 소화기 탄약 패러다임 변화의 신호탄이 쏘아올려졌다.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두텁던 M-14 소총과 고위력 탄약인 7.62mm NATO 탄의 신뢰는 산산히 깨지고 말았다. 일단 총 부터가 나무와 쇠로 만들어져 너무나도 무겁고 길었던 데다 관리도 힘들었다. 탄약 마저도 고위력을 지향한 탓에 반동도 너무 강하고 휴행 탄수가 매우 부족해서 훈련도도 낮은 당시의 징집 병사들은 이 총의 반동을 제대로 다루기도 버거웠다. 반면 월맹군과 베트콩이 사용했던 AKM과 56식 자동보창의 경우 M-14 보다 짧고 가벼운 데다 더 작은 크기와 반동을 가진 7.62 X 39mm 단소탄을 사용해서 더 많은 휴행탄수를 가진 덕에 수풀이 울창하고 때때로 안개 까지 껴서 한치 앞도 보기 힘든 정글 속에서 연사로 빠르게 탄을 퍼부은 뒤 도주하는 식으로 게릴라 전술을 사용해 미군에 효과적으로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결국 고위력 탄과 긴 소총의 단점에 질려버린 미군은 이제까지 쥐 잡는 총으로 불리며 멸시 당해 온 AR-15와 5.56 X 45mm 소구경 고속탄을 도입하며 보병 전투에서 매우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고 AR-15는 그 유명한 M-16이라는 이름으로 명실상부한 미군의 제식 소총으로 자리잡게 된다. 고위력탄과 전투소총의 시대에서 소구경 고속탄과 돌격 소총의 시대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미국 외 다른 우방국들 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FN사도 CAL, FNC 같은 5.56mm 돌격 소총을 양산했고, H&K도 이런 추세에 맞춰 5.56mm 신형탄에 맞는 G3 소총이라 할 수 있는 HK-33/53을 개발해 양산했다. 그렇게 독일군 역시 이런 추세에 따라 높은 휴행 탄수를 갖는 소구경 고속탄을 사용하는 돌격 소총을 채용할 계획을 세우게 되고, 독일의 우주 마법총이라 불렸던 우리가 아는 그 무탄피 소총 G11과 HK-33을 기반으로 한 G41이 여기서 나오게 된다.

G41은 본인들의 생각에도 너무나 비싸고 이질적이라 생산과 배치가 느릴 G11을 보조하기 위해 자국의 후방에 배치될 병력과 기존 G3 운용 국가들을 위한 5.56mm 돌격 소총 이었다. H&K 총기 답게 독자 규격의 탄창과 급탄 기구를 사용했던 기존 HK-33과는 달리 STANAG 탄창과 그에 맞춘 급탄 기구를 사용하는 등 NATO 표준에 최대한 맞추어서 설계되었다. 거기에 총기계의 메르세데스 벤츠 답게 일반적인 총기와는 달리 GLOCK과 마찬가지로 마모에 더 강하고 명중율을 높힐 수 있는 폴리고널 강선의 일종인 6각형 강선이 적용되었고 G3 기반 고성능 저격총인 PSG-1의 내부 요소들도 더해져 2만발에 달하는 설계 수명을 자랑하게 된다.

이렇게 G41은 우수한 성능에 G3와 유사해서 G3 운용 인원들에게 적응이 빠르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워 세계 시장에서 나름 선방할 수도 있는 위치를 선점하게 되었고, 제대로 개발 되어서 독일을 필두로 터키나 포르투갈 같은 기존 G3가 제식이던 나라들에도 팔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확실한 고객을 찾은 G41의 미래를 밝을 것으로 보였지만,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사건 하나가 이 총의 운명을 180도 바꿔버리고 말았다.

1989년 독일 재통일을 필두로 1991년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이 종식되고 너도나도 탈냉전에 가세하며 대규모 군축이 시작되면서 예상치 못한 몰락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동독 지역을 재건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해지자 예산의 소모가 큰 군대 부터 예산을 줄이게 되며 G11을 비롯한 신형 소총 도입 사업 자체가 없어지게 되면서 G41은 순식간에 빈털터리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96년에 노후되도 너무 노후된 G3를 제식 소총에서 밀어내기 위한 사업이 진행되지만 G41은 이미 독일군의 눈 밖에 난지 오래였고 AR-18식 숏 스트록 가스 피스톤을 사용하는 G36(사실 80년대 부터 개발 중이었다.)이 대신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럼 도대체 왜 독일은 G41을 거부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G41의 가격이었다. 총기계의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별명에 걸맞게 H&K의 총기는 훌륭한 내구도와 품질을 자랑했지만, 그 만큼 어마어마한 가격으로도 악명이 높고 이건 G41이라고 예외가 아니라서 80년대 가격으로 $1700, 환율의 변화를 고려하면 $4000에 육박할 만큼 높은 수준인데, 이 정도면 그 비싸다는 SG550, 89식 같은 소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G3 계열에 사용된 롤러 로킹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점도 한 몫 했다. 블로우백 방식은 근본적으로 약실 압력이 낮은 권총탄 기관단총과 궁합이 잘 맞는 작동 방식이지 높은 탄속을 위해 약실 압력이 높은 탄약을 사용하면 이론상 총기 작동 사이클의 균형이 무너지기 쉬워 탄 걸림이 가스 작동식에 비해 빈번히 발생하게 되는 단점이 있는데다 높다는 내구성도 실상 HK-33과 큰 차이는 없는 탓에 소수의 특수부대나 사 갔을 뿐, 제식 소총으로 운용한 국가는 단 한곳도 없었다.

결국 무기로서 갖춰야 할 가성비를 도외시한 결과로 세상에 외면받은 G41은 그렇게 96년에 생산도 중지되고 생산 권리 마저도 SPAS 산탄총으로 유명한 루이지 프랑키사로 팔려 나가며 그렇게 세상에서 잊혀진 총기가 되고 말았다. 2015년 G36의 명중율 문제가 터졌을 당시 G41을 도입했어야 하는 말이 일각에서 나오곤 했지만, 그냥 그저 그런 소수 의견으로 그치고 말았고 G36의 자리는 빈 라덴 킬러로도 알려진 HK-416이 차지하게 되었다. 만약 서독군과 H&K가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G11을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G41을 자국군 특수부대용 하이엔드급 소총이나 더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수출용 제식소총으로 개발했더라면, G41은 지금과는 다른 운명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