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후퇴 후 다시 북진하면서 세운 유엔군의 목표가 개성과 미수복 경기도까지는 먹는 거였음. 1951년 3월 서울을 다시 수복한 후 리지웨이 장군과 맥아더는 서부전선을 임진강 넘어 예성강까지 올라가는 것을 원래 목표로 삼았음. 

-> 구체적으로 예성강 하구에서 시작해 예성강을 따라 올라가서 금천읍을 지나고 우측으로 휘어 토산 시변리, 철원, 김화를 거친 후 남동쪽으로 화천저수지까지 내려오고 거기서 동쪽으로 양구~원통~한계령~양양까지 그대로 가는 안이 가장 원안이었음


근데 중공군 춘계 공세가 여러차례 닥치고 그 이후 다시 진출하려고 했는데 이미 예성강 건너편이랑 장단 구화리, 토산 시변리에 중공군 큰 사단들이 자리잡고 정비하고 있어서 임진강 이북 공세는 어렵다고 판단.


대신 먼저 중부전선에서 철의 삼각지대로 먼저 진출하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하고 북한강 동쪽의 동부전선을 원래보다 더 집중해서 펀치볼-향로봉-남강-월비산까지 올림


지금 결과가 중공군 춘계 공세 전 유엔군 수뇌부가 세운 원안보다 개성과 미수복 경기도 및 금천권 일부 못 먹은 대신 화천저수지~양구~원통~한계령~양양 이북의 방대한 동부지역을 먹은 거고 서부전선에서 못 먹은 면적과 대신 동부전선에서 우리가 더 먹은 면적은 큰 차이 없이 비슷


아래는 중공군 춘계 공세 전 유엔군이 세운 원 목표안으로 갔을 때 최종 예상 전선을 나타낸 지도


위 지도에 나온 유엔군의 원안대로 최종 전선이 형성되었다면 동부전선이 원통, 양양 라인에서 끝났기 때문에 관광자원인 설악산과 미시령, 속초, 화진포, 송지호 등을 포기해야 하고 양양읍으로 전선이 지나감. 그리고 동해에서 NLL이 지금보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영해 및 EEZ가 줄어드는 게 단점임. 특히 동부전선에서 군사적 요충지인 펀치볼을 버린다는 게 결코 가볍게 여길 수는 없음


대신 서부전선에서 임진강 이북의 개성과 미수복 경기도를 확보하고 평산 한포리 및 토산 시변리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한강 이북과 임진강 하류에 그치던 전선을 예성강 하류로 올려 서울이 전선과 최단거리가 현재 38km에서 62km로 훨씬 늘어나 방어의 안전성이 더 튼튼해진다는 게 엄청난 메리트임. 또한 38선 분단 시절과 달리 개성 북쪽의 임진북예성남정맥을 모두 확보했기 때문에 개성의 안전한 방어가 가능해짐 (물론 전선에 여전히 가까워서 중소도시 이상 발전은 못하겠지만). 또 거꾸로 북한은 사실상 멸악산맥이 전선에 가까워져 전방 지역이 되고 지금보다 평양의 방어가 더 힘들어져 불리해짐. 그리고 고려의 수도이자 인구 많은 도시인 개성을 상실해 제대로 된 고도가 평양 하나밖에 안 남으니


이승만 대통령도 동부전선 좀 내주더라도 (연천~화천의 중부전선은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고 했음) 개성, 개풍, 장단 지역은 어떻게든 가져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던 걸 보면 동부전선 내려와서 생기는 불리함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서부전선에서 서울이 전선과 더 멀어지고 서울 북서쪽 방어선이 훨씬 튼튼해지고 개성을 얻었다는 메리트가 더 크기 때문에 지금보다 이득으로 보임. 


위 원안 대비 현재 휴전선으로 인해 서부전선에서 못 먹은 영토 면적


위 원안 대비 현재 휴전선으로 인해 동부전선에서 더 위로 올라가 먹은 영토 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