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것은 기술발전에서부터 시작됐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개발된 신무기 어뢰는 한두발만으로도 적을 용궁으로 보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였다
다만 단점도 만만치 않았는데 느린 속도와 유도기술의 미개발로 명중을 위해서는 적함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성숙하지 못한 사격통제는 포술로 적함을 침몰시키기는 커녕 명중탄조차 극한의 확률에 기대해야 하는 수준이었기에 그정도 리스크는 감수할만 했다
이런 강력함에 많은 해군들은 어뢰를 주무기로 써먹을 수 없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바로 어뢰정이다
소형 선체에 강력한 엔진, 주 무장은 어뢰발사관에 나머지는 기껏해야 방호용 기관총이나 기관포에 불과한 고속정이었다
어뢰정은 높은 기동성을 이용해 적 주력함의 사격을 회피하고 어뢰를 옆구리에 꽂아넣는 역할을 받았다
저렴한 어뢰정 한척이 값비싼 전함을 상대할 수 있다는 점으로 어뢰정은 비대칭 전력으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기술적인 면을 살펴봤으니 정치적인 면을 살펴보자
19세기 말, 프랑스 해군은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전력에선 영국에게 밀리고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선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저찌 새로운 함정을 진수시켜도 유달리 기술진보가 빨랐던 시대에선 수년도 지나지 않아 구식 함정으로 전락하기 실수였다
결국 프랑스는 해군 예산을 대폭 삭감하였으며 국민들의 지지도 또한 떨어졌다

이때 등장한 것이 테오필 오브 제독이였다
사실 청년학파 자체는 오브 제독이 만든것이 아니었으나 오브 제독은 청년학파의 특징들을 가다듬어 완성시킨 사람이었다
오브 제독은《해군 전쟁과 프랑스의 군항》이란 책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는 어뢰가 적 함대를 완전히 격멸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고속으로 기동 가능한 아 해역을 방어할 어뢰정과 경비정, 그리고 식민지를 돌아다닐 순양함만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이 주장은 전통적인 해군의 교리와는 차이가 있었고 오브 제독과 그의 주장에 찬동하는 사람들은 청년학파라 불리게 된다
이들의 주장은 정치적인 비유로까지 번져 대형함을 돈만 퍼먹는 왕정복고파, 소형정을 변화에 적응하고 개혁적인 공화파로 묘사하는 등의 모습까지 있었다

1884년 발발한 청불전쟁은 이런 움직임에 기름을 붓게 된다
청불전쟁서 프랑스 해군은 어뢰정을 이용해 청 해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과를 올렸으며 이러한 활약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기 충분했다
결국 1886년 오브 제독이 해군 장관으로 취임하며 프랑스 해군은 청년학파의 구상대로 재편성되게 된다
또한 이들은 통상파괴를 매우 신뢰하여 잠수함에도 흥미를 가졌다
이 결과 프랑스는 200여척의 어뢰정과 잠수함대, 1000~2000톤급 순양함을 주력으로 보유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금방 한계를 맞이한다
기술의 발전은 어뢰에만 웃어주지 않았다
속사포의 발명은 대형함이 접근하는 소형함에 대항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전함의 주포는 기동력으로 피하고 기관총은 고속정의 얇은 장갑만으로도 방호가 가능했지만 본격적인 포는 방호가 불가했다

결정적으로 새로운 체계의 등장은 청년학파의 주장을 아예 사장시켰다
20세기와 더불어 등장한 구축함은 어뢰정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였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급에 속사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닌 구축함은 가까이 다가오는 어뢰정들을 갈아마셨으며 나중에는 어뢰발사기까지 장착하고서 어뢰정들이 수행할 일까지 빼앗아갔다
때문에 구축함이 등장한 이후부터 어뢰정은 해전의 주역에서 쫒겨나 기껏해야 연안과 내륙수계를 초계하는 보조적인 역할에만 머물게 된다
때문에 청년학파의 주장으로 만든 200여척의 어뢰정이 주력인 프랑스 해군은 모든 전력이 구축함의 등장과 함께 증발해버렸다

어뢰정 자체의 문제도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어뢰정의 작은 몸집으로는 거친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없었다
거친 파도는 어뢰정을 뒤집어버리기에 충분하고 작은 배로는 오랫동안 출항하는것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프랑스 해군은 그나마 바다가 잔잔하고 보급을 자주 받을 수 있는 항구 주변 바다를 벗어날 수 없었다
애시당초 전 세계를 무대로 영향력을 펼쳐야 할 열강 국가의 해군 정책으로 알맞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 해군이 이를 깨닫고서 다시 대형함 위주의 건함계획으로 돌아가기까진 20년밖에 걸리지 않았으나 증강에 오랜 기간이 걸리는 해군의 특정상 프랑스 해군은 그 체급에 맞지 않는 약체화된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하게 된다

비록 그 시절의 청년학파는 지금와서는 사라졌지만 현대에도 그와 비슷한 사례들은 무수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일라트 쇼크로 발생한 미사일 고속정의 유행이다
3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해군은 코마급 미사일 고속정에서 발사한 스틱스로 이스라엘의 에일라트함을 격침시켰다
배수량 30배 차이를 신무기의 등장으로 극복해 버리며 다시금 대형함 무용론과 함께 싼값에 대함미사일을 마구 뿌릴 수 있는 미사일 고속정이 대세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전을 거치며 헬기가 고속정을 말 그대로 사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작은 체급으로 인해 대공능력이 전무한 미사일 고속정은 몰락하게 된다
이후 현대 해군은 항상 작전중인 함정에 헬기를 탑재하게 되었고 방공 능력이 출중한 구축함이 다시 해전의 주력으로 돌아왔으며 대함미사일은 어뢰처럼 또 구축함이 가져갔다

이렇듯 신기술과 체계의 등장은 순식간에 힘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대량으로 도입해버리면 카운터의 등장과 함께 아예 몰락해버리기도 한다
때문에 군은 항상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새로운 것은 신중한 검토와 숙고를 거친 끝에 도입을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싸고 편리하게 한방으로 일발역전 가능한 기적의 무기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걸 꼭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