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기엔 짜리몽땅한 몸체에 조그만 프로펠러 까지, 딱 갓난 아기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 비행기 처럼 생겼다. 그런데 막상 나치 독일 엠블럼이 붙은 거로 봐선 분명한 군용기 같기도 하다. 뒤쪽을 보니 뭔가 노즐 같은 게 있어서 제트기 같은데 정작 흡기구는 또 보이지 않는다. 군용기 답지 않게 귀여운 생김새에 걸맞지 않는 당시로썬 무시무시한 성능을 보여줬지만 한편으론 허당 같기도 한, 이름 대로 로켓 엔진으로 혜성 처럼 날아왔다가 연기 처럼 사라져 버린 오늘의 주인공, 바로 Me163 코메트다.

이 기묘한 전투기의 이야기는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 된 1919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차 대전에서 승리에 자신만만했었던 독일 제국은 슐리펜 계획이 틀어진 이후 서부전선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 지옥 같은 참호전을 펼친 끝에 자국에서 일어난 반전 시위로 시작 된 11월 혁명으로 인해 무너졌지만 협상국은 독일을 절대로 이 상태 그대로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1차 대전의 승전국인 협상국과 맺은 강화 조약인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공군의 보유는 물론 전투기, 폭격기, 장거리 포병 전력의 개발 및 보유 까지 금지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서 좌절하며 순순히 포기 한다면 우리의 독일이 아니었다. 이런 제한 조치에는 일반적인 장비들만 포함 되어 있었고, 이론 정립 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액체 연료 로켓 분야는 제약 자체가 없다 시피 했다. 물론 베르사유 조약도 눈먼 장님은 아니라 동력 항공기 자체를 금지하긴 했지만, 더러운 독일 놈들은 이걸 그냥 "로켓 추진 글라이더"라는 신박한 유체 이탈 화법으로 우회한다.

사실 독일 공군이 처음 부터 이러한 로켓 추진 항공기를 개발하려 한 건 아니었다. 여기엔 장거리 포병 전력으로써의 로켓 활용성에 주목하던 독일 육군 출신의 신임 공군 간부들의 입김이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사실 독일 공군은 본래 이 로켓 엔진을 이륙 보조 장치로만 사용할 생각만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독일이 생각한 최적의 전투기 운용 교리에 걸맞는 로켓 엔진의 높은 상승력을 눈여겨 본 일부 기술 관료들 덕택에 발터사의 HWK-109-509 가스 발생기 사이클 로켓 엔진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이고, 코메트의 개발 역시 이러한 공군의 초급 간부들의 생각으로 현실화 되었던 것이다.


이 신형 로켓 모터를 시험해 볼 일종의 시험기로써 1940년 독일 글라이더 연구소의 알렉산데어 리피슈 박사가 개발한 DFS-194 로켓 추진형 글라이더를 통해 540km/h를 달성하는데 성공하면서 개발에도 청신호가 켜지게 되었다. 이 발터의 로켓 엔진을 리피슈 박사의 실험기의 설계를 더 다듬은 기체에 탑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Me163 코메트였다. 1941년 6월 첫 비행에 성공했고 동년 7월에는 885km/h, 동년 10월 진행된 시제 4호기는 공중 발진으로 진행한 시험 비행에서 무려 1004km/h에 달하는 당시로썬 엄청난 속도의 시험 비행을 끝마치며 개발에 성공한 코메트는 44년에는 양산에 접어들게 되었다.

코메트의 장점 중에는 그 빠르다는 Me262도 못 따라오는 960km/h에 이르는 속도도 있었지만 그 중 최대의 장점은 다름 아닌 80m/s에 달하는 당대 최강의 상승 속도였다. 스펙 상으로 2차 세계 대전 최강의 전투기였다는 Me262도 20m/s에 불과했고 그보다도 더 느린 프롭기는 더 느려서 나치 독일 공군의 주력 전투기중 하나였던 창공의 백기사 Bf109는 17.7m/s에 불과했던 걸 생각하면 거의 빛의 속도가 따로 없었다. 이 빠른 상승 속도 덕택에 적기보다 높은 곳에서 죽음의 6시 방향을 잡고 강하하면서 기총으로 긁고 이탈하며 도주하거나 하강 후 재공격을 가하는 붐 앤 줌 전술이 주력이었던 나치 독일 공군의 전술과는 안성맞춤이었다. 이는 액체 연료와 산화제를 사용해 공기 밀도가 낮은 고고도 에서도 안정적으로 연소할 수 있는 액체 연료 로켓 엔진의 특성 덕택이었다.

그렇게 첫 실전이었던 44년 8월 5일, 서부 전선에서 3대의 코메트가 미군의 P-51D 머스탱 3대를 격추하고 이후 24일에는 B-17 폭격기 3대 까지 격파하면서 나름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통상적인 독일 공군의 전투기들이 올라오지 못하는 3만 피트 고고도에서 안심한 채 날고 있던 미군 파일럿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속도와 상승력으로 허를 찌르는 전술을 보여준 코메트로 인해 미군 파일럿들 사이에선 "3만피트 상공의 독일 놈들 전투기를 조심하라"는 말 까지 돌아다닐 정도로 경계 대상이었다. 거기에 고고도에서 안정적으로 피스톤 엔진을 작동 시킬 수 있는 하이 옥탄 휘발유를 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던 나치 독일에겐 고급 연료 없이 엄청난 상승 속도를 가진 전투기가 나름 매력적이고 쓸모 있는 선택지로 보였었을 것이다. 나치 독일 공군에겐 이제 이 기적의 신무기로 가공할 위력을 선사하며 무적이나 다를 바 없이 여겨졌던 미군의 중폭격기 부대를 박살내는 창창한 앞날 만이 남아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전투기가 더 위력을 발휘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엄청난 속도와 상승력을 대가로 코메트는 항속 거리를 포함해 거의 모든 것을 내다 버린 전투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우선, 연료 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이 놈은 C 연료와 T 연료, 이렇게 2가지의 연료가 필요한데 그 원료를 보면 이게 정녕 사람 타라고 만든 물건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우선 주 연료인 C 연료 부터 살펴 보면, 무려 히드라진, 메탄올과 물의 혼합물이었고 산화제인 T 연료는 아예 한술 더 떠 고농도 과산화 수소였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맹독으로 현재도 엄격한 안전 절차 하에서 취급 되는 물질이다. 그 탓에 이 연료들은 일반적인 고무나 금속으로 된 용기에 넣으면 안되고 T 연료는 밀폐된 알루미늄 통에, C 연료는 유리 용기에 보관해야 했는데 만약 정비병의 실수로 C 연료를 알루미늄 통에 넣기라도 하면 그대로 끝장이었고 심지어 벌레 한마리라도 들어가면 그냥 폭발하기 까지 했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극독들을 직접 항공기 연료 탱크에 넣고 난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자살 행위요, 그냥 멀쩡히 돌아오는 것은 신의 가호가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나 다를 바 없었다. 까딱 잘못 해서 날개에 들어있는 C 연료나 등 바로 뒤에 있는 T 연료가 새거나 폭발하는 순간 파일럿은 더 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물론 보호용 가운이 있다고는 하지만, 플라스틱 같은 고분자 화합물도 흔치 않던 당시에 지금 같은 고성능 방호복 따위를 기대하면 안된다. 그리고 지상 요원들도 골치가 썩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엄격한 안전 수칙으로 인해 C 연료 주입이 끝난 이후 주변을 완전히 깨끗하게 세척해야 T 연료 주입이 허용되었는데 한시라도 빨리 연합군의 폭격기를 방어하야 하는 때에 세척까지 할 여유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얻은 상승력과 속도 역시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왔다. 12km 상공 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겨우 3분 반 밖에 되지 않았던 만큼 빠르게 상승하면서 주변 환경과 동일한 공기압을 갖고 있던 콕핏 내부의 공기압 (당시엔 Ta152 정도를 제외하면 콕핏 내부는 기압유지가 되지 않았다.) 역시 급격히 낮아지며 잠수병 처럼 혈액 속에 녹아 있던 질소가 팽창하며 혈관을 막아 파일럿의 안전을 위협했다. 그 때문에 파일럿들은 항상 특수 감압 시설 훈련은 물론 위장의 팽창을 막기 위해 고단백 식품의 섭취도 제한받고 알프스 고산지대에서 명상을 하기 까지 했었다. 게다가 빠른 만큼 착륙도 어려워 감속했다는 착륙 속도가 190km/h나 되었던 데다 작고 협소한 동체 탓에 랜딩 기어를 넣을 공간 조차 없어서 그냥 동체 착륙을 해야 했는데 이게 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다가 로켓 엔진 특유의 엄청난 속도는 매우 빠른 연료의 소모 또한 불러왔다. 엔진을 켠 상태로 갈 수 있는 거리는 겨우 40km에 불과했고 이후에는 격추당할 부담을 안고 더 느린 활공으로 착륙할 때 까지 비행해야 했던 탓에 (코메트가 격추당한 기록의 대다수는 속도가 느려지는 활공 ~ 착륙 단계였다.) 너무나도 짧은 작전 반경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갖고 있던 공격 기회는 겨우 1번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장하고 있는 무기가 잘 맞냐고 하면 영 아니올씨다 인게, 내장된 기총인 MK-108 30mm 기관포는 말이 좋아 기관포지 총열이 아주 짧아 현대의 비슷한 구경의 물건과 비교하면 그냥 고속유탄발사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탓에 탄도가 곧게 나아가질 못해서 안 그래도 빠른 속도 탓에 힘들기 까지 한 근접 사격을 해야 명중율이 보장되는 수준이었고 이걸 하려면 엄청난 에이스 파일럿 만큼의 기량을 갖고 있어야 했다. 물론 나치 독일도 이런 단점을 모르던게 아니라 코메트가 배치된 기지의 주변에는 두껍게 방공망을 깔아서 보호하고자 했지만, 막상 아군 오사 위험 탓에 그닥 도움이 되지는 않았고 더욱 결정적으로 연합군은 그냥 기존에 다니던 루트에서 60km 돌아서 간다는 간단한 우회로 손쉽게 해결해 버린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코메트를 배치한 비행장도 여러군데 만들어서 더 촘촘한 방어를 하려고 하기도 했지만 파일럿이 되기 위한 조건과 난이도도 극악에 가깝고 위험하기로는 제일가는 항공기에 공장 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박살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결함기를 향한 나치 독일의 광기 어린 집착은 도무지 식지를 않았다. 그래서 지속적인 개량 끝에 상승용과 순항용 노즐을 따로 두는 신형 HWK-109-509C-1 엔진으로 교체하며 연비를 개선해 항속거리를 확장하고 비행 시간도 15분으로 연장해 짧지만 공중전도 할 수 있고 통상 항공기 같은 접이식 랜딩 기어 까지 장착한 개량형인 Me263 숄레를 개발하기에 이르렀지만 때는 너무나도 늦어서 이미 나치 독일은 패망에 이르렀고 그나마 제작 된 기체 역시 노획되어 모스크바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운용 전과도 전무하고 나치 독일의 희귀 자원만 낭비하게 되며 하늘에 잠깐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혜성이라는 이름과도 같이 전형적인 신기루에 불과한 "기적의 무기" 다운 말로를 걷게 된 로켓 추진 항공기는 제트기의 등장과 발전으로 완벽하게 묻히는 듯 했다.

하지만 보잘것 없어 보였던 코메트의 핵심 개념은 대전기 이후에도 살아 남았으며, 일부는 현재까지도 절찬리에 활용되고 있다. 항공기에 로켓 엔진을 장착해서 빠른 속도를 내보자는 발상은 미래의 초음속 유인 항공기를 개발하려 했던 미국 벨 사의 눈에 띄었고 전설적인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척 예거가 벨 사의 X-1 시험기에 탑승하여 1947년,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의 오빌 라이트가 보는 앞에서 세계 최초로 꿈만 같던 마하 1의 장벽을 돌파하게 되었다. 물론, 미국 역시 제트 엔진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비가 나쁜 로켓 엔진을 도태하게 되면서 로켓 엔진 항공기의 역할은 끝났지만, 이 X-1이 남긴 초음속 유인기라는 발자취는 전투기 부터 훈련기, 공격기와 폭격기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군용기들의 성능을 압도적으로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로켓 엔진으로 빠르게 적기가 있는 고도와 위치 까지 날아가서 격파하자는 발상 역시 현재의 지대공 미사일로 이어지게 된다. 베트남 전쟁 부터 SA-2를 자신들의 우방에게 절찬리에 지원하며 미 공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던 소련은 물론, 여기에 된통 당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 역시 지대공 미사일 개발에 맛을 들여 MIM-104 패트리엇과 같은 물건들을 절찬리에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도 지대공 미사일은 적국의 항공 전력과 함께 끝나지 않는 창과 방패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코메트의 연구가 계속되어서 적기에게 빠르게 날아가 자폭하는 무인기의 형태로 개발 되었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내지는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