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빈츠는 1716년, 아스칸디아의 압하에서 태어났다. 그는 1726년 뛰어난 공부 실력과 매우 높은 IQ(165)라는 것 덕분에 4학년에서 월반하여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중학교에서 1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고 하며 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바로 스킵하고 아스칸디아에서 알아주는 대학교인 아스칸디아 대학교 의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1740년 의료 봉사를 일향제국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민복어를 배우다 1742년 1월 2일 아스칸디아를 떠나 1742년 8월 32일 금석도에 도착하였다. 그는 금석도지사인 금석도를 만난 다음 의료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자 금석도는 빈츠를 마차에 태워 진사군으로 이동시켜주었다. 1742년 9월 4일, 진사군에 도착한 그는 가장 먼저 알바를 뛰었다. 그는 그림을 그려 돈을 벌었으며 그는 곧 진사군에서 2번째로 돈이 많은 부자가 되었다. 1746년 그는 벌은 돈으로 빈츠 의원을 설립하였고 진사군의 아픈 사람들을 진료해주기 시작하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주었고 사람들은 그를 신임하고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생각했다. 1752년에는 사람들이 기다리느냐 진료를 받지 못할 것을 걱정해 빈츠의학대학교를 건설하고 빈츠의원을 금석도 곳곳에 지점을 내었으며, 1759년에는 결국 전국에 빈츠의원을 내게 되었고 빈츠의학대학교의 학생 수는 4천명이 넘어갔다. 1760년엔 그의 호를 따 롯데그룹을 창립하여 우리가 아는 그 롯데그룹이 되었다. 그는 너무 힘들게 일한 나머지 쓰러지기도 했으며 결국 너무 힘들어서인지 1762년에 은퇴하여 빈츠의학대학교의 선생님으로만 일을 했고 가끔식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되었다. 그는 1973년 폭도 떼들이 진사군을 습격하자 그는 자신만 죽을 테니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부탁하였고 폭도 떼들은 부탁을 받아들여 진사군 생물면에서 그를 죽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아픈 사람들을 걱정하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위대한 의사이자 화가였다. 현재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고자 빈츠박물관을 진사군에 설립하였으며 빈츠 생가 등 빈츠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보존하고 있으며 교과서에 현대 의학을 최초로 들여온 사람이라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고 있다. 그래서 진사군 개발이 안 된다


그와 관련된 지명

생물면 : 만물을 위해 희생한 롯데 빈츠에서 따왔다.

선일면 : 롯데 빈츠가 만물을 위해 희생하자 사람들이 모두 하나로 모였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역문면 : 그가 1743년 진사산에 올라가 자신이 쓰던 아스칸디아어를 버리고 민복어를 쓰기로 결정한 곳이여서 역문면이라고 한다

진사읍 : 진실된 생각을 하고 있는 롯데 빈츠에서 유래한다.

진사군 : 위와 같다.

롯데읍 : 그가 처음 도착한 항구의 이름을 롯데항으로 바꾸고 읍 이름을 롯데읍으로 바꾸었다.


그의 대표적인 그림

제목은 자화상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심오하게 과자로 표현한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