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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뱉고 들이마실수록, 아득하고 몽롱하다.

천천히 회복한 육신이 다시 일그러지는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큰일날 것 같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 지금까지 뭐 하고 있었냐.

변두리 역에서 사 마신 정체불명의 밀주도 마시고 잘만 버틴 나잖아, 일어나.


분명 나, 쏘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지....1번, 그런데 또 2번이나 3번이 떠서 출혈이 일어났고...그 다음엔?

그 다음엔 뭘 했더라? 일단 몸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뭔가를 잡고 일어서려 하면, 또 뭔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고개만을 거대한 돌덩어리 굴리듯 안간힘을 다해 옆으로 꺾어, 이마의 아릿한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있자면.

또다시 뭔가가 잊혀지고, 또 기억조차 서서히 일렁이며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몇 번 연습했는지, 내 연습을 누가 참관했는지, 수건을 던져 준 이는 누군지, 부축해준 이는 누군지.

게시판을 내가 언제 처음 켰으며, 처음 본 사진이 무엇이었으며.

미리내의 별이, 나에게 뛰어넘어야 할 목표인 것 마저도.


아.

이건 기억하고 있네, 다행이도.

정신을 차려 보면 손에 자그마한 별 하나가 들려져 있다, 미리내의 것과는 달리 홀로 고독히, 차분히 빛나는 별.


쓰다듬으면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수많은 색이 뒤섞여 한순간 빛을 더했다-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잠시뿐이지만 그럼에도 주변을 둘러싸던 이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한순간이나마, 빛을 밝혀 준다.

그래, 오늘만이라도 뭔가 버틸 만한 게 내려오는구나.

그런 생각을 품으며 천천히 그 별을 들어올려, 걷고 걸으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려 발을 내딛자.


가까이 오면 안 돼.

누구여.


난, 이곳에 갇혀 있어야만 해.

그러니까 누구냐고, 이 악몽 만들었던 그 년?


여기에 갇혀 있어야만, 모두를 구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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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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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진화체놈들을 잡느라 지친 육신에 주는, 한때의 짧은 유희.

-가급적이면 역, 열차 내부와 같은 안전한 곳에서의 이용을 권장드립니다.-

일반인들도 사용할수 있는 게시판이므로, 이곳에서 퍼지는 진화체 공략 정보는 신뢰성이 부족할 수 있음을 숙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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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을 생성했습니다.

"좋은 아침, 좋은 점심, 그리고 좋은 밤 ㄷ▉▉▉▉▉



1: ㄹㅇㄹㄴ

...하아아아...아아암...


2: 겟탄

채팅창 켜놓고 하품하지 마 임마


3: ㄹㅇㄹㄴ

너도 한 일주일 악몽 꾸고 잠 도합 네 시간밖에 못 자봐, 오늘도 소리지르면서 깼구만


4: ㄹㅇㄹㄴ

사람이 실시간으로 미쳐간다는 게 뭔지 뼈져리게 느껴진다, 오늘은 진짜 못 깨는줄 알았어


5: 근성의 권

어...솔직히 너 깨는 건 걱정 안 해도 되겠던데


6: 근성의 권

니 여친부터 그런 일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깨울 기세였고, 재버워크도 뭔가 도와준다고 만들고 있었고


7: 근성의 권

멈멈미 그 양반도 혹시나 할 상황을 대비해서 네 문 옆에 의자 깔고 앉아서 그 용병 팀장이랑 담소 나누더라


8: ㄹㅇㄹㄴ

멈멈미가? 어...왜? 악몽이 뭐 모자 쓴 손톱 살인마처럼 실체화되서 날 죽이려 들기라도 할 까봐?


9: 구겨진멈멈미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SS급 진화체니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을 거고


10: 구겨진멈멈미

그것보단 솔직히 담소가 끝나지 않는데 졸리지도 않아서 하는 김에 보초를 서준 느낌에 가깝다, 신경 쓰지 마


11: ㄹㅇㄹㄴ

그럼 하는 김에 오늘까지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


12: 구겨진멈멈미

그래, 너가 날 필요로 하니 지켜 주마. 수녀원장님께서도 동행한다는 조건 하에 허락하시기도 했고


13: 구겨진멈멈미

그분도 윗층에서 오래 사정을 살필 명분이 필요하던 차였으니까, 함께 동행한다 쳐라


14: 겟탄

가만...그러고 보니 우리 진짜 위에 올라가는 거네?


15: ㄹㅇㄹㄴ

그치?


16: 겟탄

그럼 저 까마득히 저 위에 있는 인공 바다 보려고 고개 막 위로 안 쳐들어도 되는 거 아냐?! 개좋네!


17: 구겨진멈멈미

미안하지만 인공 바다는 무리일 거다, 거긴 예약에 신분증, 드레스 코드까지 신경써야 할 것들이 꽤 많아


19: 겟탄

나도 아니까 분위기 깨지 마! 멀리서 구경은 할 수 있잖아! 아니면 초콜릿도 살 수 있고!


20: 해골세개

그러고 보니 드디어 이 무거운 고철덩어리 드디어 다시 총 노릇 할수 있게 고칠 수 있겠네요...


21: 겟탄

그러고 보니까 해골, 여기 장인 있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어? 쉬는 동안에 내려가 보지 그랬냐


22: 해골세개

그렇잖아도 어제 새벽 세시 쯤에 생각나서 내려가 보긴 했는데 그...


23: 구겨진멈멈미

그?


24: 해골세개

장인 분이 수녀님과 술 한잔 기울이다 저랑 눈 마주쳤는데...거기서 어떻게 해 달라고 말을 꺼냅니까


25: 근성의 권

안 봐도 보인다, 바로 문워크 하면서 니 방으로 후퇴했겠구만


26: 구겨진멈멈미

새벽에 술 한잔이라...절제되지 못한단 건 알지만, 어제 해 봤더니 꽤나 매력적인 유흥이더군


27: 니벨룽산 청정우

가만...그러면 지금 뽑힌 사람이 저 칼잡이랑, 내 남편, 그리고 극작가 친구?


28: ㄹㅇㄹㄴ

어, 겟탄 해골 멈멈미 이렇게 셋, 극단은 여기서 도울 일이 많아 보이고, 용병은 자칫하다간...제약에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29: 파손주의

직설적으로 말해도 상관없어, 사실이니. 그리고 나도 그런 일은 몇 번 정도 겪었고


30: 파손주의

강철선로의 연회 때 경호로 서 있다가, 오르톨랑이 귀부인들에게 예쁨받아 그녀들의 대화에 낀 적이 있었지


31: ㄹㅇㄹㄴ

...그래서 뭐 어떻게 됐는데? 뭐 가지고 놀려고 부른 거야?


32: 파손주의

그런 극단적인 이야기는 아니야, 귀부인들 사이에선 혼혈 용병의 이야기가 오갔고, 때마침 오르톨랑이 눈에 띈 것 뿐


33: 파손주의

오르톨랑은 용병으로 살아가며 눈이 먼 대신, 진화체로써 청각이 발달한 이야기를 전했어, 분위기는 차게 식었지. 그런 이야기야


34: 겟탄

대화할 때 마이너한 감성 이야기하는 자신에 취해서 어설프게 꺼내들었다가 진짜배기 만나서 크게 데였구만


35: 겟탄

어딜 감히 진짜 시궁창 인생 살아가는 인간들 앞에서 위로하는 척 하면서 우월감 채우려고, 분위기 창나도 싸다 그건


36: 파손주의 

하...그런 식으로 해석이 되는 건가? 뭐, 그렇게 생각하면 퍽 유쾌하긴 하네


37: 파손주의

어쨌건 위에서 수면 침대 같은 곳에서 한 두시간이라도 자고 오는 걸 추천해 방랑자, 어찌됐건 지금은 당신이 내 고용주니까


38: ㄹㅇㄹㄴ

수면 침대라...아, 그것보다는 그냥 마트로 같은 양반이 꿈도 못 꾸게 한번에 뒷목 좀 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39: 펜은총만큼강하다

>>24 너도 총 수리 잘 하고 와, 만약 시간 나면 뒤집힌 열차의 사진도 찍어 오고


40: 해골세개

뒤집힌 열차? 설마 저희가 타고 왔던 열차 아직도 그 플랫폼에 남아 있는 겁니까?


41: 펜은총만큼강하다

아 그 열차 말고 그 이름의 예술품이 어, 별 건 아니고 그 중앙역에서 제약 건물 올라가면 바로 보일 거야


42: 펜은총만큼강하다

엄청나게 거대한 열차가 하늘을 향한 채...그 중앙에 위치되어 있지, 일종의 명소 같은 곳이라 관광지로도 인기야


43: 펜은총만큼강하다

거기도 있고...아, 요즘 귀여운 캐릭터 열쇠고리가 있다면 좀 부탁해도 될까? 핸드폰에 장식하는 게 좀 취미거든


44: 해골세개

그것 말곤 부탁할 거 있어? 아니면 자주 갔던 곳이라던가


45: 펜은총만큼강하다

...사실 나도 자주 못 가긴 했어, 알다시피 우린 관광하러 온 게 아니니까. 따지자면 일이고


46: 해골세개

그럼 여기서 떠나기 전에 같이 가자, 총 고치고 네가 준 총알을 다 쓰기 전에 회포는 풀어야지


47: 해골세개

그래야 다시 만나기 전까지 그래도 좀 미련이 덜 남지 않을까?


48: 펜은총만큼강하다

...흐흫....그럼 같이 다닐 때 내 계획이 있는데 전적으로 믿고 맡겨볼래?


49: 해골세개

벌써 여행 계획까지 다 짜놨어?


50: 펜은총만큼강하다

응? 그럼 그때 도서관도 같이 가자, 위엔 꽤 흥미로운 책이 많다고 들었거든...과거에 유실된 책들이라던가


51: 니벨룽산 청정우

>>35 음...남편, 이쪽은 책보다는 초콜릿으로 부탁해, 돈이라면 보내줄 테니


52: 겟탄

확인, 너랑 나랑 딸 몫 해서 세 상자면 충분해?


53: 근성의 권

일부러 싹 빼고 이야기하는 거 봐, 존나 싫다 진짜


54: 겟탄

흐음...뭔가? 위로 올라가지 못한 자여? 패배자면 패배자답게 땅을 기어라


55: 겟탄

...근데 우리, 열차 타고 무슨 인터넷 안 터지는 곳 레이드 가는 것도 아닌데 뭔가 작별 분위기가 되고 있지 않냐?


56: 구겨진멈멈미

넌 위에서 게시판을 꺼내서 쓸 생각이었나?


57: 겟탄

아, 제약은 그런 거 못 하게 해? 의외로 깐깐하네


58: 구겨진멈멈미

그건 아니지만...감시 카메라가 꽤 많이 깔려 있다, 아마 네가 어떤 글을 올리고 어떤 사진을 달았는지 전부 보일 거야


59: 구겨진멈멈미

그리고 말대로 못하게 할 수도 있겠지, 이번 진화체가 날뛴 건도 있으니 그런 것과 관련한 채팅이 포착된다면...


60: 구겨진멈멈미

방위부서 앞에서 네가 보내던 채팅과 이미지 내역을 싸그리 공개하게 될 수도 있다


61: 겟탄

어...끼...끼에에엙...아그락각ㄱ....꿇룷....


62: ㄹㅇㄹㄴ

이 새끼 거품 물고 혼절했는데, 다른 놈 대타 되냐?


63: 겟탄

조까...가긴 갈 끄니까...어우, 방금 한순간 눈앞에 내가 올린 테러짤들 싹 다 박제되는 겪지 않은 미래가 보였어


64: 겟탄

게시판에 세이프 모드 있나? 없지? 바로 이 김에 충전 들어간다


65: ㄹㅇㄹㄴ

나는 뭔가 책 잡힐 만한 건 올리진...


66: ㄹㅇㄹㄴ

아니다, 나야말로 가장 위험하겠네. 나도 벤치같은 데서 벽면 등지고 해야겠다


67: ㄹㅇㄹㄴ

엑스트라, 있어? 바쁘면 그냥 간단하게 글만 남기려고


68: ㅇㅇ

ㅇ예 있습니다 그대여, 아이들 아침할 재료 나르느라 잠깐 답장이 늦었나이다


69: ㄹㅇㄹㄴ

미안 일 하는데, 위에선 핸드폰 못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70: ㄹㅇㄹㄴ

다녀올게, 그리고 아래서 뭔가 문제가 있다면 짧게라도 말 좀 해줘


71: ㅇㅇ

...가능하다면 저녁 전엔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짧은 바람을 전해보나이다


72: ㅇㅇ

지치신 당신 옆에 기대어 당신과 아픔을 공유하며 눕는 것은, 저에게 있어선 무척 행복한 순간이었기에


73: ㄹㅇㄹㄴ

저쪽에서 술이라도 한잔 하라고 붙잡지만 않는다면야 괜찮겠지


74: ㄹㅇㄹㄴ

그리고 마시라고 해도...이쪽은 수녀원장님이 있으니, 어지간한 건 다 일정 문제라고 회피 가능할 거야


75: ㄹㅇㄹㄴ

아, 때마침 오시고 계시네


76: 구겨진멈멈미

오셨습니까, 어디 불편하신 건 없으신지요


77: 구겨진멈멈미

곧 있으면 저쪽에서 승강기가 내려올 테니, 잠시 휴식하면서...


78: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괜찮습니다, 그보다는 바람을 좀 쐬고 싶군요


79: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당분간 또 이곳의 바람은 느끼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80: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그리고, 당신이 입에 담았다던 분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요


81: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반가워요 방랑자, 자매회의 남부본당 수녀원장의 직책을 맡고 있는 프뉴마라고 합니다, 그쪽은?


82: ㄹㅇㄹㄴ

아 예, 반갑습니다. 방랑자입니다.


83: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 본인의 이름이 없으신 건가요? 아니면 조금 특이하여 감추는 겁니까? 고아원도 아이들 이름은 붙이는 걸로 아는데요.


84: ㄹㅇㄹㄴ

할아버지가 딱히 안 지어줘서 말이죠, 그렇다고 제 이름을 그분 부르시던 대로 우리 예쁜 손주라고 밝힐 순 없잖습니까


85: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변두리 역에서 크셨군요, 아무튼 간에 방랑자? 저희 분파 중 하나와 최근, 그리고 지난번에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86: ㄹㅇㄹㄴ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는데, 테라피스트 어디 갔냐고 물으시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87: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압니다, 다만 사과드릴 뿐입니다. 그녀와 그녀의 추종자가 되어버린 그녀들이 당신께 끼친 영향 전부, 사과드립니다


88: ㄹㅇㄹㄴ

아 예...근데 또 뭐 사과받을 일까진 아니긴 한데


89: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사이 님께 전해들은 바로는 현재 정신 상태가 혼탁해지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까?


90: ㄹㅇㄹㄴ

아 예, 좀 거시기하긴 합니다


91: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그래서 극단장님이 어제부터 안절부절 못하신 것이군요...흠...


92: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방랑자 생활은 저도 오래 전의 일입니다만,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느 정도는 그런 비슷한 것을 겪어본지라


93: ㄹㅇㄹㄴ

나쁜 꿈이라도 꾸셨나 봅니다?


94: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나쁜 현실을 마주했죠, 늪처럼 빠져드는 검은 진흙 안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계속 발버둥쳤습니다


95: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무기를 내려놓고, 자매회에 들어가고, 제 다른 자매님들이 다 다른 분파가 되어 떠나고도 계속 말이죠


96: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그런데, 퍽 웃긴 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느새앤가 그것조차 익숙하게 되더란 것입니다


97: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인지를 초월한 과학의 혁신도, 누군가 간절히 믿어 바랬던 기적도, 결국엔 겹쳐져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


98: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그러니, 조금은 두려움을 접으시지요, 경계를 푸시지요, 당신도, 당신의 반려에게도 그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99: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제가 요절해도 누군가 수녀원장을 맡듯 세상은 계속해서 흘러갈 테고, 그러니 너무 짓눌려 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100: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아 물론, 수녀복이 제가 보기에 마음에 들었다는 점 또한 수녀원장을 해먹고 있는 이유 중 하나지만요


101: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이 총에 어울리도록 제가 의복에 금실로 자수를 놓았는데, 퍽 예쁜 수녀복이지 않습니까?


102: ㄹㅇㄹㄴ

그 수녀복 안에 얼핏 도드라지는 총의 실루엣 때문에 그냥 살벌한데요


103: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훗, 그래야지만이 윗층의 졸부들이 접근해오다가도 한 번 정도 망설이는 계기를 마련해 줄...


104: ㄹㅇㄹㄴ

...


105: ㄹㅇㄹㄴ

왔네


106: 겟탄

열렸고, 근데 그 사절 어딨어? 뭐 엄청 과학적인 뭔가로 숨기라도 했나?


107: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아뇨, 아마도...이 아래에 있는 이것이 초대한 사람들을 인도해주려는 모양입니다


108: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소속 수녀원장 프

제약은 중요 고객들을 가이드할 때 때때로 무인 로봇을 통해 가이드해주는 경우도 있거든요


109: 겟탄

오, 홀로그램 나왔다, 뭐라뭐라 말 하네


110: ㄹㅇㄹㄴ

...그러니까 일단 저걸 따라가면 괜찮다는 거지?


111: ㄹㅇㄹㄴ

부디 정상적인 가이드였으면 좋겠네...


112: ㄹㅇㄹㄴ

일단은 게시판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다시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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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게시판은 유료전환을 하지 않는 이상 종료 이후의 게시물을 저장하지 않습니다.

잘 종료하시고, 충전하시고, 성과가 있는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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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ㄹㅇㄹㄴ

...에휴 인생...


427: 근성의 권

? 가이드가 마음에 안 들었음?


428: ㅇㅇ

편찮은 곳이라도 있으시나이까?


429: ㄹㅇㄹㄴ

아니, 그건 아니고...일단은 지금 가이드 로봇이 충전소 들어가 있는 중이라 나도 쉬고 있다


430: ㄹㅇㄹㄴ

만나는 사람들 다 친절했어, 근데...


431: ㄹㅇㄹㄴ

내가 생각했던 뭐 인공 바다라던가...아니면 커피나 초콜릿 파는 곳이라던가, 한 곳도 안 가더라


432: ㄹㅇㄹㄴ

진짜 초대한다는 게 제약의 연구시설만 쭉 둘러보게 한단 걸 줄은 몰랐지


433: 근성의 권

엌ㅋㅋㅋㅋ 그럼 해골은 또 총기 수리 못 한 거야?


434: ㄹㅇㄹㄴ

아니? 해골은 지금 저거 충전 중에 나한테 수리 좀 맡겨놓고 오겠다고 하고 이탈했는데?


435: ㄹㅇㄹㄴ

겟탄도 지금 딱 쉴때 초콜릿 사 오겠다고 하고 가고 있고


436: ㄹㅇㄹㄴ

이해해, 방금 본 것들 이래저래 퍽 충격적인 일이었을 테니, 근데 난 일단...너무 지쳐서 말이지, 구경하는 것도 벅차다


437: 왼쪽겨드랑이

그럼 남부의 연구실들을 본 거야? 뭐 가끔 열리는 과학전시장 같은 새로운 장비나 병기 내놓는 그런 느낌인가?


438: 도비는자유의몸이아니야

아, 틸레가 카탈로그 보여주긴 했다 그거, 그거라면 좀 끌리는데?


439: ㄹㅇㄹㄴ

그건 아니고, 진화체에 관한 부서였어


440: ㄹㅇㄹㄴ

진화체의 방식이 어쩌고 뭘 어쩌고, 결국 진화체를 분석해서 뭘 해보겠다는 거겠지


441: ㄹㅇㄹㄴ

그리고 우리가 들어간 곳이 어느 정도 깊숙한 곳에 있어서 그런가


442: ㄹㅇㄹㄴ

진화체의 실험장에 사람을 던져 놓는 실험도 그냥 태연하게 하더라?


443: 해골세개

>>442 말대로 약간 격리 컨테이너같은 느낌이긴 했습니다, 근데 안에 던져진 사람들이 대부분 평상복이더라고요


444: 해골세개

마치 그냥 맨몸에 받는 영향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보내놓은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445: 해골세개

그거랑은...예, 인공 바다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가, 해상 환경을 재현한 곳에 진화체가 자라고 있는 연구실도 있었습니다


446: 해골세개

그것도 꽤 크긴 했지만요


447: 겟탄

꽤 수준이 아니던데 그거? 인공 바다에 비하면 작지만 그 크기도 그 동부 근처에 있었던 그 수족관 이상이지 않았어?


448: 해골세개

그러니 진화체 크기도 비슷하게 커지고...모르겠습니다, 부품은 찾았다니까 장인 분이 교체해주실 동안 책이나 읽으려고요


449: 루루디스텔라토

어떤 실험이 있었어? 진화체와 인간이면 그것밖에 없다는 건 알겠는데, 역시 그거야?


450: 루루디스텔라토

이 진화체는 어떤 식으로 인간과 순애섹스를 하는가, 그런 거 연구하는 거 아냐?


451: ㄹㅇㄹㄴ

사실...교미 중에 어떤 상태가 되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보이더라고?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452: ㄹㅇㄹㄴ

그냥 그걸로 발생하는 진화체의 부산물에 더 집중하는 느낌에 가까웠지


453: ㄹㅇㄹㄴ

연구원들이 적을 거 다 적고 내가 구경하는 거 눈치보다 그냥 창문을 싹 닫아 버렸거든, 대부분 다 그랬고


454: 루루디스텔라토

닫히기 전까지의 얘기 좀 상세하게 풀어 줘, 나 남부에서 촬영 있었는데 불발나서 심란하단 말야


455: ㄹㅇㄹㄴ

그러니까...음...여러 진화체가 있었지?


456: 겟탄

그 처음에 봤었던 그 연구실엔 각종 독 같은 걸 연구하고 있었지 않음?


457: 겟탄

도마뱀이라던가 지네라던가, 암튼 그런 독 있는 것들끼리 싹 몰아서 연구실에 가둬 두더라고?


458: 겟탄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영역 다툼하고...그만큼 독도 서서히 농도가 오르고, 그러는데 천장에 매달린 남자가 내려오더라


459: 겟탄

무슨 들개한테 고기 주는 것도 아니고ㅋ 아무튼 그 반려 하나 얻으려고 그때부터 더 치고박고 싸움이 나더라고


460: 겟탄

서로 독의 농도를 높히고, 상대의 독을 중화시키고, 그러다가 이제 몇몇 진화체들이 못 이기고 자기 굴로 들어가 버리면


461: 겟탄

결국 마지막에 남은 지네 진화체가 긴 몸을 늘여선 여체의 몸으로 남자를 소중하게 끌어안더라고


462: 겟탄

그러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와선 똬리를 틀어서 남자의 몸을 벗어날 길 없이 천천히 조이고서는


463: 겟탄

그대로 깨물어서 남자의 하반신의 물건을 엄청나게 큰 크기로 바꾸더라고, 순식간에 크기가 비대해진게 좀 보기 그랬긴 했는데


464: 겟탄

그러고서는 하아하아거리면서 숨결만 뱉으면서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독액을 바르는 게...딱 지네류 진화체의 그거였지?


465: 해골세개

그것도 있지만, 좀더 살짝 감정이 섞인 교미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자기가 당했으니 그 사람도 당해보라는 것 같았죠


466: 해골세개

자신 말곤 아무도 못 건드리는 남자이니, 더욱 건드릴 수 없게 개조해 버리겠다는 집착의 원념이 느껴졌습니다.


467: 해골세개

나중엔 그 양갈래 머리조차 풀어버리고서는 긴 생머리를 늘어트리며, 가슴을 밀착한 채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붓더라고요


468: 해골세개

자신만의, 자신만의 노예가 되게, 독의 노예가 되게, 그대로 자신과 함께 썩어 없어져 버리게


469: 해골세개

...지독한 일이죠


470: 겟탄

넌 꽤 디테일하게 봤구나? 아무튼 그런 뒤에 좀 두껍게 방호복 입은 제약의 연구원들이 그때부터 독액을 채취하기 시작하더라고


471: 겟탄

굳이 그렇게 경쟁과 싸움을 부추긴 이유가 뭐였을까? 독이 더 진해지기라도 해? 아니면 양? 어느 쪽이건 간에 좀 그렇지 않나...


472: 루루디스텔라토

>>471 동감! 성격이 원래 그랬다면 모르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제 3자가 입맛대로 바꾸려 하는 거잖아! 양아치도 아니고!


473: 겟탄

그것도 그렇긴 한데, 탈출하면 기존의 진화체보다 더 답이 없잖아


474: 겟탄

협회도 그렇게 자신하는데 격리팀에서 틈만 나면 탈출하는데 제약이라고 안 그러겠어?


475: 해골세개

하아...그래도 방위 부서도 있고 격리 컨테이너도 저렇게 삼중으로 해 놓은 곳에선 저 진화체들도 어느 정돈 포기하지 않겠습니까?


476: 겟탄

또 모르지, 지금까지 지 잘났다고 뻗대던 놈들 한방에 나락간 거 내가 몇 번이나 봤으니까, 제약이라도 모르지 않겠어?


477: 겟탄

근데 또 저 수조에 있는 진화체는 모르겠네, 저 진화체는 격리 컨테이너 깨지면 펄떡대다 뒤지려나


478: ㄹㅇㄹㄴ

알아서 호흡할 방법을 찾지 않을까 싶은데...그래도 뭐, 저건 저것대로 특이하긴 했어


479: ㄹㅇㄹㄴ

남자를 품지 않았어도 스스로 후대를 생산하고 있더라고


480: 루루디스텔라토

? 그러니까 그거야? 그 지렁이랑 비슷한...


481: ㄹㅇㄹㄴ

그런 거 말고 미친것아;; 알에 그걸 뿌려줘야 수정이 되는 체외수정 말하는 거야


482: ㄹㅇㄹㄴ

근데 그걸 생선이 아니라...다른 진화체가 하고 있을 줄은 몰랐고...그 진화체가 흡수한 게 분명 사진이 있었는데..


483: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아, 겨우 이름 수정했네, 아무튼 그 진화체는 해삼일 겁니다, 검고 질기고 말캉한...해양 생물이죠


484: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그것들의 생존력은 어마어마하거든요, 잘려 나가거나 혹은 수중이 아닌 곳에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습니다


485: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지능은 연체류 진화체의 그것처럼 아주 둔하긴 하지만...그들이 실험할 땐 그게 필요한 게 아닐 테죠


486: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실험실에서 그녀는 서서히 빈약한 몸에서 시작해 서서히 성장해, 엄청나게 글래머한 모습까지 성장합니다


487: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그렇게 성장하다가 곧 그녀의 가슴 한 쌍이 떼어져 떨어져 내리고, 그녀는 다시 원상태, 왜소한 몸으로 돌아가 버리죠


488: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떨어진 신체의 일부분은 그저 젤리같이 수조의 흙 위를 굴러다닌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엄연히 생명이 존재합니다


489: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실험을 위해 떨어진 지원자에 의해 자세히 밝혀진 거죠, 사람이 빠지게 되면 그녀는 입에서 노란 줄기의 다발을 토해냅니다.


490: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접착성이 높은 그 노란 줄기에 얽힌 남자에게 진화체는 다가와, 입을 크게 열고 남자와 입을 맞춥니다.


491: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자신의 몸 안에 남아 있는 노란 가닥들을 먹여 영양분과 오염물질을 주입하고, 체내의 산소를 나눠 주려는 목적인 거죠.


492: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그러는 사이 그녀는 곧, 자신 주위를 굴러다니던 검은 덩어리 하나를 집어들어.


493: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남자의 하복부를 감싸는 모든 것들을 벗겨내 버리고, 오염물질로 인해 빳빳해진 그곳에 그 덩어리를 쑤셔박습니다.


494: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인간의 이성이 거의 잔존하지 않은 진화체니, 자비 또한 없습니다. 철저하게 쥐어짜내어 뽑아내려는 마음만이 가득하죠.


495: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몇 번이고 뿜어내어, 그 검은 덩어리의 내부에 있던 끈적이는 오염물질과 뒤섞여 수조를 희끄무레한 것으로 물들여도.


496: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잠수한 사람이 통신수단으로 바깥에 도와 달라는 신호를 간절히 보내도.


497: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사방에 인간이 쏟아낼 수 있는 양 이상의 백탁색의 젤리 같은 것들이 떠내려와, 다른 덩어리들의 구멍 안으로 흘러들어가도.


498: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합니다.


499: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자신의 체내에 노란 가닥들이 전부 소진되고, 산소도 거의 다 떨어졌을 무렵에야 바로소 남자를 수조에서 끌어올려.


500: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가쁘게 호흡하는 남자의 앞에 남자가 만들어낸 것을 기쁘게 보여주는 겁니다.


501: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남자가 가득 뿜어낸 것을 영양분 삼아 덩어리에서 급성장한, 그녀와 똑 닮은 새로운 진화체를.


502: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그리고 아래에서, 아직 다 미처 이뤄지지 못한 성장을 위해 다가오는 그녀보다 조금 더 왜소한 진화체들을.


503: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예, 아마도 그는 그 수많은 것들에게 둘러싸여, 수조 안에서 영원히 격리되는 운명을 맞겠죠.


504: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다른 남자를 들이려 해도 그 수조 안은 이미 그의 것으로 가득하니, 맛을 들여버린 진화체가 다른 것을 찾을 일도 없을 테고


505: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이게 그때 보았던 그 수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조금 심심하실 때 도움이 되셨으려나요?


506: 루루디스텔라토

음, 에피타이저는 별로였는데 디저트는 그래도 괜찮네, 일부러 나쁜 마음을 부치기진 않았잖어?


507: 루루디스텔라토

근데 스스로 증식한 것이니까...1대 1 순애가 맞겠지? 거미쨩이 분신을 쓰는 것처럼?


508: 왼쪽겨드랑이

넌 또 뭔 이상한 거 가지고 고민을 하고 있는겨, 됐고 빨리 물이나 마셔


509: ㄹㅇㄹㄴ

...하암...


510: ㄹㅇㄹㄴ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잠이 쏟아지네 진짜


511: ㄹㅇㄹㄴ

카페인 음료라도 더 뽑아 마셔야 하나


512: 마네트자매회 남부본당

이미 여섯 캔 째지 않습니까, 그러면 진화체도 뒤져요


513: ㄹㅇㄹㄴ

아, 여섯 캔이나 마셨구나 내가...


514: 겟탄

정 깨기 그러면 존나 쓴 걸로 하나 사다 줄까? 포장 지금 다 끝났으니까 지금 말 안 하면 늦는다?


515: ㄹㅇㄹㄴ

빨리 오기나 하셔...


516: 해골세개

저는 곧 갈 겁니다, 총도 제대로 수리해 왔고


517: 해골세개

탄환...은, 뭐 쓸 일이 없는 게 낫기도 하고 극작가가 준 탄환이 남아 있어서 사진 않았지만


518: ㄹㅇㄹㄴ

잘했네


519: 해골세개

근데 저기 윗층 유리창 너머로 여러분 보이는데 뭐 하는 중입니까? 닫힌 실험실 창문도 다시 열리는 것 같은데


520: ㄹㅇㄹㄴ

어, 진짜네...닫는 것도 실험의 일부 뭐 그런 거였나?


521: 해골세개

그건 아닌 것 같은데...연구도 안 하고 꼿꼿이 서 있는게 마치 꼭 누구 기다리는 것 마냥...


======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연구원들이 기록하던 것들을 가슴에 꼭 안은 채 누군가를 맞이한다.

맨 먼저 앞장서는 것은 경호원, 우리를 초대했던 그 년.

외골격, 특이한 검, 수녀복...은 아니고, 그냥 제약의 사원복.


에딧.

그녀가 내리자 그 뒤에 누군가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회색 정장, 넥타이, 주름진 몸, 안경, 회색빛으로 쇤 머리.


아, 높으신 분이구나.

나는 깨닫고서는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뭔 일이여-라면서 고개를 빼꼼 내미는 겟탄에게 헤드락을 걸며.

눈 마주치지 말자, 백퍼 귀찮은 일이 생긴다.

...저 수녀가 엮여 있는 시점에서 이미 생긴 것 같다만, 여기서 조용히 있다면 정말 어떻게든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제발, 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기대를 품는다.


그리고.


"아, 저기 있었군."

기대란 건 늘 대체적으로 배반당하기 마련이었다.

저 수많은, 나보다 더 이목을 집중시키는 진화체로 가득한 수조와, 여전히 똬리를 틀어 조이고 있는 진화체의 컨테이너.

각종 문서와 조명, 그리고 바닥에 깔린 전선들을 뒤로 하고.


그 노인은 나에게 걸어왔다.


"이렇게 여기까지 초대를 수락하고 와 주어 고맙네, 방랑자."

"아 예."

"오는 길에 진화체와 관련해 사고가 있었다고 들었네만 어디, 몸은 괜찮은가?"

"뭐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괜찮긴, 지금도 존나 안 괜찮은데.

영혼없이 대답하는 그는 내 손을 잡고 가볍게 힘을 주어 악수했다.


"자네의 별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네, 자네의 선조께서 꽤 훌륭한 물건을 만드셨더군."

"...예, 감사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묻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아, 시간은 많으니 어디 차라도 마시면서 진득하기 이야기를 나눠 보세."

"예."

"우리 비서 에딧이 데려온 연주자의 연주가 차를 마시며 듣기 아주 좋아, 원래는 진화체를 달래려 초청했지만 사람에게도 그만이지."


...뭐?


또륵, 뭔 소리인가 했더니 내 눈알 굴러가는 소리였다.

피곤해 죽을 것 같던 내 정신이 간만에, 간만에 존나 말똥말똥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래, 나 아직 이런 거에는 빡쳐하는구나?


시선을 흘리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그렇게 시선조차 받아주지 않은 에딧과 조용한 기싸움을 하던 차에.


"방랑자."

"...예."

수녀원장 프뉴마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

"그래야겠죠..."


띵.

조용히 분을 삭이는 와중, 누군가가 또다시 이곳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천천히 열리며, 동시에 걸어오는 누군가를 향해 문을 열어 주었다.


"저분들인가요?"

"아, 때마침 잘 와주었군! 저분들이 바로 오늘 초청한..."



그 누군가란, 긴 장신에 연한 회색빛의 롱 히메컷을 한 자였고.

연보랏빛 나비 장식을 곳곳에 단 채로 바이올린을 든 자였으며.

그 누군가란, 언제나처럼 저렇게 사람 달관한 척 은은한 미소를 짓는 자였으며.


그 누군가란.


"아! 방랑자, 간만에 보네?"

더 말해서 뭐 할까, 테라피스트였다.


"오늘 이 회장의 다과회에 초청받은 방랑자가 있다길래 궁금해했는데 너일 줄이야, 마침 잘 됐어."

"..."

"차를 마시자는 약속 다시 지킬 수 있겠네,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 나 지난번에 호 선생도 직접 실물로 봤거든."

"둘이 아는 사이인가?"

"예 회장님, 꽤 많이 마주했죠...개인적으로도 저 자는 무척 마음에 드는 인간상 중 하나라."


"야."


"응?"


"내가 다시 만나면 분명 도끼로 니 대가리 깨 버리겠다고 했을 텐데?"


손에 힘이 들어온다, 별에 소리가 들어온다.

그래 고맙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은 다행이도 그냥 곧이곧대로, 명령하는대로 작동하고 있구나.

난 또 빡쳐서 무의식중에 키긴 했는데 도끼자루 떨어지면 어쩌나 순간 생각했지.


"응, 아직까지도 서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구나?"

"뭘 이해를 못 해, 투사의 일. 너가 벌인 짓거리 맞지?"

"속박당한 그 아이를 알아? 너도 혹시...그 아이를 구하러..."


철컥, 두 소리가 겹친다. 

옆에서 침묵하며 분노를 삭이던 멈멈미가 아무 말 없이 검을 뽑아들어 겨눈다. 

다른 한 쪽은 공이가 당겨진 총이 두 자루, 겨눠지는 곳은 테라피스트다.

두 개의 총구가 달린 더블 배럴 샷건. 아무래도 저 수녀원장도 수녀 이전엔 꽤 이름을 날렸었나 보다.


"처음 뵙는군요, 테라피스트."

"...내가 재생하던 동안에 예법이 총 겨누는 걸로 바뀌기라도 했어?"

"아주 많이 바꿨죠, 전부 뜯어고쳤습니다. 당신이 자매회의 수녀들을 빼앗아가는 동안."

"날 믿으라고 말 한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건 그녀들의 선택이야. 난 그녀들의 얽매인 마음 안의 사슬만 풀어 줬을..."

"그럼 이것도 선택이겠군요."


방금 잠깐, 잠깐의 찰나만 있었다면 그녀는 분명 격발을 했을 터였다.

재생력은 모르겠다만, 쳐 때려 본 결과 은근히 단단한 테라피스트의 맷집상 저렇게 영거리에서 격발해도 흠이나 날까 모르겠지만.


어쨌건 격발하기 직전, 그녀의 손가락은 멈추었고.

가로막은 것은 테라피스트나, 그녀의 연주로 인한 기현상이 아닌.


"그...그 있잖은가, 쌓인 것 많은 건 알고 뭔가 내가 어설프게 도울 수 없단 것도 알겠네."


회장님이 총구를 향해 가로막은 손 때문이었다.

부르르 떨리는 손, 아마 의수도 아니겠지. 그러면서도 뻗은 것일 터.


"하지만 적어도 위에서, 대화로 풀어 주면 안 되겠나? 자칫 오발나면 저 안에 갇힌 것들이 풀려날 수도 있잖나."

"...그녀를 데려온 이유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길 바랍니다, 포디움 제약의 회장."

"물론, 본사는 여전히 답을 주지 않았으니 그것만 제외하면 모조리 말하겠네."

"엘리베이터에 타시죠, 방랑자, 아라무스?"

"바이올린에 손끝 하나만 대 봐라..."


멈멈미의 이빨에서 빠드득 소리가 들리며, 마치 억지로 분노를 씹어 삼키듯 칼날을 집어 넣었다.

그러면 테라피스트가 손끝으로 바짓주머니를 잡고 마치 숙녀의 인사처럼 화답하는 것이...

한순간 멈멈미를 어깨를 붙잡다 몇 초 정도 끌려가야 할 정도로 엄청난 도발을 선사해 주는 것이었다.


간신히 그 안에 탑승하자,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위로 치솟았다.

어느 날, 엑스트라와 함께 관람차에 탑승해 본 풍경의 고도보다도 더 위로.

바로 옆의 당사자와 싸웠을 때,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보다 위로.


...겟탄이 봤다면 그냥 솔직하게 감탄할 만한 풍경이긴 했다. 여기서 일했으면 자부심 같은 것도 막 샘솟았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나도 솔직히 그러고 싶었다, 두 개로 나뉘어져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올라간 건물들.

그 가운데, 까마득히 아래엔 내가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한 중앙 플랫폼 역과...


중심에, 마치 비석처럼 우뚝 세워진 열차같이 생긴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래, 극작가가 해골한테 찍어 달라고 한게 저거구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금 그 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렸다.


최상층.

문이 열리며 편안한 색의 조명 아래로 가장 먼저 테라피스트가 발을 들였다.

그 다음은 에딧, 그 다음은 나.

멈멈미는 여전히 죽일지 말지 간을 보는 듯 했으나.


결국 앉을 때조차도 그것을 하려 하진 않았다, 잡은 칼에서 손을 떼진 않았지만.


"...그럼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 좀 하지, 할 이야기가 많아, 직원 여러분?"

"예."

"차를 따라줄 수 있으십니까?"


직원들이 걸어와 각자의 찻잔에 차를 따라 준다.

진짜 이파리가 들어간 차, 서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면모도 있다.

설탕, 크림, 우유, 모든 것들이 포장 안에 들어가 밀봉되어 있다.


향은?

그저 차라는 것을 증명만 하기라도 하려는 듯, 뭔가 깊은 것들이 빠져 나가 전무했다.

요컨대, 맛대가리가 없다.


"수녀원장님, 마음에 드십니까?"

"다음에 올 때는 와인을 한 병 가져오는 게 낫겟네요."

"하하, 도수가 낮은 걸로 부탁드립니다."


수녀원장의 답에 회장이 어떻게든 분위기를 환기하려 애쓰는 사이.

테라피스트는 왜인지 나에게 걸어와 내 옆.

이 거대한 원탁에서 굳이 내 옆에 걸터앉았다.


"생각보다 또 오래였고, 또 짧았네? 같이 차 마시게 되는 게."

"그래."

"둘이 함께 이곳에 방문해 줘서 영광이야."

"아라무스 저놈은 차를 입에 대고 있지도 않은데."

"저쪽을 말한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녀는 우유가 포장된 팩 하나를 꺼내 이빨로 찢어 열었다, 그리고...

"차는."

내 찻잔에 부었다.


"이렇게 마시는 쪽이 확실히 더 나아, 가당 시럽을 더하면 더 좋고."

"..."

"나도 몇 번이나 겪었고, 몇 번이가 실패해가며 완성해낸 조합법이거든, 그리고...지난번 실패에서도 배웠고."

"..."

"언젠간 너도 이 맛을 깨닫게 될 거야, 너도. 그리고 거밁..."


둔기가 날아와 그녀의 머리에 부딪힌다.

그 힘을 그대로 실어, 난 허릿심까지 더해 도끼를 집어던질 기세로, 그대로 풀스윙을 때렸다.

그녀는 날아가- 그대로.

강화유리에 몸을 부딪히고, 퉁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나와 그대로 카펫 바닥에 뒹굴었다.


회장은 또다시 얼어붙고, 멈멈미는 조용히 나에게 엄지를 치켜들고, 에딧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시종은 나에게 다가와 죄송합니다, 새 찻잎으로 바꿔 드릴까요? 라며 왠지 모르게 묘하게 웃음 섞인 어투로 묻는 지금.


때린 나는, 생각했다.

역시.

방금 기회가 있었을 때 도낏날 부분으로 팼어야 했다고.



====



"...크흡, 큭...아하하하하!"

"뭐 웃긴 일이라도 있었어 에일라?"

"아, 동영상 30초짜리 하나 빵 터지는 거 봐서, 커피 여기 있어 모트."

"나도 보여줄 수 있어?"

"사람 맞고 날아가는 거라 여기서 보여주긴 그렇네."


"아...그런 영상 바로 뜨는 거 부럽다, 나는 내 동영상 알고리즘이 싹 오염되서..."

"왜?"

"해독에 관한 논문 쓰려고 인터넷 뒤졌더니 사이트 킬 때마나 중독과 관련된 극혐 썸네일 올라와..."

"아, 그건 좀 그렇지...해독 관련한 일 하는 니네도 꽤 고생이구나..."


"...뭐 솔직히 일은 그러러니 하는데 10년째 박사 학위 안 주는 그 씹새끼가 문제지."

"콱 니가 연구소장 해 버리지 그래?"

"이번 년도에도 안 되면 옥상에서 밀려고, 아님 진화체 남편으로 던져주던가...만년 동정인 양반이라 좋아하긴 할 거야."

"하하하하..."

"농담 아냐, 그 양반이 창고의 키카드도 나한테 맡겨 줬으니까 잘만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안에 뭐가 있다고 했지? 그 뱀술이었나?"

"그건 모르겠고, 그...진화체에 관한 해독약 같은 것들이 있지? 뭐 연체류라던가 다족류라던가...뱀류..."


"본사에서 온 물건들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귀중품이라, 그쪽에서 다시 인원이 올 때까진 아주 찔끔찔끔 연구에 쓰고 있지."

"너희들이 다시 못 만드는 거야?"

"그치? 뭐 그쪽이 해독 관련해선 거의 손을 안 대니 모르겠지만...제작한 것만 해도..."

"응?"


"안개 사건때 발견된 그 극독의, 해독약 초안 샘플이라던가...그런 게 있지? 초안만 툭 던져놓고 가서 그 뒤는 없지만."

"응."

"두 병 정도 아직 남았으니 적어도 그거 가져다 한 10년 정도는 골수까지 뽑아먹지 않을까..."


"알겠어, 간만에 친구 만나서 즐거웠네."

"나만 푸념한 것 같은데...넌 괜찮아? 요즘 뭐 힘든 거 없어?"

"힘든 거라기보단...그냥 뭐 회사 분위기가 흉흉하잖아."

"그치, 뭐 도플갱어가 돌아다닌단 소문부터, 지난번엔 그 S급 이상의 진화체가 탈출하질 않나..."

"차라리 도망가지 그래?"

"어, 차라리 이번에도 박사 못 되면 동부든 서부든 도망치는 게 낫겠다."


"...그러면 있죠."


"응?"



"그 카드 나한테 넘겨주는 걸 대가로, 당신이 일주일 정도 집에서 푹 쉬면서 연구를 해도 출결이 찍힌다면."


"...어? 어?! 너 뭔데 너, 왜 갑자기 말투가...왜 얼굴이 녹아내는..."


"당신이 걱정하...는....그 모든 '에이 설마' 를 회피하면서, 침대에서 돈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면. "


"우와아아악?! 그 그 도플...도...도플..."


"꽤 매력적인 제안 아니겠어요?"


"우아아악!!!! 저...저리 가! 저리 가라고!"


"전 덮칠 마음 없어요, 동족으로 만들 마음도 없고, 그냥..."


"거래를 제안드릴 뿐이죠."


"...지금 이미 먼저 승낙하신, 집에서 푹 퍼져서 놀고 계시는 에일라 분과, 간만에 동부에서 밤새 놀고 싶으시지 않으세요?"




"...아 그건 끌리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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