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왜? 강제로 두들겨패서 입 열게 만들려고?”


“마음같았으면 깐족거리는 혓바닥을 뽑아내고 싶다만, 이 몸은 질서 선의 용사이니 신사적으로 대하겠다.”


다년간의 용사 경험에 따르면, 저런 까오에 미친년은 몇 대 쥐어박는다고 아가리를 열지 않는다.


되려 ‘이게 다야?’ ‘고작 이 정도로 입 열게 하겠어?’ 라며 비아냥 거리다가, ‘…병신. 꼴까닥!’ 같은 외마디 조롱과 함께 세상 하직 할 년이니까.


게다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도 눈 하나 껌뻑하지 않은 년이, 고작 물리 치료 한 두번으로 본인 까다를 꺾을 리 없을태고 말이지.


즉, 이런 년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한다. 이 말이다.


“…어이, 여우년. 이 와중에 네 년은 뭐하고 있지?”


“크흥?!”


진짜 이 년은 이 시국에 뭐하는 짓인가?


어쩐지 조용하나 했더니, 한창 이 몸이 당대표년과 기싸움을 하고 있던 판국에 남은 술을 마시고 있다니?


하다못해 마실거라면 새거라도 시켜서 마시지, 까오 상하게 누가 먹다 남긴 술을 쳐 마시고 있다니?


진짜 여러모로 사람 숨 넘어가게 만드는 년이다.


“쿠후후! 비싼 술을 오랜만에 마시니 참으로 좋구나. 그대도 한 잔 하겠는가?”


“병신 같은 년…지금부터 재밌는 걸 할태니, 술병 내려두고 자리에 착석해라.”


“재밌는 것 말이더냐?”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마음의 준비? 용사여, 무슨 짓을 하려는게냐?”


뜻을 알지 못하겠다는 미심쩍은 표정을 한 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리에 착석한 마왕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왕년을 뒤로 당대표년에게 시선을 돌린 이 몸.


당대표년의 낯색은 상황이 재밌게 흘러갈 거라고 직감했는지, 마왕년과 달리 흥미로 가득찼다.


“어이, 보라 돼지년. 네 년도 준비됐나?”


“흐응~ 용사님께서 어떤 재밌는 장난을 치실까?”


“바로 이거다.”


투우우욱ㅡ!

 

말을 마치는 동시에 탁상 위로 무언가를 던진 이 몸.


“…”


“…”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탁상 위에 떨어진 물건에 시선을 향한 두 마리의 계집년들.


“…용사여?”


“흐응, 이게 재밌는 장난이구나.”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침음을 삼키며 물건에 눈을 때지 못했다.


그 물건이 무엇인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태니까.


또한, 앞으로도 눈을 때지 못 할 것이다.


그 물건으로 무엇을 할 지 알게 된다면 말이지.


“…용사여, 이건 총…이지 않느냐?”


“지금부터 재밌는 장난을 시작 하겠다.”


그렇다.


이 몸이 준비한 물건은 다름아닌 마력 권총.


총 여섯 발의 마력 탄약을 적재할 수 있는, 요즘 신세대 모험가라면 하나 씩 구비하고 있는 그런 마력 권총이다.


“룰은 간단하다.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이 권총을 쏘기만 하면 된다…단, 자신의 뚝배기에 말이지.”


“용사여, 룰이고 지랄이고 저 권총은 말이다…”


“말 끊지말도록. 이어서 설명하자면, 재미를 위해 6개의 약실 중 2발의 탄약을 장전해놨다. 즉 1/3 확률로 뒤진다는 뜻이지.”


“아니, 1/3이 중요한게 아니라 저 권총은…”


“여우년, 한 번만 더 맥을 끊으면 네 년의 대가리에 두 발 다 먹이겠다.”


“…”


그렇게, 눈치없이 계속해서 꼽사리끼는 마왕년을 여물게 만든 이 몸.


동공에 지진이라도 난 듯 오돌오돌떠는 마왕년을 보니, 가슴 한 켠에 연민감이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모름지기 용사가 될 자라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과감해 질 필요가 있으니까.


…설령,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거는 일이라도 말이지.


“자, 어떤가? 이 정도면 룰은 이해했을거고 한 순간의 여흥으로 재밌지 않겠는가.”


“…우후훗!”


이 몸의 설명을 끝으로 나즈막한 웃음소리를 내는 당대표년.


자신이 거물임을 증명하고자 하는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선보였다.


“상상도 못했어. 목숨을 건 장난이라니…그런데 말이야, 고작 흥미롭다는 이유 하나로 날 끌어들이기엔 부족한걸? 거는거라도 없어?”


“물론이지. 유희에 내기가 없으면 안 되는 법이니까.”


“후후훗…! 그럼, 당신의 패를 제시하겠어?”


“네 년이 이기면 이 몸의 자유권을 양도하겠다.”


“흐흥~ 자유권을 양도한다…그 말은 즉슨…”


“네 년의 노예가 되겠다. 죽이되던 빵이되던 편하게 부려먹는 그런 노예가 말이다.”


그렇다. 


이 얼마나 매혹적인 제안인가?


자타공인 대륙 최강이자 창세 이래, 가장 위대한 존재인 이 몸을 노예로 만들 기회라니.


자신의 의중에 따라 이런짓 저런짓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권한이 상품이라니.


이는, 그 누구라도 솔깃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당대표 년의 콧 구멍이 은연히 벌렁거리는 것 처럼 말이다.


“네 년, 이 몸에 대해 아는게 있다면 당연히 이 몸의 무력도 잘 알고 있겠지?”


“물론이야. 대륙 전체 통틀어서 당신을 막을 존재따윈 없잖아.”


“잘 아는군. 그런 이 몸을 노예로 부린다는 건…네 년의 미래에 꽃 길이 되고도 넘칠텐데 말이야.”


“우후훗! 그렇겠네,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네.”


“물론, 이것으로 네 년의 성에 찰 리 없으니…한 가지 더 걸도록하겠다.”


“흐응~ 들어보도록 할까나?”


“저기 넋 나간 여우년 역시 상품으로 걸겠다.”


“저 여우 아가씨를?”


“보기와 달리 처녀니까, 네 년의 가위치기용 오나홀로 써먹기에 좋을거다.”


이것 또한 그렇다.


이 몸과 마왕년은 ‘왕위 복권’ 이라는 목표를 안고 한 배에 올라탄 사이.


즉, 운명 공동체나 다름없는 사이다.


배가 가라앉을 때 선장 역시 배와 함께 운명을 하듯, 마왕년 역시 이 몸이 노예가 될 운명이라면 같이 노예가 되어야한다.


그것이 파트너니까.


“…용사여? 짐을 왜 상품으로 거는게냐? 아니, 짐을 상품으로 거는 건 둘 째 치더라도 저 권총은…”


“아가리 여물어라.”


“…”


“…본론을 정리하자면, 네 년이 거부 할 수 없는 제안이라 생각하는데 안 그런가?”


“흐흐흥~ 나쁘지 않네? 저 아가씨는 그러려니해도 당신이 내 노예가 된다는 조건이면 거부할 수 없지.”


재대로 걸려들었다.


안타깝게도 1+1 으로 제시한 마왕년의 처녀는 당대표년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지만, 뭐 어떤가?


저 년을 판에 끌여들었으니 그만이다.


“좋다, 바로 시작하겠다.”


그렇게, 시작을 알리는 구령과 함께 총을 집어든 이 몸.


철컥ㅡ!


적막이 흐르는 장내 속에서 좌측 관자놀이에 총구를 갖대 대고선,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피부에서 와닿는 묵직한 쇠의 차가움과 벌써부터 매캐함이 감도는 화약냄새를 고스란히 느끼며.


“후우…”


일 말의 망설임 없이 곧 바로…


타아아아앙ㅡ!


.

.

.


“…”


“…”


“…”


작은 불꽃이 번지며 총구에서 발사 된 총알.


노리쇠를 치며 발사 된 총알 한 발은 적막으로 가득 찬 장내를 메아리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용사…여?”


“흠.”


분명, 총알은 재대로 발사 되었을텐데?


“으음.”


영문을 알 수 없다만…




일단 죽진 않았다.


비록, 독한 술을 마신 후 다가온 숙취처럼 골이 깨지게 아프지만


비록, 바닥에 피 웅덩이가 질 정도로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지만


일단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히꺄아아아악!!! 용…용사여!!! ”


그 때, 야단법석을 떨며 이 몸의 곁에 호다닥 달려온 마왕년.


“피…피가!!!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일…일단 지…지혈부터!!!”


꼬리를 바짝 세우며, 패닉 상태에 빠진 모양새가 가뜩이나 사람 골 아파 죽겠는데 더 골 아프게 만들었으니…


“여우년. 호들갑 떨지마라, 용사는 고작 납탄 쪼가리로 뒤지지 않으니까.”


“그…그러게 그런 무…무모한 짓을 왜 하는게냐!!! 게…게다가 그 권총은 자동권총이지 않느냐!!! 무슨 자동권총으로 그런 짓을 하냐 이 말이다!!”


“흐음?”


이 여우년, 방금 뭐라고 한거지?


자동권총이라고?


분명 리볼버를 챙겨왔을텐데?


“…”


그렇게, 마왕년의 아우성을 뒤로 권총을 다시 눈여겨 살펴본 이 몸.


“…잘못 챙겨왔군.”


마왕년이 말한대로 리볼버가 아닌 자동권총임을 인지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또한, 동시에 저 마왕년이 왜 야단법석을 떨었는지도 이해되는 부분이다.


자동권총으로 복불복 내기하는 미친놈은 본 적 없을태니 말이지.


“후우! 뭐, 이래나 저래나 통과했으니 그만이다. 그렇다면…”


투욱ㅡ!


“당대표년, 네 년 차례다.”


“…”


“안 들리는가?”


“…”


“후우! 가뜩이나 피 흘려서 어지러우니 같은 말 반복 시키지마라.”


“…”


이 몸이 친절하게 탁상 앞까지 총을 던져줬건만, 저 보라 돼지년은 왜 그저 가만히 있는건가?


왜 어처구니없다는 낯빛을 띈 채 이 몸의 용안과 피 투성이가 된 권총을 교차로 보기만 하는건가?


방금 전 까지 보이던 여유는 어디로 가고 말이지.


“…”


“혹시나해서 첨언하자면, 총구를 이 쪽으로 돌릴 생각은 버려라. 그 즉시 네 년의 강냉이를 박살낼태니까.”


“…”


이 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리볼버가 아닌 자동권총임을 알았고, 이제 본인 차례가 되었으니 온갖 잡생각에 사로잡혔을거다.


지금 장전 되어있는 한 발의 납탄이 자신의 머리통을 부수지 않을까?


내가 저 미친놈 처럼 총알이 박히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왜 저 녀석의 농간에 넘어간걸까? 그냥 개소리로 치부하고 무시해도 되는데, 무슨 헛바람이 불어 편승 해 버린건가?


…같은 생각들로 말이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까오에 사로잡혀 흐린 판단을 한 본인 잘못이지.


“10초 주겠다. 10초 내로 쏘지않으면, 네 년의 패배로 간주하마.”


“…시끄러워. 지금 할태니까.”


결국, 빠져나갈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총을 든 선택을 한 당대표년.


“…”


이윽고, 여전히 열기가 서려있는 권총을 관자놀이에 갖다댔다.


“…하아.”


희미하게 들리는 신음성과 함께.


긴장감으로 물든 숨소리와 함께.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는 긴장감과 함께.


그리고…





타아아앙ㅡ!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총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