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토눌라의 난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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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트릴랑의 결심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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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제자와 답답한 스승 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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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자, 산트릴랑이 일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뭔가 타는 냄새가 사방팔방에 진동하고, 여자들이 한데 모여 통곡하는 소리도 울려퍼졌다. 그리고 옆에는 죈노비스의 코 고는 소리가 그에 질세라 크게 진동하였다.


"죈노비스! 밖에 소란이 일기라도 한 것 같구나. 어서 일어나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자!"


산트릴랑은 제자를 깨운 다음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벽돌을 높게 쌓아 널찍한 성벽을 만들고 그 안에 차곡차곡 가지런히 배치하며 번쩍이는 장식까지 달았던 건물들과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던 푸르른 정원과 밭은 사라지고, 성벽은 무너진데다 건물들은 그을리고 터져 나가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으며, 정원과 밭이 있던 곳엔 잿더미밖에 없었다. 수녀들이 우는 것은, 그동안 자신들이 살면서 기도하던 곳이 한순간에 폐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산트릴랑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슬피 우는 이들이 안타까워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매들이여. 이게 대체 무슨 사달입니까? 대체 제가 자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스승의 당황스러운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죈노비스는 그 참상을 훑어보고는 한바탕 크게 비웃으며 외쳤다.


"푸하하! 무슨 일이긴 무슨 일이겠소? 저년들이 스승과 나를 죽이려고 한 거요! 스승의 겉옷을 탐낸 수도원장 직함 단 악마 년이 후배 수녀들을 시켜 이 오두막에 불을 질렀지요! 하지만 정의로우신 주님께선 옳은 일을 행하려는 이를 보호하시고, 악한 마음을 품은 자를 징벌하셨으니, 이게 바로 그 결과가 아니겠소? 수도원장을 불러라, 이 버러지들아! 천쪼가리 하나 탐내다가 그동안 모은 보물을 싹 다 잃은 소감을 들어 보자꾸나! 아니다. 그 마녀가 지시 내렸다고 하느님 말씀 어긴 네년들 변명 듣는 것도 괜찮겠구나! 대체 어찌하여 이딴 일을 저질렀느냐? 수녀원장이 다음 수녀원장 자리를 주겠다고 꾀었더냐?"


수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얼굴을 가린 채 통곡만 할 뿐이었다. 베르토눌라가 한 치의 거짓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에는 주변을 다시 한 번 쓱 둘러보더니, 불타버린 예배당 터 앞에 가만히 서 있던 폰다우레아를 발견하고는 다가가 희롱했다.


"이게 누구야?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설파하기 위해 수도자가 되어 놓고는, 수수해야 할 수녀복을 비싼 옷감으로 짜고 장식까지 단 데다가 식탁에는 기름진 음식을 올리고 수도원은 아주 그냥 왕성으로 만들어서 떵떵거리며 살던 탐욕의 여교황 나리 아니신가? 당신, 그렇게 많은 보물을 모아 놓고는 우리 스승님 겉옷을 보고 그것들이 다 쓰레기나 다름없다 해 놓고는, 스승님 겉옷을 감촉 기억하겠다며 빌려 갔었지? 이 수도원을 주님의 낙원처럼 꾸며서 들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국의 좋으심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야. 그래, 어떠한가? 천국이란 이렇게 불 한 번 붙으면 허허벌판이 되는 곳인가? 이딴 잿더미와 무너진 건물, 그리고 갈 곳 잃은 계집들 눈물 짜는 소리로 가득한 광경이 천국의 모습이냔 말이야?"


폰다우레아는 아무 말이 없었다. 베르토눌라는 심통이 나서 늙은 여자의 코끝을 손바닥으로 한 대 치며 외쳤다.


"내 말에 대답을 해라! 귓구멍이 잿더미에 막혔느냐?"


그러자 수녀원장이 눈에는 눈물을, 코에는 코피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아, 내가 보물을 탐하고 향락을 즐긴 것은 탐욕 때문인가? 아니다. 교만 때문이다. 주님과 함께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땅에서 누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참회와 기도, 자선을 멀리하고 육체가 보고 느끼기에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으로 겉모습을 꾸며 감히 천국을 지상에서 재현하려 하였다. 그렇게 내 품에 들어온 것은 불씨 하나로 단 하룻밤만에 불타 없어지는 하찮은 것들이었고, 그들 사이에 진정 성스러운 것을 억지로 끼워 넣으니 주님의 분노를 사 허무만 남고 모두 잃었구나.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그리고 부끄럽도다! 수녀복을 입어 놓고 천당의 문 근처에도 가지 못할 이 영혼이!"


베르토눌라는 당황해서 다시 한 번 늙은 수녀에게 말을 걸려 했다. 그러나 폰다우레아는 광기에 절어 빨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아아! 탐욕은 천당에 가면 해소될 수 있지만, 교만은 지옥불이 아니면 향해서는 안 되니! 이제 와 참회할 가치도 없는 이 오만한 영혼, 오만하게 버린들 누가 눈길을 주랴!!"


붕괴한 예배당 돌벽의 남은 부분 중에 유독 뽀죡하게 부서지고 깎인 벽돌이 하나 있었다. 폰다우레아는 그 벽돌에 머리통을 처박고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실로 끝까지 주 하느님을 외면한 악녀다운 최후였다. 그걸 본 베르토눌라는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다시 스승의 앞에 서서 말했다.


"저 친구, 남은 생애 동안이라도 반성하면서 가진 걸 베풀고 다녔으면 연옥까지는 갈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자살까지 했으니 지옥행 확정이구려. 허헛!"


산트릴랑은 저 뻔뻔한 제자를 보고 양손에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죈노비스야, 내 보따리에 도로 넣어야 할 성스러운 면포는 어디 있니?"


"죽은 자가 쓰던 방에 있소. 헤스티아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그곳과 이 오두막만은 불타지 않았지요. 지금 그것을 가져올 테니 기다리시오."


베르토눌라는 그렇게 대답한 뒤 폰다우레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죽은 노파가 고이 모셔 둔 면포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마법으로 코를 예민하게 만들어서 냄새로 찾으려 해도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베르토눌라는 수녀들 중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자가 슬쩍한 게 틀림없다 여겨 다시 밖으로 나와서는, 그을린 성벽의 나머지 부분이 쪼개지도록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어떤 년이야! 누가 감히 스승님의 면포를 도둑질했느냐!"


그 후 분노한 제자는 즉시 돌풍과도 같은 몸놀림으로 동정녀 수도원의 모든 수녀를 잡아채서는 한곳에 모두 던져 두고, 툴리코기툼을 휘두르며 성스러운 면포를 내놓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윽박질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면포가 없다며 울면서 호소했지만, 베르토눌라는 듣지 않고 전부 죽이려 하였다. 그때였다.


"둑다 하카 무가예! 수나 자레 타쿱반수! 수나 자레 바쿠나!"


산트릴랑이 베르토눌라의 베일을 조르는 기도문을 격양된 목소리로 읊은 것이다. 제자는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다가 툴리코기툼을 떨어뜨리고는 곧 자기 몸뚱이마저도 겨누지 못해 쓰러졌다. 그런데도 스승은 기도문 외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완난 시네 누나! 마카민 다야 카셰! 무툼 다 쿠마 마이다!"


이로 인해 베르토눌라의 머리는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울리면서 머리통과 뒷골 사이가 쭈그러들어 호리병 꼴이 되었다. 제자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하라며 아우성쳤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를 용서하지 않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한바탕 혼을 냈다.


"이 어리석은 제자야! 내가 너에게 성물을 자랑하라고 지시를 내리기라도 했니? 어제 원장님께서 살아 계실 때도 내가 말씀을 드렸었잖아!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가 높아진다고! 그런데 너는 멍청하게도 실없는 농담에 넘어가서 성물을 가지고 해서는 안 될 자랑질을 해서 원장님의 영혼에 질투심을 심고는, 순전히 남을 골탕먹이려는 어이없는 생각만으로 내 말도 무시하면서 그분의 나쁜 마음을 키워냈어! 그리고 그분이 끝내 죄를 지어 우리를 죽이려 했다면, 그 재난을 다스려 가라앉히고 그분께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줘서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했어야지! 넌 충분히 그럴 수 있었고! 그런데 또 남을 괴롭히고 싶어하는 악한 마음에만 눈을 떠 자매님들에게서 집도, 식량도, 속죄할 시간도 모두 앗아갔구나!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어쩔 거야!!"


스승은 이전에 제자가 도적들을 몰살했을 때 이상으로 화를 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간파한 베르토눌라는 눈치를 보며 변명했다.


"원흉... 이라뇨? 난 어제든 오늘이든 마법 좀 쓰면 그깟 천쪼가리야 언제든지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넘겨 준 거고..."


"못 돌려받았잖아!!! 지금도 네가 스스로 찾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을 협박하고!!!"


산트릴랑은 심장 움직이던 힘까지 다해 악을 쓰며 외쳤다. 베르토눌라는 그것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힐 뿐이었다. 그러다 수치를 더 이상 참지 못하여 도리어 스승을 향해 빽 소리질렀다.


"찾으면 될 거 아니오! 오늘 안에 못 찾으면 내가 다시 알피에서 오백 년을 썩어 주리다!"


"안 썩어도 되니까 찾기나 해!"


기가 막힌 스승이 대꾸했다. 베르토눌라는 머리털 여러 가닥을 끊어 자기 자신을 어리게 만든 듯한 형상을 수백 개씩 만들어 낸 뒤, 그들을 모두 사냥개의 모습으로 바꾸고 죽은 수도원장의 몸 냄새를 기억하게 했다. 그러자 사냥개들이 폐허를 샅샅이 뒤지더니, 갑자기 그 중 한 마리가 허물어지지 않은 한쪽 성벽을 향해 컹컹 짖어댔다. 그러자 다른 개들도 몰려와서 떼거지로 짖었다. 베르토눌라가 수상한 느낌을 얻고 요술로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자, 그들이 모두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날아갔고, 베르토눌라는 한곳에 모인 수녀들에게 이렇게 이르고는 곧 그 뒤를 따랐다.


"이봐, 도적년들! 내가 면포를 되찾는 동안 내 스승을 극진히 모시고 말도 제때 먹인다면, 네년들에게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겠다. 혹여 그들 몸에 먼지만한 생채기 하나라도 새로 나 있거든, 모두 지옥행일 줄 알아!"


개들은 수도원에서 3리그 쯤 떨어진 곳에 우뚝 선 바위산과 거기 뚫린 제법 커다란 구멍을 발견하고는, 다시 털가닥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베르토눌라는 그 동굴 안에 면포를 훔친 진짜 도둑이 있음을 확신하고, 크케 한 번 몸을 풀고 쳐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갑자기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서 신속히 돌멩이로 변신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곧 동굴 쪽으로 세 사람이 다가오며 담소를 나누는 게 보였다.


"저번에 얘기했던 수은과 호박과 사향과 레비아탄의 피를 1 : 2 : 1 : 6 비율로 섞은 거 있잖아. 청동 냄비에 넣고 66일을 졸여서 인간에게 먹였더니 물건이 하나 더 생기지 뭐야? 덕분에 즐거웠어."


"어? 내가 만들면 물건이 뱀처럼 길고 가늘어지면서 꿈틀거릴 수 있게 되던데. 난 백랍 냄비로 졸여서 그런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요술을 부려 인간을 기괴한 형태로 바꾸어 타락시킬 궁리를 하는 것이 영락없는 괴물이었다. 베르토눌라는 저들이 면포를 훔친 도둑일지 모른다 생각했고. 그들 중 하나의 말언을 듣고 이를 확신했다.


"그건 그렇고, 모레가 내 아버지 아르카스가 북극성으로 임명된 날이잖아. 마침 내가 어제 성물이 틀림없는 면포를 얻어서 품평회 겸 잔치를 열려고 하는데, 다들 와 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