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 댓글로 쓰다가. 


내가 생각하기에 근육녀 (페티쉬) 소설에서 근육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는 한 세 가지 정도가 있는거 같아서,  그걸 정리해 봄. 


먼저, 페티시물의 기본에 충실한 방법은, 근육녀 캐릭터를 단순하게 성적 대상 + 알파 정도로만 취급하는 방법이야.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는 남캐가 근육녀를 만나거나 관찰하고, 결국 이야기의 절정 부분에서 떡을 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가 되. 


예)  옆집에 이사온 근육녀 -- 옆집에 새로 누군가 이사 왔다. 맨날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화가나서 찾아가 봤더니, 역기를 들고 있던 여자네. 근데 세상에 여자가 그렇게 몸에 근육이 많아도 되는건가? 쩍쩍 갈리진 복근에 흉악한 이두근. 허걱 가슴까지 저렇게 빵빵하면 반칙 아니냐. 네? 잠깐 들어오라고요? 아니 그러시면 안되요. 악 이여자 힘 왤케 쎄. 퍽 퍽 퍽. 아, 누나 넘 조아.  끝.


이야기 플롯은 사실 크게 달라질 게 없음.  근육녀를 새로 만나거나. 아니면 기존에 알고 지나던 캐릭터가 근육녀가 되어가는 것을 관찰한 다음. 여캐의 근육과 힘을 찬미하고 떡을 치는 이야기임. 그러므로 엔딩은 남캐가 여캐랑 잘되서 계속 떡치던지, 구운지몽 같은 하룻밤 이후에 여캐가 홀연히 사라지던지, 여캐가 남캐한테 실망해서 떠나던지 뭐 이정도로 끝날 수 밖에 없을 것. 


매우 단순한 플롯이고 반복된 이야기지만 이게 페티쉬 물의 정수이기 때문에, 페티쉬물에서는 사실 이거이상 쓸 필요가 없음.  스킨과 악세사리를 바꿔서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서 맛보면 되는거. 여캐에게 성적인 대상이상의 +알파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주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얼마나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 같음.


두번째로는 이거보다 좀 깊어지면 근육녀 캐릭터 자체에 대한 탐구를 더해 볼 수가 있어. 


성적 대상화 이상으로 근육녀 캐릭터에게 스토리를 주고, 그 스토리를 좀더 발전 시켜 보는거. 


아래 댓글에도 썼지만 이경우 스토리의 기본 아키타잎은 슈퍼히어로 물 처럼 될거야. 왜냐하면 중심이 되는 사건은 주인공 근육녀캐가 근육질의 몸을 가지게 되면서 남들보다 강한 힘, 혹은 남들이 부러워하는/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신체를 가지는 사건이거든. 


그럼 그 사건을 중심으로 전후에 주인공 캐릭터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고, 무엇이 달라지고, 최종적으로 주인공 캐는 자기 신체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어떤 마무리를 짓게 되는가이런 이야기를 쓰는 거임. 그러니 갑자기 슈퍼파워를 얻은 슈퍼히어로 물의 이야기 처럼 쓰여지게 되는거. 특히 근육녀캐는 남몰래 힘이 세진게 아니라, 외형적으로 강해진게 티가 확 나니까 (그리고 그게 핵심이니까) 그 부분이 어떻게 처리되는가의 이야기 일 것임. 


예)  얼굴천재 짝남은 근육녀를 싫어합니까? -- 잘생긴 1년 선배 오빠를 좋아하던 주인공 나는 그 오빠랑 가까워 지려고 같은 헬스장을 끊음. 근데 왠걸 운동 시작한지 몇달만에 무시무시한 근성장을 찍음.  하지만 정작 그 오빠는 갑자기 시선을 외면하기 시작. 오빠랑 친구랑 대화하는데, "야 넌 배에 왕자 있는 여자 좋냐?" 이런 소리가 들리는데. 반면 나한테 관심없던 부잣집 아들 동기놈이 배꼽티 입은 모습 보더니 갑자기 들이대면서 같이 여행을 가자네? 


그럼 엔딩은 어떻게 되나? 주인공 캐릭터가 자신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주변을 어떻게 변화시키냐 하는데 따라 다름. 위의 예시 작품 아이디어에서는, 여자한테 열등감 느끼는 선배를 차버리고 부잣집 남자애랑 맺어지는 엔딩. 사실 선배도 근육 애호가였는데 사회적 시선이 부끄러워서 모르는척 하는걸 참교육 시켰다 엔딩. 이남자 저남자 다 따먹고 역하렘 만들겠다 엔딩.  교내 근육녀 동호회 왕언니로 등극하여 백합 엔딩. 같은 걸 만들 수 있겠음. 


이 이야기에서 쓰기 어려운 부분은 아무래도 주인공이 "여캐"다 보니까 남자 작가로서는 혹은 남자 독자로서는 여캐의 심정을 잘 파악하고 묘사하거나, 거기에 이입해서 스토리를 따라가기 쉽지 않음.  (그렇다고 여자 작가가 쓴 페티시 작품은 반대로 남성 독자들을 꼴리게 하기가 쉽지 않음.)  남자작가건 여자작가건 페티시로 꼴림 + 캐릭터의 탐구를 동시에 만족하기는 쉽지 않을 것. 


물론 잘쓰면 명작임. 내가 좋아하는 것중에 outgrowing이라고 dracowhip이 삽화 그린 만화 있는데, 남자쪽에서 여자 좀 무시하던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 출장간 사이에 여자가 근육녀 되어서 남자 참교육 시키고 차버리는 내용. 


마지막 세번째로는 근육녀 캐릭터를 일종의 (치트)속성을 지닌 플롯 디바이스로 넣고, 작가가 진행하고 싶은 스토리의 도구로 써먹는 방법임. 


즉, 근육녀의 성적 매력과 초인적인 힘은 캐릭터에게 부여된 속성이라는 것임. 그 속성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속성을 사용해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사용하게 됨. 이렇게 보면 결국 다른 장르소설에서의 영웅적인 주인공의 이야기와 딱히 다를 것이 없는 플롯이 되지만, 그 풀어나가는 소재가 근육녀라는 점이 어필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임.


예) 재벌집의 막내 근육 며느리 -- 근육녀 집안은 악날한 재벌가의 비인간적인 처사때문에 망하고 부모님 돌아가심. 주인공녀는 위험한 임상실험에 지원했다가 근육녀가 되어버림. 주인공녀는 반양아치로 살던 재벌가 3남을 납치한다음 근육의 힘과 성적 매력으로 조교시켜서 자기 노예로 만든 다음, 그 집안에 결혼을 선포해버림.  이후 3남의 소유이던 회사와 자본으로 부터 출발해서 재벌가를 내부에서 부터 무너뜨리기 시작하는데, 근육녀의 물리적 힘과 성적 매력은 그 싸움을 이기기에 충분한가?


이쯤되면 완전 장르 소설이 되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임. 위의 예제 작품은 그냥 재벌집 막내아들 소설 에서 회귀/빙의/미래시 라는 치트 요소를 근육녀의 물리력과 성적 매력으로 바꾼거에 불과함. 근데도 뭔가 새로운 흥미 요소가 생겨나지 않음?


엔딩은? 결국 장르 소설의 엔딩을 따라갈 것임. 복수를 끝나치던지. 세계를 구하는 퀘스트를 끝마치던지. 마왕이랑 결혼하던지. 등등. 근육녀속성 자체는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결말을 따로 줄 필요는 없음.


마찬가지로 이런것도 쓰기 힘든게 여기서 부터는 장르 소설의 경계를 넘게 되었음. 그러므로 잘짠 장르 소설 쓰는게 어려운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쓰기가 되고, 그러면서 근육녀요소를 잘 섞어야 근육녀 물이 될것임.  (근데 장르 소설을 진짜로 잘 쓰면 근육녀 요소 없이 요즘 유행하는 요소들 섞어서 연재하는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더 얻겠지?)


이 3개는 사실 극단적으로 나눈거고 실제로 우리가 읽는 건 이것들이 조금씩 섞인 거임. 내 생각에 근육녀 페티시는 보통은 1번인데, 1번만 너무 반복하면 지겨우니까 2번/3번이 조금씩 섞인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