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길을 찾고 있을 거야. 목 위에 머리가 계속 붙어있길 원한다면 읽어. 절대 글자에서 눈 떼지마. 살고 싶으면 곁눈질도 하지 마. 네가 아직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쫓기고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야. 계속 읽어. 다른 곳 보지 마. 움직이지 말고 여기서 일단 이것부터 다 읽어. 여기가 그나마 안전하니까. 네가 다 읽을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고 장담할게.


1.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수는 없을 거야.

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부터 내가 만들어놓은 방해물들은 놈들이 다 치워버리고 없다는 뜻이니까. 통로든, 문이든 죄다 자기들이 다니기 편하게 뒤틀어놓고 먹잇감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바꿔놨겠지. 넌 연구소인 줄 알고 뭐라도 건지려고 들어왔겠지만, 사실 거미줄에 걸린 거나 마찬가지야. 초월적인 육감을 지닌 게 아니라면 네 유일한 희망은 내가 올 때까지 살아남는 거야. 난 일주일에 한 번씩 시설 전체를 뒤지니까 그때 널 발견하면 데리고 빠져나갈 수 있어. 그전까지는 내가 밑에 적어둔 대로 행동해.


2. 불 꺼.

밝은 곳에 있으면 죽기 딱 좋아. 그래서 이곳 말고 다른 곳에는 조명이 전혀 없을 거야. 방이든, 복도든. 네가 놈들을 볼 수 있으면 놈들도 너를 볼 수 있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 번 긴가민가했을 거야.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겠지. 잘못 봤다고 생각해서 아직까진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만, 이젠 아니야. 가면 갈수록 놈들은 더 과감하게 나타날 거고, 넌 의심하기 시작할 거야. 결국 너도 네가 보는 게 뭔지 명확히 인식하게 되겠지. 그러면 놈들도 너를 볼 수 있어. 네가 갈 곳에 빛은 없겠지만, 그래도 눈을 감아.


3. 당장 귀를 막아.

뭐가 되었든 좋아. 귓구멍에 들어갈 수 있으면 아무거나 쑤셔 넣어. 제일 좋은 건 이어폰 끼고 음악을 크게 트는 거야. 덥스텝이든 하우스든 비트 좋은 걸로 볼륨 높여서 들어. 네가 놈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놈들도 네가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지금부터는 뒤에서 발걸음 소리 같은 게 들리면 멈춰서 숨죽이는 게 아니라, 귀를 더 힘껏 막거나 음악 볼륨을 올리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가 놈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상 네가 얼마나 시끄럽게 굴든 놈들도 너를 들을 수 없어. 배터리가 충분하길 바랄게.


4. 할 수 있다면 코도 막아.

여기 들어온 뒤로 줄곧 썩은내가 코끝에 맴돌았을 거야. 앞으로 점점 심해질 테니까 토하지만 마. 토할 정도로 냄새가 심하다면 놈들이 아주 가까이 있는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놈들을 보지만 않으면 놈들도 널 볼 수 없어. 네가 놈들이 내는 소리를 듣지만 않으면 네가 뛰어다녀도 어딨는지 모를 거야. 조심할 부분은 그거지. 놈들도 네 냄새는 맡을 수 있다는 거.


5. 네 흔적을 남기지 마.

서로 아주 가까이 있을 때 네가 악취를 참지 못하고 속에 든 걸 게워낸다든지 해서 흔적을 남기면 놈들도 자기네 흔적을 남기기 시작할 거야. 놈들이 남긴 흔적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위험해. 나무줄기에 새겨진 발톱 자국과 먹다 남긴 시체가 보이면 그 근처에 육식동물이 있다는 걸 아주 쉽게 추론할 수 있겠지. 놈들의 흔적을 보기 시작하면 너도 놈들이 뭔지 아주 쉽게 알아버릴 거야. 장담하는데, 뭐가 널 쫓고 있는지 모르는 게 나아. 같은 이유로 배변을 봤다면, 그것도 주도면밀하게 처리하길 바래. 가장 좋은 건 네가 어떤 식으로든 가지고 다니는 거야.


6. 아무 말도 하지 마.

혼잣말도 하지 마. 네가 놈들한테 말을 걸기 시작하면 놈들도 너한테 말을 걸 거야. 그럼 끝난 거나 마찬가지야. 이어폰이나 귀마개도 이때는 도움이 되지 않아. 가까이 있으면 놈들의 목소리가 네 머릿속에 바로 울려 퍼질 테니까. 그럼 놈들도 네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어.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사냥감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전부 알게 되겠지. 네가 알려줄 거거든. 원하지 않아도 네가 하는 절망적인 생각과 그 이유를 놈들도 모조리 들을 거야.


7. 멍청한 짓 하지 마.

네가 얼마나 똑똑한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놈들은 아주 영리해. 절대 놈들과 놀아주지 마. 도망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해서는 안돼. 특히, 속이려고 하지 마. 뭐가 되었든 네가 하는 행동은 놈들도 너한테 똑같이 해줄 수 있어. 차이가 있다면 놈들이 훨씬 더 잘 한다는 거지. 유인하는 것, 미끼를 던지는 것, 전부 끝이 좋지 않을 거야. 넌 지금도 사냥 당하는 중이니까 놈들이 더 교묘하고 잔혹하게 굴어야 할 구실을 주지 마.


8. 협상은 통하지 않아.

혹시 몰라서 써두는데, 놈들을 달래기 위한 공물 같은 건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놈들이 원하는 건 네가 맨정신으로 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여기에 칼, 붕대, 진통제를 챙겨왔을 것 같지도 않고. 네가 무언가를 준다면 놈들도 너한테 선물을 줄 수 있어. 원하지 않는 걸 받았다면 놈들도 똑같이 네가 원치 않는 걸 줄 거야. 설마 너한테 거부권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9. 넌 갇힌 거야.

결론을 말해주자면, 너한테는 눈 감고 귀 막고 내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버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충분히 용감하다면 나가는 길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놈들은 영리하거든. 네 입에서 비명이 나오게 하거나 눈을 뜨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할 함정들을 여러 곳에 설치해뒀을 거야. 주기적으로 들러서 그걸 다 깨부수는 게 내 일인데, 내가 다녀간 뒤로 놈들이 그걸 얼마나 빠르게 다시 구축하는지는 알아본 적이 없어. 


10. 손과 입을 조심해.

움직일 때 가장 좋은 자세는 양손으로 네 입을 가리고 머리를 숙이는 거야. 물론 네 머리가 놈들에게 부딪힐 수도 있겠지. 반대급부로 놈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네 몸에 머리를 문지르는 게 전부일 거야. 그리고 절대 네 입술이 다른 무언가에 닿게 하지 마. 인간은 대개 놈들에게 한 입 거리거든.


11. 여기서 가만히 있지 마.

네가 어딨는지 찾지 못하면 놈들은 네가 확실히 없는 곳을 폐쇄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거야. 네가 갈 수 있는 곳은 점점 줄어들 거고, 결국 서로가 코앞에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면서 놈들이 널 만질 수 없기만 바라는 상황까지 가겠지. 그 체취와 그 불길함. 네가 눈 감고 입 가린 채로 그걸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생각해보라고. 너는 네가 움직이는 만큼 자유로울 수 있어.


12. 느리게 움직여.

놈들이 영리하다고 했지. 네가 함정을 파거나 덫을 놓은 적이 없더라도 놈들은 사람이 지나갈 법한 길 군데군데 꼬챙이나 바늘을 박아놨을 거야. 무심코 걸어 다니다가 피투성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아주 느리게 움직여야 해. 다시 말하는데, 네가 놈들을 겨냥해서 함정을 만드는 건 안 돼. 널 잡으려고 만든 함정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로 허술한 거야.


13. 놈들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

내가 말해준 것 이상으로 놈들을 더 알려고 하지 마. 넌 지금도 이미 살아서 나가기 위험할 정도로 많이 알고 있어. 네가 놈들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으니, 놈들도 너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겠지. 날 원망하지는 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면 서서히 공포에 질린 채로 멍청한 짓만 골라서 하다가 죽어갔을 테니까.


14. 내가 널 발견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그냥 널 짐짝처럼 끌고 나갈 거야. 나라고 여기 써놓은 규칙들의 예외가 아니거든. 그러니까 무언가가 네 어깨를 두드리고 너한테 말을 건다면 그건 내가 아니야. 갑자기 눈커풀 너머로 밝은 빛이 보인다고 해도 네가 밖에 나왔다는 보장은 없어. 발걸음 소리가 아무리 사람처럼 들려도, 네 귓가에 속삭이는 말주변이 아무리 유려해도 절대 속지 마. 누군가 네 입을 가린 손을 강제로 떼고 입에 음식을 쑤셔넣을 때까지 절대 눈을 뜨지 마.


15. 다른 답이 하나 더 있어.

지금쯤이면 네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총을 같이 놔둔 이유. 나간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네가 놈들의 거처에 들어왔으니 이제 놈들도 네 집에 들어갈 수 있어. 네가 혼자 탈출했든 나한테 발견되었든 해서 돌아간다고 해도 놈들이 언젠가는 네 집을 찾아내겠지. 물론 네가 보지만 않으면 놈들은 장님이고, 듣지만 않으면 귀머거리에 불과해. 하지만 네가 장님에 귀머거리인 채로 잘도 이곳을 탈출했다면 놈들도 그러지 말란 법이 있겠어?


행운을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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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암호 같은 건 없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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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날 때 와서 다른 것도 읽어주시면 아주아주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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