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녹음기를 한 번 작동시켜보았다.


 ->그러자 녹음기에서 천천히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네가 이걸 듣고 있다면 넌 지금 이 이상한 세계에 있다는 뜻이겠지. 지하철에서 쪽잠을 청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이곳일 거야.


 이 역의 이름은 '구만역'이야.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대체 물리 법칙이 어떻게 된 곳인지 돌아다니다 보면 꽤 넓은 곳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난 여기에 먼저 갇혔다 간신히 빠져나간 사람이야. 이 녹음기는 혹시나 다음에 이곳에 올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거니까 믿어도 돼.


 이곳을 나가는 법은 간단해. 네가 눈을 뜨면 바로 이 열차의 어느 한 자리에 앉아있을 거야. 그 자리를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라. 이유는 몰라도 돌아갈 때 그 자리에 앉아야 돌아갈 수 있는 것 같으니까.


 네가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간단해. 열차 밖으로 나서서 이 구만역 어딘가에 있을 붉은 열차 표를 얻고 돌아오면 되는 거야.


 우선 꽤 넓은 곳이지만 게으름 피우지 않고, 내가 말하는 것들 잘 준수해라. 그러면 살아나갈 수 있을 거야.


 아, 그리고 혹시 여분의 배터리가 있다면 이 녹음기에 호환이 되는지 확인하고 호환되면 한 번 교체해 줘. 녹음기 연비가 꽤 좋은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배터리 교체 없이 천년만년 작동되지는 않거든.


 열차 밖으로 나서면 높은 시계탑에서 종소리가 한 번 크게 들릴 텐데 이게 바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는 뜻이야.


 네가 시계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왔다고 해도 시간을 알 수는 없어. 그것들은 이곳에서 작동이 안 되거든. 이곳에서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침도, 분침도 없는 커다란 시계탑 뿐이야. 시계탑에서 한 시간마다 종소리가 들리거든.


 일단 지하는 절대 내려가지 마라. 지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안개로 가득해.


 이 안개가 뭔지 궁금해서 안개 속으로 손가락을 슬쩍 넣어봤는데...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더군. 이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다가가지 않는 게 좋아.


 역내에 있는 장갑과 방독면 같은 걸 찾아 써서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게, 지하로 통하는 계단에 웬 방독면과 장갑을 쓴 시체가 있더라. 


 아마 그런 생각을 하고 시도하다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멍청이의 결말이겠지. 깨진 방독면 고글 속에서 보이는 두 눈만 봐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실감이 가더군.


 아무튼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마. 이건 경고야.


 참고로 푸드코트나 시계탑 같은 데도 웬만하면 안 가는 게 좋아. 거기서 열차 표 같은 걸 구할 수는 없어. 오히려 위험한 녀석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특히 시계탑에 문득 비치는 거인의 그림자 같은 걸 보면 꽤 커다란 존재가 시계탑을 관리하는 것 같은데 시계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죄다 피와 살점으로 떡칠되어 있는 걸 보면... 안 올라가는 게 좋을 거야.


 역 내부에는 함정이 많이 깔려 있는데 곰덫부터 올가미 같은 함정까지 다양하게 있어. 당연히 조심하면서 다녀야 해. 밟으면 함정 작동하는 석판 밟지 않게 바닥 잘 보고 다니고.


 특히 낙엽이 두껍게 깔린 곳을 지날 때에는 더욱 조심해라. 잘못해서 숨겨져 있던 올가미나 곰덫에 걸리기라도 하면 넌 끝이야.


 그리고 만약에 대비해서 곰덫은 하나에서 두 개 정도는 챙겨 둬. 그게 네 목숨을 구할 수도 있으니까.


 가끔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키만 3m 정도 되는 놈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푸른 정복을 입고 완장을 차고 있는 놈인데 잘못 걸리면 몽둥이로 맞아 죽는다.


 꽤 발이 빠르니까 걸리면 도망치면서 곰덫을 써. 시각과 지능이 그닥 좋지는 않아서 잘 걸릴 거야. 다만 귀가 좀 예민한 편이니까 불필요하게 큰 소리 내지 않게 조심해. 역 내부를 잘 둘러보면 곳곳에 큰 소리가 날 만한 물건들이 좀 있어.


 놈이 근처에 있으면 규칙적으로 이빨 딱딱거리는 소리 들리니까 잘 참고하고.


 아, 그리고 까마귀들 말은 되도록 안 믿는 게 좋아. 너도 까마귀가 어떤 존재인지는 너도 잘 알 테지. 네가 쓰러지면 바로 달려들어서 뼈와 머리카락만 빼고 싹 다 뜯어먹을 놈들이야.


 그 간사한 거짓말쟁이들이 이 녹음기를 믿지 말라든지, 시계탑에 열차 표가 있다든지 하면서 아주 지랄해댈 텐데 아무리 솔깃해도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해라.


 녀석들에게는 그냥 이방인에 대한 짖궂은 장난일 뿐이겠지만 우리는 그거 하나 때문에 목숨이 날아간다.


 다만, 거울이나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물건이 있다면 드러나지 않게 잘 숨겨두거나 그냥 까마귀들한테 던져 줘. 잘못해서 반짝이는 것에 환장하는 그것에게 쫓기는 것보다는 몇 배는 더 나을 거야.


 나도 만난 적이 없어서 그런 게 뭔지는 잘 몰라. 다만, 까마귀들이 나 몰래 하는 대화를 엿들어보니까 한 번 걸리면 반짝이는 걸 던져줘도 계속 쫓아온다는 것 정도는 확실해.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붉은 열차 표는 커다란 역무원 목각인형이 가지고 있어. 만약 역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는 역무원 인형을 만나게 된다면 역장은 열차 표를 대가로 뭔가를 요구할 거야.


 역무원 인형이 열차 표를 대가로 받는 건 녹슨 동전이나 탄산음료, 사람의 눈이야. 웬만하면 자판기 같은 데에서 콜라나 동전 찾아서 교환하는 게 더 나을 거다. 역무원 인형이 피로 떡칠된 녹슨 눈알 파개 들고 있는 걸 보면 곱게 뽑아 가져가지는 않을 것 같거든.


 그렇게 열차 표를 얻으면 서둘러 열차로 돌아가서 네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그러면 열차가 출발할 거야.


 마지막으로... 만약 시계탑에서 종소리가 정확히 열한 번 들린다면 서둘러. 밤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야. 만약 밤이 된다면 넌 절대 살아남지 못해.


 열차는 종이 열두 번 울리자마자 안개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거야. 그리고 곧 지하에서 올라온 검은 안개가 들이닥치겠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냥 이전에 여기로 왔던 사람이 남긴 걸 통해 알아낸 거야.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중요한 건 네가 여기를 나가는 거야.


 자, 그럼 행운을 빌게.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