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음식을 계속해서 먹는 것은 상당히 질리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맛있든, 또는 생소하든 간에 계속 먹다보면 언젠가는 질리고 만다.

 웹소설 작가로서 컵라면이나 남은 잔반만 먹는 일상에 충분히 적응했지만, 나는 최소한 컵라면 종류를 바꾸기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음식을 이틀 연속으로 먹은 나는 그 음식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이틀 내내, 세 끼를 전부 다 같은 음식으로 때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건 내가 그 음식의 애호가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음식이 내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을 섞어 말하자면, 양조절에 실패해 그 음식이 상당히 남았던 탓도 있었다.

 어찌보면 자업자득이었지만, 묘사에 도움이 되긴 했으니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고 나는 정신승리를 했다.

 어차피 음식도 다 비웠으니 더 먹을 필요도 없었다는 점이 가장 기뻤지만.


 탁, 탁. 나는 키보드를 두들겼다. 글이 잠시 막힌 사이, 커서는 반짝이고, 문단들의 가장 위 쪽에 쓰여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 소설의 제목이었다.

 <살인자의 일상>. 내가 1년 전부터 써오기 시작한 소설이었다. 자랑을 해보자면 생생한 묘사가 가장 특징적이고 뛰어난 장점이라고 칭찬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 칭찬에 힘잆어 묘사를 주력으로 밀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노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그 반증이 조금 전의 정신승리였다. 썩 미덥지 않은 증거긴 했지만 말이다.


 제목이 <살인자의 일상>인 이유는 내용이 정말로 살인자의 일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일상은 흥미를 끌 수가 없었으니까, 어딘가가 상당히 뒤틀려 있는 일상이 주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혹은 그 음식의 재료를 구하는 방법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건 항상 살인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그것들을 돈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것을 당연한 일상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그건 주인공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살인자의 일상>이 탄생했다.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소설을 쓸 때는 쓰는 나또한 몰입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인공이 좋아하는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정해두었다.


 따르릉-!

 아침식사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오늘은 오랜만에 있는 가족들과의 식사였기 때문에 알람을 맞춰놓았다. 식사 시간에 늦으면 다 함께 먹지 못하니까.

 나는 방문을 나서 식탁에 앉았다. 식탁에는 이미 부모님이 앉아계셨고, 식탁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국이 있었다.

 그런데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동생은 나보다 항상 일찍 일어나고, 일찍 준비를 맞춰놓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이미 나왔어야 했다.

 나는 국에 있는 먹음직스러운 고기들에 시선을 주었다. 나는 우리 집 냉장고에 국을 끓일 만한 고기가 많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요즘 엽기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 달 전 살인사건과 관련된 연쇄 살인사건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은, 피해자들의 시신에 살이 없다는 것이며....향각에서는 식인의 가능성도 보인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뉴스가 시끄러웠다. 이미 틀어져 있던 텔레비전에서 기분 나쁜 내용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건 짜증이났다. 동시에 속이 메스꺼웠다.

 끼익-.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동생의 꼴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이번 만큼은 늦잠을 자버린 것 같았다.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는 데, 그 이유는 질린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