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존의 장례식을 치뤄줬다.

자고 있던 로키도 친구의 부고를 듣고는 성급히 왔다.

켄은 곰같은 덩치와는 상반되게 엄청나게 울었다.

하지만 존의 부인보다 눈물을 흘리지는 못했을거다.

늦둥이 네 살배기 딸, 그레이스는 뭔지도 모르고 처음엔 언제나처럼 헤벌레 웃고 있다가 어린 나이임에도 주변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그 귀여운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가신다.

나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새 경비원을 하나 뽑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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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상황이 이렇게되자 마을 회의에서도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오늘부턴 세 명의 건장한 성인 남성이 초소를 지킬 것이다.

아, 초소가 아니라 초소에서 가까운 2층 짜리 건축물이지.

그렇게 사람이 처참히 죽은 곳에서 밤을 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말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생겼을거다.

또 근 20년 간, 사용한 이가 없다고 들었다.

그러니 이름 또한 당연스레 없기에 '건축물'이라 부른 것이다. 

뭐, 이젠 초소라고 불리겠지만.

과연 내부는 먼지가 스스로 복제라도 한 듯 수북이 쌓여있다.

반나절 동안 치우고, 치우고, 채우고, 채우고...

시발, 지붕도 평평해서 치워야 했다.

이제 허무하게 사람이 죽는 일은 없을것이다.

달이 태양을 밀어내고 오늘도 우리 마을을 어둡게 물들인다.

20대 친구 두 명이 조금 늦게 왔다.

'새로운 초소' 지붕에서 이야기를 해보니 '올리버'는 어릴 때 부터 경비원 일을 하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동경심으로 경비원을 하게 됬지.

이런 거지같은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했지만.

다른 한 명은 제콥? 제이콥? 좀 소심한 성격인 것 같다.

밤은 깊어가고 내 졸음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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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4시간 쯤 지났을까.

달은 밝고 따듯한 태양과는 달리 서늘하면서도 음산한 푸른 빛을 마을 모두에게 비춘다.

태양, 달 하면 모두 서로 상반된다고 생각하지만 둘 다 모두에게 평등하고 아무런 대가없이 빛을 베풀어 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어떻게든, 언제라도 보고, 듣고, 느낀다면 그거야 말로 가장 평등하고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퍽-

?

죽음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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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바다에서 무언가 걸어나온다.

아니, '걷는다'는 알맞지 않은거 같다.

기어온다, 헤엄친다의 중간일거다.

분명 두 발만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런 느낌이다.

마치 아직 걸음을 떼지 못한 아이처럼 어색하게 걷는다.

하지만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며, 밤의 음산한 까지 더해진 끔찍한 괴물임에는 틀림없다.

이 세상에서 부정당한 존재인 듯 고통스럽게 제 몸을 자주 뒤틀며 움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일행과 13? 15?m 쯤 떨어져 있다.

나는 졸고있는 올리버, 제콥(내가 그렇게 부르기로 정했다)을 깨운 뒤 녀석을 가르킨다.

올리버, 제콥은 아무런 행동도 없다.

공포가 그들을 얼린 듯 경직시켰다.

나는 녀석을 주시하며 당장이라도 사투를 벌일 준비를 한다.

그러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라는 기관이라 생각될 뿐, 눈이 아닐지도 모른다.

'눈'은 밤의 칠흑색을 가진 사람 같은 몸뚱이의 두 쇄골(사람으로 치면)사이 중간에 박혀있다. 

마치 어두운 바다의 심연을 바라보는 듯 하다

그 위로는 머리의 형상을 띄고 있지만 그것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이 세계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생물의 형상을 따라한 것처럼 자신을 인간의 몸에 융합한 형체이다.

저것이 자신의 친구를 죽였다고 생각하니 공포가 분노로 고스란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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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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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녀석이 다가온다.

-철퍽- -철퍽-

발은 바다 생활에서 적응하기 위해서인지 개구리, 오리의 발을 합쳐놓은 듯 한 모습이다.

역겨운 놈이다.

지구의 온갖 생물을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합치고, 합친것 같다.

녀석은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건가.

존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이 순간 나는 용기로워야 할 것이다.

녀석은 표정이랄게 없다. 

얼굴의 형상을 띈 기관에 '안면'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팔 또한 인간의 팔과 똑같지만, 날카로워 보이는 가시인지 이빨인지 모를 것 들이 붙어있다.

다리는 액체와 고체 사이를 유지하며 꿈틀거린다.

녀석이 8m 정도 거리에 있는 지금으로선 녀석을 섣불리 판단할 순 없다. 

녀석은 몸을 끊임없이 뒤틀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녀석은 아직 우리처럼 걷을 수 없는게 확실하다.

올리버, 제이콥은 경직된 상태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그런 한심한 놈들을 움직이게 한 뒤, 무기를 챙기게 한다.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살고싶어 본능이 자신을 경직시키는 순간, 잔혹하게 찢겨 죽을 것이다.

25년의 경비 생활 중 커다란 짐승들을 사냥한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하지만, 녀석 앞에 어떤 짐승을 데려다놓든 존처럼 찢어발길 것이다.

녀석은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보인다.

침착해야 한다.

두려워해선 안된다.

녀석은 그런거 없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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