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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1편


환영한다 신입. 현재 초이상현상관리대처본부 대장 오승태다.

지급되는 교복, 바디캠, 쪽지, 담요 다 확인했지? 중요한 것만 빠르게 얘기할 테니까 따라와.

첫 수색 가기 전에 하나 말해주자면 바디캠에 상황 녹화 다 되고 있고 우리도 보고있으니까 뻘짓거리 말고 니 목숨을 제일 우선시 해. 거긴 니 혼자만 들어가서 우리가 도와줄 수 없으니깐.

우선 교복으로 갈아입고 동림고등학교 3층 여자화장실로 들어가서 맨 오른쪽 칸으로 가. 눈 감고 있다보면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릴 건데 진입성공했다는 소리니까 안에서 노크 한 번 해주고 수칙서대로 하면 돼.

첫 번째, 일단 그 칸 위쪽에 작은 창문 있을텐데 그걸로 날씨 확인부터 해. 비오면 좆된 거니까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말고 튀어.

박살나고 부서지는 소리 들릴텐데 근처에 있다는 뜻이니까 존나 달려. 이때만큼은 모든 수칙 무시해도 되고 복귀해도 너한테 뭐라는 사람 없을 거야. 있으면 그 새끼가 악질인 거니까 무시하고.

두 번째, 날씨 확인했는데 괜찮으면 유은아부터 찾아. 짧은 검은머리에 특이하게 위에는 동복 체육복, 아래는 하복 체육복 입은 애가 유은안데 최대한 빨리 찾아야돼. 보통은 너 바로 옆 칸 변기에 앉아있거든? 없으면 본관 4층 도서관 가봐. 거기에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찾으면 정중하게 수색한다고 얘기해. 별 반응 없을텐데 그거 알았다는 거니까 걱정 말고. 걔 지능은 우리 급이나 더 좋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

걔도 실종자랑 요원들 분간 다 하고 원래는 상관없었는데 예전에 걔한테 화풀이하다가 한 번 좆될 뻔해서 생긴 수칙이니까 이거는 꼭 지켜. 걔가 우리한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요구한 거라서 안 지키면 일단 닌 경고 한 번에 페널티 존나 먹을 거니까 각오하고.

그거랑 별개로 걔랑 적당히 친하게 지내면 니한텐 굉장히 좋을 거야. 위기 상황에 갑자기 튀어나와서 커버쳐주거나 하다못해 시간이라도 끌어주는데 급할 때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 그렇다고 걔 믿고 너무 나대지는 마.

얘기를 좀 들었는데 유은아도 그것들이랑 척 지면 꽤 곤란한 상황이더라고. 게다가 보건이랑 화학은 걔도 감당 못하니까 뭐든지 눈치껏 행동해.

세 번째, 유은아까지 찾아갔으면 1교시 시작 전까지 2-5반 들어가서 비어있는 자리에 가. 그게 너 자리니까. 학교 구조도는 입단 첫날에 확인했을 거니까 패스하고 일단 자리에 가면 담요랑 실종자용 수칙서 제대로 있는지 확인해.

담요는 우리도 생각 못했는데 애들이 넣어뒀더라. 수칙서는 사라지는 경우가 지금까지는 없었는데 혹시라도 없으면 가져온 거 넣어두고 추가사항 있으면 추가해. 아, 그리고 거기에 있는 애들 낙서는 지우지 마.

쪽지 있는 거 확인했으면 가져온 거는 잘게 찢어서 일반쓰레기통에 버려. 그것들도 비위는 있는지 쓰레기통을 뒤지진 않더라. 담요는 너가 덮고 다니든 비상용으로 또 넣어두든 맘대로 해.

네 번째, 이제 수업 들으면 되는데 이 시간에 니가 대답을 꼬박꼬박해서 우수 학생으로 찍혔거나 물어볼 거 있다고 걔네 붙잡으면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할텐데 진짜 마음 단단히 붙잡고 가. 단순 징그럽다, 역겹다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냥... 진짜 일주일 동안 음식 못 먹을 각오는 해야돼.

애초에 우수학생이나 질문을 안 하는 편이 니 정신건강에 훨씬 좋고 특히 음미체, 이 세 과목은 그랬다가 니 이름 실종자 명단도 아니고 사망자 명단에 오르니까 가슴에 새겨 들어 제발. 니 목숨을 '소모품' 정도로 보지 말라는 소리야.

교무실 들어가면 최대한 포커페이스 유지하고 선생 개체가 말하는 건 얼추 듣는 시늉만 해. 열심히 듣던 애는 그냥 학교에 말뚝이라도 박았는지 복귀를 안 하고 시늉도 안한 애는 교사가 시간낭비시키냐면서 그대로 연락두절 됐으니깐.

볼 일 다 보면 백퍼 쉬는 시간 초과하거든? 교사가 종이에다가 뭐 적어서 니한테 넘길 건데 그거 무조건 챙겨. 그것들도 종종 깜빡할 때 있는데 그때는 정중하게 "종이 주세요"하면 알아듣고 줄 거야.

그러고 벌 서고있는 애들한테 다가가서 누가봐도 이질적인 존재가 있으면 실종자니까 잠깐 용건있다 말하고 구출해. 벌 서는 애들 많아서 그것들도 신경 잘 안 쓰고 이때 얼굴 자세히 봐라. 실실 쪼개고 있으면 걘 그른 거니까 포기하고 빠져나와. 짜피 바디캠으로 실종자 얼굴 보여서 보상금 나오니까 그런 거에 목숨 좀 걸지 마.

그리고 가끔 화학이 교무실에 나타나는데 이때는 너가 들키지 않았기를 빌면서 재빠르게 튀어. 실종자랑 같이 있으면 같이 튀어도 되는데 웬만하면 실종자 포기하고 도망가는 걸 추천해. 수칙서도 그렇고 내가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바디캠에 상황 녹화 다 되고 있고 니 목숨 걸린 일에는 페널티 안 주니까 자기 목숨부터 챙기자고.

다섯 번째,  그 이후는 지급받은 규칙서대론데 진짜 다치지 마. 일단 부상당하면 수색에 차질 생길 수 있는 건 기본이고 니가 조금이라도 다친 사실을 들키면 학생이고 선생이고 니 보건실로 보내니까. 무조건 눈치 못 채게 지급한 1회용 밴드로 가려. 밴드보다 더 큰 상처면... 유감이군.

여섯 번째, 점심시간이 되면 경비실로 접근해. 개체는 총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누가봐도 무뚝뚝한 인상에 호랑이를 닮았고 하나는 인자하게 웃고 있는 개체야. 둘 다 너가 외부인이란 것만 안 들키면 손주마냥 친절하게 대해줘. 언제까지나 외부인이 아닐 때 한정이지만.

이건 개체가 웃는 개체일 때만 해당되는 얘긴데
반갑게 인사하면 너한테 텃밭 구경을 시켜줄 거야. 이때 무조건 과일이나 채소 아무거나 몇 개 달라고 말해. 웬만하면 흔쾌히 주는데 곤란한 티를 보여도 애교 부리면 검은 봉지에 가득 담아서 줄 거야.

참고로 경비실 바로 왼쪽이 정문이라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는데 이거 그냥은 못 버티니까 봉다리에서 아무거나 꺼내서 먹어. 수칙서에는 맛이 없다 수준으로만 설명되어있는데 이것도 일주일 정도는 밥 못 먹을 각오해. 먹고나서 칭찬하는 거 잊지 말고. 칭찬 안 해주면 개체가 더 맛있는 거 주겠다고 경비실 안으로 부를텐데 그러면 실종자 명단에 이름 올라간다. 그리고 가져올 때 물에 씻지 말고 가져와.

개집은 웬만하면 비어져있는데 개 있으면 눈은 마주치지 말고 귀엽다고만 해. 눈 마주치면 개는 미친듯이 짖을거고 그러면 경비가 너 외부인인 거 알아채니까 조심하고. 귀엽다고 하면 경비 아재가 엄청 좋아하면서 음료수 한 병 주는데 그거 버리지 마. 존나 쓸모있고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니 목숨줄이야. 만져보라고 하는 경우엔 알레르기 핑계대면서 절대 만지지 마.

일곱 번째, 이건 너가 그 음료수 병을 얻었을 때 해당되는 얘기야. 원래 생활지도부장은 화학만큼 지랄맞은데 그거 주면 잠시동안이지만 니한테 엄청 잘해줘. 분위기 타서 실종자한테 용건 있다 말하고 구출해. 10분 이상은 안 봐주니까 그 안에 탈출해야 돼.

후문 쪽에 유은아가 있기를 기도하면서 가. 없다면 가족한테 적지 않은 양의 위로금이 갈 거야. 근데 너가 진짜 수칙 다 어기고 깽판치고 유은아한테 싸가지없게 굴지 않은 이상 유은아는 후문에 있을 거니까 너무 쫄진 말아. 그 이후는 외형 별 대처법을 따르면 되는데 단발머리일 때 갑자기 거절하는 경우가 있어. 그때는 실종자 언급을 많이 하면서 신파극 한 번 찍어줘. 그러면 곱게 보내줄 거야.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농담으로라도 울고 있는 개체한테 죽었거나 생사가 불분명한 사람 보고싶다고 빌지 마. 요원 하나가 그거 때문에 죽었거든.

여덟 번째, 드물게 유은아가 너한테 카드 주면서 매점가서 아무거나 사오라고 시키는 경우 있는데 그거 꽁으로 실종자 준다는 소리니까 감사인사하고 매점 가. 유은아 카드 없을 때는 매점 가면 너 실종자 명단에 이름 오르니까 가지 말고.

매점가면 매점 아줌마는 너 사람인 거 알고 있는데 돈 버는게 더 중요한 양반이라서 유은아 카드 내밀고 아무거나 사면 눈 감아줘.

가끔 살아있는 실종자가 있는 경우 그거는 구출 포기해. 너한테 무슨 말을 하건 무시해. 너가 흥정에 정말 자신있다면 시도해도 되지만 흥정에 시도해서 성공한 케이스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 나머지는 다 똑같은 재고 신세가 됐으니까 늘 너부터 생각하고 움직여.

대장이 설명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동림고등학교에 도착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곤 모래바람이 일렁이는 운동장을 횡단했다.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 맞다, 수색하다가 유은아가 짜증내면 꼭 첫 수색이라고 해. 처음은 봐줄 거야. 귀환하면 물품 반납하고 실종자는 대기요원한테 넘기고 바로 퇴근해. 누누이 말하지만 항상 자신부터 챙기도록."

그 외침을 마지막으로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근 10년 간 방치된 언덕 위 흉물스러운 피조물은 오랜만의 먹잇감에 문을 열었고 나는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