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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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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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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3편


얘, 너 내 말 듣고 있니? 나 어디까지 말했었더라~ 아 맞아, 전에 길가다가 김현웅 걔랑 커플로 오해받은 거까지 얘기했지? 다들 뇌수가 터졌나봐, 누가봐도 내가 아깝잖아

근데 걔도 진짜 웃겨. 나 은근 동생취급하는데 그 꼴 봤으면 너도 아마 웃었을 거야. ....걔랑 일본여행 가기로 했는데... 알아서 잘 살고 있겠지 뭐. 걔가 나말고 친구 없는 것도 아니고 지금쯤 취업이니 여친이니 추억팔이 할 시간도 없을 걸?

나 진짜 너 처음 봤을 때 걔 온 줄 알고 팔 하나 뜯을 뻔 했잖아. 물론 너가 훨씬 잘생겼지만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데, 멀리서 잘 살아야지

참... 이런 거 보면 너희도 정상은 아니야.가족이라 해봤자 결국은 남, 너 인생 너가 사는 건데 가족 죽었다고 따라서 죽을 거야? 너가 그정도 뿐이야? 진짜 이해 안 가. 짜증나. 사랑은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이건 흔히들 말하는 생각의 차이잖아. 존중 좀 해주련? 솔직히 본인 앞가림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들이 태반인데 가족이니 사랑이니 외쳐대는게 짜증나. 게다가 그 사랑이란 건 결국 자기입맛대로 상대방을 우상화하고선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나에게 취한 거잖아

...사실 친구가 얼마 전에 남친이랑 헤어졌었거든. 걔가 그거 때문에 3주 하고도 이틀 동안이나 나 붙잡고 계속 학원 가기 싫다고, 노래방이나 가자고 찡찡거렸는데... 내 주변 애들 다 그랬어. 좋다고 공공장소에서 손이나 잡고 다니면서 영원할 것처럼 굴더니 그렇게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는데... 내가 절대 남친이 없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정말로

진짜라니깐!? 나 고백도 3번이나 받아봤어. 게다가 다른 애들, 심지어 수학쌤까지 나한테 연애 상담해서 이론이랑 실전 모두 빠삭하다구

...지금보니 우리 사이에 진솔함이 없는 거 같네. 우리 좀 솔직해지자. 기껏해야 학교, 학원에서나 보는 남이 내 무엇을 알고 사랑하는 건데? 나에 대해 뭘 알고 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도 사랑할 수 있어? 그건 기만이야, 사랑같은 게 전혀 아니라고. 근데 그런 것들이 꼭 멍청한데 못돼처먹기까지해서 도리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가. 짜증나

얘, 마침 너 갈비뼈나 주라. 그거라도 보고 기분 풀래. 어어?? 진짜 주려고? 농담이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다운된 거 같아서... 내가 어떤 이유로든 너 갈비뼈 뜯어버리는 건 범죄란다. 그리고 뜯어달라해도 안 뜯을거야. 넌 약하니까. 내가 5살배기도 아니고 민증 나올 예정이었는데 사회적 규범은 지켜야지

그래서 걔 누구였니, 이름이 석우였던가? 그 지하철에서 동생 잃어버린 애. 아아 맞아, 김석오였다. 그때 지랄하는 게 진짜로 짜증나기도 했고 두개골 안이 궁금한 것도 있었는데 내가 더 참을 걸 그랬나 봐. 그랬으면 지금쯤 걔가 대장이었을텐데, 아쉬워라

...나도 늙어서 그런가? 어릴 땐 잘만 거꾸로 매달려있었는데 요즘은 잠깐 매달려있어도 머리가 아파. 아- 심심해, 심심해-- 너는 맨날 얘기만 듣고~ 자기 얘기는 안 해주고~ 하다못해 물어보지도 않아. 너 나 싫어? 하긴 이래보여도 내가 사람은 아니니깐~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그럼 나는 뭘까?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게 느껴지는데 나만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혀있단 말이지. 이상해. 다른 애들은 뭐가 이상한지 인지 자체를 못하는 거 같고 쌤들은 너희를 단순 무단 침입자로 인지하고... 내가 수업을 열심히 들었나? 그러면 전교권 애들이 저 지경인게 말이 안 되잖아. 게다가 몸 아픈 거 열심히 핑계 삼아서 여기에 죽치고 있는 건데... 너무 안 들어서 그런건가?

으-- 머리 아파. 사실 나쁜 건 없어. 니네 걸려서 가끔 학교 난리 나는 것만 빼면 애들도 있고 조용히 잠도 잘 수 있는데 좋은게 좋은 거지. 그리고 너네도 아직 정확하게 모르잖아. 그러니까 맨날 요원들 보내고 가끔 학교 벽 긁어서 샘플 가져가는 거고

아 맞아, 그거 관련해서 웃긴 얘기 하나 해줄게. 예전에 너 대장이 내 머리털 몰래 뽑으려다 걸려서 명치 뚫릴 뻔 했다? 걔도 성격 많이 바꼈어~ 난 걔 예전 성격이 좋은데. 내가 좀 이따 후문 열쇠 줄테니깐 나가면 걔 꼭 놀려. 대장한테 그래도 되냐고? 걔 생긴 게 좀 그렇지 그런 거 잘 받아주니까 걱정 말아. 변승주 그 놈은 그거 주구장창 우려먹는데 뭘

...얘기하니까 피곤하다... 나 이제 잘 거니까 여기 열쇠. 문 따면 열쇠 뒤로 던지는 거 잊지 말구. 그거 경비아저씨한테 또 받으러가기 눈치보여... 다음 번에 올 땐 책이나 좀 가져다주라. 요즘도 도서관이 있을까 궁금하네... 그리고 너 좀 자주 와. 나 심심해. 밥은 꼭 먹고 다니고,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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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차 동림고등학교 수색

-3층 여자화장실을 통한 진입 성공
-화장실 옆 칸에서 유은아 발견
-7차 수색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이 되자 후문 뒷편으로 끌고 감
-수업 예비종이 친 후 후문 열쇠를 받아 탈출성공함

성과: 없음

※특이사항: 유은아가 처음으로 밖에 관심을 가짐. 또한 일부 기억 상실 증세를 보임. 추후 상세 조사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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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에 보고할 일지를 다 쓰자 이상하게도 유은아 생각이 났다. 유은아, 그녀는 누구인가?
본부는 그녀를 "하얀 발"이라 명명했지만, 그녀의 이름은 많았다.

10년 간 지속되는 초이상현상의 유일한 특수개체
기적
천사
여신

혹은

악마.

내가 마주한 건 ________였다.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와닿을 때마다 위장이 고요한 호수가 됨을 느낀다. 다만... 외로웠던 거겠지, 시간조차 알 수 없는 그곳에서 친구의 죽음마저 잊은 채.

나가기 전 유은아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났다. 아래로 처진 눈썹에 가늘게 뜬 눈, 의자 아래로 대롱거리던 하얀 운동화...

'...오랜만에 교양이나 쌓자'

나는 근처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보니 어제부로 장마가 끝났다는 뉴스를 봤다. 지독한 늦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