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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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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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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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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4편


만약 신이 있거든 맹세하는데, 나는 원래 무언가에 집착하는 인간이 아니다. 나쁘지 않은 외모(너는 부정하지만)와 무난한 성적(내신 따기 비교적 쉬운 학교임을 감안해도), 그리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신 부모님과 내 인생의 오점 하나(저게 어딜봐서 귀엽다는 건지, 영원히 알고싶지 않다). 말그대로 전형적인 대한민국 중상층 가정에서 자랐으며 누려볼 건 나름 누리고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내 가족과 사람들을 사랑한다. 동시에, 무언가 추억이라 할 건 선뜻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축복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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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러모로 최악의 날이었다. 그날은 다른 학교에 비해 터무늬없이 늦은 시험으로 너의 놀림을 받은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고 장마가 끝났다는 뉴스와 달리 거센 비가 내려 새로 산 운동화가 엉망이 된 날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신나간 시험 시간표 덕에 영어와 수1을 같이 본 날이었다. 물론 시험도 개같이 망했다.(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망할)

막막해진 내 대학입시에 유감을 표하며 집으로 가자, 엄마는 심각한 얼굴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세상 사는 일에 걱정이 많았던(때로는 이리저리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나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원래 21세기가 이상할 정도로 무탈한 거였으며 사람들은 유리구슬 위 평화를 위해 정신머리를 팔아먹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 정신나간 시험 시간표를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대체 어떤 놈이 무슨 생각으로 영어랑 수1을 같이 보자고 한 거냐)

나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드러눕고는 바로 핸드폰을 켜 친구 목록을 몇 번 뒤적거리다 너에게 문자했다.

"시험 진짜 개조졌다"

"어떤 미친새끼들이 영어랑 수학을 붙여두냐;;"

"지금부터 수능준비하면 인서울 ㅆㄱㄴ?"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바로 답장을 주는 너였기에 의아했지만 동림고의 이해할 수 없는 교칙-수업 전 핸드폰 압수가 생각났다. 동림고도 내 학교 이상으로 답 없는 학교였다. 뜬금없이 언덕 위에 학교를 짓고 시험이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2학기 진도를 나가는 꼴(예를 들자면 교복은 잡지 않지만 핸드폰 압수는 하는, 보통 사람이라면 납득할 수 없는 교칙은 덤이다)을 보자 평소 너의 짜증이 납득될 지경이었다. 그곳은 실로 학교의 탈을 쓴 지옥이었다. 하지만 너는 지옥에 떨어져도 짜증낼 인간이다. 매번 수업을 째면서도 주요 과목은 죄다 90점 이상 받는 미친놈이니까.(재수없고 미련한 기만자 자식)

너에 대한 부러움, 혹은 그 엇비슷한 감정과 미래의 불확실함이 섞여 엄청난 불쾌감을 성사했다.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늪(순식간에 나를 압도한다. 지금도, 기분 나쁘게)에서 벗어나 유튜브로 도피했다. 알고리즘은 실시간 뉴스로 도배되어 있었다. 평소처럼 넘기려던 찰나, 익숙한 곳이 보였다. 동림고등학교였다. 

...인간에게 망각은 축복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싶이 나는 축복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서울의 모 고등학교 외 3곳에서 원인불명의 동시다발적 집단 실종 발생..."

그날 너가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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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사라지고 첫 눈이 왔다. 그날, 못해도 천 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광장에서 합동장례식을 치뤘다. 너를 포함한 천 여명의 사람들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채 보내야만 했다.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아직 아무지 못한 상처들이 일제히 터지는 소리 같았다. 나는 다만 시험이 끝나고 너와 계획했던 일본여행 티켓(이제는 낡고 너덜너덜해진 종이 쪼가리지만. 그래도)을 부적이라도 되는 양 쥐고 있었다. 사실 그때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너는 죽었다.
나는 이제 너를 보내야 한다.
그것은 살아남은 나에게 당연하고도 효율적인 행위.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비록 시작은 부모님들이 억지로 친해지라며 떠민 것이었고 서로를 안 10년동안 늘 친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다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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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그만뒀다. 어차피 성적도 무난했기에 공부로는 벌어먹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퇴 후 집에서 나와 너를 찾기 시작했다. 폐쇄조치된 동림고등학교에 들어가려다 수차례 붙잡히기도 하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너를 수소문했다. 반복하기를 수십 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초기 경찰은 이를 단순 실종으로 결론짓고 수사를 마무리 짓자, 납득할 수 없던 가족들은 힘을 합쳐 초이상현상관리대처본부를 만들었다. 나도 그곳에 가입하려 했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널 잊으라는 인간들 허락이 왜 필요한데 씨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실종자 명단에 네 이름을 넣었지만 영 신뢰가 가지 않아서(나이 때문에 거부당한 건 아직도 어이가 없다) 나는 홀로 너를 찾았다. 벌써 8개월 째였다. 지칠 때마다 너의 기록을 좇았다. 너와 나눈 문자는 10,000통이 넘었고 전화는 300번이 넘었다. 빼곡하게 쌓인 6년의 자취와 사라지지 않는 1은 나에게 다시금 너라는 존재를 상기시켰다. 

너가 사라진 지 딱 1년이 되던 날, 그날도 거센 비가 내렸다.(일기예보는 맞는 법이 없다. 요번에도 큰 맘 먹고 산 신발이 망가졌다. 지독하게도, 모든게 원점이다.) 나는 일을 마치고 습관처럼 너의 기록으로 발을 내디뎠다. 너와의 모든 대화를 찬찬히 살펴보던 중, 장문의 글 하나를 발견했다.

'...글쓰기도 좋아했었지. 나도 따라서 글 썼었는데 그게 남아있으려나.'

오랜 추억을 되찾은 기쁨과 함께 글을 읽었다.

나 좀 살려줘 제발

심상치 않은 서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비가 더 거세게 내린다. 숨을 가다듬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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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살려줘 제발. 머리랑 속이 너무 아프고 몸도 뜨거워서 미칠 거 같아. 엄마 졸라서 병원도 가봤는데 아무 이상없대. 내가 미쳐가는 거 같아. 배고파. 무서워. 내가 죽어가는 게 너무 생생히 느껴져. 내 몸에 이상한 게 기생해 있는 거 같아. 너가 이런 개소릴 못 참는 거 알고 있는데 이번만큼은 제발 믿어줘. 최근에 잠 잘 때마다 이상한 꿈을 꾸는데 정신 차려보면 늘 학교에 있어. 근데 학교에 의자랑 책상, 분필까지 다 멀쩡한데 이상하게 사람만 없어. 정신 차리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분명 애들이랑 얘기하고 있었는데 말야. 기분 나빠서 나가려고 하면 갑자기 후문이 나와. 거기 의자에서 나 11살 때 모습이 보여. 걔 때문에 미칠 거 같아 진짜. 짜증나게 울고 있길래 말 좀 하라고 소리질러도 대답도 안 하고 몇 시간 내내 진짜 울기만 해서 노이로제 걸릴 거 같아. 애들 특유의 그 째지는 울음소리가 아직도 들려. 근데 나는 애초에 의자에 없잖아. 걘 뭐냐고 대체. 더 기분 나쁜 건 걔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치더니 웃으면서 자꾸 소원이 뭐냐고 물어봐. 처음에는 멀리서 물어보던 애가 점점 나한테 다가오더니 이제는 안으면서 그래. 힘은 또 더럽게 세서 일어나면 걔가 안은 곳이 심하게 멍 들어있고 피곤해 죽겠어. 진짜 이러다 죽을 거 같아서 부모님한테 얘기해도 다 안 믿어줘. 아빠는 공부하기 싫어서 또 거짓말하는 글러먹은 년이라고 계속 그러고 엄마는 그 소리만 들으면 나한테 소리 지르면서 물건 집어던지는데 지금 그거 맞고 이마 찢어졌어. 주변에서도 계속 미친사람 취급하는데 나는 정상이야. 그니까 나 한 번만 믿어주라 응? 나 좀 제발 살려줘...

너의 마지막 애원은 희뿌옇게 흐릿해져서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보낸 시각은 오전 3시 47분. 너가 이토록 불안함과 두려움에 빠져 나에게 문자한 건 처음이었다. 그때의 나는 너가 이럴 리 없다며 너를 맘대로 재고 우상화했다. 나는 타인의 사정따윈 고려치 않는 이기적이고 미숙한 인간이다. 그런 나의 결핍이 한심하고 괴로워 비좁고 차가운 방바닥에 웅크려 울부짖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우습게도 머리가 맑아졌다. 머리가 빠른 속도로 모든 경우의 수를 산출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낸 결론-

첫째, 너를 흉내낸 그것이 모든 원흉이며
둘때, 그것에게는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있고
셋째, 너는 반드시 살아있다.

나는 곧장 실종자들의 인적 사항과 실종 전 마지막 행선지를 조사하고 생환자들을 찾아갔다. 적지 않은 생환자들이 나를 반기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너에게 사과해야만 하니깐. 그들의 정보와 너의 정보를 토대로 이 좆같은 초이상현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너의 기록들을 증거 삼아 정리한 것을 본부로 제출했다. 본부는 여러 차례 회의 끝에 나를 가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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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너를 만나러 갈 수 있다. 앞으로 내 모든 걸 동림고등학교에 떨어진 너에게 바칠게. 너는 분명 이걸 바라지 않겠지만 나는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기꺼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 거야. ...미안해 은아야. 사랑해




일단 동림고 시리즈는 완결남. 갑자기 글 여러개 올라와서 놀란 사람들 있을텐데 원래 썼던 거 올린 거라서 그럼. 댓글로 궁금한 거 있으면 많이 물어봐주고 아직 학생이라서 미숙한 글 읽어준 사람들 미리 고마움. 다들 건필하셈ㅂ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