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음 어서와. 너가 이번에 들어온 공익이구나? 올해는 생각보다는 많이 안필요해서 두명 수요를 냈는데, 역시나  한명 미달이네. 뭐 어쨌든간에, 온걸 환영하고, 나는 너희 공익애들 관리하는 행정과 직원 설성훈 반장이야, 그냥 성훈반장님 아니면 설 반장님이라고 불러.


오늘 첫날인데 좀 귀찮겠지마는,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곧바로 부속실 근무하러 들어갈거야. 이거는 너한테도 나한테도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니까. 꼭 기억해놔, 녹음을 하든. 어디다 메모를 하든... 준비됐으면 이야기할게?


일단 다들 공익애들은 그 특유의 옷... 입잖아? 그 버건디 색깔의 촌스러운 셔츠, 우리는 그런건 안입혀, 대부분 소방서 직원분들은 흰색의 사무복 아니면 오렌지색의 왜, 그 미디어에서 소방관 하면 나오는거 알지? 그 색깔의 활동복 중에 하나를 입어.  그래서 너희에겐 활동복을 지급할건데. 사이즈는 네가 기입한거니까 맞을거고, 너희거는 우리랑 다르게 견장부분에 사회복무요원이라는 패치를 붙이게 되어있어,  당연하게도 옷은 늘 단정하게 입어야되고, 꼭 네 신발을 신어야돼.


출근하면 탈의실에 근무화들이 쭉 늘어서 있거든? 어제 네가 놓아둔 위치를 꼭 기억하고 꼭 네것만 신어야돼, 기억해둬, 네 신발은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왼발은 왼쪽편에, 오른발은 오른쪽편에 드륵하고 돌리는 잠금장치가 있어, 혹시나 잠금장치 위치가 반대로 되어있거나. 원래 신던 신발인 검은색이 아니거나, 신발 코 부분이 물렁물렁하면 그 날은 조용히 나한테 톡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 만약 집 가는 길에 소방서 근처에서 오렌지색 활동복을 입고 출근하는 직원이 있으면 너한테 뭐라고 해도 무시하고 그냥 집으로 쭉 가, 갈때 무조건 버스를 타야돼,  최소한 기사를 포함해서 여섯명 이상 버스에 타고 있는 버스를 타고, 안그러면 그날은 집에 들어가지 말고 밖에서 자야 돼. 무조건이야.


일단 출근해서 옷 입고 신발 잘 찾아 신었으면 바로 부속실로 들어가, 부속실은 서장님 실 옆에 있는 작은 방이거든? 저쪽에 복도 끝에 보이지?  오른쪽이 부속실이야, 만약에 부속실이 왼쪽에 있다거나, 부속실이 안보이면 그날은 행정과에 와서 내 옆자리가 비어있으니까 거기 앉아있으면 돼, 내가 출근하면 상관 없는데, 만약 내가 연차 등으로 안나오는 날에 행정과에 앉아야한다면, 아무것도 하지말고 책상 칸막이 앞에 붙은 종이들만 쳐다봐야돼, 뭐라고 쓰여있는지 모를거야, 그래도 그냥 그것만 바라보고 있고. 가끔 직원분들이 너한테 말을 걸어올건데, 최대한 예의바르게 대답해,  못 알아듣겠더라도, 최대한 예의바르게 모른다고 하고 종이들만 봐, 절대 졸거나 엎드리거나 하지말고 있다가. 우리 서는 6시에 교대 점검 하면서 종을 세번 치거든? 딱 정확히 세번 치고 나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인사 하고 퇴근하면 돼.


앉아있다가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이 마려우면 사무실 나가는 문 앞의 직원에게만 이야기하고 다녀오면 돼, 다만 너무 자주 가거나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한번 울렸을 때가 아닐때에 밥을 먹으러 간다던가 하면... 직원들이 눈치챌테니까 조심하고.


웬만해선 직원분들하고는 이야기 잘 안하는게 좋아,물서장님 의전이랑 이것저것 문제들로 신경쓰시느라 뭘 먼저 물어보거나 하는건... 너가 감당하긴 어려울거야, 실제로 몇명 있긴 했는데. 그런애들 빼고는 다들 예방과나 방호과 쪽으로 빠졌고, 


서론이 길었네, 휴.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부속실 근무에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줄게, 아, 일단, 수영 좋아하니? 좋아한다고? 잘 해? 아 그건 아냐? 뭐... 아무튼, 대부분 서장님의 루틴은 출근-오전미팅-점심-오후미팅 1-오후미팅 2-퇴근 으로 나뉘셔.  원래 너희는 9출 6퇴가 기본인데, 넌 꼭 8시 반 전까지 출근해서. 딱 30분이 되면 부속실 안에 놓여진 큰 물병에 정수기로 물을 채워서 잔이랑 같이 쟁반에 올려서 내어드려, 꼭 들어갈 때 노크 해야하고. 들어가면서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잔을 받으실 때 왼쪽기준으로 놓아드려, 기억해야 돼,  서장님은 왼손잡이셔서 '받으시는 기준으로 잔 손잡이가 왼쪽으로 가게 해'야 된다. 오케이?


근데 종종 그런날이 있어, 멀쩡히 출근했는데 정수기 모양이 좀 다르다거나, 부속실 등이 빨갛다거나. 다 멀쩡한데 정수기에서 검은 물이 나온다거나 하는 날이 있거든? 그런 날엔 꼭 바닥만 보고 다가가서 서장님 테이블 위에 올려서 오른쪽으로 드려야돼, 기억해, 오른쪽이야. 서장님 얼굴 보면 안된다.


그렇게 물 드리고 나오면, 그 다음부터는 좀 여유로워. 미리 차 좀 끓여두면 더 좋을거야, 포트 있으니까 물 받아놓고 미팅 대비해서 차들 좀 끓여두고, 조용히 너 할거 해. 좀 쉬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 게임을 해도 신경은 안쓰는데, 미팅 전에 오는 손님들이나 직원들에겐 안걸리는게 좋아, 눈치들을 채셔서.


미팅때는 당연히 손님수에 맞게 차를 내내어드는데, 노크나 예의, 이런건 당연히 해야하고. 서장님을 제외하곤 받는쪽이 오른쪽으로 가게 드려. 


마지막 아침에 찻잔을 오른쪽으로 드린 날이면 손님을 받으면 안돼, 손님들 오시면 공손하게 나가셨다고 양해구하고 다음에 오시라고 안내해야돼, 그거 신경 안쓰고 들였다가 생기는 일은... 거기부턴 네 책임 된다.


그리고 그 날에만 오시는 특별한 손님이 있는데, 방화복을 입고 오시는 세분이 있을거야, 등에 산소통까지 메고 오시거든, 겨울이든 여름이든지. 그분들 오시면 예의바르게 인사만 하고 책상밑으로 들어가 있어. 어차피 알아서들 들어가시거든? 책상 밑에 가면 몸 웅크리고 눈감고 귀 틀어막고 가만히 있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다 되면 그분들이 네 귀를 막은 손 치우고 수고하셨습니다 한마디 하고 갈거야, 꼭 그 한마디야, 더 붙거나 안하거나 그러면 그냥 그대로 있어. 그게 더 나을거야.


그분들 가시면 부속실에 전등스위치 아래 스위치가 하나 더 있거든? 평소에 꺼져있는데 그거 켜놓고 퇴근해, 그나마 조기 퇴근할 수도 있으니까  그날은 좀 나을거야, 운이 좋으면... 나쁘면 다음날까지 있어야지 뭐.


아무튼, 일단 오전엔 이거만 신경쓰면 돼, 오후는... 좀 더 복잡하니까 일단 오전근무 먼저 하고 점심때 만나자. 이따 이야기 해줄게. 화이팅하고.


행운을 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