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복도를 걸으며 데미우르고스가 생각에 잠겨있었다.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이미 눈치채, 그 단점을 순식간에 파악하고 보완해낸 아인즈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째서 자신은 이리도 무능한가, 약간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을법한 디메리트를 왜 자신은 떠올리지 못했는가. 그리고 왜 아인즈는 그런 무능한 자신에게 자신의 목숨과도 직결될 수 있는, 그렇게나 소중한 트레이시의 행동 방침을 일임했는가.


' 왜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이냐! '


아인즈라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자신이 놓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잡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벌써 3일이나 그 생각이 머릿속을 빠져나가지 않는다.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 데미우르고스 님, 안녕하신지요. "


" 음, 에클레어인가. "


"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 건지? 별일이군요, 데미우르고스 님께서 얼굴에 표정을 다 드러내시고. "


자신이 향하고 있던 목표인 문 앞에서 에클레어와 마주쳤다. 데미우르고스는 그제야 감정이 앞섰다는 것을 눈치채 평소의 얼굴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 실은 아인즈 님께서 내어주신 수수께끼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던 참이거든. "


" 오오, 지고의 존재께서 내주신 수수께끼입니까! 그렇다면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겠군요. 추후 제가 나자릭을 지배하기 위해서, 그 질문을 미리 들어봐도 좋을련지요. "


" ... 그런가, 도저히 혼자서는 답이 나오지 않아서. 그것도 괜찮... "


" 응? 억 엑, 푸합! "


타이밍 좋게 에클레어의 뒤에 있는 거대한 문을 열고 무표정한 얼굴의 시즈 델타가 천천히 에클레어를 들어 올렸다. 배부터 꽉 잡아 올린 탓에 에클레어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 아, 시즈인가. "


" 안녕. "


" 노... 놓아주... 커헉... "


" 아인즈 님께서는 안에 계실까? "


" 방금 나가셨어. "


" 그런가... "


왜 아인즈 님께서는 자신에게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기셨는가, 자신의 계획의 단점조차 바로 파악해내지 못한 이 무능한 자를. 그런 뉘앙스의 질문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아인즈의 마음에 들게 하면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20개 정도의 바리에이션을 언제든지 꺼낼 수 있게 준비한 데미우르고스였지만 아인즈가 없다는 이야기에 긴장이 약간이나마 풀린다.


" 들어가? "


" 아아, 그럴 생각이네. 그리고 시즈, 에클레어가 괴로워하니 조금은 살살 붙잡아 주게. "


" 음? "


이미 기절했는지 대답조차 없는 에클레어를 들고 사라지는 시즈를 뒤로한 채 데미우르고스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넓은 집무실에서 아인즈의 빈자리를 알베도가 대신 채워 자리에 앉은 채 열심히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 어머, 데미우르고스 무슨일일까? "


" 알베도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


" 나에게? "


그 데미우르고스가 자신에게 질문이라니,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알베도는 속으로 크게 놀라 작성 중이던 펜까지 내려놓았다.


" 지고의 존재분들이 떠나신 지금, 마지막까지 남아주신 아인즈 님마저 떠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그런 고민을 안고 살았습니다. 아인즈 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세계 정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로소 그 해답 중 하나를 알게 되었죠.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실현 시키고 싶었습니다. "


데미우르고스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 저는 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도저히 그분의 지혜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계획은 아인즈 님께서도 진작에 떠올리셨고, 지금 실행중인 계획은 그 단점까지 완벽하게 보완해낸 훌륭한 계획이었습니다. "


" 그렇지, 아인즈 님께서 너한테 막중한 임무까지 내려주셨잖아? "


"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분명히 실망하셨을 겁니다! 아인즈 님께 나자릭 내에서 지혜가 높다고 인정받은 이 제가! 이 정도 계획밖에 내지 못하느냐는 실망감을 안겨드렸단 말입니다! 당장 아인즈 님께서 떠나셔도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


아인즈가 떠난다는 이야기에 알베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점이 뭐야, 데미우르고스? 너답지 않은걸. "








데미우르고스가 책상을 쾅 하고 내리친다. 그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알베도는 물끄러미 데미우르고스를 바라보았다.


" 왜 아인즈 님께서는 저한테 그런 임무를 주셨냐는 말입니다! 실망만 안겨주는 이런 저에게! 아가씨의 신변은 그대로 아인즈님의 신변과도 이어지는 중대한 문제란 말입니다! 물론 제국에 섀도우 데몬과 투시안 그리고 전언을 사용해 소식을 듣고 보고 꾸준히 감시하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공간에 아가씨를 혼자 보내고, 그 이후의 전 권한은 저에게 일임하다니요! 답을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


" 그것이 궁금했던거야? "


데미우르고스가 천천히 책상에서 손을 떼어낸다.


" 알베도, 그 말투는...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겁니까? "


" 후후후. 데미우르고스가 지혜대결에서 이렇게나 궁지에 몰리다니 의외인걸. "


" 저는 지금 장난을 칠 기분이 아닙니다. 조속히 알려 주시겠습니까? "


" 간단하지, 너를 신뢰하기 때문이잖아? "


" 저를...? "


" 데미우르고스, 너가 생각해낸 계획... 지금은 아인즈 님께서 보완하신 계획이겠지.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런 계획을 떠올리지 못했어, 즉 아인즈 님께 지혜로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존재는 너뿐이라는 거야. 아인즈 님께서도 그런 점을 당연히 알고 계셨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아인즈 님께서 무언가 더 완벽한 계획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네가 세운 계획을 보완하는 선에서 멈추셨을 이유가 없지. 즉, 처음부터 아인즈 님께서는 너의 계획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는 거지. 그러니까 이번 임무를 나나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일임하셨잖아? "


데미우르고스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분명히 벌을 받으리라,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좌천되리라, 그렇게만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들의 주인은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수용해 자신에게 포상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수수께끼라고 보였던 모든 행동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 이 무슨... "


" 뭐, 아마 데미우르고스 너의 원래 계획이 이제는 짐작이 가지만... 너의 그 계획에서 아인즈 님께서는 트레이시 아가씨의 성장 정도만 추가하셨을 거야. "


" 아가씨의? "


" 이곳, 나자릭에서 아가씨의 성장 속도보다 제국에서 지내는 동안의 성장 속도가 확연히 다르다는건 알고있지? "


" 물론입니다. 아가씨의 성장세는 마치 가속도가 붙은 듯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요. 그들 중 하나를 쓰러뜨렸다는 것까지도. 인간들 기준에서 제국의 4기사는 꽤나 강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아! "


" 이제 알겠어? 우리는 인간의 기준에서는 분명히 강해, 차원이 다르지. 그렇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아가씨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했던 거야. 아가씨에게 필요했던 건 알맞은 교육 방식과 도구야. 실제로 아인즈 님께서도 아가씨를 직접 가르치신 적이 있었지? 그렇지만 오래가지 않았어. 아인즈 님께서는 그때 이미 눈치채셨던 거야. 그리고, 네가 아베리온 구릉 지대에서의 업무를 미룬 것도 그것 때문이었잖아? "


데미우르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 확실히, 그렇습니다만... 그 때는 그저... "


말을 잇지 못하는 데미우르고스에게 알베도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내 쭉 펼쳐 데미우르고스에게 건넸다.


" 이건 무엇입니까? "


" 아인즈 님께 여쭤본 트레이시 아가씨의 성장 방침이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 중요한 건 생존과 레벨이라고 하셨으니까. 제국에서의 일 이후에는 너에게 더 필요할 거 같아서 말야. "


" 저한테 주셔도 괜찮습니까? 알베도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


" 나는 미래의... 그래! 어쩌면 그분의 어머니가 될지도 모르니까! 머릿속에 수백 번 넘게 곱씹어서 확실하게 외워뒀으니까 괜찮아. 후후후, 아, 내가 정리하면서 낙서한 게 조금 있지만 신경쓰지 말아줘. "


데미우르고스가 천천히 스크롤을 읽어 나간다. 곳곳에 아인즈 라는 글자와 하트가 적혀있으며 스크롤에 적힌 글귀 내에서 이미 알베도는 트레이시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읽기 힘든 부분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내용 자체의 어려움은 없었다.


" 왕국과의 전쟁은 앞으로 한 달 하고도 반이야. "


"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금의 공주와의 이야기는 모두 끝내놓았습니다. "


" 음, 그럼 나도 슬슬 계획을 시작해야겠어. 너무 늦으면 제국이 전쟁을 대비할 시간도 빼앗길 테니까. "


" 언데드 군단의 준비입니까? "


" 그래, 제국의 힘을 최대한 약화시켜 놓아야, 우리 나자릭의 힘에 제국이 더 매달릴 테니까. "


알베도와 데미우르고스는 동시에 익살스럽게 조용히 웃었다.



***



" 그래서, 무슨일이사와요? "


나자릭 지하대분묘 제2계층, 샤르티아의 방에 알베도가 와 있었다. 최근 샤르티아는 아인즈에게 불리는 일 없이 자신의 수호 계층을 관리하고, 호출이 있을 때마다 전이문을 여는 것이 고작인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딱히 바쁠 일이 없어 알베도의 호출에 큰 무리 없이 응할 수 있었다.


" 전쟁까지는 한 달 하고 조금이지만 트레이시 아가씨는 그 전에 돌아오실 예정이거든. 그러면 그사이에 아주 잠깐 틈이 난다는 이야기지. "


"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시와요? "


" 슬슬 정해야 하지 않겠어? 아가씨가 누구를 더 따를 것인지. "


샤르티아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아인즈 울 고운의 딸, 트레이시가 따르는 존재라 하면 부모. 아인즈를 제외하면 당연히 남은 자리는 어머니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자리에는 당연하게도 서로가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 사실을 저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


"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자는 이야기야. 어차피, 내가 이길 테지만 말이지. "


" 흐응~ 알베도라면 지금이라도 꼬리를 말고 도망쳐도 괜찮사와요? 첩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테니까. "


" 그야, 아인즈 님의 첩이니까 누구라도 행복하겠지! 샤르티아 너도 말이야! "








둘 사이에 기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둘을 지켜보는 뱀파이어 브라이드들만이 그녀들 사이에 피어오르는 작은 번개를 눈치챈다. 그러나 알베도가 먼저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 승부는 아가씨께서 돌아오시고 나서부터 바로 시작이야. 과연 아가씨께서는 누굴 더 따를지 내기하자고. "


" 좋사와요! 트레이시 아가씨에게 어머니라는 소리라도 듣는 날에는 분명 아인즈 님께서도 다시금 저를 인정해주실 것이와요! "


" 어머나, 노력해야겠네. 나는 이미 아가씨께서 입을 옷 까지 손수 준비해두었는걸. 그럼~ "


" 아아! 알베도 이 치사한...! "


샤르티아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알베도는 링 오브 아인즈 울 고운을 사용해 자리를 비웠다. 사라진 알베도의 자리를 샤르티아가 수 초간 바라보더니 이내 뱀파이어 브라이드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당장 도서관에 가서 뜨개질이라던가! 아무튼... 아무튼간에 아가씨께 도움이 될만한걸 가져와!!! "


황급하게 움직이는 브라이드들 사이로 샤르티아가 손수건을 꺼내 입에 물어 강하게 잡아당긴다.


" 알베도...!!! 정정당당한 승부 좋아하시네! 나를 도발하려고 온 게 분명하잖아!!! 좋아! 이 승부를 받아 들여주지!!! "


샤르티아는 그렇게 말하며 옷장을 열었다. 어떤 옷을 어떻게 입을까, 페로론치노가 물려준 수많은 옷 사이에서 트레이시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손수 제작해 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했다.


" 알베도!!!!! "



***



다리가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겨우 하루 쉬었다고 고통이 사라질 리는 없었다. 체력이 완전히 회복 되지 않은 상태로 트레이시가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다. 그날의 수련을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 아우우...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저려오네... "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어제와 같은 장소. 님블을 쓰러뜨렸던 그 장소에 비슷한 갑옷을 입은 여성이 트레이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너스 록블루즈, 한쪽 눈을 머리로 항상 가리고 다니는 금색 장발의 여성은 가린 눈 쪽에 손수건을 가져다 대어 땀을 닦듯 무언가를 닦아내고 있었다.


" 늦었잖아. "


레이너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 우우우... 네~ 네~ 늦어서 미안합니다. "


" 음? 난 상관없지만 말야, 그런 몸으로 싸우려고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


레이너스의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말투에 트레이시의 귀가 따끔거린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반박은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여 애써 대답을 피할 뿐.


" 님블을 이겼다며? 그런 몰골이 된 걸 보니까 확실히 허세는 아닌 모양이야. 님블도 꽤나 강하니까 말이지. "


레이너스가 자신의 창을 꺼내 자세를 잡았다.


" 별로 이런 곳에 힘쓰고 싶지는 않지만, 우선은 계약된 몸이다. 빨리 끝내겠다. "


전투도 아닌 대련이었으나, 레이너스는 상대방의 안위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저런 몸 상태라서 좋았다. 더욱 빨리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레이너스가 살짝 미소 지었다.


" 어서 자세를 잡아. "


지르크니프의 명령은 적당히 대련을 해주라는 것뿐. 그 과정이나 방식은 묻지 않았다. 트레이시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자세를 잡으려던 찰나.


" 레이너스 님! "


한 명의 제국 기사가 숨을 헐떡거리며 황급하게 달려왔다.


" 뭐냐. "


" 대련중에 죄송합니다! 하지만... 긴급상황입니다! "


" 시간 없어, 빨리 말해. "


" 언데드입니다! 대량의 언데드가 카체평야로부터 제국을 향하고 있습니다!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노벨피아에 북커버 추가해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