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로 돌아온 트레이시를 기다린 것은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고 있는 레이너스였다. 레이너스는 트레이시가 들어오자마자 가볍게 세 번 손뼉을 쳤다. 땀을 흘린 트레이시에게 준비해둔 물 한 컵을 건넨다. 트레이시가 물컵을 받아들고 손가락을 치켜올려 잠깐 기다려 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 하아~ 시원하다. 그래서, 무슨일? "


" 칭찬해주러 온 거다. 그게 본 실력인가? "


" 뭐, 그렇겠지? 당신들이랑 싸울 때는 제 실력을 내기 힘드니까. 멋대로 죽일 수도 없고. "


" 죽여? 하하하! 그 기백은 그대로군. 네가 했던 말이 서서히 믿기기 시작하는군. "


레이너스의 말에 뾰로통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며 트레이시가 고개를 돌렸다.


" 못 믿겠다는 거야!? "


" 너야말로 갑자기 나타난 녀석이 저주를 풀어주마, 대신 돈을 내놔라 같은 소리를 하면 믿겠나? "


" 난 돈 같은 거 바란 적 없거든? 뭐, 정확한 대답을 해주기까지 앞으로 2경기네. "


" 흥, 다음 전투는 힘들 거다. 보통은 첫 경기에서 도전자를 끝장내기 때문에 잘 쓰이진 않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는 무조건 죽이려고 들거든. "


" 안킬로우르수스라고 했던가. "


" 어떻게 알고있지? "


" 어? 아아, 그냥 조사를 조금... "


" 호오. "


레이너스의 표정이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는 듯 놀란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이미 모든 것을 조사했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투기장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인가. 설마 처음부터 투기장이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건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 꼭 살아와라. 대답을 들려줘야지. "


" 그 대사 마음에 드네. "


" 이어서 다음 경기가 시작됩니다! "


" 아, 시작한다. "


팔을 양쪽으로 꺾어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레이너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 다녀올게. "


' 아르셰가 대기실에 와줬으면 좋았을 텐데. '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듯 고개를 흔들고 트레이시가 다시 투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늑대와 싸운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탓에 서서히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치운 것은 시체뿐, 피와 자잘한 내장이 흩뿌려진 세세한 곳은 그대로인 모양이다.


" 시작. 하려. 는. 모양. 입니다. "


" 안킬로우르수스. 위그드라실에는 없던 몬스터였는데. 데미우르고스에게 들은 바로는 곰과 비슷하게 생겼다지. "


" 그렇. 사옵. 니다. "


" 그럼 추정 레벨은 10에서 15 정도려나? 아니, 아까 보았던 워 울프보다 약한걸 내보낼리가 없지. 적어도 워 울프보다는 강하다고 봐야겠지. "


언제든지 상위전이와 시간 정지를 사용할 준비를 하며, 아인즈가 원격투시경을 확대했다. 투기장 안쪽에서 나타날 안킬로우르수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바라보는 위치를 옮긴다.


" 첫 경기를 멋지게 승리해낸 도전자! 트레이시! 그러나 다음 도전은 쉽지 않을 겁니다! 에이버서 대삼림에서 어렵게 구해온 마수입니다! "


입구 근처부터 안킬로우르수스를 옮기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3미터 정도 되는 그림자, 그 형체가 어두운 마수용 복도에서부터 스스로 빛을 찾아 투기장 안쪽으로 나온다. 날카로운 발톱이 머리보다도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을 내려찍는 앞발부터 지탱하는 가운데 두 다리, 마지막으로 뒷다리까지 6개의 다리를 가진 곰과 무언가를 합친 것 같은 존재. 아르마딜로처럼 피부에는 두꺼운 강철같은 갑옷이 입혀져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것 또한 안킬로우르수스의 피부였다. 허리에서부터 튀어나온 꼬리는 길게 나와 그 끝은 망치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 포효가 투기장 전체를 메웠다.


" 크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 "


그것을 바로 위 안킬로우르수스 방향에서 목격한 방문객 중 일부는 기절하여, 또 몇 명은 더욱 뜨겁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트레이시는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 아우라씨의 마수에 비하면 별거 아닌가? '


그렇지만 그것은 마수에 비하면 일 뿐, 자신의 능력에 비하면 얼마나 강할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워 울프 보다는 강할테니 한 마리로도 충분하다는 것일까.


" ... 어렵겠는데. "


안킬로우르수스는 지금 배가 고프다. 하루 전부터 먹이를 들고 오던 인간이 먹이를 가져오지 않았다. 이는 자신에게 특식이 주어진다는 의미였다. 벌써 여러 번 이러한 경험이 있었던 안킬로우르수스는 이미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은 인간들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사육당하고 있다. 안킬로우르수스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먹이를 가져오는 인간들에게는 순종했다. 죽이면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탈출한 다른 녀석이 어떤 꼴이 되었는지 직접 목격한 적이 있다. 그 말로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살아있는 채로 인간들의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팔과 다리가 잘린 그 녀석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가끔 이러한 둥근 장소에 자신과 특식으로 먹이를 집어넣는다. 보통 때 가져오던 곡식이 섞인 고기와는 차원이 다른 생생한 고기였다. 살아있었기에 자신에게 저항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보다 약했다. 아니, 자신보다 강했던 존재는 없었다. 이곳 투기장에서 보았던 존재 중에 자신보다 강한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인간에게 이쁨받고 있었다. 강한 만큼 대우받는다. 그런 것일까. 안킬로우르수스는 잡생각을 치우고 눈앞에 있는 새로운 특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 크르르르르... "


나약해 보였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검은색의 가죽은 단단해 보이지만 그 외의 머리나 어깨는 나약해 보였다. 자신의 약점을 저렇게 손쉽게 내주는 존재는 그곳을 공격하면 쉽게 나가떨어졌다.


' 왜 안 덤벼오지? '


자신을 묶어두는 사슬도 목줄도 없음에도 안킬로우르수스는 덤벼오지 않았다. 마치 시작 종을 기다리는 듯이.


' 이 녀석도 똑똑하다는 건가? '


" 아!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엔트리에 한 명 추가되었습니다. "


사회자의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에 트레이시가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확인한다.


" 하아! 하아! 트레이시! "


아르셰였다. 뛰어오지 않아도 괜찮았을 텐데 멋대로 달려와 헉헉대며 아르셰가 고개를 숙였다.


" 아르셰!? "


" 같이 싸워도 된다고 허락해서! 하아... 하아... "


" 위험하잖아! "


"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읏, 미, 미안... "


" 시작합니다! "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이, 사회자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관심 없이 종을 울렸다. 종소리와 함께 돌진해오는 안킬로우르수스로 두 명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 우선은 이기고 나서! "


" <비행>! "






직선으로 돌진한 안킬로우르수스를 트레이시는 오른쪽으로 발돋움하여 피했고, 아르셰는 비행 마법을 사용해 날아올랐다. 양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자신이 붙잡을 수 없는 공중으로 날아오른 존재를 무시한 채 트레이시를 향해 안킬로우르수스가 다시 한번 돌진했다.


" <유수가속>! "


머리카락 한 올 정도 차이로 안킬로우르수스의 몸체가 트레이시의 옆을 지나친다. 그리고 배고픔에 눈이 멀어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투기장 벽에 몸을 들이박는다. 무게와 힘으로 벽에 금이 살짝 간다.


" <마법화살>! "


세 개의 마법 화살이 공중에서 날아들어 안킬로우르수스를 향해 돌진했다. 노란색의 화살은 등을 향해 정확히 꽂혔지만 단단한 가죽을 뚫지 못해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한다. 안킬로우르수스가 앞발을 들어 올려 자신을 방해한 벽에 괜히 화를 낸다.


" 안 먹혀! "


" 하아아아아압! "


자신에게 등을 돌린 안킬로우르수스를 향해 트레이시가 높게 점프해 내리찍었다. 깡 하는 소리가 마치 가죽이 아닌 갑옷을 때리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안킬로우르수스가 트레이시를 떨쳐내기 위해 몸을 180도 돌려 뒤흔든다.


" 크와아아아아아! "


" 으잇! "


한 손은 검에 쓰고 있었기에 한 손만으로 두꺼운 가죽을 붙잡고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트레이시는 공중에 던져져 그대로 멀리 굴렀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아르셰가 다시 한 번 마법을 발동했다.


" <뇌격>! "


강력한 번개가 지팡이로부터 날아가 안킬로우르수스를 향했다. 그것이 위험한 것임을 눈치챈 안킬로우르수스가 그 커다란 몸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속도로 옆으로 점프해 번개를 피했다. 지상의 녀석보다 위에 있는 녀석이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며 안킬로우르수스는 언젠간 한 번 땅으로 내려올 것을 인지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르셰와 트레이시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 힘 대 힘으로는 무조건 밀리겠네. "


그렇게 말하며 트레이시가 뒷주머니에서 채찍을 꺼내 들었다. 착용하고만 있어도 나약한 몬스터는 일시적으로 다스릴 수 있게 해주는 무기지만 트레이시의 레벨로는 안킬로우르수스는 커녕 워 울프 정도만 되더라도 길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길들일 수 있는 마수나 동물이라고 해봤자 숲에 나타나는 평범한 늑대 정도 일터다. 그러나 딱히 그것을 노리고 무기를 든 것은 아니다.


" 합! "


찰싹 소리를 내며 채찍을 바닥으로 휘두른다. 갑자기 늘어난 리치에 안킬로우르수스 또한 당황한다. 채찍을 휘둘러 안킬로우르수스의 머리를 노리자, 안킬로우르수스가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한다. 어떤 공격인지 알지도 못하기에 그 또한 맞고 싶지는 않았다.


" 크르르... 쿠오오오오오!!! "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는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돌진뿐, 안킬로우르수스가 맹렬하게 돌진해왔다. 거대한 앞발이 순식간에 트레이시의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 큭! "






급한 대로 검을 들어 앞발을 막는다. 깡 하는 강철음과 함께 발은 막았지만, 그 발톱은 길어 막아내지 못한 틈새로 발톱이 들어와 팔을 베어낸다.


" 크앗! "


입고 있던 갑옷에 의해 피해는 줄었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대치하는 팔을 내리면 그대로 짓뭉개 질 것이 분명했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도 멈출 수 없이 트레이시는 안킬로우르수스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전념했다.


" 트레이시!!! <뇌격>!!! "


그렇게 대치하는 사이, 안킬로우르수스의 등으로 아르셰의 번개가 내리꽂혔다. 이전의 마법 화살과는 달리 공격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안킬로우르수스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내리찍던 발을 치워 그대로 뒤로 넘어진다. 크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데미지로, 안킬로우르수스의 등에 번개가 내리꽂혀 파인 살이 흙으로 된 투기장 바닥에 스칠 때마다 안킬로우르수스는 더욱 고통스러워 날뛰었다.


" 먹혔다! "


발라당 넘어진 채로 이리저리 구르는 안킬로우르수스를 향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트레이시가 돌진했다.


" 아까의 복수야! "


배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그러나 단단한 가죽이 여전히 그 길을 막아섰다. 검은 완전히 찔리지 않고 가죽의 겉면만을 베어냈다.


" 좀 뚫려라! "


가죽이 찢기는 고통에 안킬로우르수스가 등의 고통도 잊고 몸체를 돌린다.


" 이런! "


" 크와아아아! "


분노로 가득 찬 발톱이 다시 한번 트레이시를 향해 돌진했다.


" <유수가속>!!! "


무투기에도 재사용 대기시간은 있다. 조금 전에는 발동하지 못하고 막아내야만 했던 이유다. 자신에게만 적용되는지 남들에게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회피만 노리는 것이 아닌 카운터를 먹이기 위해서 유수가속의 발동과 함께 안킬로우르수스에게 돌진했다. 발톱이 스쳐 뺨에 상처를 냈지만 넘쳐나는 아드레날린 속에서 그러한 작은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분명 어딘가에...! "


" <하급 근력증대>! "


순간적으로 트레이시의 생각이, 마치 정신이 이어지듯 아르셰의 머릿속에도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아르셰가 버프 마법을 사용해 트레이시의 근력을 증가시킨다. 트레이시가 안킬로우르수스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점프해 안킬로우르수스의 등에 올라탄다. 그리고, 급하게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 찾았다!!! "


그것은 아까 전 뇌격으로 난 상처였다. 가죽을 뚫지 못한다면 가죽이 뚫린 장소를 뚫으면 그만이다. 유수가속의 효과가 남아있는 지금 찔러야만 했다.


" 하아아아압!!!! "


뒤늦게 눈치채고 안킬로우르수스가 높게 점프하지만 두 다리로 안킬로우르수스의 등에 착 달라붙은 채 트레이시가 카타나로 피가 고여나오는 상처를 내리찍었다. 치명상이었다. 죽을 정도의 공격은 아니었으나 치명상에는 충분했다. 피가 뿜어져 나와 트레이시의 전신을 덮어씌웠다.


" 아직 모자라!!! "


카타나로 벌어진 상처에 트레이시가 손을 찔러넣는다.


" <마법화살>!!! "


그리고 배워두었던 마법인 마법 화살을 사용해 상처 안쪽에서부터 직접 마법 화살을 박아넣는다. 마법 화살은 안킬로우르수스의 몸 안쪽에서 이곳저곳 튀어 그 내장을 산산히 조각내어 놓는다.


" 마지막이다! "


아직 높게 떠오른 안킬로우르수스가 공중에서 바닥으로 내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트레이시가 다시 한번 카타나를 집는다. 상처에 꽂힌 카타나를 꺼내 이번에는 더욱 깊게 찔러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쿵 하고 바닥에 안킬로우르수스가 떨어진다.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흙으로 이루어진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안킬로우르수스의 등에 올라탄 작은 인영뿐 이었다.


" 하아... 하아... 죽었지? 너... 죽은거지? 일어나지 마라...? "


공중에서 아르셰가 바닥으로 살며시 내려온다. 트레이시가 안킬로우르수스의 등에서 내려오는 걸 부축해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두 명이 동시에 높게 손을 들어 자신들의 승리를 알린다.


" 이게 무슨 일일까요!!! 도전자가 안킬로우르수스를 무찔렀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도전자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만, 오늘 그 역사는 깨지고 맙니다! 트레이시와 아르셰를 힘찬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