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00년 하고도 조금 더 전. 슬레인 법국 남서쪽 위치의 거대한 숲. 엘프들이 살아가는 나라의 근방 인적이 드문 장소에 한 명의 하프 엘프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키는 170cm 정도 되었으며, 머리카락은 은은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검은색이었다. 신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굉장히 젊어 조금은 앳돼 보였다. 옷은 백색 갑옷으로 중무장하고 있지만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옷은 대부분이 치장용 아이템이며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철컹하는 소리가 나는 효과가 부여된 아이템이다. 그 갑옷의 가슴에는 장미와 튤립의 줄기가 뒤섞여 그 끝에는 양쪽으로 꽃이 피어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는 당황하지 않고 가장 가까운 엘프 마을을 찾아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위그드라실이라는 세계에 관한 설명을 아무리 해 보아도 그것을 이해하는 엘프는 없었다. 자신이 원래 살던 장소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플레이어였다.


그런 그에게는 신기하고도 재주가 많은 물건 즉, 매직 아이템이 여럿 있었으니 그들 중 하나는 칠드런 메이커였다. 위그드라실에서 남은 물건 중 이야기 상대가 되어줄 사람은 주변에 그 누구도 없었으니 그는 그것을 사용했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세계, 위그드라실이 아닌 실제로 그가 살던 세계에서 살아가던 여동생을 본떠 만들었다. 그리고 프레이야는 그렇게 태어났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프레이야는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아버지인 『란셀』 과 함께 웃으며 삶을 보냈다. 비가 올 때마다 천장의 바위틈으로 물이 흘러내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을 때마다 눈을 깜빡이며 서로 웃었다. 가뭄이 찾아와 대기근이 시작되었을 때, 란셀은 프레이야와 함께 엘프 마을을 열심히 도왔다. 숲에서 특정 약재를 기르는 방법, 농사와 수렵과 관련된 매직 아이템을 빌려주며, 그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란셀은 레벨은 높았으나 소유한 대부분 클래스가 생활직에 할당된 플레이어였다.


15년 정도가 지나, 이 세계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 쯤, 사건은 일어났다. 엘프들의 왕 데켐 호우간이라는 자가 슬레인 법국에게서 무언가를 훔쳐내어 멋대로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로 인해 슬레인 법국과 엘프 나라의 숲 사이에 위치한 동굴에서 지내는 그들의 삶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터전을 옮겨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일 이후 란셀에게 의지하는 엘프들이 많아졌다. 란셀과 프레이야는 처음에는 열심히 그들을 도왔으나 전쟁이 발발해 둘을 찾아오는 엘프의 수가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나자 둘의 소문은 먼 장소까지 퍼졌다.


그리고, 사건은 그때 일어났다.


" <연쇄용뢰>! "


프레이야의 시야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는 그림자로부터 번개의 드래곤이 쏟아져 나왔다. 번개는 하늘을 뱀처럼 휘감으며 날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란셀을 향해 날아들었다.


" <마법 최강화> <대뇌방어>! "


란셀은 그것을 전격계 데미지를 낮춰주는 방어계 마법으로 겨우겨우 막아낸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프레이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좋은 일만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신의 아버지가 그리고 자신이 표적이 되어야 하는가.


" <마법 삼중화> <관목성장>! "


나무를 자라게 하는 마법을 삼중화로 영창해 거대한 세계수와 같은 나무가 순식간에 자라난다. 그러한 나무가 하나, 둘 서서히 벽처럼 란셀과 프레이야의 앞을 가로막는다.


" 이걸로 시간을 벌 수 있을거야. "


" 오, 오빠...! "


당연히 진짜 자신의 오빠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창조한 란셀은 자신을 그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그것이 란셀의 진짜 여동생임을 프레이야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 괜찮아, 방어 마법이나 자잘한 건 생각보다 많이 아니까. "


" <마법 삼중화> <옥염>! "


거대하게 자라난 나무도 무심하게 검은 지옥의 불길에 완전히 타버리고 만다.


" 오빠! 무슨 일 인 거야!?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야? 왜 오빠를 공격하는거야? "


" 나쁜 사람들이야, 그리고... 내가 아니야... 너를 노리고 있어. "


프레이야도 사실 느끼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느껴지는 심장의 박동이 크게 요동치고, 근처에서 위기가 찾아오리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어째서? "


" ... "


란셀은 난생처음으로 프레이야에게 침묵을 유지했다. 란셀도 프레이야가 자신의 여동생이 아님을 알고 있으나 그것을 은연중에 피하고 있었다. 이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그녀가 정말로 여동생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다음 말을 해 버리면 그녀는 더 이상 여동생이 아니게 된다. 그것을 자신의 입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에 고집과 욕망으로 그녀에게 진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 네가... 칠드런이기 때문이야... "


" ... "


프레이야는 표정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서글픈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어째서일까, 자신이 여동생으로 취급받아왔기 때문일까, 이제는 여동생이 아니라는 걸까. 창조주가 그렇게 다뤘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은 왜 가슴이 옥죄여오는가.


" <전이감지>! "


위그드라실에서 PVP를 걸어오는 유저는 흔하다. 문제는 그것을 자신이 원할 때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PVP를 회피하는 방법을 모든 유저는 하나씩은 구비 해 놓고 있었다. 란셀의 경우에는 사전준비였다. 적이 오기 전에 미리 그 장소를 뜨는 것이다. 전이 감지가 발동해 자신의 주위에 전이해 오려는, 일렁거리는 두 명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 <상위 전이>! "


란셀은 황급히 프레이야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상위 전위를 사용해 그 장소를 즉시 벗어났다.


" 놓칠까 보냐! <추적>! "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다른 한 명의 스킬이 발동한다. 추적 스킬이 란셀의 상위 전이를 단숨에 파악해 그 위치를 그들에게로 전송한다. 그 과정을 몇 번 정도 반복해, 종국에는 전이 지연으로도 그들이 따라잡는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 하아...! 하아...! "


" 괜찮아? "


" 응, 괜찮아. "


원래부터 생활 계통의 클래스인 그에게 체력과 마나를 이렇게나 소모하는 일은 없을 터다. 그러나 쫓아온 상대는 철저하게 전투를 위해 성장한 것인지 지치는 기색따위 보이지 않았다.


" 이제 MP는 끝? "


남성으로 느껴지는 목소리가 말했다.


" 큭, 도망칠 시간도 주지 않나... "


유명한 길드에도 들지 않고 적당한 놀이용 길드에 들어가 농장 생활만 즐겨하던 란셀에게 전투는 무리였다.


" 프레이야... 도망칠 수 있지? "


본능적으로 프레이야는 고개를 격하게 저으며 그것을 거절했다. 자신의 창조주를 죽게 놔둬야 한다는 의미임을 저절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 칠드런은 계정이 삭제되지 않는 이상 존재하니까... 내가 죽어도 분명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


" 싫어! 죽지 마! 같이 도망 쳐! "


" 둘 다 보내줄 테니까 사이좋게 가라고! "


또다시 그림자가 엄습해 란셀을 노린다. 마법을 영창 했던 자와 스킬을 발동 한 자 두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그러나 프레이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란셀은 그녀를 여동생처럼 키웠기에 레벨도 낮았고, 전투와 관련된 스킬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무언가가 짓이겨지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 ...아? "


눈을 떠 살펴보자, 피로 범벅된 창의 끝이 프레이야의 눈 바로 앞에 멈춰 서있었다. 그 끝에서 핏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다. 창은 누군가의 몸을 관통해 자신의 앞에서 멈춘 것이다.


" 크학... "


치명타였다. 피를 토해내는 란셀을 두 목소리가 비웃었다.


" 마지막 일격은 네가 해야 돼. "


남성형의 그림자가 말했다. 여성형의 그림자가 자신의 창을 란셀에게서 격하게 뽑아내자 거대한 피 물보라가 일었다.


" 길동무로... 삼아주겠어... "


그렇게, 란셀은 죽었다. 그 자리에 쓰러져, 그림자의 발에 밟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 그 몸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냉큼 죽으란 말야! "


" 어라? 엇...! "


두 명의 움직임이 멈춘다.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몸을 꽉 붙잡은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몸 전체가 마비되어 그대로 굳어 그 자리에 쓰러진다. 눈동자만을 겨우겨우 움직여 란셀과 프레이야를 향한다. 그러나 여전히 몸도 입도 움직일 수 없었다. PVP를 회피할 방법을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중에는 PVP를 회피하는 것이 힘든 직종은 있다. 란셀은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이 기르는 농장의 값어치가 더 컸기에 도망치는 것에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란셀은 상대를 이기기보다 상대를 엿 먹이는 방법을 택하여 스킬을 배웠다. 스킬 길동무는 자신을 죽인 적을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봉인계 스킬이다. NPC는 배울 수 없지만, 레벨과 관계없이 몇몇 특수한 개체를 제외한 모든 상대를 묶을 수 있는 스킬이다.


" 이... 자... 식... "


란셀의 시체를 보고, 그 후로부터 프레이야의 기억은 잠깐 끊겼다. 자신이 정신을 차렸을 땐 그림자가 들고 있던 창을 들어 그들의 몸을 난도질한 뒤였다. 천천히 란셀의 시체를 향했다. 그러나 란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창조한 주인이 죽어, 무언가 연결이 끊긴 듯 사고가 멈추었다. 이제 자신을 이끌어주고, 자신에게 살아갈 목적을 줄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 오... 빠... "


그리고 그때, 프레이야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다른 출생의 기억, 자라고, 성장하고, 강하게 키워지며, 전쟁에 사용될 도구로 길러진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은 방금 자신이 죽인 자의 기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억의 주인인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칠드런 이었다. 란셀이 이야기해주지 않은 자신을 사냥하는 이유 또한 그녀의 기억 덕에 알 수 있었다. 칠드런은 다른 칠드런을 죽이는 것으로 대량에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걸 알고 있던 플레이어에 의해 태어난 칠드런이 바로 란셀을 죽인 자였다.


" 어째서...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란셀은... 오빠는... "


프레이야는 그 순간 떠올렸다. 자신을 사냥해 온 칠드런이 존재한다면 또 어딘가에 다른 칠드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칠드런이 존재한다면 분명히 반복될 것이다. 그렇기에 프레이야는 다짐했다. 모든 칠드런을 찾아내어 죽이겠다고. 란셀의 의지를 이어받아 엘프의 나라를 다시 도울 수 있는 그날까지.






그리고 프레이야는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묵고 있는 제국 내의 평범한 여관이다. 자신이 하프 엘프임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기에 제국에서 지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 또 그 꿈인가... "


그 칠드런 덕분에 자신은 강해질 수 있었다. 그 후로 칠드런을 여럿 사냥했고, 자신이 최강은 아니겠지만 제국뿐 아니라 주변에 있을 수많은 나라들 사이에서 자신보다 강한 이를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그러나 그 칠드런 때문에 자신의 삶은 이렇게나 뒤바뀌어 버렸음에도 자신의 삶을 망친 그 둘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 흐릿한 안개처럼 막혀있었다.


" ... "


평소에는 살며시 웃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나 악몽을 꾸었을 때만큼은 프레이야도 미소를 유지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상대한 칠드런은 30년 전이다. 그 칠드런 또한 강해지기 위해 수련하고 있었다. 그래서 죽였다. 이번에 만난 칠드런도 마찬가지였다. 트레이시라는 이름의 칠드런은 강해지기 위해 수련하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 세계에서 칠드런을 지워야 한다. 프레이야의 머릿속은 100년 동안 그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