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제안

 

아토우 선배와 둘 뿐인 UMA연구회에서 그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파이프 의자를 덜컹덜컹 흔들며 말한다.

“그러니까 치구사. 그거라고. 너희도 오래 사귀었으니까 권태기가 한두 번은 오겠지.”

“카호나 지금의 생활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알아. 안다고.”

이런 연애 상담도 나는 아토우 선배에게 종종 했다. 그가 연애 경험이 풍부한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말이든 들어줄 것 같은 넉넉함은 확실했다. 실제로도 후배들에게 인망이 두터웠으니까, 연하에게는 인기가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 마침 이런 기사가 있네.”

그는 자신이 읽고 있던 삼류 가십 잡지를 펼쳐서 내게 보여줬다.

나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눈을 부릅뜬다.

‘지겨워진 서로의 파트너에게 새로운 자극을! 해프닝 바나 스와핑의 매력에 대해서’

나는 몸을 빼며 손을 살살 흔들었다.

“……이런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농담이야. 하지만 너흰 너무 착실하니까. 조금은 정도를 벗어나도 괜찮지 않겠어?”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나에게 그는 말을 덧붙인다.

“매주 매주, 카호 쨩이 싸온 도시락 가지고 피크닉이라면 너도 지겹겠지?”

“별로 그런 건 아니에요.”

애초에 카호와 함께 있는 것을 즐겁다거나 어떻다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왠지 모르게 함께 있고 싶다. 거기서 찾는 것은 편안함이지 자극이 아니다.

“뭐, 아무튼, 평소와 다른 것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

아토우 선배에게 그런 조언을 들은 나는 단순했다. 그 날 집에 돌아와서 카호에게 주말 데이트 계획의 변경을 제안해 본 것이다.

“있잖아, 가끔씩은 멀리 가보는 건 어때?”

카호는 특별히 놀란 기색 없이 미소로 답한다.

“응, 좋을 것 같아.”

“이를테면……. 유원지라든가.”

“그러고 보니 둘이서 같이 가본 적이 별로 없었네.”

나와 카호가 가는 곳은 비교적 조용한 곳이 많다. 오락시설이라고 하면 수족관이나 미술 전시회가 전부였다.

“그럼 이번 주는 유원지에 가볼까?”

내가 의기양양하게 말하자 카호도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걸로 조금이라도 내 주위에 얇게 씌워진 막이 걷히면 좋을 텐데.

 

“그래서, 어땠던거야. 지난 주말은?”

주말을 보내고 UMA연구회 동아리방. 여전히 가십 잡지를 열심히 읽고 있던 아토우 선배는 무심한 태도로 그렇게 물었다.

나는 파이프 의자 등받이에 가볍게 체중을 맡기고 팩커피를 마시며 대답했다.

“그냥, 평범하게 재밌었어요.”

나의 아주 최근 기억에는 롤러코스터에서 비명을 지르는 카호나 관람차가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멀리 시선을 보내는 카호의 옆모습이 남아 있었다.

“평범하게 라고?”

“동심으로 돌아갔다고 할까요?”

“그런것치곤 시원찮은 얼굴 이잖아.”

“시원찮은 얼굴은 옛날부터 그랬어요.”

그렇게 건성으로 대답하면서도 내 가슴에 거품이 일었던 몽롱함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입 부원이 들어오질 않네요.”

나도 2학년이 되었고, 마침 입학 시즌인 지금은 어디에서도 열심히 신입 부원을 모집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동아리방에서 멍하니 있는 것은 우리들 뿐일 것이다.

“이 동아리도 너 대에서 끝날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아토우 선배가 말한다.

“섭섭한 말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 실제로 아무도 안들어오니까.”

“모집 같은 건 안 해요?”

“귀찮아.”

“아토우 선배, 파티 기획하는 거 좋아했잖아요. 다른 선배들은 졸업해서 저랑 둘 만 남았다고요.”

“이젠 그런 것도 더는 질린거야.”

그렇게 말하며 잡지를 넘기는 아토우 선배의 말에 나는 가슴이 덜컹했다

‘질린거야.’

어째서인지 가슴이 아프다.

평온한 일상. 당연하다는 듯이 곁에서 미소 지어주는 웃는 얼굴.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온기. 그 모든 것이 모두 타성의 산물처럼 느껴졌다.

롤러코스터에서의 비명. 관람차에서의 옆모습. 나는 그런것들로 행복을 누리고 있었을 텐데, 반면에 어째서인지 묘하게 빛이 바랜 것처럼 느껴졌다.

그 후 나는 참을 수 없게 되어 살며시 동아리실을 나왔다.

캠퍼스는 새로운 만남과 청춘을 만끽하려는 에너지로 가득차 있었다.

그 속에서 나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호가 속한 테니스 동아리도 부원들이 총출동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그 일원 중에서 카호의 얼굴이 보였다. 요령이 좋다고 할 수 없고 부끄럼쟁이지만, 항상 열심히 하는 카호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그녀와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서로가 살짝 손을 흔든다.

이런 순간에 느끼는 작은 온기는 결코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마음이 닳아 버려서 일까.

나는 카호를 사랑한다.

그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녀를 중심으로 한 생활에 어딘지 모르게 식어버린 내가 있다.

그대로 대학 구내를 나와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별다른 용무 없이 들어선 점내에서 나는 가십 잡지를 집어들었다.

뭘 하고 있는 건지 하고 자조한다. 이럴 거라면 동아리방에서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새로움을 찾아서 나온 결과가 이래서야 웃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그대로 페이지를 넘긴다. 특별히 눈에 띄는 기사는 없다. 연예인의 스캔들에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중 눈에 띄는 페이지가 있었다.

‘부부의 권태기 격퇴법!’

그런 기사였다.

좀 전에 아토우 선배가 읽고 있던 잡지와 같은 것일까. 해프닝 바, 스와핑 같은 독자들의 과격한 체험담이 투고되어 있었다.

그 중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애처를 다른 남자에게 안기게 했다는 에피소드였다.

네토라세.

그 기사에는 그 행위가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마치 큰 소용돌이에 끌려들어가는 배처럼 그 기사를 눈으로 쫓았다.

그 체험담에는 ‘공인 불륜 데이트’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투고자가 자신의 애처를 젊은 남자에게 빌려주고, 자신을 대신해 밤일을 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투고자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그것들을 뛰어넘는 흥분과 자극이 적혀 있었다.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모습을 훔쳐보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황홀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체험담을 읽었고, 다 읽고 나서는 마른침을 삼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 행위는 여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모독적이었다. 세간의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면서 모종의 갈망이 목구멍 속에 싹트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런 변화에 큰 죄의식을 느끼고 잡지를 다시 돌려놓고 도망치듯 대학으로 돌아왔다.

캠퍼스에서 진행 중이던 동아리 활동의 신입 모집은 거의 마무리 되었고, 벚꽃이 흩날리는 가운데 언제나처럼 카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과 같은 테니스부의 유니폼이 아닌, 원피스에 가디건을 걸친 카호다운 청초한 봄 옷차림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수줍어하며 살짝 손을 흔든다.

나는 황급히 달려갔다.

그 발걸음에는 변함없는 일상에 대한 안도감이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연인의 미소가 나의 흐트러진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왜 그래? 치-군, 안색이 좀 안 좋아?”

카호가 걱정스러운지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괜찮아. 자, 돌아가자.”

나는 그녀를 이끌듯이 걸음을 내딛었다. 카호는 뒤처지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옆에 섰다.

“부원은 좀 모았어?”

아직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은 나는, 조금이라도 기분을 달래고 싶어서 아무래도 좋은 잡담을 늘어놓는다.

“응. 제법 흥미를 가져주는 사람이 있었어.”

카호는 기쁜 듯이 웃었다.

“그래. 다행이네. 이쪽은 큰일이야. 매일 아토우 선배와 둘 뿐이야.”

그렇게 농담조로 말하자, 그녀는 재밌다는듯이 쿡쿡 우아하게 웃는다.

대화는 거기서 잠시 끊어져 버린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서는 정적이 드문 일이 아니다. 원래 서로 말수가 적다. 그래도 마음은 통한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 통하는 마음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대로 몇 분 정도 걸었을 때 였을까.

카호가 내 재킷 소매를 불쑥 잡아당겼다.

나는 약간의 놀라움과 함께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남들 앞에서 손을 잡기는커녕 내 옷을 잡는 것조차도 부끄러워하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행위에는 어떤 강한 감정이 담겨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조신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미꽃 같은 화려함은 없어도 누구에게나 안심을 주는 봄날의 따스한 미소.

“무슨 고민이 있어?”

사랑스러운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

“……왜?”

“요즘 좀 이상하니까.”

“그랬나.”

“응. 조금 무리하고 있다고 할까……. 유원지에서도…….”

카호는 거기서 말을 머뭇거린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 부부나 마찬가지인 우리들이다. 서로에게 이변이 생기면 금방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유원지에서의 나는 조금 과장되게 즐거운 듯이 행동했던 것 같다.

카호로서는 이래보여도 기다려 준 편일 것이다. 내가 언제쯤 고민을 털어놓을까 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나는 얼버무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별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카호가 종종걸음으로 따라온다.

“그래도 이야기해 줘.”

보기 드믈게 완고하다. 그도 그렇다. 입장을 바꾸면 분명 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카호의 존재는 내 짧은 인생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말 그대로 그녀와 함께 청춘을 함께 걸어왔다. 나를 구성하는 피와 살의 절반 이상은 그녀와의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나라는 존재는 카호에 대한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확고한 애정이 있기에 이 고민은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내가 카호를 주축으로 한 이 생활에 지겨워지고 있다.

그런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더는 다물고 있을 수 없다. 카호의 추궁에 언제까지나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결코 스스로 청렴결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카호와의 사이에는 성실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고 믿고 있다.

그날 밤 나는 카호를 안았다. 의무감으로 얼룩진 섹스였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자 카호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모든 것을 고백했다

최근 느끼는 허무함. 권태감.

카호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설명했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녀는 내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가만히 입을 다문 채 그 말을 들어 주었다.

달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나와 침대 위를 비추고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어?”

머리에 떠오른 것은, 낮에 읽은 잡지의 체험담.

하지만 그런 일은 그녀에게 부탁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내 말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거짓말. 사실은 뭔가 있는거지?”

역시 그녀는 나에 대해서는 날카롭다.

“정말이야.”

나는 그녀의 추궁을 피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그녀를 위에서 덮쳤다.

젊음은 넘치는 성욕을 준다.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분위기는 그마저도 방해한다. 요컨대 좀처럼 발기가 되지 않았다.

나는 시험삼아 마음속으로 그 체험담의 흉내를 시뮬레이션 해봤다.

카호가 누군가에게 안기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상대는 누구로 할까.

자연스럽게 가까운 존재. 아토우 선배가 떠올랐다.

그 럭비로 단련된 거구가 이 가냘픈 연인을 덮어 씌우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내 콧김은 거칠어지고, 심박수가 상승하고, 그리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발기했다.

다시 카호의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좁다. 부드러운 육단지에 의한 밀착감은 콘돔을 하고 있어도 강렬하다

“……으읏.”

내가 안쪽까지 들어가자 그녀는 나지막한 소리를 내며 나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농담조로 말한다.

“역시 뭔가 있어.”

그녀가 수상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섹스라 하면 한 번 몸을 겹치면 그것으로 마치는 비교적 담백한 것이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연거푸 탐하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안기는 카호를 상상하니 나의 왕복 운동은 자연스럽게 짐승처럼 변했다. 독점욕과 질투에 사로잡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를 사랑하고자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지금까지 없었을 정도로 격렬하게 삐걱삐걱 흔들리는 침대 위에서 카호는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치-군. 조금 무서워.”

그렇게 말하면서도 격렬하게 탐해지는 것이 아주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피스톤을 잠시 멈춘다. 내 가슴에서 땀이 방울져 떨어진다.

“……미안해.”

나는 흥분으로 인한 거친 숨을 주체하지 못하며 사과했다. 이기적인 망상으로 그녀를 이기적으로 그녀를 범해버린 내 자신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나를 나무라지도 않고 오른손을 내 뺨에 다정하게 갖다 대었다.

“치-군. 부탁이야. 말해줘.”

그녀의 눈빛은 나를 감싸는 듯한 자애로 가득차 있다

“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응석을 부리듯 정상위로 연결된 채, 나는 모든 생각을 토해냈다.

내가 느끼는 지루함.

그리고 바라고 있는 비일상.

몸도 마음도 하나로 녹아들어 고백했다.

카호가 다른 사람에게 안기는 광경을 망상하며 강하게 흥분한 것도

그런 천박한 자백에 대해 카호는 한치의 혐오감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비웃는 일 없이 솔직히 받아주었다.

“고마워. 말해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조금 생각할 시간을 줘…….”

그리고는 곤란한 듯이 미소지었다.

그날 밤, 카호는 내 집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혼자 침대에 누워 깊게 후회하며 침울해졌다.

권태기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 해결책으로 남에게 안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아무리 간청했다 해도 가슴에 담아두어야 했을 정욕이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그녀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생각할 시간을 줘.’

그 말은 앞으로의 우리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침대 위에서 신음하듯 뒹굴었다.

아무리 카호가 나의 응석을 무엇이든 들어줄 것 같은 모성에 가득 찬 사람이라도 한도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상한 말을 꺼낼 사람인 줄 몰랐어.’

‘아니야! 오해야.’

깎아지른 절벽에서 카호와 말다툼 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봐 주면 좋겠는데? 나로선 치-군이 바라는 것을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아.’

‘기다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보지만 아무리 해도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카호는 깎아지른 절벽 너머로 몸을 던져버린다.

‘카호──!!!’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몸의 절반이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있었다.

“……꿈인가…….”

식은 땀을 심하게 흘리고 있었다.

샤워를 하면서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대체 어떤 얼굴로 카호를 봐야 하냐고…….”

오늘도 어김없이 평온한 일상이 시작된다. 그것은 즉 아침 전철에서 카호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철 시간을 늦춰 볼까 고민했지만, 내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도망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차이게 된다면…….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나는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한숨을 쉬며 역으로 향했고, 그리고 전철를 탔다.

어젯밤, 기세를 몰아 전부 털어놓은 것을 이제와서 후회한다.

카호는 나의 전부다. 잃고 싶지 않다.

그런 불안에 시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카호가 올라타는 역에 도착한다.

카호도 시간을 늦추거나 하는 일 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전철에 올라탔다.

그러나 그 모습은 평소와 같지 않다.

분명히 표정이 굳어 있고 어깨도 뻣뻣하다

딱 보기에도 긴장하고 있다.

“아, 안녕.”

“……안녕.”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말없이 전철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숨막히는 공기 속에서 우리는 몇 번인가 서로를 훔쳐보듯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상태로 전철에서 내리고 내가 반 걸음 앞서서 대학으로 향한다. 자연스럽게 내 걸음걸이는 평소보다 더 분주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은 역시 사과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려던 찰나였다.

카호가 내 재킷 소매를 잡고 멈춰섰다. 그리고 사그라들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있잖아……. 어제 밤새도록 생각해봤어…….”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억지로 끌어내는 듯한 가냘픈 목소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잊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별을 통보할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카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괜찮아. 치-군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역에서 대학으로 이어지는 긴 언덕길에서 우리는 시간이 멈춘 듯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

내가 되묻자 카호는 소매를 꽉 움켜쥐며 답한다.

“그, 그러니까……. 어제 말했던, 치-군이 하고 싶다고 한 거…………. 해도 괜찮아.”

나는 순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혼란스러웠다.

내가 은밀히 망상하고, 바라고 있던 것.

카호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것.

그걸 그녀가 허락해 줬다고?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호와 마주했다. 그러자 그녀는 머뭇거리며 부끄러운 듯이 좌우의 검지손가락을 주뼛주뼛 돌리며 말했다.

“……치-군이……지겨워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 헌신적인 표정과 음색에 내 심장이 요동쳤다. 요컨대 카호에게 다시 한 번 반한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변명했다.

“카, 카호가 질린다니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잖아!”

하지만 카호는 섭섭한 표정으로 땅바닥을 보며 말한다.

“……그치만……. 쉽게 말하자면 그런 뜻이잖아?”

“아, 아니야. 어디까지나 내 생활 자체에 자극이 없다는 이야기야…….”

필사적으로 얼버무리려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속여 넘기려 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생활, 인생의 대부분은 곧 카호니까.

카호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심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씩씩한 미소였다.

“나는 괜찮아……. 치-군를 위해서라면…………. 응.”

나는 그녀의 헌신이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워서,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주변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학에 등교하는 사람들로 넘쳤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그저 카호를 끌어안고 싶었다.

그리고 카호도 놀라서 몇 초동안 경직했다가 마주 안아왔다.

우리를 비켜가는 학생들 중에는 동급생도 있어서 우리를 놀리는 듯한 말을 던지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손을 잡는 것조차 주눅들어 할 수 없었던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서로를 꼭 껴안았다.

“……미안해.”

무엇에 대한 사과일까. 나 자신도 모르겠다.

카호는 그저 내 품에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카호가 ‘네토라세 플레이’를 허락해 주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상간남의 역할이다.

나는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했다.

조건으로는 역시 우선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도 하루아침의 신뢰로는 부족하다.

어쨌든 소중하고 소중한 연인을 ‘안게’ 하는 거니까. 어딘가의 개뼈다귀 같은 모르는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애초에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끙끙 앓다가 방과 후가 되어 습관처럼 UMA연구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문을 열자 아토우 선배가 두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 과자를 호쾌하게 볼에 가득 넣고 있었다..

내 입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싹싹하게 한 손을 든다.

“여어, 치구사. 너도 한가하구나.”

나는 아토우 선배를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가까이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아토우 선배에게 다가서서, 콧김을 내뿜으며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아토우 선배!”

“뭐, 뭐야……. 기분 나쁘게.”

당황하며 어리둥절한 소리를 하는 그에게 나는 똑바로 눈동자를 항하며.

“…………카호를 안아주세요.”

 

그날 저녁, 내 방에 카호와 아토우 선배가 모였다.

“갑자기 미친 줄 알았어.”

아토우 선배는 그렇게 웃으며 캔맥주를 들이마셨다.

나와 카호는 도저히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어서 나란히 앉아 아토우 선배의 말을 계속 기다렸다

“나로서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설마 치구사가 그렇게까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는지 몰랐으니까. 미안해, 카호 쨩. 내가 원인처럼 되버려서.”

아토우 선배가 그렇게 말하자 카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만 이 두 사람 역시 아는 사이이다. 내가 신세지고 있는 선배여서 카호와도 이전부터 교류가 있었다. 가끔 셋이서 학생식당을 함께 이용할 정도지만.

“내가 말하기 뭐하지만, 조금 더 고민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토우 선배는 그렇게 말하지만, 나의 결심은 이미 확고하다. 뭣보다 요 며칠만 고민한 것이 아니다. 계속 나를 씌우고 있는 지루한 일상을 겨우 찢어줄 것 같은 무언가가 발견된 것이다.

카호로서도 열심히 고민한 끝에 허락한 것이다.

아토우 선배는 내 눈을 보면서 한 손을 마주보고 앉은 카호에게 뻗었다.

“예를 들어 내가 이렇게 카호 쨩의 손을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말이지…….”

아토우 선배가 카호의 손을 잡는다.

카호는 몸을 움찔하며 몸을 떨었고 순간적으로 그 작은 손을 빼내었다.

나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심장을 움켜쥐어진 듯한 질투에 휩싸였다.

“봐, 둘 다 너무 싫어하잖아.”

타이르는 아토우 선배에게 우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뜻밖에도 카호였다.

“괜찮아요! 우리가 상의하고 결정한 일이예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 표정으로 아토우 선배를 바라본다. 그 표정에서 남다른 각오가 느껴졌다.

“우리의 미래에 필요하다면……. 저는 참을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카호 쪽에서 아토우 선배의 손을 잡았다. 카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토우 선배는 쓴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인다.

“그렇게 대놓고 참겠다고 한다는 건……. 나랑 하는 건 역시 싫지?”

카호는 즉시 힘차게 고개를 끄덕었다.

하지만 그 힘이 깃든 시선은 아토우 선배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토우 선배는 그저 웃음밖에 안나온다는 표정이었다.

“카호 쨩은 치구사 말고는 관심이 없지…….”

확실히 카호는 그런 일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나에게 너무 상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제안도 받아 들였을 것이다..

아토우 선배는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치구사. 정말로 카호 쨩에게 감사하라고. 이렇게 헌신적인 여자친구는 흔치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토우 선배는 헤벌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이런 짭짤한……. 아니다. 난처한 역할은 힘들다고?”

아토우 선배의 속내는 뻔했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편드는 것은 아니지만 카호는 매력적인 여자다. 그녀를 아무 리스크 없이 안을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남자에게는 잘 차려진 밥상일 뿐이다.

아토우 선배가 성적인 눈으로 카호를 보고 있다. 손을 다시 잡고 기대에 젖은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카호는 그 것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나는 솔직히 아토우 선배에게 초조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일을 부탁해놓고는 너무 이기적인 감정이지만, 그래도 역시 남자친구로서의 자존심은 억누를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이어진 카호의 손은 내 심장을 날뛰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불안한 광경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카호의 손바닥 감촉이 지금, 아토우 선배에게 쥐어져 있다.

그 촉촉하면서, 여리고 부드러운 카호의 손.

나는 그것만으로도 질투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몸을 내밀어 그 이어진 손을 떼어내고 싶어진다.

그런 나에게 아토우 선배는 쾌활하게 웃었다.

“어이 어이, 그렇게 죽일듯이 보지마.”

“죄, 죄송해요……. 그만.”

“뭐, 너희가 제대로 상의해서 서로 납득한거면 그걸로 괜찮겠지. 그럼 바로…….”

아토우 선배가 카호의 팔을 잡아당겨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하지만 카호는 이에 저항하며 그 자리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상체만 앞으로 당겨져 있다.

“……카호 쨩?”

“그게……. 죄송해요. 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치구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토우 선배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다면 하며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카호의 바로 뒤에 앉아 두 팔이 안전벨트인 마냥 카호를 껴안았다.

평균적인 체격의 나보다 훨씬 큰 그가 포옹하자, 카호의 가냘픈 몸이 전부 삼켜질 것 같았다.

그런 광경에 나는 무심코 아토우 선배의 어깨를 잡아 떼어내려 하고 만다. 옷 위에서도 알 수 있는 기골이 장대한 몸.

카호는 카호대로 눈을 질끈 감고 표정을 굳히고 등을 둥글게 말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싫어하면 어쩌나…….”

아토우 선배는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죄송해요……. 어쩐지 몸이 제멋대로 이렇게 되어버려서…….”

“뭐 조만간 익숙해질거야.

잔뜩 긴장한 나와 카호와는 달리, 아토우 선배는 매우 차분한 모습이었다.

“아토우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나요.”

내 말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너무 뜬금없는 일이라. 남의 일처럼 느껴져.”

“……사실 이런 것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어요.”

“웃기는 소리 하지마. 여자 경험은 그럭저럭 있지만, 이런 특수한 플레이에 연관되는 건 처음이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카호를 끌어안는다.

“그런 이유로 나도 긴장하고 있다고. 봐봐, 내 심장 소리 들려?”

그는 자신의 가슴팍과 카호의 등을 밀착시켜 심장 소리를 들려주려고 했다.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카호는 고개를 가늘게 저었다.

“거짓말~. 안 들려? 꽤나 두근거리고 있는데 말이야~.”

경망스러운 태도로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두 팔이 카호의 가슴으로 뻗는다.

“꺄악!”

카호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토우 선배의 손이 카호의 가슴을 들어올리듯 만졌다. 체격의 차이는 분명하다. 진심으로 저항해 보지만 카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의외로 묵직한 무게감.”

카호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찌나 갑작스러웠는지 그런지 몸도 마음도 굳어 버렸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카호가 다른 남자에게 가슴을 만져지고 있다. 뒤통수를 금속 배트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덮쳤다.

거기다 아토우 선배의 두 손이 마음껏 가슴을 움켜쥐었다.

 

 

 

“볼륨도 장난 아니네.”

“……읏!”

카호는 더는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이런 모습을 내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전해진다.

하지만 나는 그저 아토우 선배에게 가슴을 주물러지는 카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토우 선배가 웃었다.

“너네 둘도 이제 어깨에서 힘 좀 빼.”

그런 말을 들어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다.

“괜찮다니까. 소중한 후배의 소중한 여자친구잖아. 가져가서 잡아먹거나 하지 않는다고. 아니, 어떻게 보면 진수성찬이려나.”

그렇게 말하며 하하하 하고 호쾌하게 웃는 아토우 선배의 품속에서 카호는 도움을 청하듯이 나에게 시선을 보낸다.

내 심장이 아프다.

“카호……. 역시 그만둘까……?”

하지만 카호는 그저 심약하고 가련하기만 한 여자가 아니었다.

내 속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게다가 해결하고 싶다는 강철의 의지를 갖고 있었다.

“……괜찮아. 치-군을 위해 힘낼게.”

지금 다시 한 번 서로의 결의와 각오를 확인한 우리 둘에게 아토우 선배가 제안한다.

“갑자기 서로 눈앞에서 하는 건 너무 난이도가 높은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한심하게도 나는 그토록 카호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모습에 집착하고 있었는데, 막상 그 현장을 앞에 두고 나니 도망치고 싶어졌다. 도저히 까지는 아니지만 직시할 수 없다.

카호의 표정에서도 나에게 보여지는 것보다는 낫다 라고 말하려는 것 같은 기미가 읽혔다.

나는 잠깐 망설인 끝에 카호와 아이컨택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끝나면……연락주세요. 그때까지 밖에 있을게요.”

“알았어. 카호 쨩도 그러면 되겠지?”

카호는 아토우 선배에게 안긴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방을 마치 유령 같은 발걸음으로 나가려고 했다. 전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야가 흔들린다.

지금부터 내 방에서 카호와 아토우 선배가 섹스를 한다고? 어째서? 내가 바란 것이기 때문이다.

비틀거리며 현관에 도착해 문고리에 손을 댄다. 그러자 뒤에서 카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치-군…….”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카호가 역시 그만두기를 간청한다면, 나는 전력으로 달려가 카호를 아토우 선배에게서 되찾아 그대로 끌어안았을 것이다.

하지만 카호는 심지가 강한 여자였다. 나를 위해, 내 바람을 들어주려 하는.

“……힘낼테니까…….”

나는 그 말을 복잡한 감정으로 붙잡았다. 이대로 정욕이 이끄는 대로 플레이를 끝까지 하고 싶다는 마음과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카호에게 우는 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자신의 나약함을 저주하면서도 나는 그녀의 결심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문고리를 돌렸다.

“……밖에서 기다릴게.”

그렇게 나는 밖으로 나왔다.

초봄의 밤은 아직 공기가 서늘했다. 하지만 추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치채고 보니 땀이 날 정도로 내 몸과 마음은 안에서부터 달아올라 있었다.

문에 등을 기대고 한숨 돌린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나는 숨이 막혀서 가슴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덮쳐온다.

지금쯤 방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잘 생각해 보면, 카호가 다른 남자와 밀실에서 단둘이 있는 상황조차도 나는 처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든 방 안의 상황을 살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에 귀를 대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뒷뜰로 가서 발코니를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핸드폰에 아토우 선배의 메시지가 왔다.

‘적어도 음성 정도는 파악하지 않으면 너도 불안하겠지. 카호 쨩에게는 비밀이다?’

그 직후, 아토우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그것을 받고 핸드폰이 귀에 박히지 않을까 싶은 기세로 전화에 집중했다.

조금 멀리서 소리가 들려온다.

카호에게는 비밀이라고 했으니, 나에게 전화를 건 다음 그 근처의 바닥이나 탁자 위에 두었을 것이다.

카호도 그런 것을 눈치 챌 여유가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녀에게 비밀이라는 것은 조금 꺼림칙했지만, 아토우 선배의 말대로 조금이라도 방 안의 상황을 알고 싶었다.

그저 카호를 남자와 단둘이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의 자초지종을 눈앞에서 두고 볼 용기는 지금의 나에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이런 것을 잘도 허락해 줬네. 카호 쨩.’

기운 없는, 그러면서도 조금은 들뜬 아토우 선배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금 늦게 카호의 대답이 들렸다.

‘……얼마 전부터 치-군이 뭔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던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 호흡을 두고 말을 이어간다.

‘치-군이 제대로 전부 이야기해 줬을 때 정말 안심이 됐어요. 하지만 동시에 무서웠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치-군이 지겨워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 목소리에는 비통함이 섞여 있었다.

내가 카호를 지겨워하다니 그럴 리 없잖아. 핸드폰을 향해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평온함 속에서 자극을 찾고 있었다. 자기모순을 안고 있으면서도 나는 오로지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잡음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더욱 귀를 기울이면 뭔가 옷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천 위로 무언가를 주무르는 듯한 소리다.

그 소리의 정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답은 아토우 선배의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카호 쨩 이렇게 가슴이 컸구나. 놀랐어.’

내가 방을 나가기 직전의 두 사람의 자세를 떠올려 본다. 아토우 선배가 카호를 뒤에서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카호는 오늘도 청초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위에 조금이라도 노출을 줄이려는지 청바지도 입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아토우 선배가 카호의 가슴을 만지고 있다는 것이다.

언뜻 얌전해 보이는 카호에게 감춰진 나만 아는 풍만한 과실을 다른 남자가 맛보고 있다.

그 사실이 가슴을 죄어온다.

‘봐, 내 손으로도 다 못 잡아. 몇 컵이야? F? G?’

아토우 선배는 능청스럽게 물었다.

이에 대해 카호는 부끄러워서 대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가슴을 주무르면서 사이즈까지 묻는 것은 카호에게는 너무수치스러울 것이다. 

‘이건 G 정도려나, G 맞지?’

계속 물어보는 아토우 선배에게 카호는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는지 아토우 선배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역시나. 내 눈썰미가 틀린 건 아니었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런 말까지 꺼낸다.

‘난 말야, 옷 위에서도 젖꼭지 위치를 맞추는 것이 특기라고. 여기지?’

‘싫…….’

‘오, 맞췄어?’

‘……부끄러워요…….’

아토우 선배로서는 긴장을 풀기 위한 레크리에이션의 일환으로 그런 짓을 하는 것 같지만, 카호는 정말 부끄러운 것 같았다.

그리고 카호의 반응을 짐작하면 정말 젖꼭지의 위치를 맞춘 것 같았다.

‘여기지? 자, 집어 볼까. 조물조물.’

‘야, 앗.’

카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냘픈 소리였지만, 그래도 무언가 절박함이 느껴졌다.

분명 카호는 몸을 비틀며 저항하며, 나 아닌 다른 남자에게 젖꼭지를 만져진 것을 자책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자신이 부끄러운 소리를 냈다고 그 하얀 얼굴을 붉게 물들였을 것이다.

‘하하하. 카호 쨩, 귀까지 빨개졌어.’

아토우 선배의 발언이 뒷받침해주었다.

그래도 그는 하나하나 알기 쉽게 상황을 전해주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서비스인 것 같다.

그 배려가 기쁘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복잡했다.

‘젖꼭지가 약한가? 그럼 좀 더 조물조물 해줄게.’

‘그, 그만하세요………….’

‘그렇게 사양하지마. 소중한 후배의 여자친구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애무의 손길을 이어갔을 것이다.

‘……응……아앗…………하앗……아앙…….’

카호의 입에서 괴로운 숨소리가 연이어 나왔다.

나는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는 초조함에 휩싸여 그 자리를 맴돌며 노이로제에 린 곰처럼 서성거렸다.

카호는 아토우 선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일까.

‘이봐, 떨어지면 안되지.’

아토우 선배의 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죄송해요……. 이제 용서해주세요.’

카호의 울음 섞인 목소리. 하지만 남자 앞에서 그 가련한 우는 소리는 마치 더 괴롭혀 달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더 세게 집어 줄게.’

전화기 너머로 꼬옥 하는 소리가 들린 기분이 든다.

카호의 숨소리가 숨을 내쉬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헐떡임이 되어 울려 퍼진다.

‘아앗, 응!’

‘겉모습 만큼 귀여운 소리를 내는구나.’

‘……저어……. 역시 더는…….’

카호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찰나, 쓰윽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정체는 곧 아토우 선배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카호 쨩의 맨가슴 발견. 엄청 쫀득쫀득해.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

그가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카호의 가슴을 그대로 만지는 소리였다.

카호와 일심동체인 나는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달아로르는 것이 손에 잡힌 것처럼느껴졌다. 

‘직접 젖꼭지 집어 줄게. 자, 조물락, 조물락.‘

‘싫……엇…….’

‘꾸욱~~~.’

‘으응, 아…….’

그런 대화가 오간 다음, 쪼옥, 쪼옥, 쪼옥, 하고 입술로 무언가를 쪼아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키스를 하고 있나? 내 질투심이 최고조에 이르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성급한 판단이었다.

‘자, 카호 쨩. 여기 봐. 키스하자.’

아무래도 아까 그 소리는 목덜미를 애무하는 소리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카호는 사그라드는 듯한 목소리지만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

‘…………저기, 키스만 빼고 부탁할게요. 치-군하고만, 부탁할게요…….’

그 말은 나를 어느 정도 안심케 했다

두 손으로 핸드폰을 소중히 들고 카호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작은 소리로 연호했다.

‘그렇네. 알았어.’

아토우 선배는 키스를 거절당해도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흔쾌히 허락하고 그대로 플레이를 이어나갔다.

‘그럼 벗을까.’

‘……저기, 죄송한데……전등을…….’

‘그래 그래.’

쿵쿵하고 발소리가 울리고, 딸깍하고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그럼 침대로 갈까?’

카호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사람이 혼자 침대에 눕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멀어진 느낌은 없었다. 아토우 선배는 능숙하게 핸드폰을 옮긴 것 같다. 침대 옆 탁자에 올려 두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음질이 선명했다.

옷이 스치는 소리가 난다. 두 사람이 옷을 벗고 있는 것이다.

카호는 스스로 옷을 벗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굳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인형처럼 꼼짝하지 않는 그녀에게서 아토우 선배가 옷을 벗기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카호가 말했다.

내 방에서 내가 아닌 다른 남자에게 알몸이 되가면서 말한다.

‘……정말로, 정말로 고민했어요.’

‘그렇겠지.’

아토우 선배는 대화에 어울리면서도 그녀에게 옷과 속옷을 벗기는 것을 계속했다.

‘……이런 일이 올바른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잠깐 등 좀 들어줘. 브래지어 후크 풀게.’

‘…………그치만 무서웠어요. 혹시 나중에 치-군에게 필요 없어지면 어떡하지. 싫증을 내면 어떡하지 하고.’

‘녀석은 그런 남자가 아니야.’

‘……그건 제가 가장 잘 알아요. 그래도 불안해서…….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괜찮아. 지금은 나에게 몸을 맡겨.’

스르륵하고 팬티가 벗겨지는 소리와 함께 침대 옆으로 던져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도 벗을게.’

역시 아토우 선배는 나에게 상황을 중계해주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굳이 그런 것을 말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토우 선배의 말투에서는 후배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두 사람은 지금 침대 위에서 알몸이 되어 있다.

아토우 선배의 몸은 말할 것도 없이 나보다 더 듬직하고 남자답다. 보기에도 어깨는 넓고 가슴도 두텁다. 근육으로 뒤덮인 알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토우 선배가 카호의 알몸을 보고 있다. 그 사실이 다시 내 심장을 죄어 온다.

카호의 착실하고 내성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풍만한 가슴. 그 꼭대기에 존재하는 연분홍색 유륜과 모양이 예쁜 아담한 젖꼭지. 테니스를 하고 있어서 탄탄한 팔다리와 허리의 잘록함. 세로로 쭉 갈라진 배꼽. 음순이 보일 정도로 엷은 솜털 같은 음모.

그 모든 것을 아토우 선배는 빠짐없이 관찰하고, 그리고 그 빼어난 여체에 가슴이 뛰고 있음이 틀림없다. 분명 이제는 음경도 단단해져서 솟아올라있을 것이다.

‘역시 테니스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정말 스타일이 좋네.’

방금 전까지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아토우 선배의 목소리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카호의 대답은 없었다. 대신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다. 카호는 부끄럽다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서, 침대 위에서 몸을 비틀어 조금이라도 시간(視姦) 당하는 표면적을 줄여보려고 했을 것이다.

카호의 부끄러움은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토우 선배는 더 몰아붙이듯이 물었다.

‘내 몸은 어때? 한 번 봐봐.’

잠시 동안 대답은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했는지, 카호는 쭈뼛쭈뼛 대답한다.

카호가, 아토우 선배의 알몸을 본 것이다.

‘…………조금 무서워요.’

아토우 선배가 웃는다.

‘뭐~ 정말로? 어디가?’

‘……굉장히 몸집이 크고, 울퉁불퉁해요…….’

‘그야 치구사와 비교하면 그렇겠지. 럭비부에서 아는 사람들은 전부 이랬어.”

‘……그래도 치-군 정도가 안심되요.’

‘아하핫. 그건 카호 쨩이 치구사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고 울퉁불퉁한 것은 몸만? 여긴 어때?’

카호의 목소리가 한층 작아졌고, 그 목소리에는 치욕이라고도 혐오라고도 할 수 없는 색이 섞여 있었다.

‘…싫어…….’

‘심한 표현이네.’

아토우 선배는 여전히  유쾌한 듯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치구사말고 다른 사람 것을 보는 것은 처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카호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카호의 처녀는 당연히 내가 빼앗았고, 그 이후로 쭉 카호는 나 말고는 남자 경험이 없다.

카호는 반쯤 자포자기한 기색으로 말한다.

‘……치워주세요. 그거.’

‘카호가 착하다 착해 하고 쓰다듬어주면 얌전해질지도 모르는데?’

‘안 해요.’

카호도 어느 정도 상황에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대화를 나눌 때마다 긴장이 풀린 것인지, 아무튼 아토우 선배에 대한 말투는 평소와 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을 되찾아간다.

‘……아토우 선배의 그거, 무서워요.’

‘그거가 뭐야? 제대로 말해봐.’

아토우 선배도 상태가 괜찮아지고 있는 카호에게 농담하듯 분명히 성희롱인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건 그거예요. ……그보다도.’

‘그보다도?’

‘……너무 굵어요. 그런 거 안 들어가요.’

‘치구사보다 커?’

‘……치-군의 것은……. 뭐라고 할까…………. 더 상냥한 느낌이예요.’

‘어떻다는거야, 그건.’

크게 웃는 아토우 선배를 향해 카호는 조금 발끈한다.

‘아무튼, 아토우 선배의 그거는 좀 무서워요……. 이쪽으로 향하지 마세요.’

‘그럴 수 없잖아. 이제부터 이걸 카호에게 넣었다 뺐다 할거니까.’

카호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토우 선배의 말을 상상했던 것이다.

‘윽! 저, 적어도 조금은 더 얌전하게 해 주세요.’

‘카호 쨩이 쓰다듬어주면 얌전해질지도.’

‘안해요.’

‘그럼, 쭙쭙.’

“안한다니까요!’

‘그럼 내가 카호 쨩을 질척질척하게 만들 수 밖에 없겠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카호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렸다.

‘……으응.’

‘클리토리스가 약한 편?’

카호는 작은 목소리로 내뱉듯이 말한다. 나에게는 절대 들려주지 않는 어감이다.

‘……모, 몰라요.’

‘그럼 지금부터 내가 확인시켜 줄게.’

사양할께요. 카호는 분명히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하기도 전에 아토우 선배의 손가락이 뱀처럼 그녀의 음부를 몰아세웠을 것이다.

‘으응……아앗.’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싫.’

‘괜찮아. 치구사는 여기 없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앗, 크…….’

‘엄청 민감하네.’

‘…………그런 거, 말 하지 마세요.’

아토우 선배는 키득거리며 말한다.

‘왜? 치구사는 이렇게 말로 희롱하지 않아?’

‘안 해요!’

확고한 어조로 단언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대화가 결코 험악한 것은 아니었다. 선후배 사이라서 친구까지는 아니라도 나름대로 서로의 성격을 아는 사이였다.

‘그 녀석 착실하니까.’

카호는 토라진 듯이 대답했다

‘……그런 점이 좋아요.’

‘그래 그래. 연인 자랑은 그만.’

‘아앙……하아, 앗……싫, 어………….’

카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요염해지고 황홀함이 더해 간다.

분명 나보다 더 굵고 남자다운 아토 선배의 손가락에 클리토리스를 만져져서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괴롭히는 재미가 있네. 카호 쨩은.’

카호는 이제 부정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신 얕은 숨소리가 들린다.

‘이러면 어떻게 될까?’

찌걱, 하고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아앗~…….’

‘알겠어? 손가락 들어갔어.’

아토우 선배는 카호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설명하려는 듯이 말했다.

‘움직일게.’

카호의 대답은 역시 없었다. 하지만 말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은 침대에서 옷이 스치는 것과 무엇보다 점액을 휘감은 마찰음으로 알 수 있었다.

찌걱찌걱, 찌걱찌걱

‘응……응……응…….’

‘카호 쨩의 안, 굉장히 좁아. 그리고 엄청 뜨거워.’

‘이, 일일이 말하지 마세요…….’

‘거기다 이렇게 젖기 쉬운 아이였구나. 봐, 벌써 이렇게 끈적끈적해.’

‘싫…….’

이것도 하나의 공감성 수치일까. 카호의 부끄러움이 내 것처럼 느껴진다. 내 심박은 가슴 전체를 두드리듯 울리고 있었다. 분명 카호도 이만큼 두근거리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이렇게 좁으면 제대로 풀어줘야겠지. 내 건 굵으니까. 그럼 두 개째도 넣을게.’

‘응응.’

‘아프지 않아?’

역시 대답은 없다. 하지만 카호의 목소리에서 고통의 기색은 느낄 수 없다. 아토우 선배는 저렇게 보여도 여자를 상대할 때는 상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움직일게’

‘싫……어…….’

찌걱찌걱, 찌걱찌걱.

조금 전보다 그 마찰음이 선명해졌다.

‘으응, 으응……앗, 하아……야앙…….’

카호의 목소리도 달콤함을 더하고 있다.

‘어때? 치구사의 손가락과 비교하면.’

‘……싫어, 묻지 마세요…….’

‘말할 때까지 안 멈출거야.’

찌걱찌걱, 찌걱찌걱.

‘야앗, 앗앗하앙, 아앙……. 싫어, 앗앗앗.’

카호의 목소리는 교성이라 부를 만큼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절정이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매우 초조했다. 왜냐하면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절정에 이르게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를 절정시킨 적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끈적하게 애무한 적은 기억에 없다.

우리의 섹스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끝난 뒤에는 서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술을 포개고 있었다.

과도한 자신감은 아니지만, 그 행위는 사랑을 확인하는 의식으로 성립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의 성욕을 발산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카호에게 성욕이나 절정 등의 개념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잊고 있던 것 같다.

서로 사랑을 나누면 그것으로 섹스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상의 성적인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불순하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카호가 지금 막 절정에 이르려 한다.

‘앗, 앗, 앗, 싫어, 더 이상은, 앗, 하앗, 앗앗.’

‘자, 빨리 말하지 않으면 가버린다고?’

물론 아토우 선배는 그런 우리의 성생활 같은 것을 알 리 없다 하지만 카호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시럿……. 치-군 말고……. 이런 거……. 안 돼…….’

‘어서, 그 치구사와 비교해서 어때? 말 않하면 안 멈출거야?’

이대로 잠자코 절정에 이르러도, 솔직히 대답해도 부정(不貞).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하거나 얼버무릴 수 있는 요령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아토우 선배로 가지 않는 것. 나 이외의 남자로 절정에 이르지 않는 것.

‘…………기, 기분 좋아……요.’

마찰음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하아하아 하고 카호의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 그 호흡에서 극심한 죄책감이 전해졌다. 카호가 나를 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전해진다. 나를 생각 해주고 있다. 나에게 사죄하고 있다.

‘어땠어 기분 좋았어?’

‘모, 모르겠어요……. 그저, 치-군의 손가락과 전혀 달라서…….’

손가락이 천천히 질척질척한 질 속을 휘젓는 소리가 울린다.

‘이쪽도 전혀 다르지? 자, 잡아봐.’

발기한 음경을 잡게 한 것일까. 카호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치구사 것과 달라?’

카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아토우 선배의 질문이 이어졌다.

‘어떻게 달라?’

‘……손가락처럼 크고, 울퉁불퉁해서, 무서워요…….’

‘괜찮아. 상냥하게 해줄게.’

그렇게 말하고 무언가 포장을 뜯는 소리가 났다. 콘돔인 것일까.

‘내 것을을 갖고 오길 잘했네. 치구사의 것으론 안 맞았을거야.”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부터 카호가 삽입 당한다.

‘내것은 이래서 좀처럼 사이즈가 맞는게 없어서.’

그것도 내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웅대한 남근이.

실제로 보지 못하는 만큼 상상 속에서 아토우 선배의 남성기가 거칠게 부풀어 오른다.

‘그럼 넣는다?’

‘……저기, 부탁이에요……. 천천히…….’

‘알고 있어. 근데 정말 괜찮은거야? 해버려도.’

몇 초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나에겐 그 시간이 영원하게 느껴졌다.

‘…………열심히 고민한 결과니까…….’

‘하지만 이런건 평범한 것이 아니야.’

‘……저 스스로 말하기 그렇지만, 남자에게는 재미없는 여자였던 것 같아요. 데이트 계획도 전부 맡기고, 한 일이라고는 서투른 도시락을 싸가는 것뿐. 그런데도 치-군은 단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해 주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그가 바라는 것이라면…….’

마지막 부분은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침대가 잠깐 삐걱거린다.

‘응…….’

카호의 목소리가 경직된다. 귀두가 음순을 밀어 누른 순간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럴 때, 카호 쨩은 아무 말도 안 해? 페니스 넣어줘, 같은.’

‘마, 말 안해요……!’

‘해보는 것도 좋아. 남자는 그러는 것이 더 흥분돼. 나한테 연습해봐.’

‘따, 딱히 괜찮아요 …….’

‘자, 말 안하면 빵빵하게 발기한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을거야? 싫잖아? 치구사가 아닌데 가버리는 건.’

‘……아토우 선배, 짓궂어요…….’

그리고 몇 번의 호흡 후, 카호가 쭈뼛주뼛 입을 열었다.

‘……페니스……. 넣어주세요…….’

‘귀엽잖아. 그거라면 치구사도 단번에 함락이라고.’

‘……치-군에게 이런 부끄러운 말 못해요…….’

실제로 나는 카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흥분으로 거칠게 콧김을 내뿜고 있다.

‘그럼,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말하게 했으니,애태우지 말고 만족시켜주는 것이 매너겠지. 영차.’

‘으응…….’

카호의 괴로운 듯한 목소리.

‘역시 좁네……. 그래도 괜찮아. 충분히 젖었으있니까.’

‘……시……러어…….’

‘자, 들어갈게…….’

‘으응, 크…….’

드디어 삽입인가 하고 나도 심장이 쿵쾅쿵쾅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고동이 거칠어진다. 그러던 중 아토우 선배가 피식하고 웃는다.

‘이 내 가슴을 미는 손은 뭐야?’

‘……이제 그쯤에서…….’

‘아냐아냐. 아직 반밖에 안 들어갔어.’

‘……조금 괴로워요.’

‘괜찮아. 카호 쨩의 보지, 제대로 미끈미끈 젖어서 풀려있으니까.’

‘……아아, 정말……. 그런 말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는데…….’

카호의 목소리는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파?’

‘……그렇지는 않은데……. 그저…….’

‘그저?’

‘…………선배 거, 너무 커서……. 엄청나게 밀어 벌려지는 느낌이…….’

‘그 느낌이 좋다는 평판을 많은 여자들한테 받고 있는데?’

‘……저는, 그거…………싫어요.’

대놓고 남에게 부정적인 말을 못하는 카호가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이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왜?’

‘………….’

아토우 선배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카호. 그런 그녀를 대신해 아토우 선배가 대신 답한다.

‘내 모양으로 바뀔 것 같아서 싫은 거지? 치구사의 모양을 잊을 까봐 불안한거 아냐?’

‘그, 그런 것으로 치-군을 잊거나 하지 않아요!’

‘그럼 괜찮잖아. 끝까지 넣을게.’

‘그런……. 아앗……!.’

찌걱, 하고 음탕한 물소리를 울리며 결합의 소리가 들린다. 뿌리까지 남근이 삽입되는 소리. 사랑하는 그녀가 다른 남자를 받아들여버린 소리.

‘아……. 카호 쨩의 안, 너무 따뜻해서 기분 좋아. 그리고 조임이 좋아서 밀착감이 최고야.’

그런 저속한 말에 카호는 반응할 여유도 없다.

‘하아……하아……하아…….’

얕은 호흡을 반복할 뿐이다.

‘어때? 처음으로 치구사가 아닌 남자와 섹스를 한 느낌은?’

카호는 숨이 막힌 것처럼 힘들어하며 애원하듯 대답한다.

‘…………묻지 말아……주세요.’

‘알려주지 않으면 허리 움직일거야?’

그 말에 카호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 였다.

카호가 말을 더듬는 사이 침대가 삐걱거린다.

끼익, 끼익…….

‘으응……으응……앗……야앗…….’

나보다 훨씬 커다란 것 같은 아토우 선배의 남근이 들락거리는 카호의 목소리는 내가 들어본 적 없는 듯한 절박함이 넘쳤다.

내가 그 사실에 가슴 아파하고 있을 때, 대조적으로 아토우 선배가 득의양양하게 말한다.

‘장난 아냐, 카호 쨩 거 진짜 느낌 좋아. 가뜩이나 좁은데도 엄청 달라붙어와.’

아토우 선배는 카호의 그 삽입감에 감탄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곧 나와 남근의 굵기 차이를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 말이 진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의 페이스가 빨라진다.

끼익, 끼익, 끼익, 끼익.

그에 따라 카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절박해졌다.

‘앗, 앗, 앗, 앗, 앗, 앗.’

카호에게서 목소리를 높여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그것에서 달콤한 음색 같은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그녀가 스스로 경계하고 있는 것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절정에 가까워질 때까지 농락당한 직후에, 극태(極太) 남근으로 질도(膣道)를 억지로 밀어 벌려지며 자아내는 음색은, 더는 교성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요염했다.

‘시럿, 앗앗, 이런……. 으응, 으응.’

‘아~좋아……. 너무 좋아 카호 쨩.’

카호는 스스로를 타이르듯 가냘프게 말한다.

‘……이런 소리, 내면 안 되는데…….’

그녀의 죄책감이 내 심장을 움켜쥔다.

‘치구사에게만 들려줘야 하는 소리?’

아토우 선배는 캐물으면서도 허리를 멈추지 않는다.

끼익끼익. 끼익끼익.

찔꺽찔꺽. 찔꺽찔꺽

‘안돼……. 더 이상은………….’

카호의 목소리가 더욱 애절함을 띠었다.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비눗방울 같은 목소리.

‘뭐가 기분 좋은지 말해봐.’

‘……싫어. ……부끄러워.’

‘그럼 허리 안 멈춘다?’

침대의 삐걱거림이 조금이지만 격렬해졌다.

‘야앗, 앗앗앗……!’

‘가도 괜찮아? 이대로는 치구사가 아닌데 가버린다고?’

조금 전 손가락으로 애무할 때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하나.

‘……페, 페니스가…………. 아토우 선배의 페니스가, 기분 좋아요…….’

나에 대한 마음이 더 중요한지 카호는 항복했다.

하지만 손가락 때와 달리 아토우 선배는 허리를 멈추지 않는다.

침대는 계속 삐걱거렸다.

‘앗, 앗, 앗, 앗, 앗……. 어째서…………. 저, 말 했어요…….’

‘이대로 기분 좋아져버릴까.’

‘아, 안돼! 그것만은 안돼……!’

카호의 목소리에서 강한 초조함이 엿보인다.

‘괜찮아. 기분 좋게 해줄게.’

‘안돼, 안돼, 안돼…….’

‘카호 쨩은, 페니스로 가는 것은 처음 인가봐?’

‘……시, 러어…….’

카호의 그 부끄러움은 긍정을 담고 있었다

‘괜찮아. 치구사에게는 비밀로 해줄게.’

‘……그런, 문제가…….’

카호는 더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그녀의 온몸이 도취되어 이제는 절정의 파도에 휩쓸려 버릴 것 같은 것이 한 눈에, 아니, 분명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를 빙빙 돌아다녔다. 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내가 원했던 일이니까.

그러는 사이 침대의 삐걱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끼익끼익끼익끼익.

‘앗, 앗, 앗, 앗, 앗, 앗, 앗!’

카호의 목소리는 이미 한계까지 절박해졌다.

‘자, 내 목을 끌어안아……. 그래 그래.’

정상위에서 카호가 아토우 선배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다.

나는 정신 차리니 목이 바짝 마르고, 어쩌지 못하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사타구니에서 뜨거운 통증을 느끼고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발기하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아앙, 아앙, 아앙, 아앙!’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연인의 교성에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뺨을 타고 흐르는 그것은 매우 뜨거웠다.

‘시, 러……. 와요, 와요……. 와버려…….’

그리고 눈물보다 더 뜨거운 혈류가 사타구니에 응축되어 음경를 격렬하게 발기시킨다.

비교적 여유가 있던 아토우 선배도 숨을 헐떡이며 말한다.

‘안되잖아? 치구사 것이 아닌 다른 페니스로 가버리면. 치구사가 슬퍼한다고?’

부추기는 말을 듣고 카호는 애원한다.

‘……제발……. 허리 멈춰주세요…………. 페니스 멈춰, 주세요…….’

마치 목숨을 구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토우 선배의 흥을 돋우었는지, 침대의 삐걱거림은 잦아들기는커녕 간격을 짧게 만들었다.

‘앗앗앗앗앗앗앗!’

이미 카호의 절정은 임박했다. 앞으로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그 앞은 나락의 밑바닥. 쾌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늪. 그곳으로 밀어 떨어뜨리려 하는 아토우 선배.

‘자 가버려! 남자친구 것이 아닌 다른 자지로 가버려.’

‘가요, 가요, 앗, 가요. 앗앗앗, 가요! 아아앗!’

유난히 큰 헐떡임을 신호로 성교 소리가 끊긴다. 들리는 것은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뿐이다.

그토록 요란했던 침대 스프링 소리가 거짓말처럼 잦아들고 있다.

‘으흑……. 흑……. 으흐, 흑………….’

곧이어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그 주인은 카호였다.

‘울 것 까진 없잖아.’

‘그치만……. 그치만……. 치-군이 아닌데……. 치-군이 아닌데…….’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성교로 절정에 이르러 버린 것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말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치구사는 그런 일로 화내거나 실망할 만한 녀석이 아니잖아?’

‘그, 그렇지만……. 그래도…….’

카호의 훌쩍이는 듯한 콧소리에 나는 다시금 그녀는 얼마나 갸륵한거야 하고 또 한번 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지금 침대 위에서 아토우 선배에게 안겨 있었고, 더군다나 그 남근으로 절정을 이룬 직후였다.

나는 몸부림 칠 것 같은 질투에 의한 발기로 사타구니가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편안한 상태인 아토우 선배가 말한다.

‘자,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기분 좋게 해줄 테니까.’

그리고 다시 허리를 움직여, 침대를 흔들리게 했다.

‘앗, 앗, 앗, 앗, 앗…….’

카호의 이성은 교성을 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목은 저절로 그 움직임에 맞춰 새된 소리를 내버리고 있었다.

‘봐봐, 카호의 보지도 아직 기분 좋아지고 싶다고 말하고 있잖아. 꾸욱꾸욱하고 애가 타서 내 것을 쥐어짜듯 움직이고 있어.’

‘……싫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고 있다니까.’

아토우 선배의 목소리는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기세를 조금이라도 꺾으려는 카호.

‘……저기, 죄송한데…………. 적어도 이 자세는 이제 그만 해 주세요…….’

‘왜? 정상위 싫어해?’

카호는 코를 훌쩍이며 대답한다

‘……그런 게 아니라……. 더 이상 치-군 말고 이런 표정을 보여주기 싫어요…….’

‘정말 귀여웠어. 카호 쨩의 황홀해 하는 표정.’

아토우 선배는 카호의 갈등을 이해하면서 그것을 놀리듯이 말했다.

‘……정말!’

‘알았어 알았어. 그럼 뒤로 할까? 그럼 괜찮지?’

카호에게 이론은 없었는지, 침대 위에서 부스럭거리며 체위를 바꾸는 소리가 들린다.

‘카호 쨩의 작은 엉덩이, 동그랗고 야해.’

아토우 선배에게 악의는 없었겠지만, 카호에게 그 말은 치욕에 지나지 않았다.

‘으응……아아…….’

무엇보다 다시 삽입되었을 때, 반론 할 겨를도 없이 소리를 냈다.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아토우 선배의 하복부와 카호의 엉덩이와 리드미컬하게 부딪히는 소리.

팡, 팡, 팡.

매끄럽게 뿌리까지 들락거리는 남근. 그래서인지 헐떡이는 소리가 조금 전보다 더 분명하게 높아져 있다.

‘앗, 앗, 앗!’

‘정상위로 화려하게 흔들리는 폭유도 좋았지만, 이렇게 내려다보는 뒷모습도 야하네. 테니스를 해서 그런가. 등은 바짝 조여져 있고 허리도 잘록해서 엄청 야해.’

나는 상상한다.

후배위로 박히는 카호를. 흔들리는 엉덩이와 가슴.

하지만 그 상대는 내가 아니다.

‘아잇! 앗앗앗! 안돼, 그런 깊은, 앗앗, 닿았어요…….’

내가 아닌 다른 남자로 상스러운 소리를 지르는 카호

‘아앗, 거기, 싫어, 앗앗앗!’

카호가 두려워 할 정도로 굵은 남근으로, 사정없이 밀어 벌려진 음순이 헐떡거린다.

찔꺽, 찔꺽, 찔꺽, 찔꺽.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남성기는 굵기뿐만 아니라 길이도 상당하다는 것을 스트로크 소리와 카호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깊어, 깊어, 안돼……. 그런 깊은 곳…………. 아앗!’

카호는 몇번이고 ‘깊다’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아토우 선배의 육창이 간단히 그곳에 닿았고, 그리고 카호에게서 새된 소리가 나오게 하고 있다.
 

 


나와의 행위에서 카호는 그런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물론 이렇게까지 절박한 목소리를 낸 적도 없다.

‘이잇, 이잇, 이잇, 아앗, 하앙……!’

그 수줍음 많은 카호가 어찌할 수 없게 되어 큰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런 곳, 푹푹 하지마세요……!’

‘그럼 이건?’

‘돌리는 것도……안돼애…………!’

‘아까보다 소리가 커졌잖아. 후배위 좋아했어?’

‘그런건, 아니지만……. 아앙, 아앙, 아앙!’

한 번의 절정을 거치면서 애액 분비가 늘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체위로 인해 남근의 들락거림이 쉬워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둘 다일까. 아무튼 피스톤 소리는 더 과격하고 외설적인 것으로 되고 있었다.

찔꺽, 찔꺽, 찔꺽, 찔꺽.

‘앗, 앗, 앗, 앗!’

사정이 가까워졌는지 아토우 선배의 목소리도 상기되어 들린다. 그도 평상심과는 거리가 떨어져 고양된 것 같았다.

‘커다란 것이 좋지? 말해봐! 커다란 자지가 좋다고!’

‘……싫어, 말 안해요……. 그런거, 말 못해요…….’

하지만 아토우 선배에게 꿰뚫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절규에 가까웠다.

나와의 사랑을 확인하는 듯한 상냥한 의식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헐떡임.

나는 처음 듣는 카호의 소리.

남자에게 쾌락을 받는 암컷의 소리.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주위를 급히 둘러보며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지퍼를 내려 발기한 음경만 꺼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남성기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평소보다 더 거칠게 발기한 것처럼 보였다.

손으로 쥐면 손바닥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핸드폰에서 격렬한 남녀의 밤일의 상황이 전해져 온다.

‘앗, 좋아, 앗앗앗! 거기, 안돼, 아잇……!’

격렬하게 흔들리는 침대.

‘핫, 핫, 하아, 아앙…………. 커다래……. 페니스, 커다래.’

팡팡 울려 퍼지는 허리의 충돌.

‘가요, 가요……. 그렇게 하면……. 또 금방, 가버려…….’

그리고 카호의 음탕한 목소리.

이 모든 것이 나의 상식을 무너뜨린다.

지금까지 내가 사랑했던 평온한 세상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져 사라져 간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상쾌함을 주었다.

이런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그런 자문자답을 하면서 남근을 문질러댔다.

‘아아……. 카호, 카호…………. 미안해…….’

왼손에 핸드폰을 쥐고 자신의 방을 마주보며 자위에 열중한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잇! 이잇, 이잇! 가요, 가요오……!!!’

나는 카호와 타이밍을 맞춰 사정했다.

문에 정액이 튄다.

하지만 핸드폰에서 들리는 헐떡임은 그칠줄 모른다.

‘앗! 앗! 앗! 가고 있어요! 이미 가고 있으니까!’

‘나도 금방이야.’

여유 없는 목소리로 아토우 선배는 그렇게 말하면서 팡팡 하고 건조한 소리를 계속 연주한다.

‘이잇, 이잇, 이잇, 아잇, 히잇, 이잇! 안돼, 안돼, 머리, 이상해져요! 가고 있는데, 머리 저릿저릿하는데, 계속 페니스, 깊숙이 들어와…………. 히잇, 이잇, 아잇, 이잇이잇아잇!’

나는 좀처럼 사정이 수습되지 않는 남근을 계속 문질렀다

억지로 절정에 계속 이르는 카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갈게 카호 쨩……. 아앗, 간다간다간닷!’

그렇게 말한 직후 피스톤 소리는 더욱 격렬해졌다.

파앙파앙파앙!

카호의 절규가 울려 퍼진다.

‘아아아아아아앗!’

‘으윽……. 나온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정적이 돌아왔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심장이, 혈관이, 심상치 않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 숨 쉬는 방법조차 모르겠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지겨워하고 있던 일상이 보기에도 무참하게 산산조각이 난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환영하고 축복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남근만은 뷰릇뷰릇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사정을 반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