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카가 잠에서 깬 것은 평소보다 다소 늦은 시간이었다.


익숙한 소독약의 알코올 향기와 새하얀 침대.


어젯밤의 일.


늘 함께 하던 여성들이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비참하게 범해지는 모습을 보고, 그 남자에게 무릎을 끓은, 분명 일반적인 남자들에게는 끔찍한 악몽에 가까울 경험이었으나, 리츠카의 마음은 어쩐지 지독할 정도로 가벼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나이팅게일에게 버려지지 않으리라는 확신 탓일지도 모른다고 리츠카는 생각했다.


남자로써, 선택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선택에 의해 굴종하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가에 대한 생각은 리츠카에게는 없었다.


단지 무의식에서 자신의 비참함에 미묘한 쾌감을 느낄 뿐.


리츠카는 어쩐지 텅 비어 있는 의료실을 나선다.


그는 늘 그러하듯, 오늘치 할당된 특이점을 해결하러 일을 나온 상황이었다.


평소와 같은 인원, 같은 배치인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집중이 되지 않는 이유는 아마 전방에서 자신의 몸보다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분홍머리의 소녀, 마슈 때문이겠지.


어쩐지 마슈의 얼굴을 볼 수 없고, 그녀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그녀의 부드러운 어깨와 엉덩이, 몸을 향하게 만들었으나, 어찌 되었건 이번 일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어제 본 남자가 마슈를 안고 갔지...혹시 마슈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던 여자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범해지고 있다는 생각은 분명 괴로운 상황일텐데, 어쩐지 리츠카의 다리 사이에서 미약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나마 일 중이기에 그런 것일까. 제대로 발기가 되진 않았다며 미약한 수준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리츠카는 갑자기 튀어나온 적에 허둥대며 지휘를 이어나갔고 워낙 간단한 특이점이었기에, 점심 때쯤. 가볍게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리츠카의 지휘가 시원치 않다는 사실을 다른 서번트들도 느꼈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걱정의 말을 늘여두는 이들에게 미소와 함께 괜찮다고 말한 리츠카는 칼데아에 복귀하자마자 의료실을 찾았다.


그 장소에는 리츠카의 기대대로 나이팅게일이 있었다.


다만.


어느 남자도 함께 있었을 뿐.






2


자신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근육질의 남성은 상의를 벗고 있었고, 나이팅게일의 옷차림은 평소에 비해 상당히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뜻 봐도 남자의 거친 손길이 단정했던 여인의 몸을 만졌을 때 날법한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나이팅게일의 얼굴을 마주하자 리츠카는 어쩐지 자신이 비참하며 더욱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이팅게일, 나 좀 쉰다."


그대로 남자는 리츠카의 얼굴을 보고는 무시하는 듯, 비웃는 표정조차 짓지 않고는 나이팅게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걸더니 침대 안으로 들어갔으니, 리츠카의 눈 앞엔 단정'했었을' 옷을 입고 있는 나이팅게일만이 자리에 남았다.


"하아... 실례, 마스터."


잠시 숨을 고른 나이팅게일은 다시 냉정한 의사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는데, 분명 저 남자와 단둘이 있을 때 잠시 보였던 얼굴엔 음란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고. 리츠카는 생각했다.


리츠카가 마른 침을 삼킬 무렵, 나이팅게일은 자연스럽게 리츠카에게 접근해 조심스럽게 진찰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말이 없자 어딘가 아프다고 판단한 듯한 모습에 리츠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유는 단순했다. 평소라면 단정한 소독약 냄새만 풍기던 나이팅게일의 몸에서 음란하기 짝이 없는 밤꽃의 향기가 풍겼으니까.


어디에서 풍기는 것일까?


리츠카는 현기증을 느꼈다.


눈앞의 여인이 누군가에게 희롱되었다는 사실을 시각으로, 그리고 후각으로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이 순간에.


리츠카는 벌벌 떨면서 나이팅게일에게 말했다.


"나이팅게일..."


"예, 마스터."


"혹시...처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그 말에 나이팅게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어쩐지 기뻐보이는 그 모습에 리츠카 역시 미소를 띄었다.


다만. 그 미소에는 약한 존재가 강한 자에게 자비를 받아 행복해하는 비참함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리츠카는 깨닫지 못했다.


그저 달콤한 쾌락이 기대되서라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며, 자신의 방으로 왕진을 부탁하는 것이 아닌, 나이트게일을 범한 장소에서 나이트게일을 범한 남성이 있는 이 순간 성처리를 부탁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냥 넘겨버렸다.


리츠카는 나이트게일을 따라 침대로 들어갔다.




3


의료실의 침대는 두 개뿐이었다.


의료실 옆쪽 방에 들어가면 제대로 환자들이 쉴 수 있는 침상들이 모여있는 장소가 따로 있었기에, 나이트게일이 주로 거주하는 의료실엔 많은 양의 침대가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츠카는 자신도 모르게, 지금 남자가 들어간 침상이 나이트게일을 범한 장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무 생각 없이 나이트게일을 따라 들어간 침대의 풍경을 무방비하게 보고야 말았다.


우선 눈에 띈 것은 침대에 흘러나온 약간 누리끼리한 색이 뒤섞인 흰 액체들 이었다.


마치 누군가 물감을 뿌려둔 듯, 끈적거리는 액체들이 이곳 저곳 흘러나와 침대 위를 더럽히고 있는 풍경.


그러나 자세히 보면, 새하얀 침대를 적시고 있는 것은 남성의 정액 뿐이 아니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끈적한 액체.


투명한 탓에 잘 보이진 않으나, 분명 침대라는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물감은 남성의 정액이 아닌, 그보단 못하지만 끈적거리는 점성이 있는 액체였고, 그 액체는 분명...


리츠카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고, 그 순간 천조각 하나를 주웠다.


'...이건?'


그것은 침대에 묻어 있는 투명한 액체에 젖어 있는 여성의 속옷이었다.


마치 무언가의 쾌락을 기다리는 듯, 축축하게 젖어 있는 속옷의 리츠카의 손에 따라 진득하게 늘어졌는데, 분명 이것은 침대 위에 흩뿌려진 것과 같은 액체였다.


"마스터?"


바닥에 주저 앉아 무언가를 멍하지 바라보고 있는 리츠카를 이상하다는 듯 부른 나이팅게일의 눈에 속옷을 만지작거리는 리츠카의 모습이 눈에 담겼다.


나이팅게일의 표정은 분명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리츠카는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마스터. 그건 바닥에 놔 두시고 따라오시길. 이 침대는 더럽다 보니 성처리가 어렵습니다."


리츠카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의 의미를 보였다.


"지금 해줘. 나이팅게일. 부탁할게."


"... 마스터 하지만 위생적인 환경은..."


나이트게일이 뭐라 항변하려 했으나, 리츠카는 지금 이 장소, 나이트게일이 다른 남자에게 범해졌던 장소에서 비참한 쾌락을 맛보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리츠카 본인조차 알 수 없었으나, 이 역겨운 정사의 흔적은 그의 이성을 뜨겁게 마비시키고 있었다.


나이팅게일은 다소 당황한 느낌이었으나, 곧 옷을 벗은 리츠카의 다리 사이에 손을 뻗어 그의 정조대를 풀었다.


늘 그러하듯 리츠카 자지는 정조대에서 해방되자 빳빳하게 발기했다.


리츠카가 나이팅게일에게 쾌락을 구걸하는 순간, 비웃음이 뒤섞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4


상의를 벗고 있던 남자가 커튼을 걷어버리고 리츠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날 보고 있었을까.


리츠카는 남자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니 인간으로써 밑바닥을 기고 있던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이팅게일, 나도 성처리 좀 부탁하고 싶은데."


'저런 거'는 신경쓰지 말고 자신과 놀아보잔 말에 나이트게일은 고개를 젓는다.


"마스터가 우선입니다. 일게 직원인 당신보다야..."


나이팅게일의 담담한 목소리에 이야기에 리츠카는 잠시 정신을 차린다. 칼데아의 마스터, 세상을 구하는 영웅들의 요람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남자.


그러나 그 자긍심은 고작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남자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는 순간 산산이 조각났다.


남성으로써, 수컷으로써 부족한 체격, 그에 더해 너무나 작고 형편없는 몸. 성기마저 그의 것에 비하면 리츠카 자신의 물건은 성장이 되지 못한 어린 아이의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나이팅게일에게 쾌락을 비참하게 구걸하는 것 뿐이었으나, 저 남자는 자신과 다르게 나이팅게일의 몸을 소유했고 이미 그 순간부터 경쟁에서 패배한 약해 빠진 수컷이 우두머리 수컷에게 암컷을 바치듯, 리츠카는 저 남자에게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굴복했다.


리츠카 자신은 패배했다.


리츠카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나이팅게일에게 말했다.


"아니야. 나이트게일. 저 분의 욕구를 우선해 줘."


리츠카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여자를 소유할 남자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예 마스터."


나이트게일은 과연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차가운 듯,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는 나이트게일의 얼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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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화 정도 후에 완결 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