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안했음.

#수간아님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삘받음


불운은 항상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아내가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지 벌써 2년 정도가 지났다

아내는 내 앞에서 걸어가는걸 좋아했다. 먼저 앞서 나가는 아내를 부르면 아내의 긴머리는 항상 찰랑이며 그녀의 기쁨을 나타냈다. 하지만 뇌수술 후 하얗게 밀린 아내의 머리는 그렇지 못했다.

멍하니 약간은 정신이 나가있는듯한 아내. 눈에는 아직 이지가 남아있지만 그녀의 공허한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아내는 시각을 담당하는 뇌 부분이 손상됐다.

그녀는 그래서 교사를 그만뒀다. 더 이상 학생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내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다만 앞에 있는 아내를 부르고, 아내가 뒤돌아 봤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누군가를 알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 누군가도 아닌 단순히 앞에 있는 사물을 인지하는데도 추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뒷끝이 쓴 초콜렛 같았다.그녀는 목소리를 듣고 환하게 웃고선 눈이 파르르 떨리곤 했다. 나의 실체는 그녀에게 오로지 소리일 뿐이었다.

뇌수술로 민 머리가 점점 자랄 때 쯤, 그녀는 신혼집에 있는 사진을 치우기 시작했다. 알아볼 수 없는 추억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는 듯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위로하려 하면 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런 그녀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집에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오디오북 소리, 라디오 소리. 아내는 항상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고 나는 아내의 세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한 발걸음으로 집을 돌아다녔다.

내가 사는 세계와 아내의 세계는 달랐고 자연스레 아내와는 멀어졌다. 머리가 단발 정도 되었을 때 아내는 그 예쁘장한 얼굴로 수줍게 나에게 잠자리를 청했다. 

아내는 침대에 기댄체 나를 바라보고 나는 아내를 바라봤다. 단정한 눈썹 큰 눈에 예쁜 윤곽의 얼굴과 하얀 피부. 아내는 활짝 웃고 있었지만 나는 이상한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마트에서 우연히 학부모를 만났을 때 엉뚱한 사람에게 웃고 있던 아내. 그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배가 뒤틀리는 감정이 들며 나는 아내의 그 정갈한 얼굴이 아닌 벽을 바라보고서 관계를 끝마쳤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부부는 변한게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겉을 볼 수 없었다.

퇴근을 하고 들어오면 아내는 흠칫하고 나를 바라본다. 찬찬히 내 얼굴을 뜯어보고 그리고 다시 조합을 해 자신의 남편인것을 확인한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아내가 팔을 벌려 나를 안으면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내의 따스한 품, 향긋한 냄새를 맡으면서 천천히 그녀를 밀어냈다. 내 유별난 감수성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그냥 쓰레기여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아내가 무서웠다. 아니 꺼림칙했다.

아내도 내 변화를 느낀듯 했다. 어디서 느꼈을까? 그녀가 나를 안으면 내가 천천히 두 팔로 밀어낼 때? 아니면 침대에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댈 때 자는척 뒤척이며 등을 돌릴 때?

변화를 느껴서 나에게 더 집착하는 걸까? 아내는 퇴원하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  매일 잠자리를 요구했다. 벌써 결혼한지 2년이 넘었음에도, 연애까지 포함하면 7년이 지났음에도 아내는 항상 수줍은 듯이 그 청순한 얼굴을 붉히고서 내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아내를 전희로나 본게임으로나 만족시켰다고 느낀적도 없었다. 164인 아내보다 7cm 정도 더 큰 키에 왜소한 체격인 나는 시각적으로나 촉각적으로나 성적인 만족을 일으킬 깜냥이 아니었다. 그것의 크기? 중학교 때 친구들과 목욕탕을 간 이후 항상 콤플렉스였다. 테크닉? 아쉽게도 아내 이전에 여자는 한 명 밖에 없었고, 아내와의 관계는 암컷과 수컷의 서로 녹아내려 하나로 합쳐지는 그런 끈적한 것이 아닌 단순히 살갗을 살짝 맞대고서 유치한 사랑의 말을 늘어놓고 시시덕 거리는 무미한 연애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래서 왜 아내가 자꾸 나를 밤마다 원하는지 이해가 안갔다. 왜? 그녀가 보는 파편으로 비산하는 이미지들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의 숨결, 사랑한다는 형식적인 말 , 그리고  털없는 백옥같은 아랫배에 들어간 내 볼품없는 성기가 주는 미약한 자극이 그녀의 유일한 동앗줄이여서?

나는 그녀를 밀어냈다. 비열한 짓이었지만.
치매인 부머를 요양원에 보내는 자식같이.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에게 점점 무관심해졌다. 아내가 보낸 형체가 뒤틀린 음식 사진을 무시했다. 아내가 해맑게 그렇지만 은근히 눈치를 보며 수줍게  내 사진을 찍고서 보여줬을 때. 나는 피사체가 어긋난 것에서 짜증이 났는지 아니면 아내가 요즘 더 잘생겨졌다고 말한 것에서 어이가 없었는지 아내에게 화를 내버렸다. 그날 이후 아내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런 나의 태도가 아내를 더욱 악화시켰다. 물을 주지 않으면 꽃은 말라죽는다. 아내가 사고를 당한지 어연 1년이 지났을 때 아내는 환청과 환시가 발발했다.

어느날 화분이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하고, 다음날은 산책을 하다가  강아지가 사람 말을 한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외상과 더불어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비열한 놈이다. 나는 아내에게 친정에서 지내는게 어떻냐고 말했다. 그날 아내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삼키며 나와 같이 있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는 다음날부터 스스로 훈련을 했다. 직관으로 대상을 판별하는 능력을 잃은 아내는 이미지의 조각을 모아 대상을 판별하는 훈련을 했다. 성과는 있었지만, 안경을 바꿔끼거나 바람에 맞아 머리가 헝클어닌 나를 알아조지 못하는 모습에 나는 더욱 아내를 멀리했다. 내 앞에 놓인 이 여자가 사람이 아닌 로봇처럼 느껴졌다.

해외파견을 자원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한 2년간
나가 있으면 그녀에게 느끼는 이 감정도 좀 무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까? 운전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아내에게 나는 해외파견 이야기를 꺼냈다. 해외 파견을 가니, 친정에 가있으라고 그게 싫으면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사둔 바닷가 근처 외진 별장에서 사는게 어떻겠냐고, 그리고 그것도 싫으면 그냥 여기서 살라고.

아내는 말없이 한참을 있다가, 애써 환하게 웃으며 별장에 가서 살고싶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교정과 번역 아르바이트도 해서 때마침 바닷가 근처에 살고 싶었다고.

그렇게 아내는 별장으로 갔고, 나는 해외로 파견을 나갔다. 파견을 가기 전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위태한 아내의 정신상태가 불안해서일까 나는 아버지가 지은 낡은 별장에 애완견용 카메라를 달았다. 모든게 잘 끝난듯했다.

아내가 돌연 카톡으로 유기견을 키우기로 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 말이다.